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회복 ♬
2010년 04월 11일 글들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선교후원
KB 국민은행 079-21-0736-251 홍성필
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그간 이런저런 핑계 탓에 3년 이상이 걸려서야 겨우 성경 타이핑 1독을 마치고는 다시 창세기로 돌아갔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창세기를 다시 읽어 보니 지금까지 많이 읽어보았고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역시 또다른 지식과 감동을 안겨주는 것을 보면 여느 책과는 분명 다르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먼저 명명권(命名權:naming rights)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낮과 밤과 하늘과 뭍에 대해 이름을 붙이시고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후부터는 스스로 이름을 붙이지 않으셨으며,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신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을 지으신 다음, 사람(아담)으로 하여금 명명권을 행사하도록 그에게 이끌어 가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창 2:19)
명명권이란 인간이나 사물, 시설 등에 대해 명칭을 부여하는 권리를 말하는데, 과학계에 있어서도 새롭게 발견한 원소나 천체에 대해 발견자가 명명권을 얻기도 하며, 생물체의 학명은 기재자가 그 명명권을 갖습니다. 특히 신생아에 대해서는 부모 또는 부모로부터 위탁 받은 자에게 명명권이 부여됩니다. 이는 ‘창조’는 하나님께서 이루셨으나 이에 대한 지배권은 창세기 1장 28절에서 말씀하셨던 축복으로 인하여 아담에게 부여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배필로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십니다. 아담은 그녀에게도 ‘여자’라는 이름을 부여하였으며 (창 1:23)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창 1:25). 그 당시까지는 분명 하나님과 아담은 매우 가까웠으며 아담 또한 여자를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로 여겼으므로 서로간에 매우 친밀했었으리라 하는 점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은 후에 사태는 돌변합니다. 여자가 열매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자 눈이 밝아져 서로의 몸을 가리게 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엄히 금지하셨던 명령을 어긴 결과 남자와 여자 사이는 급격히 멀어지게 되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생기고 맙니다.
그렇다면 이 거리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하나님은 이 멀어진 거리를 다시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이를 회복시키는 방법은 오직 사랑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하나님은 사랑을 아는 분, 사랑을 하실 수도 있는 분이 아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하시면서까지 우리 인간과의 멀어진 거리를 회복하기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과 사람 사이는 어떤 사랑으로 멀어진 거리를 회복하여야 할까요.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서로에게 부족한 존재이기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은 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잠 10:12)
아무리 온세상에 ‘사랑’이라는 말이 범람하더라도 상대의 허물을 가리지 않는 사랑은 거짓일 수밖에 없으며, 진정한 사랑이란 바로 내 옆에 있는, 나와 가까운 곳에 있는 이웃의 허물을 가리는 사랑이야말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명령을 어긴 사람들을 에덴에서 내치시면서도 그들에게 부여한 축복을 거두지는 않으셨으며 희생의 산물인 가죽옷을 입히시기까지도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시기는 하셨으나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하나님과 이웃과의 사랑을 회복하는 길.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길이며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일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소유를 원하시는 하나님 ♬ →

← ♬ 범사에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 ♬

 

홍성필 목사 글들 메뉴

이카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