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회 믿음의 중심
2020년 6월 28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28절 신약 56페이지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マルコの福音書2章27節~28節
“そして言われた。「安息日は人のために設けられたのです。人が安息日のために造ら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ですから、人の子は安息日にも主です。」”

한국어 동영상
https://youtu.be/kOS_kKn6LSo

일본어 동영상
https://youtu.be/iWnwe0liSkU
 

마가복음 9장 41절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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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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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믿음의 중심” 信仰の中心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에서 조금 더 앞부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마가복음 2장 23절~27절까지의 말씀인데, 우선 이 전체를 한 번 살펴보고, 그 다음에 하나하나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가복음 2장 23절~28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2장 23절~28절
23.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ある安息日に、イエスが麦畑を通っておられたときのことである。弟子たちは、道を進みながら穂を摘み始めた。
すると、パリサイ人たちがイエスに言った。「ご覧なさい。なぜ彼らは、安息日にしてはならないことをするのですか。」
イエスは言われた。「ダビデと供の者たちが食べ物がなくて空腹になったとき、ダビデが何をしたか、読んだことがないのですか。
大祭司エブヤタルのころ、どのようにして、ダビデが神の家に入り、祭司以外の人が食べてはならない臨在のパンを食べて、一緒 にいた人たちにも与えたか、読んだことがないのですか。」
そして言われた。「安息日は人のために設けられたのです。人が安息日のために造られたのではありません。
ですから、人の子は安息日にも主です。」

그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실 때에, 제자들이 남의 밭에 있는 이삭을 잘라서 먹었다고 합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 모습이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1절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ある安息日に、イエスが麦畑を通っておられたときのことである。弟子たちは穂を摘んで、手でもみながら食べていた。

저는 그런 경험이 없습니다만, 밀밭에 있는 밀 이삭을 잘라서 손으로 비벼 먹으면 밀가루가 나오는데, 옛날에는 그걸 두 손으로 비벼서 먹으면 꽤 먹을 만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단순히 지나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거기가 자기들 소유의 밭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주인 허락을 받았다는 기록도 없으니, 말하자면 무단으로 남의 밭에 나 있는 이삭을 먹었다는 것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왜 제자들은 그랬을까요. 뭐, 당연히 배가 고파서 그랬겠지요. 이는 제 상상이 아니라 마태복음 12장 1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마태복음 12장 1절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そのころ、イエスは安息日に麦畑を通られた。弟子たちは空腹だったので、穂を摘んで食べ始めた。

글쎄요. 제자들은 지금 배가 고파 죽겠는데, 예수님은 도무지 밥을 먹자는 말씀을 안 하세요. 그런데 마침 밀밭 사이로 자나가게 되었어요. 얼씨구나 잘됐다 싶어서 제자들은 그 이삭을 비벼서 먹었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합니다.

“어허, 이 보시오. 거 자기 밭도 아닌 남의 밭에서 멋대로 밀을 먹으면 어떡해!”

요즘 우리들 생각에는 당연히 그렇게 주의를 주었을 것도 같습니다만, 율법상으로 보면 이는 잘못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신명기 23장 24절~25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신명기 23장 24절~25절
“24.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25.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隣人のぶどう畑に入ったとき、あなたは思う存分、満ち足りるまでぶどうを食べてもよいが、あなたのかごに入れてはならない。
隣人の麦畑の中に入ったとき、あなたは穂を手で摘んでもよい。しかし、隣人の麦畑で鎌を使ってはならない。

저는 그런 세대가 아닙니다만, 옛날에 한국에 보면 무슨 수박 서리 같은 것들을 하고 그랬다고 하지요. 옛날에는 그게 추억이 될 수는 있겠습니다만, 지금은 절대로 안 됩니다. 엄연한 절도이기 때문이지요. 큰 일 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어떻습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에 율법, 모세오경, 레위기, 신명기, 뭐 이렇게 말하면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다는 느낌이 있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을 보면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지 모릅니다.

