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두려움과 믿음
2016년 9월 18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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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 49절~50절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두려움과 믿음’ 恐れることと信じること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누가복음 8장 41절~42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するとそこに、ヤイロという人が来た。この人は会堂管理者であった。彼はイエスの足もとにひれ伏して自分の家に来ていただきたいと願った。
彼には十二歳ぐらいのひとり娘がいて、死にかけていたのである。イエスがお出かけになると、群衆がみもとに押し迫って来た。

본문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나아와서 간구합니다. 이 회당장이라고 하는 직책은 이른바 유대인의 회당인 시나고그를 관리하고 예배를 주관하고 기도도 하고, 또한 설교할 사람을 택하기도 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관한 관리를 담당하는 역할로 본다면 요즘 교회에서 장로님 정도 되는 분, 또는 여러 장로님들의 그룹 중에서 대표로 뽑힌 사람이 이 회당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위엄을 갖추고 무게를 잡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본문에 의하면 체면도 뭐고 다 뿌리치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예수님 발앞에 엎드려서 자기 집에 와 달라고 간구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왜요? 예, 지금 자기한테 12살 짜리 외동딸이 하나 있는데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냥 외동딸도 사랑스럽고 귀여울텐데 회당장까지 오른 사람의 외동딸이 12살이었다고 하면 꽤나 늦동이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러니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끼고 아끼던 딸이었겠지요. 그런데 그 딸이 죽어간다고 하니, 사회적 지위가 무슨 소용이고 체면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예수님 발 앞에 딱 엎드립니다. 제 딸이 지금 막 죽어가니까 지금 당장 우리 집에 와 달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예수님을 등에 엎고 자기 집에 달려가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화제가 바뀝니다.
43절에 보니까 12년간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이 등잡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손을 대니까 그 오랫동안 앓고 있던 질병이 순식간에 나았어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나한테 손을 댄 자가 있다, 그게 누구냐, 나한테서 능력이 나간 것을 내가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이 떨면서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자기가 왜 예수님께 손을 대게 되었고, 그러자 자신이 그 오랫동안 앓던 병이 나았다는 고백을 모든 사람 앞에서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만 본다면 이는 대단히 은혜롭고, 이는 분명히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을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만, 이 일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회당장의 심정을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딸은 집에서 지금 죽어가고 있고, 자기는 이미 모든 자존심, 프라이드, 모든 것을 뿌리치고 예수님 앞에 무릎꿇고 빌어서 겨우 와주실 것 같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어떤 이상한 여자 하나 때문에 예수님이 못 움직이고 있어요. 이 회당장이 생각하기에 1분 1초가 얼마나 길게 느껴졌겠습니까.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자, 먼저 이 시점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중에서 이 회당장에게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하나씩 꼽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쪽부터 살펴볼까요? 이왕이면 잘한 점입니다. 이 회당장은 인내심이 있었습니다. 회당장 정도의 지위가 있었다면 어쩌면 이 여자를 뿌리치고, “예수님, 지금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어서 우리 집으로 가셔야죠.”라고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수님과 이 여인과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비록 속은 뒤집어졌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자, 그러면 이 회당장이 잘못한 점, 이 회당장의 실수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이 회당장은 예수님이 자기 딸을 살리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자기가 자기 멋대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 회당장이 지금 예수님더러 자기 집에 오시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예요? 그냥 밥 한 끼 대접해드리고 싶어서요? 아니요.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딸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 집에 가야만 된대요? “내가 네 딸을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네 집에 가야 한다”. 예수님이 그러셨던가요? 아닙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5절~8절을 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イエスがカペナウムにはいられると、ひとりの百人隊長がみもとに来 て、懇願して、言った。「主よ。私のしもべが中風やみで、家に寝ていて、ひどく苦しんでおります。」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行って、直してあげよう。」
しかし、百人隊長は答えて言った。「主よ。あなたを私の屋根の下にお入れする資格は、私にはありません。ただ、おことばをいただかせ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私のしもべは直りますから。

여기서는 자기 하인을 고쳐달라는 백부장이 나오는데, 이 구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 집에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오히려 백부장은 뭐라고 합니까.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이것이야말로 바로 이 백부장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집에 안 가시니까 병이 안 나았어요? 아닙니다.
13절에 보면,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それから、イエスは百人隊長に言われた。「さあ行きなさい。あなたの信じたとおりになるように。」すると、ちょうどその時、そのしもべはいやされた。
라고 합시다.
또한 마태복음 15장 22절에 보면,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すると、その地方のカナン人の女が出て来て、叫び声をあげて言った。「主よ。ダビデの子よ。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娘が、ひどく悪霊に取 りつかれているのです。」

이제 가나안 여자가 나옵니다. 자기 딸리 귀신들렸기 때문에 고쳐달라고 간구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 응답을 하십니다. 28절에 보면,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そのとき、イエスは彼女に答えて言われた。「ああ、あなたの信仰はりっぱです。その願いどおりになるように。」すると、彼女の娘はその時から直った。

그렇다면 이 가나안 여인은 자기 딸을 데리고 왔었나요? 아니요.

