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6회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 6 - 청(淸)
2020년 3월 22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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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マタイの福音書 5章8節
“心のきよい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神を見るから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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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 主が望まれる人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는 여섯 번째 시간으로서 <마음이 청결한 자>(心のきよい者)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보에는 한자 한 글자. 청결할 때의 ‘청(淸)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心のきよい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神を見るからです。

이를 자세히 보면 마음이 착한 사람도 아니요, 마음이 청결한 사람, 즉 마음이 깨끗한 사람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은 뭐 좀 알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마음이 청결한 사람, 깨끗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지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7장 3절~5절을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마태복음 7장 3절~5절
“3.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あなたは、兄弟の目にあるちりは見えるのに、自分の目にある梁には、なぜ気がつかないのですか。
兄弟に向かって、『あなたの目からちりを取り除かせてください』と、どうして言うのですか。見なさい。自分の目には梁があるではありませんか。
偽善者よ、まず自分の目から梁を取り除きなさい。そうすれば、はっきり見えるようになって、兄弟の目からちりを取り除くことができます。

여기서 티와 들보를 본다면, 티는 작은 먼지와도 같은 것입니다만, 들보는 그야말로 큰 기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눈 속에 들어 있는 큰 들보, 다시 말해서 큰 잘못, 큰 결점은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있는 티, 그러니까 작은 흠집을 가지고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 되겠습니까. 자기는 큰 죄를 지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작은 잘못을 비판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제가 결혼하기 전에 혼자 살 때는 참 책상도 지저분하고 방도 지저분하고 그랬습니다만, 저보다 방이 덜 지저분한 사람한테, 야, 방 좀 치우고 살아라……라고 말을 한다고 하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겠습니까.

이렇게 본다면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뺀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팔복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한 8차 시험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그 중에서 6번째 시험, 6차 시험입니다. 입학시험이든 입사시험이든 또는 자격시험이든 간에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모든 시험이 다 그런 것 같이, 이와 같은 시험은 최종합격까지 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아무리 도중까지 통과했어도 최종합격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1차도 합격하지 못한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이 6차 시험의 관문은 바로 청결한 자가 되는 것, 다시 말해서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다음 7차 시험을 응시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어떻게 하면 6차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지를 알아봄으로 말미암아, 한 분도 빠짐 없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선 무엇보다도 내 눈에서 들보를 빼내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죄가 해결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내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빼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결론은 하나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キリストも一度、罪のために苦しみを受けられました。正しい方が正しくない者たちの身代わりになられたのです。それは、肉においては死に渡され、霊 においては生かされて、あなたがたを神に導くためでした。


갈라디아서 1장 4절~5절
“4.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キリストは、今の悪の時代から私たちを救い出すために、私たちの罪のためにご自分を与えてくださいました。私たちの父である神のみこころにしたがったのです。
この神に、栄光が世々限りなくありますように。アーメン。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이로 인해서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행위로 인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예수님께서는 굳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기독교를 가장한 일부 종교단체에서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합니다. 즉,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라고 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하면, 우리와 같은 어떤 사람이 십자가에 달림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해결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희생으로는 누구 하나 구원할 수도 없고, 자기 자신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희생만이 우리 모두의 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4절~15절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モーセが荒野で蛇を上げたように、人の子も上げら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れは、信じる者がみな、人の子にあって永遠のいのちを持つためです。」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 민수기를 보아야 합니다.

민수기 21장 5절~9절을 봅니다.



