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에 이르는 길 ♬
2008년 05월 18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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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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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당신은 모든 걸 다 가진 남자다.”
“난 아무것도 갖지 못한 남자다.”
이는 얼마 전 텔레비전 CF에서 나온 문구입니다. 보신 분들도 많이 계시겠으나 이 광고에 나오는 배우는 대단한 재력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 계신 분의 말에 의하면 이 배우의 수익규모는 한 개인이 아니라 웬만한 기업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위 광고는 어디까지나 CF 대사이며 배우의 생각이 아닌 작가가 적어준 대본일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나 자신을 보고 가끔은 비관에 빠질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심리연구소에 의하면 현대인이 갖는 질병의 적어도 70% 이상이 심인성에 의한 마음의 병과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라고 합니다. 보통 ‘질병’이라고 하면 외부로부터 병균이 침투하여 병을 일으키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대표적인 질병인 ‘암’은 내부에 있는 세포가 어느 순간 악성으로 변하며 발병하게 됩니다. 암에 대한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제기되고 있으나 주된 의견은 역시 ‘스트레스’를 들고 있습니다.
덴마크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저서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그에게 ‘죽음에 이르는 병’은 자기 상실이고, 다시 말해 자기를 있게 한 신과의 관계를 상실했을 때 발생한다고 봤습니다. 그는 “절망에 대한 안전한 해독제는 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현대인에게 있어서 물론 절망은 분명 죽음에 이르는 병 같습니다. 태안 기름 유출사건 때에는 그 지역 어민이, 미국 쇠고기 수입사태로 축산업자가, 그리고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AI 조류독감 때문에 양계업을 운영하는 농가에서 자살기도가 속출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이와 같은 사건과 무관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모두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가장 힘들어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저는 바로 ‘콤플렉스’가 아닐까 합니다.
4월 29일자 연합뉴스에 의하면 온라인 취업사이트에서 9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회사생활을 하면서 콤플렉스를 느낀 경험이 있는가'라고 질문에 89.8%가 '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직장인이 느끼는 콤플렉스는(복수응답) ‘학벌 콤플렉스’(50.1%)가 1위를 차지했으며, ‘외국어 콤플렉스’(46.5%), ‘착한 직장인 콤플렉스’(30.6%), ‘외모 콤플렉스’(25.7%), ‘화술 콤플렉스’(25.2%), ‘고슴도치 콤플렉스’(17.1%) ‘슈퍼맨(우먼)콤플렉스’(16.1%) 등의 순이었다고 합니다.
참 콤플렉스 종류도 많습니다. 이 콤플렉스에 대한 해석 또한 분분하지만 위와 같은 용법이라면 이를 ‘열등감’ 또는 ‘강박관념’이라는 번역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직장인 중에서 89%가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을 정도면 요즘 같은 취업난에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포함한다면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나오겠지요. 도대체 콤플렉스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걸까요.
성경에 보면 역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노년에까지 자신의 후손이 없었던 아브라함과 사라, 장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항상 에서에 대하여 경쟁의식이 강했던 야곱, 다른 형제들의 시기를 받아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 애굽 왕실에서 자랐으나 자신이 저지른 범죄 때문에 객지로 도피한 모세, 일곱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형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던 다윗, 자신의 전력 때문에 믿음의 형제들로부터 오랫동안 오해를 받았던 사도 바울 등 수 많은 사람들이 인간적인 콤플렉스로 괴로워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전체 삶을 보면 모든 문제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해결되었다는 것 또한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우리 주변에는 우리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모두 나보다 많은 것을 가졌고 나보다 능력도 많고 조건들도 좋은 그들과 비교하면 자기 자신이 얼마나 못 나고 부족하고 미천하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약점일 수도 있는 그와 같은 부분을 하나님께서는 강점으로 사용하십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시 31:1)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주님께서는 우리가 너무도 미련하고 부족한 것을 알고 계십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고전 15:8). 이를 감추고 의기소침하여 낙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고 인간의 식견과 가치관이 아닌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 13:14~17)
믿음이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확신하는 것이 믿음일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말씀처럼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는 들리지 않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더라도 부족한 나를 위해 자신의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주실만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질 때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또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믿음을 갖기에 사람은 너무나도 나약합니다. 어제 확신이 들다가도 내일 우리의 현실에 직면하면 또다시 힘이 빠지고 무력하게 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님께 우리의 부족함을 고하고 눈앞에 막혀 있는 현실을 말씀드릴 때에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타올라 그 사랑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풍요로움으로 가득 찰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이다.”
“나는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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