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2회 나를 위한 고백
2019년 10월 13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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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편 136편 26절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詩篇 136篇 26節
“天の神に感謝せよ。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를 위한 고백” 私のための告白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먼저 이사야 43장 2절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 43장 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あなたが水の中を過ぎるときも、わたしは、あなたとともにいる。川を渡るときも、あなたは押 し流されず、火の中を歩いても、あなたは焼かれず、炎はあなたに燃えつかない。

이 말씀. 어떠십니까.

다시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이사야 43장 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あなたが水の中を過ぎるときも、わたしは、あなたとともにいる。川を渡るときも、あなたは押 し流されず、火の中を歩いても、あなたは焼かれず、炎はあなたに燃えつかない。

들으면 들을수록 은혜로우십니까. 물론 은혜로운 말씀이지요. 하지만 우리 여기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욕심을 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바꾸어서 조금 더 은혜롭게 만들어 보면 어떻게 될까 한 것이죠.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요.

“네가 물 가운대로 지나지 않을 것이요, 강을 건넌지도 않을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나가지도 않으리라”

あなたが水の中を過ぎることもなく、川を渡ることもなく、火の中を歩くこともない。

어떠십니까. 제가 말씀 드린 것이 더 짧고 좀 더 은혜롭게 들리지 않으세요?

이 이사야 43장 2절 말씀을 하나하나 나누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문장.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あなたが水の中を過ぎるときも、わたしは、あなたとともにいる。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물 가운데로 지난다는 것은 무슨 요만한 물 웅덩이 같은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홍해 한 가운데를 지나는 것과 같은 큰 어려움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고 하시는데, 그 이유는 뭐겠습니까. 그렇죠. 우리를 지켜주시기 위해서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川を渡るときも、あなたは押し流されず、


우리가 강을 건널 때에 침몰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火の中を歩いても、あなたは焼かれず

이 말씀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

그리고 마지막 문장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炎はあなたに燃えつかない。

이도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말이죠. 아예 애초부터 이와 같은 위험한 상황이 닥치지 않도록 해주신다면 되지 않을까. 하나님도 바쁘실 텐데 처음부터 이런 위기상황, 물이나 불 가운데로 지난다거나 하는 상황을 완전히 피하게 해주신다면 하나님께서 번거롭게 우리를 지켜주실 필요가 없지 않을까.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말이 이상한가요? 그렇잖아요. 예를 들어서 넘어질 때도 다치지 않게 해주신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번거롭게 하지 마시고, 아예 안 넘어지게 해주시면 얼마나 좋아요. 이제 제 의문에 좀 공감이 가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이 시점에서 오늘 본문이 있는 시편 136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책을 가지고 계신 분께서는 시편 136편을 찾아봐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좀 길지만 시편 136편을 한 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시편 136편은 1절에서 26절까지 있습니다만, 일단 25절까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136편 1절~25절
1.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신들 중에 뛰어난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주들 중에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홀로 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5.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6.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7.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8.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9.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0.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4.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5.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6.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7.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8.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9.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0.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1.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2.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3.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4.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5.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01 主に感謝せよ。主はまことにいつくしみ深い。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02 神の神であられる方に感謝せよ。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03 主の主であられる方に感謝せよ。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04 ただひとり 大いなる不思議を行われる方に。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05 英知をもって天を造られた方に感謝せよ。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06 地を水の上に敷かれた方に。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07 大きな光る物を造られた方に。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08 昼を治める太陽を。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09 夜を治める月と星を。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10 エジプトの長子を打たれた方に感謝せよ。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11 主はイスラエルをその地から導き出された。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12 力強い御手と伸ばされた御腕をもって。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13 葦の海を二つに分けられた方に感謝せよ。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14 こうして 主はイスラエルにその中を通らせた。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15 ファラオとその軍勢を葦の海に投げ込まれた。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16 荒野で御民を導かれた方に感謝せよ。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17 大いなる王たちを打たれた方に。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18 主は 力ある王たちを殺された。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19 アモリ人の王シホンを。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20 バシャンの王オグを。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21 こうして 彼らの地をゆずりとして与えられた。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22 主のしもべイスラエルにゆずりとして。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23 私たちが卑しめられたとき 主は心に留められた。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24 そして 主は私たちを敵から解き放たれた。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25 主はすべての肉なる者に食物を与える方。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시편 136편은 총 26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절마다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로 끝나고 있지요. 그렇다면 무엇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9절까지를 보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

10절은 애굽에 재앙을 내린 것에 대해서 감사.

