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는 평화 ♬
2008년 01월 13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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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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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얼마 전 주보를 제본하면서 문득 스테이플러 밑바닥을 보니 이런 문구가 있더군요.
“침은 평화”
물론 이는 “호치키스 침은 ‘평화’ 메이커를 쓰세요” 라는 광고성 문구라는 것은 알았으나 그 글을 본 후 엉뚱하게도 ‘주는 평화’라는 찬양이 입에 배어 하루 종일 혼자서 흥얼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른바 ‘평화’라는 것은 어떤 한 순간이 아니라 이를 일정기간 동안에 걸쳐 누릴 때 비로소 ‘평화’라는 것의 진가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과 평화를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진정으로 우리가 이를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리 은혜가 폭포수처럼 하늘에서 쏟아진다고 한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그 그림자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어느 식자는 성경을 바라볼 때에 역사학적 관점을 떠나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강변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성경에 있는 66권 정서만이 아니라 이에 포함되지 않은 외경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인간이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도록 글씨로 쓰여진 책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열린 귀와 마음이 있어야만 눈으로 읽을 때 우리 마음의 토양이 그 말씀의 씨를 받아 30배 60배, 그리고 100배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아무리 새로운 진리라 하더라도 기존에 알고 있는 낡은 틀에 어떻게든 끼어 맞추어야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그 틀에 맞지 않으면 이를 뱉어버리거나 아예 그 진리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므로(딤후 3:16) 성령님의 능력 없이 말씀을 해석하는 것을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5~16)
단지 하나님을 막연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님께 강구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만약 인간의 힘만으로 주님의 뜻을 이해하려 한다면 이는 마치 고차원적인 수학문제를 덧셈과 뺄셈 만으로 풀려는 시도에 불과할 것입니다.
과거 스스로를 성경에 능통하고 계명을 잘 지키며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스라엘에서는 아직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저버리고 인정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처럼 현재까지도 그 주변민족들과 내분이 계속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그들의 원하는 목적은 달성했을지는 모르나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며 성소 휘장이 찢어지는(눅 23:45) 모습을 목격한 그들의 심정은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까요.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2)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주님을 우리의 마음을 열며 받아들일 때,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낙심에 빠진 제자들을 찾아갔을 때처럼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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