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하나님이 받으시는 감사
2016년 1월 17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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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1절~19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감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도 정말 이렇게 좋은 주일을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꼭 날씨만을 가지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쟁이나 굶주림이나 추위 걱정 없이 이렇게 주일 아침에 모여서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각 나라마다 감사하다는 말은 꼭 있습니다. 영어로운 thank you, 독어로는 당케쉔, 프랑스로는 멜시, 아랍어로는 슈클란…얼마 전에 텔레비전 방송에서 외국인이 좋아하는 일본어 랭킹을 보니까 그 순위권에 かわいい、귀엽다, おいしい맛있다 라는 단어도 있었는데, 압도적으로 1위였던 것은 ありがとう였다고 합니다. 고맙다고 하는, 감사하다고 하는 말에는 그 말을 하는 이도 그렇고, 듣는 이도 그렇고 마음을 아주 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도 감사의 마음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1절에서 19절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출발하셔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한 마을을 지나십니다. 그랬더니 저 멀리서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을 보고 멀리서 소리칩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이 열 명이 젖먹던 힘을 다해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당시 이 나병이라는 질병은 이른바 저주 받은 질병으로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한테 가까이 가기는커녕 마을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만약 그들이 온전한 사람들이었다면, 치료를 받은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 앞에 와서 간구했을 것이지만, 이들은 나병환자들이었기 때문에 그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저 멀리서 예수님을 향해서 크게 소리 지르는 것뿐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질병을 고치실 때,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마태복음 8장 14절에서 15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라고 하시며, 손으로 만지셔서 고치시기도 하시고,

마태복음 17장 18절에서는,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라고 하여, 귀신을 꾸짖으시고는 나가게 해서 질병을 낫게 하시기도 합니다.

또한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치료를 해주시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9장 6절~7절에 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맞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방법으로 치료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에 소리쳤던 나병환자는 어떻게 치료하셨어요? 그 몸에 손을 얹은 것도 아니요, 가까이 다가간 것도 아닙니다.

누가복음 17장 14절에는,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저 말씀만 하신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 말씀 한 마디로 나병환자 열 명은 완전히 치료받았습니다. 나음을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 17장 15절 이후에 보니 예수님께 와서 감사를 드린 사람은 사마리아인이었다는 사실을 보시고,

17절에서 18절에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라고 하십니다. 11절에도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지나고 계셨습니다. 갈릴리는 유대 지역이었습니다만 사마리아는 이방인 취급하던 곳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교제는 없었습니다만 이 지역에는 지리적으로 유대인들도 있었고 사마리아인들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에 의한다면 이 나병환자들 사이에는 유대인들도 있었을 것이고 사마리아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오셨고 유대인을 중심으로 한 사역을 하고 계셨는데, 정작 나음을 받은 유대인들은 온데 간데 없고 사마리아인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했다고 기록합니다. 그것도 어떻게 감사했다고 했나요?

15절에서 16절에 보니까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그냥 감사한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도 또한 감사에 매우 인색한 것 같습니다. 일본 사람들을 보면 아이들한테 예절을 가르칠 때에, 항상 밥 먹기 전에 두 손을 모으고, いただきます잘 먹겠습니다, 하고나서 먹고, 먹고 나서도 또 두 손을 모으고 ごちそうさまでした잘 먹었습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식사 전이나 식사 후에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하고 누구한테 기도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식사를 위해 농사를 짓느라고 수고하신 분들한테 하는 경우도 있겠고, 또 어쩌면 그들이 믿고 있는 우상들한테 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그들이 기도하고 있는 대상은 우리가 믿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나 예수님한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보다 훨씬 감사를 잘 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에서 17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에서 18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때나 하나님을 위해서 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권고사항이 아닙니다. 웬만하면 기뻐하고, 웬만하면 기도하고, 또 웬만하면 감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그러니까 이는 명령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여기서 말씀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누가복음 18장 10절에서 14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당시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좋은 사람의 대명사 같은, 그리고 반대로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 같은 존재였습니다. 물론 바리새인도 세리도 모두 유대인이죠. 이 두 사람이 우연히 함께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바리새인은 뭐라고 기도했어요? 감사를 안 했어요? 아니요. 했습니다. 나는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않고, 저기, 저~기 서 있는 저 세리 같지도 않아서 죄를 짓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 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도 꼬박꼬박 드립니다…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세리는 뭐라고 했어요? 차마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회개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믿음이 좋다고 하는 바리새인보다도 세리가 더 의롭다고 하나님으로부터 여기심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그냥 하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유대인 남자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세 가지 감사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첫째는, 저를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것, 둘째는,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것, 그리고 셋째는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이겠죠.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실까요, 안 받으실까요. 안 받으세요?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여기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본체가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요한일서 4장 8절에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이어서,
요한일서 4장 19절에서 21절에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사랑이신데, 사랑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아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알면 또한 우리의 형제 자매를 사랑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해요?

요한복음 15장 12절에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를 사랑하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권고요? 아니요, 명령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계속해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서 3절에는,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믿음 좋고 능력 많은 사람이 아무리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줄줄이 읊고, 감사와 찬송과 훌륭한 설교를 한다 하더라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리새인의 감사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왜 안 받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그 세리에 대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고 형편없는 세리가 사랑 받을 가치가 있어요? 성경은 뭐라고 하십니까.

마태복음 5장 46절에서 47절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46.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바로 앞에 나와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44절
“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또한 권고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신 줄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4절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늘 함께 나눈 말씀 중에서 외울 것이 너무 많다,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느냐 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구절 하나만이라도 확실하게 외워가시기 바랍니다. 다 함께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기도를 받으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는 감사는, 그것은 다만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처럼 그저 시끄럽고 거슬리는 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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