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수확의 비결
2015년 11월 23일 설교

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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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 9절~14절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한국은 지난 주가 추수감사절입니다만, 일본은 오늘에 주로 추수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은혜로운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수확의 비결’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교회 생활을 좀 오래 하신 분들을 보면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이고, 예수 믿기 참 어려워요.” 이런 말씀을 본인이 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가 하시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예수 믿기 참 힘드신가요? 아니면 쉬우신가요?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치료하기 쉬운 환자와 치료하기 매우 어려운 환자가 있다고 합니다. 치료하기 쉬운 환자는 어떤 환자인가 하면, 지금 증상이 이러이러하니까 이런 검사를 하고, 그 다음에는 이 약을 며칠간 먹고 그 다음에 경과를 봐서 이러저러한 처방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 그 말에 순종하는 환자들은 대하기가 수월하고 치료효과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반면에 치료하기 매우 어려운 환자는 어떤 분들인가 하면, 이 분들은 이미 자기 증상도 다 알고 있고, 여기저기 병원도 많이 다녀본 사람들입니다. 의사가 지금 증상이 이러이러하니까 이런 검사를 하고 그 다음에는…뭐, 이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나는 내가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불필요한 검사는 할 필요 없이 이러저러한 약을 처방해주시면 됩니다.” 라고 하면서, 그냥 의사 말도 듣지 않는답니다. “아니, 그러지 마시고, 일단 검사부터 받아보셔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글쎄 나에 대한 건 내가 더 잘 안다니까, 괜히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내가 달라는 약이나 처방해주쇼” 라면서 막무가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치료도 제대로 되지 않고, 당연히 치료효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한테 들은 얘기가 아니라, 이번에는 제가 직접 느꼈던 일을 말씀 드릴까 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에 학원에 근무하면서 대학 진학반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있었던 일입니다만, 한창 진학지도 막마지일 때 함께 근무하던 어떤 선생님이 저한테 이런 말을 해주더라구요. 같이 공부하는 아이들끼리 서로 진학상담을 해준다는 거예요. 뭐, 이것만 들으면 그런가보다 할 수도 있겠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좀 심상치 않았습니다. 이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얼마 전에 어떤 학생과 상담을 해서 지원대학을 결정했는데, 얼마 후 자기는 더 낮춰야겠다는 말을 하더랩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정확한 대답은 안 하고 자꾸 말을 돌리면서 어쨌든 자기는 대학을 좀 더 낮춰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집요하게 물었더니만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의 진학지도, 구체적으로는 지원할 대학을 결정할 때에는, 담당 선생님들이 학생 본인과 상담하고 성적을 분석하고 각 대학들의 정보에 입각해서 A대학 B학과를 지원하라고 말해주는데, 이것을 무시하고, 서로 자기들끼리 말하면서, 야 너는 거기 안돼. 더 낮춰야 돼, 그리고 또 다른 애한테는 너는 좀 더 높여서 써도 되겠다…뭐 이러면서 서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담당 선생님들과 게네들, 어느 쪽 정보가 더 정확하겠어요? 백 보 양보를 해서 그 상담을 해준 아이가 이미 대학에 들어간 대학생이라면 또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건 그것도 아닙니다. 자기도 지금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이면서 뭘 안다고 누구를 상담해주고 그런단 말이에요?
이렇게 조금 생각해보면 금방 알만한 일이지만, 상황이 너무 예민할 때에는 별 대수롭지 않은 말도 아주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선생님 지도를 따르고 순종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고 엉뚱한 정보를 듣고 믿었던 아이들은 진학에 실패하거나, 진학을 했다 하더라도 원하는 대학보다 낮은 곳에 진학하게 되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람 군대의 나아만 장군이 등장합니다. 이 아람이라는 나라는 지금의 시리아 쪽에 위치했었으며 수도는 현재까지 시리아의 수도인 다메섹이었습니다. 이 아람 군의 군대장관이 나아만이었습니다. 그냥 장군도 아닌 군대장관이었으니 그의 능력이나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나병환자였습니다. 나병이라는 것이 예전 개역한글에서는 문둥병이라고 나와 있습니다만, 정확히 한센병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여하튼 매우 심각한 질병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열왕기하 5장 1절에는,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큰 부귀와 권세를 가졌다고는 하나, 자신의 몸이 썩어 들어가는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다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마가복음 8장 36절 말씀에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아마도 그는 하루하루가 걱정과 근심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마침 그러던 차에, 열왕기하 5장 2절에서 3절을 보니,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공교롭게도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어린 소녀가 나아만의 아내한테,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한테 가서 나병을 고쳤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합니다. 본래 이 소녀가 비록 포로이긴 하지만 성실하여 사람들이 이 소녀의 말을 믿었는지, 아니면 너무나도 절박해서 그 어린 소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는지는 안 나와 있습니다만, 이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은 예물들을 싸 들고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오늘 읽은 본문 중에서 열왕기하 5장 9절에서 10절에 보면,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나아만 장군은 화를 냅니다.
이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매우 화가 났다고 성경은 기록하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나아만 장군이 선지자 엘리사 집에 갈 때 말들과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 집 문앞에 섰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엘리사가 무슨 군대를 가지고 있어서 자기들을 공격할까봐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나아만 장군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그랬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냥 장군도 아닌 군대장관인데 얼마나 그 위세가 대단했겠습니까. 더구나 자신은 나병환자라는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세상에서도 유독 자기 자신을 과시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분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무슨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그 부분을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잘난 척도 하고 대단해 보이려고 노력하고 그러는 것이죠. 나아만 장군도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라는 식으로 말과 병거들 이끌며 가면, 글쎄요, 한국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엘리사가 저 멀리서 버선발로 뛰어나와 “아이구 어서 오십쇼. 이렇게 누추한 곳에 와 주셔서 황공하옵니다” 뭐 이러면서 맞아줄 줄 알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땠어요?
정작 엘리사는 나와보지도 않고 그의 종을 시켜서 말을 전합니다. 어떻게 하라고요?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낫는다” 라고 했다는 것이죠.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나아만은 지금 거기 왜 왔어요? 국경을 넘어 엘리사한테 간 이유가 뭐죠? 자기 위세를 자랑하러 간 거예요? 자존심 세우러 간 거예요? 아닙니다. 그럼 왜 갔어요? 예, 그렇습니다. 나병 고치러 간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핵심은 망각하고 그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아만 장군이 화를 낸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럼 이제 나아만 장군의 심기가 불편해진 두 번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어서 11절과 12절을 보면,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이 말을 들은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인지 뭔지 모르는 선지자가 직접 영접하러 나오지 않은 것도 열 받는데, 먼 길을 애써 와서 병을 고치는 방법이 기껏해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그게 다야?”
아마 이랬을지도 모릅니다.

