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회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
2016년 12월 11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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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Last Update 2019. 5. 21

누가복음 16장 1절~9절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 이 말씀은 이른바 성경에서 난해한 구절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저도 이 구절이 오랫동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성경 말씀에 담긴 주님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면 참으로 큰 은혜가 임하게 될 줄을 믿습니다.
이 말씀의 줄거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등장인물은 주인과 청지기와 채무자들입니다. 주인은 이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놓고, 너를 이제 해고할 테니 어서 장부정리를 해. 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하자면 인수인계를 하라고 명령합니다.
이처럼 횡령사건이 들통나서 덜미가 잡히게 된 피의자 청지기는 이제 해고가 되어 직장을 잃게 되고, 이제 어쩌면 자신이 낭비한 돈을 물어내야 하며, 자신이 저지른 죄값을 치러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제 그는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세상적으로 본다면 우선 낭비를 했다고 하는 증거를 없애거나 아니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 청지기는 조금 독특한 행동을 시작합니다.
주인으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은 청지기는 이제 주인한테 빚진 자들을 불러다가 그 빚을 자기 마음대로 줄여줍니다. 기름 백 말을 꾸어간 사람한테는 오십이라고 쓰라고 하고, 밀을 백 석 꾼 사람한테는 팔십만 꾸었다고 거짓으로 쓰라고 합니다. 이렇게 선심을 써주면 자기가 해고된 다음에도 그 사람들이 자신을 고용해주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랬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 청지기는 참 머리가 좋습니다. 주인이 조사를 해보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이미 해고통보를 했다는 것은, 주인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정도가 아니라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아무리 아니라고 주장해봐야 소용없고, 어설프게 증거를 없애봐야 자기 허물만 늘어난다고 생각했던 그는, 이후에 닥칠 사태에 대해서 대비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서 채무자들의 채무를 감면시켜주기로 결심을 합니다만. 그 때의 이 청지기의 행동을 보면 참으로 놀랍습니다.
감면을 시키려면 자기가 그냥 장부를 고쳐쓰면 될 것인데도 그 채무자를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직접 거기에 고쳐쓰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가 아닐까 합니다.
하나는 자신이 이렇게 선심을 써줬다는 것을 직접 알게 하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만약에 장부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탄로 난다면 그 장부를 고친 것은 자기가 아니라 바로 그들이 그렇게 멋대로 고친 것으로 하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대단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청지기입니다. 여기까지가 이 청지기의 행동을 정리한 것입니다만, 이 이야기가 난해한 이유는 특별히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로, 주인은 이 청지기를 칭찬했습니다. 이 청지기가 잘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고, 이 보고를 들은 주인은 해고하겠다고 했는데, 청지기는 주인의 채무자들을 불러서 자기 멋대로 채무금액을 줄여줍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다고 하는데, 주인한테 빚을 진 그 금액을 줄이는 건 그럼 낭비가 아닌가요? 아닙니다. 역시 이것도 낭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해서 칭찬을 받았을까요. 세상적으로 보면 이 청지기가 한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난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주인이 그를 칭찬했다는 것은 대단히 이해하기가 힘든 부분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보면 주로 재물을 탐하거나 권력을 남용하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을 비난하기도 하셨으며, 이 비유도 어쩌면 그런 내용일 수도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대상이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 아니라 분명히 <제자들에게 이르시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구절입니다. 문자 그대로를 보면 의롭지 않은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인데, 불의의 재물? 의롭지 않은 재물은 거들떠보지도 말아라……라고 해야 맞을 것도 같은데, 오히려 친구를 사귀라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 하는 것이죠.
바로 이 세 부분 때문에 이 구절이 난해하다고 합니다만,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를 하고, 이 비유로 말씀하시려는 주님의 넘치는 은혜를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먼저, 청지기가 한 <낭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낭비>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주인에게 들키기 전에 청지기가 했던 <낭비>이고, 또 하나는 주인에게 들키고 해고통보를 받은 다음에 청지기가 했던 <낭비>입니다.