민수기 21장 5절~9절

“5.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神とモーセに逆らって言った。「なぜ、あなたがたはわれわれをエジプトから連 れ上って、この荒野で死なせようとするのか。パンもなく、水もない。われわれはこのみじめな食べ物に飽き飽きしている。」
そこで主は民の中に燃える蛇を送られた。蛇は民にかみついたので、イスラエルのうちの多くの者が死んだ。
民はモーセのところに来て言った。「私たちは主とあなたを非難したりして、罪を犯しました。どうか、蛇を私たちから取 り去ってくださるよう主に祈ってください。」モーセは民のために祈った。
すると主はモーセに言われた。「あなたは燃える蛇を作り、それを旗ざおの上に付けよ。かまれた者はみな、それを仰ぎ見れば生きる。」
モーセは一つの青銅の蛇を作り、それを旗ざおの上に付けた。蛇が人をかんでも、その人が青銅の蛇を仰ぎ見ると生きた。


애굽에서 수 백 년 동안 노예로 살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탈출시켜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입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들의 지도자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것 또한 눈에 들보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보고 노하시고는 불뱀을 보내서 그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불뱀이라고 하는 것은 그 쉽게 말하자면 독사입니다.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생김새가 뱀의 몸에 붉은 반점이 있어서라기도 하고, 또한 독에 물리면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와서라고도 합니다.

그 독사한테 그러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고통 속에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합니다. 저 뱀들을 떠나게 해달라고 모세에게 애원을 합니다.

이제 모세가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모세는 놋, 그러니까 청동으로 불뱀을 만들어서 나무에 매달아 놓았는데, 이것을 단순히 바라만 보았더니 다친 곳이 모두 나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성경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불뱀은 그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원흉,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신명기 21장 23절 후반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신명기 21장 23절 후반부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申命記21章23節 中盤
木にかけられた者は神にのろわれた者だからである。

즉, 불뱀 모양을 나무에 매달고 높이 올려진 것을 바라본다는 것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불뱀들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을 괴롭히는 근본 원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은 불뱀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모세가 뱀을 든 것 같이 예수님 자신도 들려야 하며, 이를 믿으면 영생을 얻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당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이와 같은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도대체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알 수 있습니다. 나무에 달린다는 것은 십자가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의인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아니면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갈라디아서 3장 13절~14절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キリストは、ご自分が私たちのためにのろわれた者となることで、私たちを律法 ののろいから贖い出してくださいました。「木にかけられた者はみな、のろわれている」と書いてあるからです。
それは、アブラハムへの祝福がキリスト・イエスによって異邦人に及び、私たちが信仰によって約束の御霊を受けるようになるためでした。


예수님은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에 십자가라고 하는 나무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죄를 지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십니다. 그러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를 모두 짊어지셨기 때문에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무런 죄가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죄를 짊어지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주실 수 있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피조물은 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만이 이를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를 짊어지시고 철저한 죄인으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해서 모두 받아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히 저주를 받아 마땅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고 죽어 주셨기 때문에 내 죄가 모두 해결되었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 만이 우리 마음을 청결하게 할 수 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 만이 우리 눈에서 들보를 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럼 이 시점에서 앞서 살펴본 마태복음 7장 5절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마태복음 7장 5절
“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偽善者よ、まず自分の目から梁を取り除きなさい。そうすれば、はっきり見えるようになって、兄弟の目からちりを取り除くことができます。

이제 나는 예수님께서 내 죄를 십자가에서 모두 해결해주셨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면 이제 내 눈에서는 들보가 빠졌다는 뜻이니까, 그러면 이제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뺄 수 있겠구나. 혹시 그렇게 생각하신 분 계십니까.

만약에 그렇게 생각하신 분, 정말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빼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시는 분들께 두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소식이고 하나는 안 좋은 소식입니다. 무엇부터 말씀을 드릴까요.

그러면 일단 좋은 소식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뺄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죠? 그래도 혹시 잊으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니까 다시 한번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心のきよい者は幸いです。その人たちは神を見るからです。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만약에 한 나라에서 그 나라의 왕이나 제일 높은 사람을 매일 보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일을 맡으신 분들이 계시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높은 사람이 가장 믿고 있는 사람이며, 그 높은 사람을 항상 가까이에서 섬기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섬길 때가 올까요? 예, 분명히 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10절
“10.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私たちの神のために、彼らを王国とし、祭司とされました。彼らは地を治めるのです。」

