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회 주라
2018년 4월 15일 설교

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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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라”与えなさい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혹시 이단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른바 사이비라고 하죠? 사이비……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킵니다. 쉬운 말로 하자면 유사품이 아닐까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얼핏 보기에는 비싼 명품 가방처럼 생겼는데, 아니면 유명 브랜드 옷처럼 생겼는데 자세히 보니까 알파벳이 하나 빠졌다거나, 아니하면 하나가 더 들어가 있다거나 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름을 비슷하게 만들었다 하더라도 제품이 좋다면 상관 없겠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그렇게 만들어진 물건들은 품질이 떨어지기 마련이지요.

이단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얼핏 보면 우리 기독교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항상 무엇이 문제냐 하면 맨 마지막 한 마디, 한 글자가 다릅니다. 올바른 믿음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강건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큰 축복을 받는 삶이 되지만, 왜곡된 믿음을 우리의 영혼을 메마르게 하고 생활을 파탄 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단들 중에는 그래도 알아보기 쉬운 이단들도 있습니다. 성경이 아닌 다른 책을 슬쩍 들이밀며 같이 공부하자고 한다거나, 아니면 성경 여기가 틀렸고 저기가 잘못됐고 그런 말만 한다거나, 또는 마귀가 어쩌고 귀신이 어쩌고 하는 말만 한다거나, 혹은 예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교주 같은 사람을 내세워가면서 찬양한다거나 하면, 아하, 이거 좀 이상한 사람들이로구나……라고 금방 알아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단이라고 해서 꼭 그런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성경책만 들고 다니고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하는데,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면 조금 이상해요.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면서 들어본 것과는 조금 다른 말을 해요. 이런 내용을 들으면 호기심이 강한 분이나 말씀에 대한 갈증이 있는 분이라면 관심이 가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러면서 아, 나는 교회에 오래 다녔는데 왜 이런 말을 못 들었을까. 왜 내가 처음 들어보는 말일까. 왜 지금까지 교회에서는 이런 것을 안 가르쳐주었을까……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그것이 정말 성경의 오묘하고 새로운 진리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럴 때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와 같은 성경 말씀을 교회에서 미처 가르쳐주지 못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쩌면 사실은 완전히 다른, 올바르지 않은, 잘못된 해석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아침 이슬을 먹고도 젖소는 우유를 만들지만 뱀은 독을 만든다는 말도 있습니다. 똑같은 성경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은혜로서 받음으로 말미암아 축복과 구원과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는가 하면, 성경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게 되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5절~16절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また、私たちの主の忍耐は救いであると考えなさい。それは、私たちの愛する兄弟パウロも、その与えられた知恵に従って、あなたがたに書き送ったとおりです。
その中で、ほかのすべての手紙でもそうなのですが、このことについて語っています。その手紙の中には理解 しにくいところもあります。無知な、心の定まらない人たちは、聖書の他の個所の場合もそうするのですが、それらの手紙を曲解し、自分自身 に滅びを招いています。

해가 될 정도가 아니라 멸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올바로 받아들이고 마음에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서 누가 지금까지 들어왔던 성경과 좀 다른 이야기를 한다거나, 특히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 가서 성경공부를 하자고 한다거나, 특히 자신들이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하면 안 된다거나 하면 요주의입니다. 아니, 한국이나 일본이 무슨 기독교를 탄압하는 나라도 아닌데, 제대로 된 성경공부라면 몰래 숨어서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히려 주위에 소문을 내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의 소식, 은혜의 말씀을 나누어야 할 마당에 가족이나 친구들한테는 비밀로 하고 성경공부를 한다고 하면 벌써 그것부터 문제가 있다고 봐야겠지요.

사실 이와 같은 이단들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6절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というのは、先ごろチゥダが立 ち上がって、自分を何か偉い者のように言い、彼に従った男の数が四百人ほどありましたが、結局、彼は殺され、従った者はみな散らされて、あとかたもなくなりました。

이런 일들은 적어도 이미 2천년 전부터 있어왔던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들에게 휩쓸리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성경을 알아야 이단도 마귀 사탄도 대항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와서 몰래 성경공부를 하자거나 한다면, 아니면 어떤 사람이 와서 성경을 풀어 말을 하는데,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무언가 새로운 식으로 말을 풀거나 한다면 반드시 교회 목사님과 상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성경이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으면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그리고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오신다고 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교리적으로 이단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겉으로 봐서 티가 나는 이단들은 그나마 분간이 쉬우니까 괜찮습니다. 그런데 골치 아픈 점은 이단도 아니고 정통 기독교 내에서 더 큰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역사적인 기독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이처럼 짧은 기간에 이처럼 부흥이 된 나라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한국 여기저기에 화려한 성전, 거대한 성전이 있고, 주일이면 너도나도 화려한 차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아멘과 할렐루야가 넘쳐납니다. 감사와 은혜와 축복이라는 말도 많이 들립니다. 하지만 그 내부는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비리, 목사나 교역자들의 비리, 그리고 신학교에서의 비리가 끊이지를 않습니다.