이 신명기 23장 24절~25절 말씀을 보십시오. 네 이웃이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고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손으로 이삭을 따도 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남의 포도원이나 곡식밭에 들어가는 것은 불법침입이요, 뿐만 아니라 포도를 먹거나 이삭을 따는 것은 절도입니다. 이를 벌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요. 하지만 율법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거기 들어가서 혼자 먹는 정도는 괜찮다고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 사람이 왜 거기에 들어갔겠습니까. 배가 고파서였지요.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남의 집 포도원이나 곡식밭에 들어갔겠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배가 고팠어요. 그래서 혼자 실컷 먹었습니다. 혹시 여러분께서 포도밭 같은 곳에 가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포도에 대한 용도가 대단히 많았습니다. 그냥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를 포도주로도 만들기도 하고, 그리고 보존식품으로 건포도로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당시 포도원 규모는 상당히 컸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지요.

그렇다면 여러분께서는 너무나도 배가 고플 때에, 포도를 몇 송이나 드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많이 먹어봤자, 글쎄요, 1송이? 2송이? 저도 아무리 배가 고팠다 하더라도 솔직히 3송이 이상을 먹을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그 많은 포도 중에서 그 정도는 그냥 줘라, 물론 그릇에 담거나 낫으로 베어가지고 모조리 가져가거나 하는 것은 안 되지만, 지금 배고파 죽겠다는데 자존심도 버리고 남의 밭에서 먹으려는 사람을 막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이 넘치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참고로 레위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도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9절~10절
9.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あなたがたが自分の土地の収穫を刈り入れるときは、畑の隅々まで刈り尽くしてはならない。収穫した後の落ち穂(ぼ)を拾い集めてはならない。
また、あなたのぶどう畑の実を取り尽く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ぶどう畑に落 ちた実を拾い集めてはならない。それらを貧しい人と寄留者のために残し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わたしはあなたがたの神、主である。

곡식을 거둘 때에는 싹 쓸어버리지 말고 좀 남겨두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추수를 할 때에도 이삭 단이나 포도들을 들고 가거나 마차로 옮길 때에 보면 좀 흘릴 경우도 있잖아요? 그거 줍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사람이 그걸 줍도록 하게 내버려두라는 것이지요. 참으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은혜가 넘칩니다.

그래서 이것을 주웠던 사람이 누구예요. 가족이나 재산을 모두 다 잃고 자기 시어머니와 베들레헴에 왔던 룻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은 율법이 없었다면 룻과 그녀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굶어서 죽었을 지도 모르고,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룻과 보아스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다윗 왕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율법이 있었다는 사실을 바리새인들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남의 밭에서 왜 함부로 밀을 먹냐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2장 24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すると、パリサイ人たちがイエスに言った。「ご覧なさい。なぜ彼らは、安息日にしてはならないことをするのですか。」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는 일곱째 날을 쉬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11절
“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安息日を覚えて、これを聖なるものとせよ。
六日間働いて、あなたのすべての仕事をせよ。
七日目は、あなたの神、主の安息である。あなたはいかなる仕事も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も、あなたの息子や娘も、それにあなたの男奴隷 や女奴隷、家畜、またあなたの町囲(まちがこ)みの中にいる寄留者も。
それは主が六日間で、天と地と海、またそれらの中のすべてのものを造り、七日目に休んだからである。それゆえ、主は安息日を祝福し、これを聖なるものとした。

이 안식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규정을 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1장 14절~15절
“14.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15.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あなたがたは、この安息を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これは、あなたがたにとって聖なるものだからである。これを汚す者は必ず殺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この安息中 に仕事をする者はだれでも、自分の民の間から断ち切られる。
六日間は仕事をする。しかし、七日目は主の聖なる全き安息である。安息日に仕事をする者は、だれでも必ず殺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아니, 뭐, 쉬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무섭게 하시나. 무슨 뭐 월차나 연차를 쓰지 않으면 죽일지니라 뭐 그렇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런데 사실 이 내용에 담긴 은혜를 잊으면 안 됩니다.

