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목 ♬
2007년 10월 28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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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선교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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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지난 아프간 피랍사건의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는데 아프간에서의 철군을 연기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 동료와 잠시 커피를 마시며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대해서 몇 마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동료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사이 좋게 지내면 좋을 텐데.”
이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율법이 떠올랐습니다.
구약에서 나오는 율법을 유대인들은 613가지로 분류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라”는 명령은 248개이며 “하지 말라”는 금령은 365개인데, 이진희 목사님(현재 달라스 웨슬리 연합감리교회 담임)께서 쓰신 책에 의하면 248은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부분 부분의 총합이며 365라고 하는 숫자는 1년 365일 우리 온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실천해야 함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숫자까지 맞추시면서 주신 율법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까지 담겨 있습니다.
“암소나 암양을 막론하고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지 말지니라” (레 22:28)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출 23:19)
이런 말씀들을 보면 우리 사람에 대해서만이 아닌 너무나도 섬세한 내용까지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합니다. 물론 율법에는 죄와 이에 상응하는 징벌도 기록되어 있어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두렵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율법을 지켰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율법을 모두 자세히는 모르더라도 십계명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십계명조차도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동료의 말에 문득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그리고 우리들 서로가 사이 좋기 지내기 위해 율법이나 십계명을 주신 것이 아닐까. 그래도 지킬 수가 없어 결국 자신의 독생자를 우리에게 화목제물로 주셔서 대속하게 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께서 (나훔 1:3 등) 설마 우리를 벌하실 빌미를 찾기 위해 율법을 주시지는 않았겠지요. 그런데 이 ‘사이 좋게’ 라는, 정말 유치원 아이들도 잘 아는 말을 십계명 끝에 붙여보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1.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으면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다.
2.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않으면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다.
(중략)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를 하지 않으면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다.
10.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않으면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다.
어떤 분은 십계명 첫째부터 넷째까지는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다섯째부터 열 번째까지는 사람끼리의 계명이라고 하시지만, 짐작하건대 창세 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짓고 나서 어떻게 서로 사이가 좋아질 수 있었겠으며, 우리가 우리 이웃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이는 그 사람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이도 어떻게 멀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 제자들에게 모습을 나타내셨을 때, 그들에게 처음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눅 24:36, 요 20:19, 26)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불안해하거나 두려움에 떨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행여 하나님께 드릴 제물 때문에 우리 심성이 악해질 것을 우려하시고,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양이나 염소에 대해서까지도 섬세하게 염려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본성 그 자체가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요일 4:16).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평강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나 사이, 그리고 우리 서로간에 사이가 좋아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예수님께서도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며, 성경은 모이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8:20, 행 2:46, 히 10:25). 그러나 예수님 이름으로 모이기를 힘쓰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나 사이가, 그리고 나와 이웃 사이가 좋아져야 가능할 것이므로 주님은 하물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바로 그럴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평강이 우리에게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나, 그리고 우리 서로의 사이를 회복했을 때 진실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우리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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