♬ 믿음에서 앎으로 ♬
2008년 07월 13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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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선교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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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사람의 믿음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모릅니다. 세간에서는 세종대왕을 주제로 한 영화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만약 내일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곳에서 “사실 세종이라는 왕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태종의 대를 이은 것은 충녕대군이 아니라 효령대군으로서 정식명칭은 세종이 아닌 ○종이었다”는 발표를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누구도 세종대왕을 만난 적도 없고 당연히 사진으로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사람이라면 세종대왕을 안 믿는 사람은 없겠으나 생각해보면 그런 믿음도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는 모래성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바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다고 하기에 잠시 감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용에 동의를 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더군요.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바울이 아직 사울일 때 다메섹으로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러 가는 길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비추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당시 다메섹 지방에는 지진이 많았는데, 지진이 일어날 때 땅에서 전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 전기로 인하여 사울이 바닥에 쓰러지며 헛것을 보게 된 것일 수 있다.”
어떤 때 보면 참으로 사람이란 믿음이 지나치게 좋은 순진한 존재 같기도 느껴집니다. 성경에 적힌 내용이 비과학적이라고 하여 그것을 애써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지진이나 전기를 인용하여 주장한다면 안 믿었던 사람이 얼마나 믿게 될지 의문스러울 따름입니다. 하기야 원숭이(유인원)에서 현재 사람으로 진화되었다는 학설을 웬만한 종교보다 굳건히 믿고 있다는 점을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몇 년 전 미국 남가주 지역에 있는 신학대학인 바이올라 대학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 곳에서 우연히 영화동아리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사람들은 성경보다도 오히려 영화를 더 많이 믿어요. 영화는 픽션이 가미되어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 기본이 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인데도 말이에요.”
이 말을 듣고 떠오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다룬 영화들을 보면 모두가 동방박사를 세 사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외경이나 위경에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우리가 읽고 있는 정경에는 동방박사‘들’(영어로는 ‘they’), 그리고 그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 어디에도 세 명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침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을 때에도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 위에 머물렀더라”고 되어 있어나 어딘가로부터 실제 비둘기가 내려와 예수님의 어깨에 내려앉는 영화 장면은 이미 우리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어떨까요. 이성적인 믿음이라면 ‘과학’이라는 미명 하에 정말 전기나 지진 이야기가 있다면 신빙성이 있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은 성령님의 능력에 의한 믿음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의 믿음은 눈으로 보아야 하고, 귀로 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많은 상상과 허구가 자리잡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고 들을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성령님과 항상 동행하고 있습니다. 나의 이웃과 가족이 있다는 사실은 믿음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막연히 주님에 대한 믿음이 아닌 주님을 알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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