앞에 했던 <낭비>에 대해서 성경에는 기록이 없고, 주인에게 들킨 다음에 채무자들의 채무를 줄여준 <낭비>만을 성경은 기록합니다만, 처음 <낭비>는 주인이 못 마땅하게 여겼으나, 나중에 했던 <낭비>를 통해서 주인의 칭찬을 받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똑같이 주인한테는 손해가 되는 <낭비>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두 <낭비>는 서로 달랐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나중에 한 <낭비>를 살펴보면, 자연히 먼저 한 <낭비>도 우리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두번째 낭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이득과 손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두번째 낭비>에서는 채무자들의 채무금액을 줄여주었습니다. 그럼 주인은 이득과 손해, 어느 쪽이에요? 예, 주인은 손해입니다. 그럼 채무자들은요? 예, 채무가 줄어들었으니까 채무자들에게는 이득이겠지요. 청지기는요? 예, 변동이 없습니다. 이유는 청지기가 자신의 돈을 꿔준게 아니라 자기 주인의 돈을 꿔주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주인은 분명히 손해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청지기를 칭찬했습니다. 그렇다면 주인이 화를 냈던 <첫번째 낭비>도 이로써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주인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주인의 소유를 낭비했다고 하니 <첫번째 낭비>에서도 당연히 주인은 손해를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 채무자들에게 있어서는 어땠을까요. 오늘 예수님 말씀으로 미루어볼 때,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면서까지 채무자들에게 이익을 보게 해 준 것은 해고통보를 받은 후에 한 행동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첫번째 낭비>로 채무자들이 이득을 본 것은 없겠지요. 그렇다면 이득을 본 것은 누구였겠습니까? 예, 바로 청지기 자신입니다.
첫번째 낭비에도 두번째 낭비에도 주인은 똑같이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화를 낸 첫번째 낭비와, 주인이 칭찬을 한 두번째 낭비의 차이는, 첫번째 낭비에서는 청지기가 이득을 본 것이었으며, 두번째 낭비에서는 채무자들이 이득을 본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주인의 돈을 써서 채무자들이 이득을 보게 했다고 주인이 칭찬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청지기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청지기는 자신한테 맡겨진 돈을 가지고 돈을 꾸어주고 그러면서 이득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허랑방탕하게 낭비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좋은 옷도 사 입고, 요즘 식으로 한다면 좋은 차도 뽑고 그랬을 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인줄 알고, 모든 재산이 자기 마음대로 써도 되는 줄 알고 허비하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첫번째 낭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주인이 부릅니다. “너 해고야! 짐 싸!”
이 말을 듣는 순간, 청지기는 그제서야 알아차립니다. 아! 이게 다 내 것이 아니었구나! 내 것이 아니라 내 주인 것이었구나!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이제 나는 해고를 당하게 되는데, 지금 내가 예전처럼 똑같이 차를 사봐야 빼앗길 것이고, 옷을 사봐야 소용이 없겠다고 판단한 청지기는, 에라, 어차피 내 돈도 아닌데, 차라리 인심이나 쓰자. 그러면 내가 해고를 당한 다음에도 나를 맞아주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해서 채무자들을 불러서 빚을 줄여준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청지기가 썼던 돈을 가리켜서 <불의의 재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재물이 누구의 것입니까. 여기서 이 재물은 주인의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나쁜 짓을 해서 돈을 벌었어요? 그래서 불의의 재물인가요? 아니요.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불의의 재물입니까. 그 이유는 청지기가 사용한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닌데도, 자신에게는 권한이 없는데도 마치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사용한 재물이었기 때문에 <불의의 재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불의의 재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세상에 있는 재물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재물들이 모두가 알고 보면 내 소유가 아닌, 내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재물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재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갖고 있었다고 할 지라도,
“너 해고야! 짐 싸!”
라는 통보를 받으면 하나도 남김 없이, 그냥 두 손 털고 일어나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사람이 알게 될 때가 언제입니까.