신명기 5장 12절~14절 말씀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 출애굽기 말씀과 비슷합니다만 조금 다릅니다.


신명기 5장 12절~14절
“12.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安息日を守って、これを聖なるものとせよ。あなたの神、主が命じたとおりに。
六日間働いて、あなたのすべての仕事をせよ。
七日目は、あなたの神、主の安息である。あなたはいかなる仕事も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も、あなたの息子や娘も、それにあなたの男奴隷 や女奴隷、牛、ろば、いかなる家畜も、また、あなたの町囲(まちがこ)みの中にいる寄留者も。そうすれば、あなたの男奴隷や女奴隷が、あなたと同じように休 むことができる。

앞서 출애굽기 내용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고 나서였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들 사이에 있어서 주인이나 종이 있을 수 없겠지요. 모두가 공평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금 율법을 말할 때에는 이제 40년이라고 하는 광야생활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그 때는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도 있었을 것이요,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종을 두고 생활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말라>가 아니라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라>라는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은 이제 주인, 말하자면 사용자를 향해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어기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회사 사장님들한테 말씀하시기를,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쉬게 하지 않으면 죽여버려라. 이런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당시 주인과 종의 관계는 지금 사장과 직원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종은 당시 주인의 재산, 그러니까 물건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집안에 있는 모든 일을 종들이 하고, 농사도 다 종들이 하는데, 이 정도로 무섭게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면 주인들이 따랐겠습니까. 그러니까 이토록 엄하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이유는, 무슨 하나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백성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약자의 입장에 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잘못 알았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더러 뭐라고 하냐 하면, 왜 당신들 제자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아니, 배가 고파서 이삭을 좀 손으로 비벼 먹었다고 해서 뭐가 큰 죄입니까. 더구나 율법에서도 남의 밭에서 먹어도 된다면서요.

여기에는 바리새인들에게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습니다. 이처럼 이삭을 따는 행위는 말하자면 추수에 해당되고, 손으로 비비는 행위는 탈곡에 해당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를 안식일에 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금 어려운 문제를 내겠습니다. 이삭을 따는 행위는 추수이고 손으로 비비는 행위는 탈곡에 해당한다는 내용,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에 있을까요, 없을까요.

정답은 율법에 그와 같은 내용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바리새인들은 이처럼 당당하게 예수님에게 따지고 들었을까요. 그것은 당시 바리새인들이 주장했던 율법은 크게 나누어서 두 가지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그야말로 모세오경에 적힌 율법, 둘째는 자기 조상들이 만들었던 규칙. 이 두 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에 의하면 애초에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613가지라고 하는데, 여기에 바리새인들이 이것저것 붙여가다 보니 어떻게 되었냐 하면 2134가지가 되었습니다. 3배 이상이나 많아진 것이지요.

물론 애초에 이런 것을 만든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어떻게든 하나님 말씀을 잘 좀 지켜보려고 시작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에 하나 둘 추가를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이나 23장 등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바리새인들의 이와 같은 오해, 잘못된 율법해석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마가복음 2장 25절~26절을 봅니다.

마가복음 2장 25절~26절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イエスは言われた。「ダビデと供の者たちが食べ物がなくて空腹になったとき、ダビデが何をしたか、読んだことがないのですか。
大祭司エブヤタルのころ、どのようにして、ダビデが神の家に入り、祭司以外の人が食べてはならない臨在のパンを食べて、一緒 にいた人たちにも与えたか、読んだことがないのですか。」

이 내용은 사무엘상 21장 1절~6절에 있는 내용입니다.

