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 ♬
2009년 09월 13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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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골로새서 2장 8절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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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바울 자신이 밝힌 본인의 신상명세에 의하면 계보로는 야곱의 자손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고(롬 11:1, 빌 3:5),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행 22:28). 또한 그는 엘리트 계층이었던 바리새인이 되기 위해 힐렐 학파의 가말이렐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습니다. 이를 본다면 선천적 조건으로 보나 그가 쌓은 학식으로 보나 출세를 위한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베스도 총독 앞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는 바울에게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 26:24)는 말까지 했을 정도이니 그의 지식 수준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였겠지요. 마음만 먹으면 이미 보장된 탄탄대로의 출세 길을 걸을 수 있었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모든 지식을 배설물처럼 여기며(빌 3:8), 오직 복음 전파 만에 힘을 쓴 것도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행 17:18)
당시 로마 일대에서 유행하던 쾌락주의를 주장하는 에피쿠로스 학파나 유물론이나 이상주의를 내세웠던 스토아 학파에서 보면 비단 인간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게파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내용은 학문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게 느껴졌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황당무계한’ 논리가 지식인 중 지식인인 바울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을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세상과 삶, 감정이나 존재, 죽음 등을 논한 철학들은 넘쳐나지만 이를 논할 때에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지금 이 순간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도외시한다면 그 어떠한 논리도 성립될 수 없겠지요.
성경을 잠시 살펴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삼상 16:7)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55:8)
성경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과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사람이 진리인 줄 알고 사람의 식견으로만 판단한다면 이는 언제 든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우리의 판단 기준은 진리이신 예수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의 삶도 아브라함의 삶도,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도 인간적인 눈으로는 허무하거나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 또는 우리 주변의 이웃을 살펴 보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 생각이 ‘사람들’과 다른 것처럼 우리 생각도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바로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 생각과 같아져야 하기 때문 다름 아닙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8)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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