사람마다 상황이야 다르겠으나, 예를 들어 병원에서 의사가 멀쩡한 나를 앉혀놓고는,
“암입니다. 이미 퍼져서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길어봐야 1년입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면 어떻겠습니까. 이게 바로 인생에 있어서 해고 통보나 다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 때 그럼 좋은 차를 사시겠습니까. 예쁜 옷을 사시겠습니까.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시겠습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알아차립니다. 아아, 알고보니 이게 다 내 것이 아니었구나. 바로 오늘 살펴본 청지기와 똑 같은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인이 청지기를 칭찬한 것은 바로 이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모두가 다 자기 것이 아니라 진정한 소유주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돈을 법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소유합니다. 소유한 것이 없나요? 그렇다면 지금 입고 있는 옷은 무엇이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무엇입니까.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소유하고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그것들의 진정한 소유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누구한테 말씀하셨다고요? 예, 제자들한테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 비유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있는 바로 우리들한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서 8절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 8절,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를 주인이 칭찬한 이유는 그 소유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유가 아닌 그 재물을 이용해서 머지않아 자신에게 닥치게 될 사태를 대비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이 세상 사람들도 그처럼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데, 믿는 사람들이 다가올 일들에 대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어떤 말씀이 반복적으로 사용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22장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22장 20절,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강한 의지를 나타내실 때에는 3번 반복하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장에서 주님께서는 속히 오리니, 속히 오리니,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고 계십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계시록 16장 15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5절,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 그것도 속히 오십니다. 그것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때에 도둑 같이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유물을 영원히 자신이 가질 것이라고 착각하고 사시겠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재물, 모든 소유물은 불의의 재물, 내가 진정한 소유자가 아닌 재물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성경의 앞뒤가 모두 다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21절을 봅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세상 재물들을 열심히 쌓아두고 이제 천년 만년 즐겁게 살아보자고 기대에 부풀어봤자, 진정한 소유주인 하나님께서, 너 오늘 해고야,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지 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6장 20절에는,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도 재물들을 이 세상에 쌓아두려고 애를 쓰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내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가시는 그런 야박하신 분이세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 핵심은 바로 오늘 본문 다음 구절에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1절~12절,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이 구도를 보면 “불의한 재물과 참된 것”이 한 쌍이요, “남의 것과 너희의 것”이 한 쌍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불의한 재물이 남의 것”, 그러니까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이고 “참된 것이 곧 너희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진 재물, 권한이 없는 재물들은 모두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의 것은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참된 것으로 채워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좀 쉬운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진 재물과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참된 것, 어느 쪽이 더 클 것 같습니까. 이 답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겠으나, 분명한 근거가 성경에 있습니다. 바로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보면 자신의 소유를 종들에게 맡깁니다.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와 한 달란트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서 결산을 하는데, 금 다섯 달란트를 열 달란트로 만든 종한테 주인은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이는 두 달란트를 네 달란트로 만든 종한테도 똑 같은 말로 칭찬을 합니다만, 여기 보면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라고 주인이 말을 합니다. 적은 일이요?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 금 한 달란트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자그마치 무게가 30킬로그램입니다. 얼마전에 찾아보니까 한국에서 금 한 돈에 17만8천원이었습니다. 한 돈이 3.75그램이니까 17만 8천원을 3.75그램으로 나누면 대략 1그램 당 47,500원이라는 금액이 나옵니다. 1그램당 47,500원이라면 이를 30킬로로 바꾸면 얼마나 될까요? 자그마치 14억 4천만원입니다. 이게 한 달란트입니다. 이렇게 계산을 해보면 열 달란트는 144억입니다. 여러분께서 지금까지 평생동안 벌었던 돈을 모두 합하면 144억 정도는 되시나요? 저요?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를 보고 뭐라고 하셨나요? 이를 두고 적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하나님은 통도 크세요. 그리고 뭐라고 하세요?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진 모든 것들을 너무나도 귀하고 소중하다고 하면서 그것을 마치 영원히 가지고 있을 것처럼 여기고, 나만을 위해서, 내 자식들만을 위해서 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쓰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해고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이를 위해 대비하지 않고, 잠시 맡겨진 재물을 마치 영원히 자신의 것인 것처럼 착각하고 그저 흥청망청 쓰면서 살아가고 있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유하고 있는 재물이 누구의 것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 잠시 우리에게 맡겨진 재물의 참 주인이 누구이신 줄 알고, 그분이 기뻐하는 방법으로 사용을 하게 되면,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이번에는 정말로 영원히 내 소유인 큰 것으로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재물이나 재산이라고 하는 것은 꼭 돈만을 가리키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신이나 건강, 나아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 또한 모두 불의의 재물, 즉 내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소유물이요, 마지막 때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되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것을, 이번에는 불의의 재물이 아닌 진정한 내 것, 참된 것을 받게 될 줄을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진정한 소유주이신 주님께 우리의 삶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때, 주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시리라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진정한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주님께 드렸을 때, 마침내 큰 것으로, 참된 것으로 상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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