“내 생각에 기도로 병을 고친다고 한다면 보통 나한테 나와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그 환부 위에서 흔들어서 주여~~ 하고 기도를 해서 병을 고칠 줄 알았는데, 자기는 코빼기도 안 보여?” 뭐, 이러면서 화를 내지 않았나 합니다.

아니, 자기가 선지자입니까? 자기가 하나님이에요? 앞서 의사 선생님들이 말하는, 매우 다루기 힘든 환자처럼, 자기가 의사도 아닌데 나를 이렇게 고쳐주세요, 저런 약을 주세요…이렇게 말하는 꼴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자기가 의사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닌데도 자기 생각대로 고쳐주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분들을 보면 이와 비슷한 분들이 계십니다. 다 자기가 정해요. 어디에 가든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가 행동하고, 자기 멋대로 다 해 놓고 그리고 마지막에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자, 이제 내가 다 해놨으니까 하나님, 축복해주세요.”라고 합니다.
아니, 하나님이 무슨 내가 하라는 대로 해주는 종이에요? 아니면, 요리는 자기가 다 해놓고 마지막 먹기 전에 살짝 뿌리는, 하나님이 무슨 소스나 케첩이에요?
성경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시편 115편 9절~11절는,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예레미야 17장 7절~8절에는,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시편 57편 2절에는,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그런데 나아만은 내가 생각했던 방식대로 안 해준다고 지금 투덜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아만 장군의 심기가 불편해진 두 번째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내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의지하는,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여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나아만 장군이 화를 낸 이유는, 요단 강에서 몸을 씻으라고 했던 말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강에서 몸을 씻으려면 어떡해 해야 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옷을 다 벗어야 해요. 더구나 나병환자였기 때문에 옷을 벗으면 피부가 허옇게 타 들어간 흉한 모습이 여과 없이 사람들 눈에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예요? 군대장관입니다. 지금으로 본다면 참모총장이나 국방부장관 정도 되는 사람일 것입니다. 만약에 이 사람이 자기 나라에 있으면서 거기 강물에 몸을 씻는다고 한다면, 매우 거창하게 했을 것입니다. 글쎄요.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아무래도 수십 명, 수백 명의 경호원들이 그 강물 일대의 출입을 통제시키고, 멀리서도 안 보이게 가림막을 설치하고 그 부끄러운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해서 들어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나아만 장군이 있는 곳은 남의 나라입니다. 거기서 옷을 벗고 자기의 그 흉한 살을 드러내고서 강물에 몸을 씻으라고? 이건 어림도 없는 소리였습니다. 적어도 나아만 장군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장군인 나를 제대로 대우해주지도 않고, 기도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것도 부족해서, 이제 내 수치를 온 천하에 다 드러내라고? 에잇, 치사해서 내가 안 하고 만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말한 내용 중에서 객관적으로 어려운 것이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무슨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를 보다 못한 나아만 장군이 데리고 온 종들이 직언을 합니다. 13절에 보면요,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주인님, 그게 어려울 게 뭐가 있어요? 멀리 있는 것도 아닌, 저기 있는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잖아요? 그러면 되는데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요? 저기서 몸을 씻으면 다른 것도 아닌 나병이 낫는다잖아요?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어려울 게 없습니다. 엘리사한테 갔더니 저기 있는 요단강물에 몸을 씻으래요. 예, 알겠습니다 하고 얼릉 가서 몸을 씻었다면 금방 낫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아만 장군이 화를 내고, 그리고 하마터면 그 중병을 고치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갈 뻔했던 이유가 뭐였죠?
첫째는 엘리사가 자기를 대우해주지 않았다는 것. 둘째는 자기 생각대로 해주지 않았다는 것, 셋째는 자기 치부를 드러내라고 한 것. 이 세 가지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응답을 받으려면 이 세 가지를 모두 극복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모두 단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뭘까요? 바로 내 자존심입니다. 이 자존심만 없었더라면 응답도 바로 받고, 피곤하게 화를 낼 일도 없었을 텐데, 하나님을 보기 전에 자기 자신을 보고, 자존심을 세우는 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하마터면 애써 먼 곳까지 와서 화만 내고 응답도 못 받은 채로 돌아갈 뻔 했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가 이 날 감사를 드리려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추수를 할 것이 있어야 감사를 드릴 수 있겠죠. 추수감사절에 추수할 것이 없다면 어떻게 감사를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 23절에 보면 우리가 거두어야 할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와 같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바로 나를 높이고 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 5절에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라고 하십니다.

내 자존심을 세우고 내 생각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앞세우며,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우리 하나님을 사랑할 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고,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수확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2회 세상의 빛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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