마가복음 7장 30절을 보면,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女が家に帰ってみると、その子は床の上に伏せっており、悪霊はもう出ていた。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한 말씀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보니까 정말 딸이 나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앞서 나온 백부장은 분명 로마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딸이 귀신 들렸다는 여인도 가나안이었다고 하니, 이 두 이방인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예수님한테 제대로 올바르게 간구합니다만, 오히려 유대인들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이 회당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냥 그 자리에서 우리 딸을 고쳐주세요, 라고 했으면 그 즉시로 딸이 나았을텐데, 자기 딸이 낫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셔야 한다고 자기 멋대로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건 마치 감기에 걸렸다고 소화제를 먹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앞뒤가 안 맞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서 이 회당장이 감당해야 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죠. 속이 뒤집어지는 시간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자~ 이제 예수님과 혈루병을 앓던 여자 사이의 대화가 끝났습니다. 이제서야 예수님이 나와 함께 집에 가주시겠구나…하는 기대를 가진 것도 잠시,

누가복음 8장 49절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イエスがまだ話しておられるときに、会堂管理者の家から人が来て言った。「あなたのお嬢さんはなくなりました。もう、先生を煩わすことはありません。」

자기 집에 일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친인척인지는 모릅니다만, 회당장 집에서 사람이 와서 이 회당장한테 하는 말이, “이보시오, 회당장님. 됐어요. 이미 끝났습니다. 딸이 죽었어요. 괜히 저 예수인지 뭔지 하는 선생을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집으로 돌아갑시다……”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이 회당장 심정이 어땠을까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나마 한가닥 실낱 같은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마저 끊겨버렸다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록이 없습니다만, 이 말을 듣는 즉시 어쩌면 그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말을 또 누가 들으셨어요?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뭐죠?

오늘 본문 누가복음 8장 50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これを聞いて、イエスは答えられた。「恐れないで、ただ信じなさい。そうすれば、娘は直ります。」

세상에 있는 법이나 규칙을 보면 무엇을 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나 하면, 무엇을 하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신학자들에 의하면 성경에 있는 율법 중에서, 무엇을 하지 말라는 규정은 365가지, 무엇을 하라는 명령은 248가지, 모두 합해서 61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좀 많나요?
이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이를 확 줄여주셨습니다. 몇 개로 줄여주셨냐 하면, 하지 말라는 것 1가지, 하라는 것 1가지로 줄여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구절에 있습니다.

먼저 하지 말라는 것은 무엇이죠? 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라는 것은 뭐죠? “믿기만 하라”입니다.
우리는 어떤 훌륭한 일을 하려면, 어떤 문제를 해결 하려면, 무슨 고상하고 어렵고 복잡한 일을 해야 하는 줄 아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건 안타깝게도 세상적으로 많이 배운 사람일 수록 더 그렇습니다.
한 가지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미국 비누공장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그 비누 공장에서는 하루에 수많은 비누를 만들어서 포장을 하고 출하하고 있었습니다만, 어느 날부터인지 포장 기계가 가끔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누가 종이 상자 안에 들어간 다음에 포장을 해야 하는데, 가끔 비누가 안 들어갔는데도 포장을 해버리는 경우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예를 들어서 돈을 받고 비누들을 박스에 넣어서 납품을 했는데 거기에 빈 종이 상자가 섞여 있었다고 한다면, 이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그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비누 상자를 하나씩 열어서 확인해 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났지만, 정확히 어디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찾아낼 수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외부 컨설팅 회사에 문제 해결을 의뢰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원인분석을 한 결과, 엑스레이 투시기를 공장의 제조 과정에 추가하기로 했답니다. 그러니까 비누 상자가 쭈욱 나오면, 육안으로는 안 보이니까 엑스레이 투시기를 통해서 빈 상자를 가려낸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들어간 비용을 살펴보면, 먼저 이 컨설팅 값이 엔화로 100만엔. 엑스레이 투시기도 최첨단 기계이기 때문에 매우 비싸서 그 기계값이 5천만엔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엑스레이 투시기를 다룰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사람의 인건비가 1년에 500만엔입니다. 단순히 더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려 5600만엔이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여기가 아무리 큰 회사였다 해도 보통 큰 금액이 아긴 합니다만, 그래도 공장에서 보면 이 빈 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고객과의 신뢰가 달린 대단히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자, 이 엑스레이 투시기를 주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첨단기계이기 때문에 금방 들어오지 않지요. 그래서 그 기계를 들여오기까지 몇 개월을 기다려야 했는데, 이 기다리는 동안에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아직 기계도 들어오지 않고 전문인력도 당연히 오지 않았은데, 불량률이 0%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조사를 해보았더니, 그 사이에 한 신입직원이 들어왔는데,