지금도 보면 한국을 대표하는 신학교 중 하나에서 난리가 아닙니다. 지난 4월 7일자 인터넷판 어떤 신문을 보니까 이 대학을 가리켜 <비리 백화점>이라고 하는 표제를 붙여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학생들은 연일 시위를 합니다. 이에 대해 교수들은 용역들을 불러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교육부에서도 이미 이 대학 총장의 총체적인 비리를 지적하면서 파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디 학교, 그것도 한국을 대표한다는, 정통보수를 자랑한다는 신학대학에서 일어날 만한 일입니까.

얼마 전에 제가 메일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매우 짧습니다. 하지만 이 메일 속에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던 믿음의 핵심, 우리가 오해하고 있던 신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매주 소식지를 메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만, 이 분은 메일을 안 받겠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내오셨습니다. 여러분께 읽어드리겠습니다.

저도 교회를 다녔던 사람입니다
신을 아무도 본 사람은 없어서 있냐고 그랬더니 있다고 하더이다
그래서 어디 있냐고 그랬더니 내 마음속에 있다더군요
그럼 형체를 보여달랬더니 같이 기도하자고 합디다.
그 이후로 교회를 다니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분에게 답장을 보내신다면 어떻게 적어 보내시겠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어디 계십니까. 도대체 안 보입니다. 사람들은 안 보인다고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눈에 보이는 것도 믿지 못하는 세상 아닙니까. 얼마나 기상천외한 사기 사건들이 기승을 부립니까.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도 믿지 못하는 마당에,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믿으라고 하니 이걸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항상 주님을 바라보면서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라고 하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예, 아멘. 이렇게 말씀하시겠죠. 하지만 정말 자신 있으세요? 우리 눈에 안 보이는, 우리 눈으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예수님을 믿을 확신이 있으세요? 그걸 어떻게 장담하시겠습니까. 어떻게 증명해 보이시겠습니까.

이렇게 자꾸 제가 물으면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도 긴가 민가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저 홍 목사, 뭘 좀 잘 못 먹었나,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릅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부터 어떤 사람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한 예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지만, 우리 주위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분일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한 번 들으시고, 이 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편의상 A 집사님이라고 합시다. 이 분은 여성이고 40대 주부입니다. 집사님은 신앙이 있는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모태신자입니다. 그리고 현재 남편과 아이들 모두가 교회에 나가고 있어요. 이 분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벽예배에 갑니다. 돌아와서는 남편과 아이들 식사를 차려줍니다. 식사할 때에는 식사기도를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낮에는 성경을 보고 구역식구들과 모임을 갖기도 합니다. 1년에 몇 번은 금식도 하고 기도원에 가기도 합니다. 방언 은사도 받았습니다. 교회 청소나 꽃꽂이 등의 봉사도 합니다. 주일 예배는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아요. 십일조도 꼬박꼬박 합니다. 주일날 교회에서는 성가대로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분은 현재 교회 어머니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분의 신앙생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께서 만약에 천국 문지기예요. 천국 앞에 서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지 여러분이 심사한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A 집사님이 오셨어요. 그러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판정을 하시겠습니까.

오. 모범적인 그리스도인! 합격! 이러시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기독교, 우리나라의 교회를 갉아먹고 있는 매우 심각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성전에 수많은 교인들. 하지만 그 속에는 예수님이 없습니다. 어디를 찾아봐도 예수님이 안 보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으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이 어디 있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하는 대답이 예수님은 우리 마음 안에 있다고 얼버무립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데, 비리를 저지릅니까.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데 이웃을 미워합니까.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데 사람들을 공격합니까.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데 남들한테 거짓말을 합니까.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데 남의 것을 빼앗습니까


만약에 이러면서도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계시다고 말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을 모욕하는 행위요, 예수님을 부정하는 행위요, 예수님의 십자가에 먹칠하는 행위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이단 중에서도 대표적인 이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께도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빌립 사도가 그랬지요.

요한복음 14장 8절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ピリポはイエスに言った。「主よ。私たちに父を見せてください。そうすれば満足します。」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요한복음 14장 9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ピリポ。こんなに長い間あなたがたといっしょにいるのに、あなたはわたしを知らなかったのですか。わたしを見た者は、父を見たのです。どうしてあなたは、『私たちに父を見せてください』と言うのですか。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실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면 곧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오직 예수님의 전매특허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말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벌받는 말인가요? 아니에요. 우리도 이런 말을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무슨 그렇다고 또 무슨 자기를 가리켜서, 나를 보는데도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하느냐……라고 하라는 말씀이 아니에요. 정말 곧이곧대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좀 의심해봐야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라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을 조금 더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あなたがたに新しい戒めを与えましょう。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愛し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
もし互いの間に愛があるなら、それによって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弟子であることを、すべての人が認めるのです。」

이 말씀을 자세히 보도록 합니다. 교회 오래 다녔으면 이로써 예수님의 제자라고 안대요? 헌금 많이 내면, 높은 직분 받으면, 그것으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아본대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앞서 말씀 드린 A 집사님에 대해서 어땠습니까. 모태신자면 예수님 제자라고 알아본다던가요? 기도 많이 하면? 봉사 많이 하면? 방언 많이 하면 예수님 제자라고 알아 본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나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인줄 알아본대요?

