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5회 주께 가까이
2020년 1월 5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23장 8절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ヨシュア記 23章 8節
“ただ今日までしてきたように、あなたがたの神、主にすがりなさい。”

한국어 동영상
https://youtu.be/tMDiZm6JsVE

일본어 동영상
https://youtu.be/qEXDzO0uiMA
 
선교후원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성경소설 <요셉의 재회> 다운로드


 

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께 가까이” 主にすがる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송구영신예배도 무사히 드리고, 올해는 1, 2, 3일이 수목금,이었기 때문에 토요일과 일요일인 4일과 5일까지 합치면, 일본은 새해 들어서 5연휴라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설날이 있기 때문에 신정은 그리 연휴가 갈지는 않습니다만, 올해 일본의 경우를 보면 특히 연말을 보니까 지난 달 12월 28일 토요일부터 쉬는 분들도 꽤 계신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12월 28일부터 1월 5일까지 무려 9일을 연속으로 쉬시게 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쉬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요. 이제 내일부터는 새로운 새해가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올 한 해 계획은 잘 세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셨나요?

물론 그와 같은 계획들이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획을 어느 정도 세운다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계획을 세우려면 일단 올 한 해 달력을 보게 되지요. 이 달은 이렇게 저 달은 저렇게 하면서 구상을 하게 되면, 막연했던 한 해가 조금씩 구체적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한국에 사시는 분들 같은 경우에는 아까 말씀 드렸던 구정이 있으니까, 하는 마음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로 올해 설날은 1월 25일입니다. 그러니까 그래, 아직 조금 더 여유가 있어. 설날이 지나야 진짜 새해지…….라고 아직 새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니면 좀 더 심한 분들은 어떨까요. 한국은 새 학기가 3월에 시작하고, 일본은 4월에 시작하지요? 그래, 새 학기가 시작하고 새 년도가 시작해야 해가 바뀐 거지. 아직은 2019년이야. 3월이 되어야. 또는 4월이 되어야 새해가 된 거야. 하시는 분들, 혹시 안 계십니까.

여러분, 요즘 과학자들은 사람의 최대 수명을 대략 120세 정도로 잡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는 성경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6장 3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そこで、主は言われた。「わたしの霊は、人のうちに永久にとどまることはない。人は肉にすぎないからだ。だから、人の齢は百二十年にしよう。」

이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만, 어느 신학자는 이 말씀이 사람의 수명을 가리킨다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수명이 훨씬 길었지만 홍수 이후에는 사람들의 수명을 짧게 하시겠다는 뜻이라고 하는 것이죠. 물론 이 해석이 옳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 다른 해석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실제로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800세나 900세까지 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홍수 이후에는 눈에 띄게 사람들의 수명이 짧아져서 이제는 800세나 900세가 아니라, 100세를 넘기면 대단히 장수했다고 여기게 된 것이지요.

어찌 되었든 인생 넉넉잡아 120년이라고 하고, 이를 12개월로 쳐서 알기 쉽게 1월은 10대, 2월은 20대라고 생각해 보시면 어떻습니까. 물론 성실하신 여러분들께서는 알차고 보람된 10대를 보내셨겠지만, 저를 포함해서 꽤 많은 분들이 아, 정말 10대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1월도 보내고 2월도 보내고, 그 때까지는 아무런 생각도 안 한고 있다가, 3월이나 4월에 가서, 자, 이제 올 한 해를 시작해 보자……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10대, 20대까지 아무 것도 안 하다가, 30대나 40대가 되고 나서야, 자, 이제 좀 인생을 시작해볼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자, 지금이 1월 초순입니다만, 이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올 한해, 어떻게 살아볼까 하고 생각해본다고 해서 너무 이르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 한해, 어떻게 살 것인가……

혹시 그렇게 생각되신다면, 여러분, 우리 한 번 성경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름들을 보면 동명이인들도 많고, 반대로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이름을 가진 경우도 많아서 정확히 몇 명이 등장하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만, 신학자들에 따라서 대략 1800~2600여 명 정도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놀라운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이 놀라운 기적을 일으킨 선지자들도 있었고, 다윗이나 솔로몬 같은 뛰어난 왕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나 바울과 같이 주님의 충성된 사도로서 살아간 사람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서는 만약에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성경 속 등장인물 중 누구처럼 살아가고 싶으십니까.