시간관계상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당시 다윗은 이스라엘 초대 왕인 사울 왕에게 쫓겨서 몇몇 소년들과 함께 도망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몹시 배가 고픈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하나님의 전에 있는 대제사장 아비아달을 찾아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성전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떡밖에 없었는데, 이는 율법적으로는 일반인이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 아비아달은 배고파하는 다윗 일행에게 이 떡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죽어가는 사람을 못 본채 하는 것이 아닌, 율법을 어긴다 하더라도 사람을 위한 행함을 한다는 것, 이는 얼핏 보기에는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이는 오히려 그것이 율법의 참뜻, 하나님의 참뜻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는 이 사무엘상 말씀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어느 한 작은 교회에 다닐 때였습니다만, 평소에는 예배가 끝난 다음에 식사시간이 없어요. 그날 주일은 왠지 모르지만 아침부터 참 배가 고팠어요.

그런데 마침 그 날이 성찬식이었거든요. 우리는 이렇게 작은 과자와 포도주스로 성찬식을 드리는데, 거기는 이렇게 큰 빵을 앞쪽에 놓고, 성도님들이 줄을 서서 강대상 앞에까지 가면 거기서 큰 빵 중에서 자기가 뜯어서 먹고, 그리고 옆에 있는 포도주 잔을 마시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평소에도 느낀 것이지만, 그 빵이 참 맛있어요. 물론 뭐 어디서 사온 것이긴 한데 아무튼 평소부터 참 맛있다고 생각했던 빵이었는데, 하물며 그 날은 제가 무척 배가 고픈 상태였으니까 얼마나 맛있었겠어요. 그래서 성찬식 때도 좀 큼지막하게 뜯어서 먹었습니다만, 그래 봤자 한 조각이잖아요. 여전히 배가 고파요.

그래서 염치고 체면이고 다 내려놓고 예배가 끝난 다음에 거기 집사님한테 가서, 제가 배가 고파서 그런데 아까 그 성찬식 때 먹었던 빵이 남았으면 좀 먹어도 되겠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그 분이 뭐라고 하셨냐 하면, 아, 그 빵은 다른 사람은 못 먹고 목사님과 전도사님만 드신대요. 그래서 저는 잘 이해가 안 돼서, 예? 하고 다시 물었더니만, 그 분이 다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는데 그 빵은 성찬식 때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목사님과 전도사님만 드실 수 있는 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이해가 되시나요? 저는 당시 성경에 대한 지식이 좀 부족해서, 흠, 뭐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나왔죠. 그래서 나가서 뭘 사먹었는지, 아니면 그냥 집에 갔는지 기억은 안 납니다만, 아무튼 그 때는 기분이 별로 안 좋았어요.

그런데 이제 성경을 좀 읽고 공부를 하다 보니까, 아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 바친 제물을 제사장만 먹는다고 하는 내용은 레위기나 민수기에 보면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구약이지요. 그렇다면 성찬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약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키면서 마지막 만찬 때 제자들과 함께 드셨던 떡과 포도주입니다.

그리고 좀 더 덧붙인다면 예를 들어서 가톨릭에서는 성찬식을 다 한 후에 남은 것을 사제가 먹고는 하는데, 개신교에서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화체설이다 영적임재설이다 하는 조금 어려운 내용이 있습니다만, 개신교에서는 빵은 빵일 뿐이고 포도주는 포도주일 뿐입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기념하는 것이지 그 빵 자체가 예수님의 몸이거나 그 포도주 자체가 예수님의 진짜 보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신교 교회에서 성찬식에 썼던 빵을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만 먹어야 한다는 것은, 성경을 구약, 신약, 구교, 신교 뭐 이런 것을 이것저것 안 가리고 완전히 뒤섞어놓은 말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걸 마치 대단한 율법이라도 지키는 것처럼 하면서, 정작 배가 고픈 굶주린 불쌍한 사람한테는 안 주고 말이에요. 벌써 한 10, 7, 8년 전의 일이긴 합니다만, 아이, 참 그거 지금 생각해도 좀 화가 납니다.


