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세상의 빛이라
2015년 11월 29일 설교

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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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늘은 성탄절을 한 달 앞둔 날로서 이를 대강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절기로 지켜지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대강절을 맞이하여 “세상의 빛이라”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음악을 감상할 때, 물론 그것 자체를 즐겨도 무방하지만, 더욱 재미를 느끼려면 미리 어느 정도 공부하고 접하면 한층 감회가 새롭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베토벤이나 슈베르트의 교향곡이나 모짜르트의 오페라 같은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그냥 보는 것보다 먼저 어느 정도 그 내용을 알아보고 감상하면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비단 음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림 같은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작품이 누구에 의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그려졌으며, 이 그림에 등장하는 어떤 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이 색깔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내용을 알면, 그냥 그림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여행도 마찬가지라고 하죠. 우리가 국내나 해외에 갔을 때 어떤 건축물을 보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저 건물이 무엇이고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인지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면 그 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들까지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동경에 있는 도쿄타워. 그냥 보면 조명도 아름답고 색깔도 화려한 그 모습이지만, 이 도쿄타워가 완성된 1958년. 이 시기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의해 잿더미가 된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서 고도경제성장을 시작하려는 일본의 희망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동경 긴자에 있는 니혼바시는, 오랜 역사 속에서 동경의 상징입니다. 예를 들어서 동경에서 어디까지의 거리를 측정할 때 기준점이 되는 곳이 바로 이 니혼바시입니다. 그 구조는 니혼바시의 위상을 나타내듯 매우 화려한 모습인데, 그 위에 수도고속이 달리고 있어서 매우 답답하게 보입니다. 이것도 그냥 보면, 아 그런가보다…하고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사실 1968년 동경올림픽을 앞두고 수도고속을 건설해야 하는데, 땅 위에 고가도로를 건설하면 그 땅을 매입해야 하기 때문에 돈도 필요하고 시간과 절차도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강 줄기를 따라 고속도로를 건설하다 보니 동경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니혼바시 바로 위에까지 고속도로가 지나가게 된 것입니다. 서울에는 과거에 중앙청 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건물만 보면 참 잘 지은 건물이지만, 그것이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 하고 통치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그것도 당시 왕이 살고 있었던 경복궁 안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똑 같이 눈에 보이는 것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성탄절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쳐도 전 인구의 1프로가 안 된다는 일본도 이맘때쯤이 되면 일루미네이션이라고 해서 멋진 조명을 하고 연말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여기저기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오고 성탄절과 연말을 즐거워하는 소리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중에는 의외로 성탄절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한테는 크리스마스에 누가 태어났다거나 어떤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한테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다 주고, 젊은이들은 데이트를 합니다.
혹시 그거 아세요? 일본에만 있는 특이한 성탄절 문화가 있습니다. 첫째로, 성탄절에서 연말에 걸쳐서는 여기저기서 클래식 콘서트가 열리는데 주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듣습니다. 그러면서 그 곡이 찬송가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또 공교로운 것은 그 가사가 성탄과는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전세계에서 성탄절에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듣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특이한 문화는, 일본 사람들이 성탄절에 무엇을 먹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요? 물론 크리스마스 케익도 먹습니다만…사실 생각하고 보면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케익을 먹는다는 것도 독특한 문화입니다만, 이건 뭐 세계적으로 다 하고 있는 문화인데, 특별히 성탄절에 일본사람들이 유독 많이 먹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치킨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KFC 앞에는 줄을 서서 치킨을 사 간다고 합니다. 서양에도 추수감사절 때 칠면조 요리를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만, 크리스마스 이브 때 치킨을 먹는다는 문화도 일본 특유의 관행이 아닐까 합니다.
케익이라고 하면 마치 생일케익이나 웨딩케익처럼 축하할만한 일이 있을 때에 먹는 것이니만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치킨을 먹는다는 것도 정말 흥미롭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치킨을 먹는 일이 일본에 있다면 이해가 가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성탄’이라고 하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날, 신나는 날”이라는 의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시내에 나가서 백화점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마련해 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보면 산타클로스나 사슴들, 선물들을 그려놓은 곳은 많지만 정작 예수님을 나타내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세요. 크리스마스 때 치킨을 먹거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벌 받는다…이런 뜻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와 같은 모습을 주님이 보신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겠어요?
이건 제가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제 생일은 3월 하순입니다만, 아시다시피 한국은 3월 달에 입학식이 있습니다. 그러니 생일 때가 되었지만 아직 입학한지 한 달도 안 되었고, 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문회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가 있던 서클 형이, 아~ 생일파티 하자면서, 수업이 끝난 후 저를 포함해서 서클 회원 5~6명이 학교에서 출발을 했는데, 이 선배가 또 아는 신입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학교 건물에서 교문까지 걸어 나오는 도중에서 만나는 신입생들한테 모두 말을 걸어서 같이 가자고 꼬시는 거예요. 그랬더니 신림동 식당에 도착하고 봤더니 한 서른 명 가까이가 모였습니다. 하지만 거기 모였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 날이 무슨 날인지, 왜 모였는지, 그리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습니다. 뭐, 이 경우는 그저 즐거운 추억일 수 있겠지만, 만약에 그 사람들이 제 생일 때마다 모여서 즐겁게 지내는데, 한 두 번도 아니고 몇 년이 지나도 나 자신에 대해서 관심도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지금 일본의 경우가 바로 이런 식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인지도 어떤 의미를 갖는 날인지도 모르니까 그냥 즐거워하고 맛있는 것 먹고… 그것이 바로 일본의 현주소입니다.
그렇다면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끼시는 외아들을 왜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까.
그 답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神は、実に、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それは御子を信じる者が、ひとりとして滅びることなく、永遠のいのちを持つためである。
저는 옛날에 여기 있는 ‘이처럼’이라는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번역들을 보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셨다, 또는 하나님이 세상을 독생자까지 보내주실 만큼 이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보내주셨는데, 이 사실은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도 전에 이미 선지자 이사야에 의해 예언된 바 있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을 보면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それゆえ、主みずから、あなたがたに一つのしるしを与えられる。見よ。処女がみごもっている。そして男の子を産み、その名を『インマヌエル』と名づける。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그리 대단하지 않게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그 때까지는 극히 한정된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제 예수님이 오신 후부터는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라겠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그저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만 오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의 말씀을 보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しかし、彼は、私たちのそむきの罪のために刺(さ)し通(とお)され、私(わたし)たちの咎(とが)のために砕(くだ)かれた。彼(かれ)への懲(こ)らしめが私(わたし)たちに平安(へいあん)をもたらし、彼(かれ)の打(う)ち傷(きず)によって、私たちはいやされた。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채찍에 찢기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는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모진 고초를 겪으신 이유도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체찍에 찢기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모친 고초를 겪으시기 위해 이 땅 위에 오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예수님께서는 모두 이루셨나요? 아니면 이루다가 마셨나요?