비누가 안 들어 있는 상자는 가벼울 거 잖아요? 이 직원이 집에서 선풍기를 가져와서, 비누 상자가 나오는 공장 라인에서 이 선풍기를 켜놓고, 비누가 안들어 가 있는 상자를 날려버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든 비용. 선풍기 값 5천엔이었습니다.

우리가 좋은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기적을 맛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를 위해서 두꺼운 신학책을 공부하고 성경주석을 달달 외우고 그럴 필요 없이, 오늘 말씀처럼, 두려움을 갖지 마시고, 믿기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두려우십니까. 두려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 잘 될지, 안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새로운 회사에 들어갑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기대도 있지만 불안도 있습니다. 왜요? 잘 될지 안 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지요. 결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과 만나서 잘 될지 안 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불안해하십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보셔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앞날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하시는지 아닌지 몰라서 불안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욥기 23장 8절~10절
“8.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ああ、私が前へ進んでも、神はおられず、うしろに行っても、神を認めることができない。
左に向かって行っても、私は神を見ず、右に向きを変えても、私は会うことができない。
しかし、神は、私の行く道を知っておられる。神は私を調べられる。私は金のように、出て来る。

내가 지금 부산을 가기 위해서, 오오사카를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내가 부산까지 가는 길을 몰라서 불안해해요? 오오사카까지 어디를 통해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껴야 해요? 그런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왜요?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순간순간마다 버스 기사님한테 길을 알려드려야 해요? 그때 그때마다 버스에 기름을 넣어주어야 해요? 아닙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냥 버스에 타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누가 알고 계세요? 예,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가는 길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길로 향하고 있습니까. 구원입니까, 멸망입니까.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는 구원으로 가는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 누가 비웃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길은 영광된 길, 축복된 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다음에 오른쪽으로 꺾어야 하는지, 왼쪽으로 돌아야 하는지, 가야 하는지 서야 하는지, 내가 결정해요? 가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차에 탔으면서도 못믿어워서 자꾸 고개를 길게 빼고, 하나하나 간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피곤합니까. 그리고 그렇기만 해요? 자꾸 운전하는 사람한테 왜 이 길로 가느냐, 왜 저길로 안 가느냐 하고 자꾸 간섭을 합니다. 그렇다면 운전하는 사람은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운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된다고 불만을 말하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한다고 불평 불만을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뭐라고요? 예, 두려워하지 말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만 붙잡고 있고, 예수님이 운전하는 버스에만 타고 있기만 하면 우리는 구원에 이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9장 30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イエスは、酸いぶどう酒を受けられると、「完了した。」と言われた。そして、頭を垂れて、霊をお渡しになった。


만약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할 일이 조금 남았느니라” 라고 했다면 어쩔 뻔했습니까. 그야말로 정말 큰 일이었겠죠. 아이구, 이거 구원을 받기 위해서 나는 또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전전긍긍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는 항상 자기 자신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우리더러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라고 하지 많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도행전 4장 11절~12절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あなたがた家を建てる者たちに捨てられた石が、礎の石となった。』というのはこの方のことです。
この方以外には、だれによっても救いはありません。世界中 でこの御名のほかには、私たちが救われるべき名としては、どのような名も、人間に与えられていないからです。」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갈 길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인도해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것,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우리 스스로의 노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붙잡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神を愛する人々、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従って召された人々のためには、神がすべてのことを働かせて益としてくださ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기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오늘도 우리 한 번 같이 해보겠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해보겠습니다.
“어차피, 나는, 잘 됩니다”
다시 한 번 잘 해볼까요?
“어차피, 나는, 잘 됩니다”

여러분의 믿음대로 될지어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때이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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