사실 이 질문은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아내에게 처음 물어봤었습니다.

제가 제 아내한테 말하기를, “당신이 이제부터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성경 속에서 누구처럼 살아가고 싶은……” 여기까지 말하고 있는데, 제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제 아내가 하는 말이. “없어요.” 그러더라구요.

이 대답,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대답을 듣고 어땠을까요? 이 말을 듣고 저는 그 때는 말은 안 했지만, 제 마음 속으로는 “오, 역시 성경을 좀 아는데?”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내가 말하기를 성경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냐는 거죠. 아브라함과 사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가나안 땅으로 나왔습니다. 거기서 또 어려워지니까 애굽으로 갔다가 자신의 아내를 빼앗길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지요. 그리고 또 고향을 출발하고 나선지 25년 만에, 100세라는 나이에 아들 이삭을 낳았는데, 이를 또 하나님이 자기한테 바쳐라……라고 하는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물론 이는 정말로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이죠. 다행히 아들 이삭은 죽지 않고 오래 살았습니다만, 그 인생행로를 돌아보면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어떻습니까.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고 있을 때였는데, 애굽 왕이 생각하기를 이스라엘 민족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그래서 유대인이 딸을 낳으면 살려두지만 아들을 낳으면 버리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법을 새롭게 만듭니다. 이에 따라 아들로 태어난 모세는 어쩔 수 없이 버려지지만, 이 아이가 애굽 공주에 ㅇ해 발견되어서는 40세까지 애굽 왕실에서 자라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대단히 좋았습니다만, 어쩌다가 사람을 죽이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로 도망칩니다. 그리고 거기서 또 40년을 살았는데, 나이가 80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부르시죠. 그렇게 해서 다 늙은 나이에 자기 형과 함께 애굽으로 가서는 또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게 됩니다.

다윗은 어때요?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이고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긴 하지만, 20대 때에는 아무런 죄 없이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에게 쫓기게 됩니다. 서른이라고 하는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그의 인생은 평탄하지만은 않았지요. 여러 가지 잘못도 저지르고, 이로 인해서 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막판에는 자기 아들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성경의 등장인물들을 보면 평온한 삶을 살아간 인물들이 없습니다. 신약에 봐도 마찬가지죠. 앞서 말씀 드린 베드로도 그렇고 바울도 그렇고, 인간적으로 본다면 참으로 험난한 삶을 살아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간단합니다. 성경은 위인전이 아니기 때문인 것이지요. 한국이나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아도 이른바 위인전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뛰어난 부분을 중심으로 기록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사실과 다르게 좀 과장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는 그래도 꽤 유명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도 자기를 위인전으로 써 주는 사람들이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냐 하면, 예, 자서전을 쓰지요. 그래서 내가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뭐 그런 것을 씁니다만, 그렇게 되면 이 또 역시 좀 과장된 부분도 적지 않게 들어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서전, 무슨 회고록을 쓴 사람들의 말을 잘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위인전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높임을 받아야 하실 분은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럼 여기까지 와서, 여러분, 성경에는 우리가 목표를 삼을 만한 삶이 전혀 없습니다……이렇게 끝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좀 여러 가지로 묵상을 해보았습니다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 우리가 목표로 삼을 만한 삶을 성경에서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 이렇게 살면 참 좋겠구나 하는 삶이,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무려 셋이나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성경은 놀라운 책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제가 몇 년 전에 이 자리에서 천사에 관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만, 혹시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진 원고를 찾아보니까 이에 대한 말씀을 전한 것이 2017년 11월 26일 주일예배 때였습니다만,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안 나시더라도 이 이야기를 말씀 드리면 기억이 나실지도 몰라요. 그 때는 천사한테 날개가 있을까 하는 것을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혹시 기억 하시나요?

다시 복습하는 의미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성경에 기록된 천사는 크게 세 종류가 등장합니다.

첫째는 그룹(ケルビム), 둘째는 스랍(セラフィム), 그리고 셋째로는 주의 사자라고도 불리는 천사입니다.