자, 그렇다면 좀 진정을 하고, 또 한 가지 문제를 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으심으로 인해서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시고, 그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적인 문제였고, 당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결정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안 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바리새인들이 멋대로 말씀을 해석해서 만들어낸 2000개가 넘는 율법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안식일을 어기면 죽여야 한다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인데,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진짜 이유는 의외의 인물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 의외의 인물은 바로 로마 총독 빌라도였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나 대제사장들이 왜 그토록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저들이 끌고 온 예수님을 직접 조사를 해본 결과 아무런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놓아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라고 아우성입니다.


마태복음 27장을 잠시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7장 15절~17절
“15.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ところで、総督は祭りのたびに、群衆のため彼らが望む囚人を一人釈放することにしていた。
そのころ、バラバ・イエスという、名の知れた囚人が捕らえられていた。
それで、人々が集まったとき、ピラトは言った。「おまえたちはだれを釈放してほしいのか。バラバ・イエスか、それともキリストと呼ばれているイエスか。」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는 유월절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명절에는 총독이 죄수 중 한 사람을 사면해주곤 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는 총독이 일방적으로 정할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오늘 이 장면을 보면 빌라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택지를 줍니다.

자, 바라바와 예수, 둘 중 누구를 풀어주었으면 좋겠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이 바라바는 어떤 인물인가 하면, 마태복음에는 단순히 유명한 죄수라고 기록합니다만, 다른 책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마가복음 15장 7절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そこに、バラバという者がいて、暴動で人殺しをした暴徒たちとともに牢につながれていた。


누가복음 23장 19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バラバは、都に起こった暴動と人殺しのかどで、牢に入れられていた者であった。

요한복음 18장 40절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すると、彼らは再び大声をあげて、「その人ではなく、バラバを」と言った。バラバは強盗であった。

이렇게 보면 바라바는 단순한 죄인이 아닌, 강도에 살인, 거기에 민란까지도 저질렀던, 다시 말해서 지독한 흉악범이었습니다. 아마도 어쩌면 빌라도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그래도 바라바와 예수라고 하는 두 사람을 백성에게 선택지로 준다면, 틀림없이 예수라고 하는 사람을 석방시켜달라고 하겠지. 설마 자기 동족을 죽인 흉악범 바라바를 석방하라고는 할 리가 없지 않는가……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토록 예수님을 살리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마태복음 27장 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18절
“18.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ピラトは、彼らがねたみからイエスを引き渡したことを知っていたのである。

성경은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잡아온 이유를 <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가 아닙니다. 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잡아왔다는 사실,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태복음만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15장 10절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ピラトは、祭司長たちがねたみからイエスを引き渡したことを、知っていたのである。

그렇습니다. 대제사장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기했습니다. 그도 그럴 만하지요. 그들은 이른바 기득권 세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내세우고 율법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백성들 위에 군림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들을 비판하십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예수님께서 말씀만 전하시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게 하고,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기까지 합니다.

이제 백성들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아요. 다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이제 자신들의 권위가 흔들립니다. 이대로 있다가 자신들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지고, 그 때까지 누리고 있던 모든 권력들을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서 죽이기로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잘 모른다면, 그게 대단한 일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모른다면, 우리는 어느새 예수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일까지도 저지를지 모릅니다.

아닌 것 같으신가요? 뭐, 요즘 보면 교파에 따라서는 자신들도 개신교라면서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면서도 본래 안식일이 토요일이라고 해서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회는 다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죠. 구약에서 안식일은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죽이라고까지 하셨으니 구약대로라면 지켜야겠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구약을 그렇게 철저하게 지킨다면, 하나님께서는 양이나 염소 같은 짐승을 태워서 바치라고 하셨는데, 당신들은 그렇게 하냐는 거예요. 그 사람들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히브리서 10장 11절~14절
11.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さらに、祭司がみな、毎日立って礼拝の務めをなし、同じいけにえを繰り返し献げても、それらは決して罪を除き去ることができませんが、
キリストは、罪のために一つのいけにえを献げた後、永遠に神の右の座に着き、
あとは、敵がご自分の足台とされるのを待っておられます。
なぜなら、キリストは聖なるものとされる人々を、一つのささげ物によって永遠に完成されたからです。