요한계시록 22장 3절~5절
“3.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5.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もはや、のろわれるものは何もない。神と子羊の御座が都の中にあり、神のしもべたちは神に仕え、
御顔を仰ぎ見る。また、彼らの額には神の御名が記されている。
もはや夜がない。神である主が彼らを照らされるので、ともしびの光も太陽の光もいらない。彼らは世々限りなく王として治める。

이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날,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우리는 이제 왕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린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왕으로서의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과거 솔로몬에 관한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백성들에 대하여 재판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왕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을 통치하는 여러분의 눈 속에는 들보가 없습니다. 그 때는 이제 누군가에 대해서 판단하는 여러분을 보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판단하는 것이 여러분의 주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주님께서 맡겨주신 바에 따라 마음껏 판단하십시오. 그리고 그곳에는 밤도 없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하루 종일 판단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속이 시원하신가요?

그러면 이제 안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차례입니다. 그 때까지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그럼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만, 아니, 그것도 아니라면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만 판단해도 될까요?

성경은 기록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5절 말씀을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5절
“5.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ですから、主が来 られるまでは、何についても先走ってさばいてはいけません。主は、闇に隠れたことも明るみに出し、心の中のはかりごとも明らかにされます。そのときに、神からそれぞれの人に称賛が与えられるのです。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 이 시점에서 오랜만에 문제를 하나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문제는 부담 없이 들으셔도 됩니다. 성경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퀴즈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이건 실제 있었던 이야기인데,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좀 어두워서 전조등을 켰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켰는데도 앞이 환해지지가 않아요. 몇 번 확인을 했지만 틀림없이 전조등을 켰어요. 그런데도 앞이 환해지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동차 고장? 전조등 불이 나갔나요? 또는 스위치 접촉불량? 아니요. 정답은 제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전조등을 켜봤자 환해질 리가 있나요. 하지만 이 선글라스를 벗어버리니까 어떻습니까. 그래요. 전조등을 켤 필요도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환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3장 10절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次のように書いてあるとおりです。「義人はいない。一人もいない。

아무리 의인인 척을 해봐도, 아무리 착한 사람인 척해도, 우리가 주님 앞에서는 남들을 비판하고 남들을 판단할 정도로 의롭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다는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내 이웃이 미워 보입니까. 막 비판하고 싶습니까. 그 이유는 그 사람에게 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바로 내 눈에 들보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들보가 있는 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죄가 많고 부족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다면 내가 미워하는 저 사람을 위해서도 똑같이 피를 흘려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 눈으로 보면 나나 저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누구 하나 의로운 사람도 없고 선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가 잘 나서 지금의 내가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10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ところが、神の恵みによって、私は今の私になりました。そして、私に対するこの神の恵 みは無駄にはならず、私はほかのすべての使徒たちよりも多く働きました。働いたのは私ではなく、私とともにあった神の恵みなのですが。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은 내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어떻게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しかし私には、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以外 に誇りとするものが、決してあってはなりません。この十字架につけられて、世は私に対して死に、私も世に対して死にました。

그래, 당신이나 나나 주님 앞에서 부족한 것은 다 똑 같다. 내가 그나마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내 힘이나 능력이 아니요, 오직 주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당신보다 잘났다고 무슨 자격으로 비판하거나 비난할 수 있겠나.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는 그야말로 내 눈에서 들보가 빠진 순간이라고 할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것들이 어두워 보이십니까. 그것은 내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선글라스를 벗어보십시오.

모니터가 희미해 보이십니까. 컴퓨터나 모니터 고장이 아니라 내 게으름 때문에 모니터 청소를 안 해서일지도 모릅니다. 모니터 화면을 한 번 닦아 보십시오.

내 눈 안에 들보가 들어 있기 때문에 상대방 눈에 티가 보이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더 이상 비판이나 비난이 아닌,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 눈 안에 있는 들보를 빼내어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셔서, 서로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닌,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의 눈으로 이웃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항상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마지막 날 주님께서 오신 그 날에는 주님과 함께 이 세상을 다스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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