主の使い、または御使いといわれる、分かりやすく言えば天使です。

이 셋 중에서 날개가 있는 건 어느 천사라고 말씀 드렸는지 기억하시나요? 예, 날개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룹(ケルビム)과 스랍(セラフィム)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천사에게 날개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그룹(ケルビム) 천사, 스랍(セラフィム) 천사, 그리고 일반 천사라는 이름을 사용할까 하는데, 이 세 천사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목표로 삼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그룹(ケルビム) 천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그룹(ケルビム) 천사의 가장 큰 임무는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 24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창세기 3장 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ケルビム)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こうして神は人を追放し、いのちの木への道を守るために、ケルビムと、輪を描いて回る炎の剣をエデンの園の東に置かれた。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추방하시고는, 그들이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룹(ケルビム)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 외에도 그룹(ケルビム) 천사는 등장합니다.

출애굽기 25장 20절
“그룹(ケルビム)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ケルビムは両翼を上の方に広げ、その翼 で『宥(なだ)めの蓋』をおおうようにする。互いに向かい合って、ケルビムの顔が『宥(なだ)めの蓋』の方を向くようにする。


출애굽기 26장 31절~33절을 봅니다.
“31.너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짜서 휘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ケルビム)들을 정교하게 수 놓아서
32.금 갈고리를 네 기둥 위에 늘어뜨리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 받침 위에 둘지며
33.그 휘장을 갈고리 아래에 늘어뜨린 후에 증거궤를 그 휘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휘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리라”

また、青、紫、緋色の撚(よ)り糸(いと)、それに撚り糸で織った亜麻布(あまぬの)を用いて、垂れ幕を作る。これに意匠を凝らしてケルビムを織り出す。
この垂れ幕を、金をかぶせたアカシヤ材の四本の柱に付ける。その鉤(かぎ)は金で、柱は四つの銀の台座の上に据えられる。
その垂れ幕を留め金の下に掛け、垂れ幕の内側に、あかしの箱を運び入れる。その垂れ幕は、あなたがたのために聖所と至聖所との仕切りとなる。

여기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그룹(ケルビム) 천사는 실제 천사가 아니라 조각이나 자수입니다만, 이는 모두가 그냥 사람들의 상상이 아닌, 하나님의 명에 따라 제작된 것인데, 그룹(ケルビム)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증거궤와 지성소를 지키는 곳에 바로 이 그룹(ケルビム) 천사를 그러넣으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그룹(ケルビム) 천사의 가장 큰 임무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을 하는 천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스랍(セラフィム) 천사입니다. 이 천사는 성경 전체 중에서 이사야서 6장에만 등장합니다.


이사야 6장 1절~4절까지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 6장 1절~4절
“1.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스랍(セラフィム)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ウジヤ王が死んだ年に、私は、高く上げられた御座に着いておられる主を見た。その裾は神殿に満ち、
セラフィムがその上の方に立っていた。彼らにはそれぞれ六つの翼があり、二つで顔をおおい、二つで両足をおおい、二つで飛んでいて、
互いにこう呼び交わしていた。「聖なる、聖なる、聖なる、万軍の主。その栄光は全地に満ちる。」
その叫ぶ者の声のために敷居の基は揺らぎ、宮は煙で満たされた。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해서 보면 찬양사역 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형식으로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사역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참 귀하신 사역들이지요.

그런데 가끔 보면요, 예를 들어서 찬양 같은 경우에는, 어떨 때 보면 이건 무슨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노래 실력을 자랑하려고 하는지 모를 때가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다른 사람 험담하자는 게 아니라, 제 경우를 보더라도 좀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성가대에 있었을 때 보면, 아직 좀 경력이 부족할 때인데, 제가 무슨 성악을 전공한 것이 아니지만, 어떨 때 보면 제가 생각하기에도 목소리가 참 잘 나오는 날이 있어요. 특히 자신이 잘 아는 찬양을 부를 때요. 이미 몇 번 해본 적이 있으니까 화음을 넣기도 쉬어요. 몇 번이나 해봤거든요.

하지만 바로 그럴 때 조심해야 합니다. 차를 운전할 때도 그런 이야기가 있잖아요.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길에서보다도 자기가 맨날 다니는 길, 자기한테 아주 익숙한 길에서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하는데, 이 찬양에 있어서도 바로 자기한테 아주 익숙한 찬양을 부를 때 종종 사고가 납니다.