11절~12절은 인도해주신 것을 감사.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해요. 그런데 문제는 13절부터입니다.


13절~14절은 홍해를 가르고 통과하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

15절은 바로의 군대를 무찔러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

16절은 광야를 통과하게 해주셔서 감사.

17절~22절은 왕들을 죽이고 기업을 주신 것을 감사.

23절은 비천한 가운데 기억해주셔서 감사. 私たちが卑しめられたとき 主は心に留められた

24절은 대적에게서 이기게 해주셔서 감사
敵から解き放たれた
25절은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셔서 감사.
肉なる者に食物を与える方。

이처럼 감사, 감사, 감사……로 이어집니다. 물론 감사 드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이것도 앞서 이사야서 말씀을 살펴본 식으로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도록 할까요?

13절~14절에서 보면 홍해를 가르고 통과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는데, 몇 백 년간에 걸친 노예생활을 끝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애굽을 탈출했던 이스라엘 민족,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 대략 200만 명 정도라고 추산되는 그 수많은 무리들이 홍해를 앞에 두고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고 가슴을 졸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원망하고 갈등이 생기고 그랬습니까. 그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몰랐어요? 아니요,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모르는 것이 없고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라면 다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을 좀 더 평화롭게 애굽에서 탈출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주시면 되잖아요. 왜 굳이 홍해 앞으로 인도하셔서 괜히 고생을 시키게 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고생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지 앞길이 막혀 있어서가 아닙니다. 15절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바로의 군대가 뒤에서 쫓아왔기 때문이지요. 상대방은 첨단장비로 무장한 애굽 군대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민족은 무기라고는 없고, 있다 하더라도 써 본적도 없습니다. 평생 노예로 태어나서 노예로 자랐는데 무기가 있다고 한들, 그리고 아무리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들,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애굽 군대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애굽 군대는 한 사람도 남김 없이 홍해에 빠져버렸고, 반면에 이스라엘 민족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무사히 홍해를 건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도 역시 감사하지요.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와 같이 피를 말리는 순간들을 없앨 수 없으셨겠어요? 아니요. 분명히 가능하셨을 것입니다.

16절에는 광야를 통과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먹을 만한 나무 열매는 고사하고 물 한 방울 안 나는 곳입니다. 이왕이면 조금 더 편한 곳으로 갈 수 있게 해 주셨을 법도 하지요.

17절~22절에 보면 왕들을 죽이고 기업을 주셨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거처럼 전쟁도 모르고 무기를 쓰는 것도 서툰 이스라엘 민족이었지요. 그들이 행군을 합니다. 그 길은 분명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길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을 봅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主は、昼は、途上の彼らを導くため雲の柱の中に、また夜は、彼らを照らすため火の柱の中にいて、彼らの前を進まれた。彼らが昼も夜も進んで行くためであった。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대충대충 자기들 멋대로 다닌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그리고 밤에는 구름 기둥이 안 보이니까 불 기둥으로 인도해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금은 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이렇게 행군을 하면 그 앞에 있던 장애물들이 알아서 없어지고, 방해하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어서 날려버리시든지 아니면 홍수로 어떻게 하시든지 방법이야 한 둘인가요. 그런데 이런저런 적들이 나타나서는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고, 결국 그 전쟁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무기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들한테, 고생스럽게 손수 전쟁을 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23절, 24절은 또 어떻습니까. 아니,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서요. 우리를 사랑하신다면서요. 그런데 왜 비천하게도 하시고 왜 대적을 만나게 하십니까. 그리고 25절, 먹을 것을 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제 먹지 않아도 배부르게 해주시면 안 되나요? 꼭 매끼 챙겨먹어야 하나요? 저도 혼자 살아봐서 아는데, 밥 문제를 해결하기가 얼마나 귀찮은지 모릅니다. 집에서 해 먹으면 그걸 또 치워야 하잖아요? 참 살기 힘듭니다.

하지만 만약에 이처럼 많은 제 투정, 제 불만, 이 근원들을 완전히 없애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홍해가 갈라지지도 않았고 대적들도 없었고, 광야처럼 힘든 과정도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이 시편 136편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 136편은 그 존재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지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이 시편 136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 감사입니다. 감사가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 이처럼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감사가 있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죠. 그 질문이 뭐겠습니까.

아니, 감사가 뭔데? 하나님께서 감사를 그렇게 받고 싶으신 거야? 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정답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부터 감사와 찬송을 받고 싶어하십니다.