과거에는 아무리 많은 제사를 드렸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우리의 죄를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완전한 제사예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해서 완전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불완전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히 완벽한 제사를 드려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죄가 완전하게 해결된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면서 구약대로 행한다면 이는 마치 여전히 양을 바치고 염소를 바치면서 불완전한 제사를 고집하는 것과 같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일이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교회 내에서는 이런 일이 없을 것 같으십니까. 예를 들어서 사업장을 운영하고 계신 분들 중에서, 믿음이 있다면 일요일에 사업장 문을 닫아야 해요? 말아야 해요?

예, 대체적으로 보면 사업장을 닫으시더라고요. 물론 그 시간이 예배 시간과 겹치는 경우도 그렇지만 겹치지 않는 경우도, 아, 주일이라고 해서 사업장 문을 닫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 성도님이 계시는데, 그 분은 도저히 일요일에 문을 닫을 수가 없어요. 쉬운 예로 보면 편의점 같은 경우를 들 수 있겠지요. 거기는 회사와의 계약으로 365일 열어놓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분은 믿음이 적은 건가요? 그 분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편의점을 그만 둬야 하나요? 아니면 교회에 나가는 시간에는 가게 문을 열어두되, 자기는 교회에 나가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쓰면 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 아르바이트생은 교회에 못 나가잖아요. 그래도 괜찮은 건가요?

아니면 꼭 일요일이 아닌 다른 날은 쉴 수 있는데 그 사업 특성상 일요일은 반드시 일을 해야 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분은 어떠십니까. 교회가 커져서 이런 분들이 많아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번, 어떻게 해서든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도록 한다.
2번, 이 분들을 위해서 일요일만이 아니라 다른 요일에도 예배를 드린다.


한국에서는 성수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일예배라는 말은 우리 교회에서도 쓰지요. 하지만 저는 꼭 주일이라는 말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합니다. 일본에서는 일요예배라는 말을 흔히 쓰고, 서양에서도 Sunday worship 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안식일이 토요일이지만 일요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라고 하여 그 날 모이기 시작했다고 해서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한 번 생각해보기를 원합니다.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하신다면, 주일이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렇죠. 주님의 날, 예수님의 날, 예수님께서 주인 되시는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안식일인 토요일이 예수님께서 주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토요일에 주인이신 건가요? 아니면 일요일에 주인이신 건가요? 아니면 둘 다인가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토요일과 일요일만 주인 되신 건가요? 아닙니다. 하루하루 1년 365일, 윤달이 있는 해는 366일 모두가 예수님께서 주인 되신 날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매일매일 쉬지 말라는 말씀도 아니고, 매일매일 쉬기만 하시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요즘에는 <과로사>라고 하는 말이 흔히 쓰이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쉬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주로 일요일에 드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일요일에 쉬고, 마음을 하나로 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겠지요.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요일에 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분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도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드리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二人か三人がわたしの名において集まっているところには、わたしもその中にいるのです。」

우리 이웃 중에서 여러 사정으로 일요일에 교회에 못 나오는 분들이 계시다면, 다른 요일에라도 함께 가서 예배를 드린다면 얼마나 은혜가 넘쳐나겠습니까. 제게 말씀해주시면 함께 갈 수도 있고, 목사님이 안 계시면 동영상으로 드린다 하더라도, 아니, 성경을 읽고 기도만 드린다 하더라도 우리 믿음의 중심에 예수님께서 계신다면, 그 날이 일요일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습니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그 예배를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의 머리로 생각해낸 율법으로 우리 이웃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어쩌면 예수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매달고 강도 살인마인 바라바를 풀어놓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 믿음의 중심, 마음의 중심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마음을 갖고, 믿음과 말씀과 행함을 통해서, 우리들을 위해 예비해주신 축복을 모두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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