요한복음 19장 30절에는,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イエスは、酸(す)いぶどう酒(しゅ)を受(う)けられると、「完了した。」と言われた。そして、頭(あたま)を垂(た)れて、霊(れい)をお渡(わた)しになった。

라고 기록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목적을 하나도 빠짐 없이 모두 완벽하게 이루셨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 53장 5절의 말씀 후반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彼(かれ)への懲(こ)らしめが私(わたし)たちに平安(へいあん)をもたらし、彼(かれ)の打(う)ち傷(きず)によって、私たちはいやされた。

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고되고 힘든 사명을 모두 감당해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도 없고 나음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못난 우리를 위해서 징계를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셨으며,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흘려주셨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도 있고 나음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서 24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すべての人は、罪を犯したので、神からの栄誉を受けることができず、ただ、神の恵みにより、キリスト・イエスによる贖(あがな)いのゆえに、価(あたい)なしに義(ぎ)と認(みと)められるのです。

내가 지은 죄를 하늘의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오셔서 모든 죄값을 대신 치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죄값을 치르기 위해 뭔가를 했나요? 아니요. 우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값 없이 얻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기쁨의 소식입니까. 얼마나 큰 복음이에요? 이 사실을 알면 정말 몇날 며칠을 깡총깡총 뛰면서 기뻐해도 모자랄 판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성탄절이 왜 즐겁냐고 하면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기쁘다고 해요. 어른들은 그냥 이유 없이 남들이 기뻐하니까 기뻐하고 있습니다.
뭐, 그렇습니다. 기뻐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크리스마스에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도 기뻐한다고 무슨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니 좋다고 칩시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그게 다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의하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ヘブル人への手紙
そして、人間には、一度死ぬことと死後にさば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ように、

분명히 우리 인생의 마지막에는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심판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행전 16장 31절에는,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ふたりは、「主イエスを信じ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もあなたの家族も救われます。」と言った。

로마서 10장 9절에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라고 합니다.
なぜなら、もしあなたの口でイエスを主と告白し、あなたの心で神はイエスを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せてくださったと信じるなら、あなたは救われるからです。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죄를 대신 사해주셨다는 것을 믿고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쁜 소식을 우리만 알고 있어야겠습니까? 크리스마스가 그저 친구들과 흥청망청 놀기만 하고 데이트나 하고 선물자랑만 하는 그런 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16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あなたがたは、世界の光です。山の上にある町は隠れる事ができません。
また、あかりをつけて、それを枡(ます)の下に置く者はありません。燭台(しょくだい)の上(うえ)に置(お)きます。そうすれば、家にいる人々全部を照らします。
このように、あなたがたの光を人々の前で輝かせ、人々があなたがたの良い行ないを見て、天におられるあなたがたの父をあがめるようにしなさい。

이사야 60장 1절에는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起きよ。光を放て。あなたの光が来て、主の栄光があなたの上に輝いているから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깡총깡총 뛸만한 기쁜 소식을, 아직 왜 기쁜 날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죠? 왜 전해야 하는 거죠? 그것은 바로 우리가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친히 하나님께서 우리더러 빛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진정한 빛은 반짝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빛을 발하지 않는 빛이 있을 수가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를 전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다가 협박을 하면서 더 이상 예수를 전하지 말라고 했더니 베드로와 요한이 뭐라고 하죠?

사도행전 4장 18절~21절에 보면,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そこで彼らを呼んで、いっさいイエスの名によって語ったり教えたりしてはならない、と命じた。ペテロとヨハネは彼らに答えて言った。「神に聞き従うより、あなたがたに聞き従うほうが、神の前に正しいかどうか、判断してください。私たちは、自分の見たこと、また聞いたことを、話さないわけにはいきません。」
そこで、彼らはふたりをさらにおどしたうえで、釈放した。それはみなの者が、この出来事のゆえに神をあがめていたので、人々の手前、ふたりを罰するすべがなかったからである。

이처럼 누가 전하지 말라고 해도 전하지 않고는 못 백이는, 바로 이것이 빛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한달 남짓 지나면 성탄절입니다. 이번 성탄절 예배는 오는 12월 23일 수요 예배 시간대인 오후 1시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아직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한 달 동안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전하고,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빛되신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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