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 바라시는 천하무적 ♬
2010년 11월 14일 글들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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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성가대를 섬길 당시 주보에 실었던 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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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기도와 섬김이
선교의 횃불을 밝힙니다.
 

‘천하무적’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적인 의미로는 ‘세상에 겨룰 만한 적수가 없음’이라고 하며, 우리가 ‘천하무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매우 강력하고 유일무이한 힘을 지닌 사람을 떠올리기도 하나, 문자적으로 본다면 말 그대로 ‘천하에 적이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국장급 관료로 승진한 인물에 대한 평을 들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매끄러운 업무수행능력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라는 아나운서의 말이 매우 새롭게 들려왔습니다. 이 내용을 듣고 있노라니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은 의미의 ‘천하무적’이 아닐까 합니다.
성경을 살펴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산상수훈 중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1~22)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3~44)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이웃을 미워하지 않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며, 나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곳 어느 세상에도 적이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4차원’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옛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학교에서 ‘차원’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은 중학교 시절이라고 기억합니다. 약 2300년 전에 적힌 ‘유클리드 원론’에 보니 기하학의 시초라 불리는 이 책에서 ‘점’을 규정하기를 ‘점에는 길이도 폭도 두께도 없다’고 하고, ‘선’은 폭이 없이 길이만 있다’고 하며, 이 설명에 의하면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1차원 세계에서는 아무리 이들을 모아본다 한들 ‘폭’을 가진 2차원의 세계인 ‘면’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2차원에 있는 ‘면’을 규정하기를 ‘두께’가 없기에 수많은 ‘면’을 모아도 여전히 논리적으로는 ‘0+0=0’이기에 3차원에서만 존재하는 ‘두께’를 지닐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3차원입니다. ‘두께’ 즉 ‘높이’가 존재하는 3차원에서 4차원으로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요. 앞서 본 바와 같이 그 차원에 있는 것을 아무리 모아도 다음 차원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쌓아 보아도 영성을 향해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가 없으며, 이 세상의 지혜와 능력을 동원하여 4차원을 향해 쌓는다고 해도 하늘을 향해 무모하게 바벨탑을 쌓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일견 절망적인 결론이 나오고 맙니다. 겉보기에 매우 자유로울 것만 같은 우리도 알고 보면 많은 것들에 묶여 있습니다. 죽음이나 시간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는 ‘어제’로 갈 수 없으며 의술이 발달했다고는 하나 ‘죽음’을 피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 차원의 벽을 넘을 수도 없고 3차원의 능력으로는 주님이 만족하는 마음을 가진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3~18)
3차원과 4차원, 즉 이성과 영성 간에 막힌 담은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허무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지혜나 능력으로 영성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서 허무시고 놓으신 십자가의 다리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성에 이르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 하나님께 합당한 자는 오직 율법을 지키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야고보서에 의하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된다고 하니(약 2:11 참조), 어느 누구도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허무신 벽을 넘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천하무적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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