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3회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 3 - 유(柔)
2020년 3월 1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マタイの福音書 5章5節
“柔和な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地を受け継ぐから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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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 主が望まれる人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는 세 번째 시간으로서 <온유한 자>(柔和な者)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보에는 한자 한 글자. ‘유(柔)’라고 적어놓았습니다.

팔복 말씀을 처음 전할 때인 지지난 주 주일에는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팔복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8차 시험과 같다고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혹시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1차, 2차, 3차……이렇게 시험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나중 시험이 제일 어렵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시험에 따라서는 마지막 시험이 제일 어려운 경우도 있고, 또 어떨 때는 처음 시험이 어려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지요. 그게 뭐냐 하면, 각 시험마다 그 시험의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시험을 1차, 2차, 3차……이렇게 반복해서 치르는 것은 시간 낭비겠지요. 그래서 예를 들어 똑 같은 필기시험이라고 해도 1차는 객관식, 2차는 주관식 등으로 나누어질 수도 있고, 면접이라 하더라도 실무진 면접, 임원면접이라는 식으로 그 시험마다 특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세 번째 시간인 오늘은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한 시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으로 본다면 3차 시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3차 시험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그리고 이 3차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봄으로 인해서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넘치도록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이 온유함에 대해서 3단계로 구분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첫 단계는 <온유함>이라는 뜻 속에 담긴 특징입니다.

그 전에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柔和な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地を受け継ぐからです。

오늘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자>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 시간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 둘째 시간에는 <애통하는 자>, 그리고 오늘은 <온유한 자>를 말씀하고 계십니다만, 이렇게 보면 그저 단순한 나열처럼 느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말씀에는 1차도 아닌, 2차도 아닌, 3차 시험답게, 이 말씀에는 대단히 흥미로운 특징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이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말씀인 <마음이 가난한 자>나 두 번째 말씀인 <애통하는 자>는 자기 혼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 가난하여 내 힘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내 힘만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되기 때문에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고 하는 간절한 마음, 그리고 두 번째에는 나를 위해서, 나의 씻을 수 없는 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셨다고 하는 애통함,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예수님을 모르고 죽어가고 있는 우리 이웃의 영혼에 대한 애통함을 갖는다는 것, 이는 모두 내 안에 있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온유함>은 무엇입니까. 이는 자기 자신이 <나는 온유하다>라고 주장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성경을 조금 아시는 분은 다음 구절을 떠올리실지 모르겠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30절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わたしは心が柔和でへりくだっているから、あなたがたもわたしのくびきを負って、わたしから学びなさい。そうすれば、たましいに安らぎを得ます。
わたしのくびきは負いやすく、わたしの荷は軽いからです。」

아니,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온유하다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느냐.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가리켜서 온유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잠시 후에 말씀 드리기로 하고,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온유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지요.

기본적으로 이 온유함이라고 하는 판단은 자기 자신이 아닌 상대방이나 또는 제3자가 판단하는 기준이라는 점이 오늘 말씀에 있어서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단계에서 살펴볼 내용은 온유함의 의미, 다시 말해서 ‘온유함’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의 부제로 적은 ‘유’라는 한자, 이는 부드러울 유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께서 생각하시기에 부드러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결정하지 못하는 사람이요? 그건 우유부단한 것이지 온유한 사람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온유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착한 사람, 화를 안 내는 사람, 무섭지 않은 사람, 여러 가지 있을 수 있겠지요.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본다면 일반적으로 온유한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성경에서는 온유한 사람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성경에는 너무나도 자세히 온유한 사람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팔복이 있는 마태복음 5장에서 후반부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9절~44절입니다.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悪い者に手向かっ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の右の頬を打つ者には左の頬も向けなさい。
あなたを告訴して下着を取ろうとする者には、上着も取らせなさい。
あなたに一ミリオン行くように強いる者がいれば、一緒に二ミリオン行きなさい。
求める者には与えなさい。借りようとする者に背を向けてはいけません。
『あなたの隣人を愛し、あなたの敵を憎め』と言われてい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自分の敵を愛し、自分を迫害する者のために祈りなさい。


이것이야말로 온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이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만, 여기에는 큰 돈이나 수고가 들어가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너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하는데 저항하지 말라든지, 집이나 차를 빼앗으려고 하는데 가만히 있으라든지 하시는 게 아닙니다.

오른쪽 뺨을 툭 쳐서 자존심을 건드릴 정도는 그냥 참아줘라, 기껏해야 내가 입던 속옷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한테는 아예 내가 입던 겉옷까지 줘라. 누가 1킬로 정도를 억지로 가라고 하면 그 사람과 아예 2킬로 정도 같이 가줘라. 돈 몇 푼 꿔달라고 하는데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고 그냥 꿔줘라……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내가 상대방에게 그렇게 한다 해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내 자존심을 건드려요. 그래도 그래 내가 참는다 하고 다 받아줬어요. 그러면 그런다고 나한테 돈이 생겨요? 아니요, 그런 말씀이 없어요.