성가대 찬양이라고 하는 게 자기 혼자 부르는 게 아닌데, 그럴 때 자기 혼자 막 신이 나서 소리를 막 지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아주 유치한 일이지요.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그런다고 자기가 칭찬 받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전체 찬양의 균형이 깨져서 잘못하면 아주 엉망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스랍(セラフィム) 천사는 어떻다고 기록합니까. 이는 선지자 이사야가 본 환상을 기록한 것입니다만, 여기에 보면, 스랍(セラフィム) 천사한테는 날개가 둘도 아니고 무려 여섯 개나 있었다고 하는데, 두 날개로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또 다른 두 날개로는 자신의 발을 가리고, 그리고 마지막 남은 두 날개로 날아다니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찬양 소리가 얼마나 큰지 온 성전이 흔들릴 정도라고 하니 놀랍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자신의 얼굴과 발을 가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신학자들은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만, 이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주님을 찬양할 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찬양한다는 의미로 이해가 됩니다.


여러분, 찬양을 왜 합니까. 자신의 목소리나 자신의 노래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 하나요? 그건 찬양이 아니라 그냥 노래방이죠. 나 스스로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찬양,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찬양,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이라고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의 사자라고도 불리는 일반 천사에 대해서 말씀 드립니다. 조금 오해가 있을까봐 미리 말씀 드립니다만, <일반 천사>라고 해서 다른 그룹(ケルビム)천사나 스랍(セラフィム)천사보다 밑에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유다서 1장 9절에서 미가엘 전사에 대해서는 그를 천사장(御使いのかしら)라고 했으며, 다니엘 12장 1절에서는 미가엘을 가리켜 큰 군주(大いなる君)라고 할 정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는 누가 높고 낮고의 구분이 아니라 그 역할의 구분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에 보면, 교회에 안 다니는 분들도 한 번은 들어보셨을 이름인 <가브리엘>이라고 하는 천사가 등장합니다. 이 천사 가브리엘은 무엇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까.

누가복음 1장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장 26절~27절
“26.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さて、その六か月目に、御使いガブリエルが神から遣わされて、ガリラヤのナザレという町の一人の処女のところに来た。
この処女は、ダビデの家系のヨセフという人のいいなずけで、名をマリアといった。


그렇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을 전해주었습니다.

천사들은 다른 곳에도 나옵니다. 누가복음 2장 10절~11절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御使いは彼らに言った。「恐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見なさい。私は、この民全体に与えられる、大きな喜びを告げ知らせます。
今日ダビデの町で、あなたがたのために救い主がお生まれになりました。この方こそ主キリストです。

그렇습니다. 천사들의 주된 임무 중 하나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 예수님이 이 땅에 임하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세상 일을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열심히 공부도 하고 열심히 일도 해야지요. 이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사명입니다.

하지만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하고, 여러 가지 많은 일을 하는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 살아간다면, 오로지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때, 아,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왔을까 하고 허탈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 번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들의 삶을 목표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세 천사들의 역할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그룹(ケルビム)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을 지키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을 맡았습니다.

다음으로 스랍(セラフィム) 천사는 하나님을 높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의 사자인 천사들은 좋은 소식,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고 하는 기쁘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합니다. 주님, 함께 해주시옵소서. 주님,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요, 예수님이시요, 그리고 성령님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멀리 있어서는 안됩니다.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떨어지지 말고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수아 23장 8절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ただ今日までしてきたように、あなたがたの神、主にすがりなさい。

이 말씀은 모세로부터 지도자적인 사명을 이어 받고, 가나안 땅 점령에 있어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한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우리가 이처럼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후에도 지금까지 충실히 해왔던 것처럼 여호와를 가까이 하라. 여호와를 의지하라……여호수아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 해서 이와 같이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천사들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이 어떤 일을 했는가 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룹(ケルビム) 천사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
스랍(セラフィム) 천사와 같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삶
주의 사자와 같이 하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주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삶, 주님을 의지하는 삶,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2020년. 아니, 2020년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부터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이 세 천사와 같이,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통해서 주님께서 폭포수처럼 부어주시는 축복을 넘치도록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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