이사야 43장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わたしのためにわたしが形造ったこの民は、わたしの栄誉を宣べ伝える。

이 말씀을 들으시면 어떻습니까. 아이구 참 하나님도 뭘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감사나 찬송을 받고 싶어 하실까. 이런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여러분께서는 믿음이 좋아서 안 해보셨을지 모르지만, 저는 해보았습니다.

좀 낯간지럽지 않나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 말씀을 들었을 때에는 정말 무슨 옛날 왕이나 독재자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옛날 무슨 황제들이나 왕들을 보면 그 한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그랬다고 하지요. 마치 그런 사람들처럼 하나님도 그런 것을 원하시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만 읽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단순히 예배 때만 잠시 보고 마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 말씀 앞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 43장 19절~20절 말씀입니다.

이사야 43장 19절~20절
“19.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見よ、わたしは新しいことを行う。今、それが芽生えている。あなたがたは、それを知らないのか。必ず、わたしは荒野に道を、荒れ地に川を設ける。
野の獣、ジャッカルや、だちょうも、わたしをあがめる。わたしが荒野に水を、荒れ地に川を流れさせ、わたしの民、わたしの選んだ者に飲ませるからだ。

이 말씀이야말로 대단히 놀랍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신다고 합니다. 어떤 새 일이냐 하면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낸다고 하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본 들짐승들도 하나님을 보고 존경하리라고 하는 말씀은, 그 때까지는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조차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하나님께서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그 드넓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을 내는 것을 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부분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 일을 하신다고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백성,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기 위해서, 물을 필요로 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를 위해서 광야에 길을 내고 물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모두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놀라운 일을 해주시면,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되는 것입니까.

예나 지금이나 무슨 왕이다 황제다 독재자다 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에게 큰 것을 받고 작은 것을 돌려주거나, 아예 아니면 아무 것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십니까.

여러분께서는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사신 적이 있으십니까. 생일선물이나 무슨 기념일 때 선물을 주고 받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선물을 주는 가장 큰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선물을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함이요,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고맙다는 말은 받는 사람이 매우 만족을 했을 때 하는 말이지요.

하나님도 바로 그것을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고맙다는 말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한테서 듣고 싶겠습니까. 누구에게 줄 선물을 이걸로 할까 저걸로 할까. 색깔은 무엇으로 할까 하면서 오래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그 선물을 주었을 때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일 리가 있나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기뻐하는 모습,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듣고 싶어서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리의 감사와 우리의 찬송을 받고 싶어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셨기 때문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얼마 전에도 한국 뉴스에 보니까, 돈도 많고 가진 것도 많은 사람들이 도박이나 마약 같은 것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만, 마약이다 대마초다 도박이다 하는 것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마음에 감사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3절~45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3절~45절
“43.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汚れた霊は人から出て行くと、水のない地をさまよって休み場を探します。でも見つからず、
『出て来た自分の家に帰ろう』と言います。帰って見ると、家は空いていて、掃除されてきちんと片付いています。
そこで出かけて行って、自分よりも悪い、七つのほかの霊 を連れて来て、入り込んでそこに住みつきます。そうなると、その人の最後の状態は初めよりも悪くなるのです。この悪い時代にも、そのようなことが起こります。」

우리는 마음을 텅 비우게 할 수 없습니다. 비워두면 불안, 불평, 불만, 공허함, 허무함 등과 같은 오히려 악한 영이 들어와 자리를 잡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사로 채워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을 건너게 하시고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시는 고난을 허락하시고, 그리고 그 때마다 이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시는 이유는 우리 마음을 감사로 채우게 하기 위한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마음을 감사로 채우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라는 증거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에게 물 한 먹음을 마시게 하기 위해서 광야에 길을 내고 물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 그 뿐입니까.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わたしを信じる者は、聖書が言っているとおり、その人の心の奥底から、生ける水の川が流れ出るようになります。」

죄인 되었던 너무나도 부족한 우리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까지도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이름을 믿기만 하면 생수의 강을 내어 우리를 채우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마음을 감사로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위한 고백이 아닌, 우리를 위한 고백을 할 시간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고백,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고백,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도록 해주시는 고백인 것입니다.

주보 또는 성경을 보시고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함께 읽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시편 136편 26절입니다.

시편 136편 26절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天の神に感謝せよ。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시편 136편 26절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天の神に感謝せよ。 主の恵みはとこしえまで。

할렐루야!

우리 모두 우리 마음을 하나님에 대한 감사함으로 채움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되셔서, 우리를 위해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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