예,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해야지만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안다는 것이지요. 누가 그 사람을 보고 아, 저 사람은 정말 예수님의 제자구나……라고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이요,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집사님을 봅니다, 어떤 권사님을 봐요, 그리고 떤 장로님이나 목사님을 봐요. 그러면 야……정말 내가 예수님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 분만 보면 정말 예수님이 계신 것 같아요. 그 분의 사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그 분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것이 느껴져요……혹시 여러분 마음 속에 이런 분이 계신가요?

사실 그런 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러니 예수님이 어디 계시냐고 남들이 물으면 아, 예수님은 우리 마음 속에 있다~ 같이 기도하자~ 하고 얼버무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인정하나요? 차라리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그걸 믿지, 눈에 보이지 않고, 요즘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요? 아하, 그래, 정말 내 주위에 보니까 그럴만한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이건 예수님은 안 계신 거야……그러셔야겠습니까.

만약에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계시다면 그 분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7절 말씀을 조금 바꾸어서 말씀드리자면,

“네가 가서 그와 같이 하라” 「あなたが行ってそのようにしなさい」
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남들보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먼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아요. 그럼 제가 뭘 할까요? 서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그럼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지금까지 우리 믿음에는 바로 이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혼자 기도하고 찬양하고 봉사하고 예배 드리면 그것이 실천이요, 그것이 행함이요, 그것만 열심히 하면 천국 가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의 이웃 사랑이 빠져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이웃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귀찮다고 해도 자꾸 가서 예수 믿으라고, 우리 교회 나오라고 전도해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가요?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처음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주라”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내가 이것도 가지려고 하고 저것도 가지려고 하고,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해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안 빼앗기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 손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죠. 주먹을 쥐게 됩니다. 여러분, 주먹은 공격을 뜻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도우려고 하는데, 내가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는데, 총을 들이대면서, 칼을 휘두르면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없습니다. 더구나 주먹을 쥐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웃이 들고 있는 짐 하나 들어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웃에게 주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손을 펴게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 줄 때 손이 펴집니다. 우리 손이 펴지면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이 필요로 할 때 내가 그 손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아무리 꽉 쥐고 있어봤자 이제부터 100년도 못 쥐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렉산더 대왕의 유언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페르시아 제국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쳐 그 많은 땅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남긴 유언은, 자신을 묻을 때 손을 관 밖에 내놓으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온 천하를 얻었던 자신도 죽을 때는 빈 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 어렵지 않습니다. “주라”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웃에게 주십시오. 돈이 있다면 돈을, 재산이 있다면 재산을 나누어주는 것도 좋지요.


그렇다고 무슨 자기 생활에 심각한 지장이 있을 정도로 나누어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자판기 주스나 커피 하나 뽑아주셔도 좋을 것입니다. 꼭 돈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꽃 한 송이면 어떻습니까. 과자 한 봉지라도 좋겠지요.

이웃에게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한 방물 남김 없이 모두 쏟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돈이 없어요? 재산이 없어요? 그래서 줄 것이 없어요? 아니요. 줄 것이 있습니다. 용기를 주세요. 힘을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용서를 해주세요. 같이 기뻐해주시고, 같이 슬퍼해주세요. 격려를 해주세요. 위로를 해주세요.

보세요. 얼마나 줄 것이 많습니까.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믿음에는 공짜가 없어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우리는 주로 뒤쪽만 좋아하죠?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우리에게 안겨주신다……참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후히 될 것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무엇이래요? 예, 우리가 이웃한테 준 것입니다. 그러면 이웃이 도로 준대요? 아니요.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주는 것과 예수님이 주시는 것, 어느 쪽이 크겠습니까. 이건 두 말할 필요가 없지요. 온 천하를 가지고 계신 예수님께서 큰 축복으로 채워주실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정도로 채워주신 답니까. 예,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우리에게 안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께서 가지고 계신 재산, 누르고 흔들어 넘칠 정도입니까? 아니에요? 그 이유는 뭐겠습니까. 예, 아직 이웃한테 덜 나누어주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예. 답이 나왔지요? 예수님께서는 “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누어주시기 바랍니다.

나누어주면 줄수록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채워주신다고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 이웃에게 더 많이 주는 삶.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 예수님을 보여주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더 많이 나누어주고 주님께서 누르고 흔들어 채워주시는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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