내가 가진 보잘것 없는 것들을 빼앗으려고 안달을 해요. 그런 사람한테 내가 가진 싸구려 겉옷까지 줘버렸어요. 그런다고 나한테 무슨 이득이 되나요?

돈 몇 푼 꿔달라고 해서, 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니까 주는 셈치고 꿔졌어요. 그런다고 만약에 그 사람이 안 돌려준다면 다른 사람이 갚아 주나요?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다면 성경에서 말씀하신 온유한 사람의 모습은 내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대신 상대방이 나한테 무언가를 해줄 것을 바라지 않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앞서 살펴본 마태복음 5장 39절~44절에 보면, 온유한 사람이 무엇을 했다고 말씀 드렸는지 기억하시나요? 제가 드린 말씀을 자세히 들으셨나요?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은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에요. 어디 멍이 든 것도 아니에요. 오른손 잡이인 사람이 상대방 오른쪽 뺨을 때리려면 그렇게 세게 때리지 못해요. 툭 쳐서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자존심을 상하게 할 정도였다면, 어떻게 하라고요? 예, 그냥 참아줘라,

내가 입던 싸구려 속옷을 빼앗으려고 하는 사람한테는 아예 내가 입던 겉옷까지 줘라.

누가 1킬로 정도를 억지로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라고요? 예 그 사람과 1킬로가 아니라 아예 2킬로 정도 같이, 가줘라.

큰 돈도 아니고 작은 돈 몇 푼 꿔달라고 하면 너무 야박하게 굴지 말고 어떻게 하라고요? 그냥 꿔줘라……

참아줘라, 가줘라, 꿔줘라……. 그리고 마태복음 5장 43절~44절까지는 너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서 어떻게 하라고요? 예, 기도해줘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란 이처럼 상대방에게 주는 사람입니다. 대단한 자존심이나 많은 돈이나 긴 시간이나 고단한 힘이나 노력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를 위해서 40일 금식기도를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요만한 자존심, 몇 푼 안 되는 적은 돈, 적은 돈, 짧은 시간, 작은 수고 정도 되는 것을 주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짧은 기도라도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께서는 온유한 자의 반대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포악, 신랄 등 여러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쉽게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온유한 사람이란 상대방에게 주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반대는 어떻게든 자신의 것을 챙기고 남에게 주지 않으려는 사람이라는 말이 됩니다.

몇 번이나 말씀 드립니다만 자신의 재산을 지키면 안 된다는 게 아닙니다. 권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닙니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도 도움을 주지 않으려는 사람,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고 하는 것이야말로 온유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이처럼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3단계입니다. 자, 오늘의 문제입니다. 잘 생각해보시고 이거다 생각하시는 분은 큰 소리로 말씀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팔복 말씀의 주제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만,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왜 이와 같이 온유한 사람,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을 원하시는 것일까요.

역시 오늘도 여러분의 편의를 위해서 객관식으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을 원하시는 것일까요.

1번, 주님은 우리가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2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지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3번, 기타.


예, 항상 말씀 드립니다만, 제가 드리는 선택지 중에서 <기타>가 있으면 그게 정답입니다. 하지만 <기타>를 선택하셨다면 분명한 이유를 말씀해주셔야만 합니다.

즉, 쉽게 말씀을 드리자면, 주님께서 온유한 사람,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을 원하시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가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셔서도 아니요, 우리에게 억지로 착한 사람인 척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다른 종교 지도자는 무소유, 즉 소유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만,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神は彼らを祝福された。神は彼らに仰せられた。「生めよ。増えよ。地に満ちよ。地を従えよ。海の魚、空の鳥、地の上を這うすべての生き物を支配せよ。」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이 세상 모든 것을 주시고는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주라고 말씀하십니까.

