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첫 단추 ♬
2009년 09월 20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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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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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 교회에 다시기 시작한지도 몇 십 년 되었다. 주일이 되면 성경과 찬송을 꼭 챙겨서 정해진 시간에 교회로 향한다. 도착해서 주보를 살펴보고 성경구절과 설교말씀 제목만 보면 서론 본론 결론이 머리 속에 떠 오른다. 대표기도 시간에 지갑을 꺼내어 헌금을 챙겨 넣는 노하우도 잘 알고 있으며, 그 와중에도 절묘한 타이밍에 “아멘”을 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예배가 끝난 후 축도가 끝나자마자 재빨리 나와야 차를 빼기 쉽다. 나오는 길에 받게 되는 전단지들은 얼마 가면 있는 휴지통에 살며시 던져 넣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화창하게 맑은 하늘, 쏟아지는 가을 햇살, 주일은 그로부터 일요일이 된다. -
교회생활이 오래되면 오래 될수록 ‘믿음’이란 정체는 희미해지고 마치 양치질을 하는 것처럼, 식사 후에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처럼 느낌도 감동도 없는 교회생활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삼위일체, 성수주일, 성경무오, 모세오경, 공관복음, 오병이어 등 나름대로 예배경력이 있기에 ‘전문용어’에 대한 지식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세상에는 ‘초식남’과 ‘건어물녀’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초식동물처럼 순하고 혼자 있기를 즐기며 연애와 결혼엔 도통 관심이 없는 20~30대 젊은 남자들이 ‘초식남’이고, 직장에선 누구보다 매력 넘치고 유능하지만 집에만 오면 아무렇게나 옷을 입은 채 고독을 즐기며 일에 지쳐 연애는 잊고 사는 여성들을 가리켜 '건어물녀'라고 한다는군요. 어찌 보면 믿음생활에서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적 초식남과 건어물녀가 되어 주님과의 만남이나 성령님의 도우심에 대해 무감각해지거나 관심이 사라진 상태인지를 점검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믿음이 없는 지식인들도 성경을 읽었으며,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명화 ‘십계’나 ‘벤허’를 보고 찰턴 헤스턴의 열연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이나 신앙은 여기에 머무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며,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그 믿음 위에 세우신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닌 어제와 오늘과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는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을 느끼며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여야 할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여기에는 십일조와 기도, 그리고 실천이 있겠는데 오늘은 십일조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십일조는 창세기 14장 17~20절에서 아브라함이 전리품 중 10분의 1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바치는 것으로 처음 등장하고,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10의 1을 바치라고 명령하셨으며(레 27:30 ~32, 신 14:22),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말 3:8). 뿐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십일조만 내고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고 질책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천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에도 왜 굳이 사람들이 재물을 바치기를 원하실까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양이나 염소를 바칠 때 만약 하나님보다 짐승을 더욱 사랑했다면 이를 죽여서 바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놀라운 것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일선상에 놓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는 절대 하나님과 재물이 동일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들은 재물에 대한 애착이 마치 하나님 섬기듯 한다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듯이 십일조 또한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주님께 바칠 수가 있습니다. 1억을 버는 자는 1천만을 드리면 되고 1만원을 버는 자는 1천원을 바치면 됩니다. 십일조는 무엇 보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가늠하는 방법이자,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첫 단추일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십일조의 축복을 남김 없이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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