누가복음 6장 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与え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も与えられます。詰め込んだり、揺すって入れたり、盛り上げたりして、気前良 く量って懐に入れてもらえます。あなたがたが量るその秤で、あなたがたも量り返してもらえるからです。」

그리고 바로 앞 누가복음 6장 35절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しかし、あなたがたは自分の敵を愛しなさい。彼らに良くしてやり、返してもらうことを考えずに貸し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の受ける報いは多く、あなたがたは、いと高き方の子どもになります。いと高き方は、恩知らずな者にも悪人にもあわれみ深いからです。

그렇습니다. 당장은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것 같더라도, 우리에게 좋은 것, 큰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것이 누구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도 그냥 아무거나 대충 채워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107편 9절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まことに主は 渇いたたましいを満ち足らせ 飢えたたましいを良いもので満たされた。

요한복음 14장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平安を残します。わたしの平安を与えます。わたしは、世が与えるのと同じようには与えません。あなたがたは心を騒がせてはなりません。ひるんではなりません。

우리 주님은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것은 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이 바로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온유한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이란 단순히 착하고 손해 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스스로를 온유하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이는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단 하나, 우리에게 주시러 오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면서 자신을 위해서 집 한 채, 땅 한 평이라도 사지 않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8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キリストは、神の御姿であられるのに、神としてのあり方を捨てられないとは考えず、
ご自分を空しくして、しもべの姿をとり、人間と同じようになられました。人としての姿をもって現れ、
自らを低くして、死にまで、それも十字架の死にまで従われました。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복종하시고는 우리를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내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온유하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를 위해 그토록 고난을 당하신 주님은 우리가 고난 당하기를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원하고 계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흥미로운 말씀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0장 38절~42절
38.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장 38절~42절

さて、一行が進んで行くうちに、イエスはある村に入られた。すると、マルタという女の人がイエスを家に迎え入れた。
彼女にはマリアという姉妹がいたが、主の足もとに座って、主のことばに聞き入っていた。
ところが、マルタはいろいろなもてなしのために心が落ち着かず、みもとに来 て言った。「主よ。私の姉妹が私だけにもてなしをさせているのを、何ともお思いにならないのですか。私の手伝いをするように、おっしゃってください。」
主は答えられた。「マルタ、マルタ、あなたはいろいろなことを思い煩って、心を乱しています。
しかし、必要なことは一つだけです。マリアはその良いほうを選びました。それが彼女から取り上げら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마르다와 마리아는 자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마을에 오시자 언니 마르다가 예수님을 집으로 모셔드렸는데, 이제 손님이 오셨으니 음식도 준비하고 그래야 하기 때문에 정신 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동생은 지금 언니 일을 도울 생각은 안 하고 예수님 앞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르다 보기에 동생 마리야가 얼마나 얄밉겠습니까. 어쩌면 마르다는 예수님한테도 불만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아니, 내가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이도 어린 마리아를 데리고 말씀을 하고 계시면 어떡해요. 말씀 좀 있다가 하시던지 하고 내 일 좀 도우라고 말해주세요. 뭐 이랬는지도 모르지요.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누가복음 10장 41절~42절
41.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主は答えられた。「マルタ、マルタ、あなたはいろいろなことを思い煩って、心を乱しています。
しかし、必要なことは一つだけです。マリアはその良いほうを選びました。それが彼女から取り上げられることはありません。」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것저것 다 하려고 하지 마. 다 할 수 없다면 한 가지만 해. 그러면서 뭐라고 하십니까.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가 좋은 것 택하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 사람이 내 자존심을 상하게 했어요. 그러면 뭐가 어째고 어째, 하고 싸울 것인가, 아니면 그래, 네가 그렇게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싶으면 마음껏 해봐라. 내 자존심은 주님이 세우신다……라고 하시겠습니까.

저 사람이 내가 가진 별것도 아닌 것을 탐내요. 그러면 재판을 하고 고소를 하고 해서 끌까지 싸우겠습니까, 아니면 그래 그거 대수롭지도 않은데, 차라리 내가 가진 이것도 같이 가져라. 주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이다 하고 줘버리시겠습니까.

저 사람이 나한테 귀찮은 일을 시키고 번거롭게 해요. 그러면 왜 나한테 힘든 일만 시키느냐고 따지겠습니까. 아니면, 그래, 주님께서는 내게 더 큰 평안을 주신다는 것을 믿고 오히려 그 사람이 부탁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주겠습니까.


여러분, 좋은 편을 택하시기를 주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좋은 편을 택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손해 보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믿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인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이웃에게 나누어줍시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아이고. 내 코가 석자인데 내가 가진 게 있나요. 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여러분께 준비했습니다. 교회 나가시다 보면 전도지가 쌓여 있습니다. 이웃에게 뭔가를 주고 싶은데 줄 게 없어요. 그러면 그 전도지를 나누어 주십시오.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믿음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온유한 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는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아이구, 뭐 땅만 있으면 뭘 해. 돈이 있어야 집을 짓든지 씨를 심든지 하지. 그렇게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 하나님을 그렇게 과소평가 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그렇게 무책임한 축복이 아닙니다. 필요한 모든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서 원하시는 온유한 사람, 이웃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 좋은 편을 택하는 사람이 되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평안과 축복을 넘치도록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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