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준비하시는 하나님
2016년 2월 14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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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22장 13절~14절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이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그렇죠.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불러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인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나라를 만드시고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의 조상이자 또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훌륭한 인물이었냐 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많이 있는 위인전은 그 사람의 뛰어난 부분, 자랑할 만한 부분만을 골라서 실려있다고 한다면,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위인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고통을 당하지만 그 속에서 회개하고 힘을 얻고 구원 받는 역사가 기록된 책이 바로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의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보다도 사람의 힘으로, 자기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려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의 장면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렇게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자, 그 다음에 아브라함이 했던 행동이 바로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창세기 12장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여기서 문제를 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행동이 옳았나요?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했나요? 아니라면 어디가 잘못되었나요?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어요. 고향과 친척 아비 집인 하란 땅을 떠났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제 조카 롯을 데려가라고 했나요? 하나님은 순수하게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한 민족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시키지도 않은 롯을 데려갔을까요.
그 이유는 어쩌면 매우 인간적인 이유에서였는지도 모릅니다. 함께 데려갔던 종들이 있었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남자 하나가 더 있었으면 좋겠지 하는 생각에 같이 가자고 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또한 어쩌면 본래부터 롯이 큰아버지인 아브라함을 잘 따랐기 때문에, 큰아버지가 집을 나가서 독립한다고 하니 자기도 가겠다고 졸랐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길이 어떤 길입니까. 그냥 어디 놀러 가는 길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순종을 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유명한 요리사가 저한테 요리 지도를 해줍니다. 지난 번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저는 요리 초보자입니다. 자, 그런데 그 요리사가 저한테, “거기에는 설탕 몇 그램과 소금 몇 그램을 넣으세요” 라고 해요. 그런데 거기에, 제 생각에는 왠지 고춧가루를 좀 몇 숟갈 넣으면 맛이 있을 것 같아요. 넣어야 해요? 말아야 해요. 물론 맛이 있을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저는 요리 초보자입니다. 넣으라는 말이 없으면 넣지 말아야 하고, 정 넣고 싶으면 적어도 그 요리사한테 물어보고 넣든지 말든지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롯을 데려갈지 말지를 물어보았다는 구절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요? 하나님께서 입을 다물어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아직 아브라함한테 구체적으로 어디로 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저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만 하셨는데, 아브라함이 불순종을 하니까 더 이상 말씀을 안 하게 되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여전히 하나님이 말씀이 없으니까 그 땅을 지나서 세겜 땅까지 갔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딱 한 마디 하십니다. 창세기 12장 7절 초반에서 중반부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줄게. 이 한 마디만 하시고 또다시 침묵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안 하십니다. 그리고 9절에 보면 또 희한한 부분이 나옵니다.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아니, 그 땅을 자손에게 주겠다고 했으면 거기 있을 것이지, 미심쩍어서 슬그머니 옮겨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안 해도 문제가 생기지만, 하나님이 시키지 않은 일을 해도 문제가 생깁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키는 일을 안 하는 것이나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나 둘 다 불순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이제 서서히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12장 10절에 보면,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땅을 떠나 여기저기 방황하고 있었더니 어느덧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기근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도서 7장 14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이 ‘되돌아보아라’라는 부분이 개역한글에는 ‘생각하라’, 일본어 신개역판에는 ‘반성하라’는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그렇죠. 기도를 해야죠. 하나님, 하나님이 가라는 곳으로 왔는데 기근이 들었습니다. 가뭄이 들었어요. 내가 뭔가 잘 못했나요? 이제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려주세요. 이처럼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다고 하죠? 기도했다고 했나요? 아니요, 애굽에 거류하려고 내려갔대요. 하나님이 거기로 가라고 하셨나요?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 ‘애굽’이라는 것은 세상을 상징합니다. 이후에도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에 무슨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아니면 애굽을 의지하느냐 하는 식으로 두 가지가 비교되어서 나옵니다. 여기서도 아브라함은, 자기 생각에, 아브라함의 생각에 거기 가면 좋을 것 같아서, 거기 가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간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나요? 자기 부인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지는 수치를 당하고 맙니다. 자기 판단을 의지하는 것은 비단 아브라함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분은 앞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을 불렀지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를 부르지는 않지 않았느냐, 라고 하실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창세기 2장 24절에 의하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라고 되어 있어, 부부는 한 몸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 부인인 사라가 따라가는 것은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렇죠.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믿고 기다리는 것이 곧 순종입니다. 그런데 사라는 어떻게 했습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를 주지 않으니까 자기의 여종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주어서 아이를 갖게 합니다. 이게 누구 생각인가요. 하나님 생각이요? 아니요 사라 자기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라의 여종인 하갈의 정체가 누구인지 성경은 매우 자세하게 놀라운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6장 1절에는 하갈의 정체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하갈이 어디 사람이요? 그렇습니다. 바로 애굽 사람입니다. 즉, 여기서도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 자신들의 판단으로 애굽 즉 세상을 의지한 것입니다. 결국 하갈은 아브라함의 아이를 잉태하게 되는데

창세기 16장 4절에 보면,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그리고 이후에 사라가 드디어 이삭을 출생하게 되는데,

창세기 21장 9절에 의하면,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이처럼 세상적인 생각에 의한 결과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결과는 서로 물과 기름입니다. 왜냐하면 순종과 불순종이 한 번에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이슬람교의 조상이 이스마엘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와의 마찰과 갈등, 그리고 지금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른바 IS사태를 생각해본다면 그 당시 경솔했던 아브라함과 사라의 판단이 후세에 얼마나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다시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롯에 대해서 본다면, 롯을 데리고 있을 때에는 아까 살펴본 바와 갈이 창세기 12장 7절 초반에서부터 중반부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라고 되어 있었는데, 이제 아브라함 집안과 롯 집안 사이에 갈등이 생깁니다. 그래서 결국 결별을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게 되면서, 그제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던 축복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3장 14절에서 17절에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롯과 결별하기 전, 그러니까 순종하기 전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는 첫 부분부터 다릅니다. 결별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어요?
그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만 하셨어요.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는 주겠지만, 내 말에 순종하지 않은 아브라함 너한테는 안줘” 이렇게 도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제 비로소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창세기 13장 15절에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이제 네 자손에게 만이 아니라 너한테도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롯에 대해서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결별한 후 선택한 지역이 소돔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소돔입니다. 그런데 롯이 전쟁에 휘말려서 납치를 당합니다. 이 때문에 아브라함은 300여명을 이끌고 가서 롯을 구출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19장에 보면,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자 롯의 가족들이 탈출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롯과 그 가족 중에 롯의 두 딸과 약혼한 두 남자는 롯의 말을 곧이 듣지 않고 소돔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롯의 아내는 탈출하면서 뒤돌아봄으로 인하여 소금기둥이 되고 맙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롯과 두 딸 뿐입니다. 당시에는 약혼을 했다는 것은 함께 살지 않을 뿐이지, 법적으로는 결혼을 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딸은 자기들의 남편 될 사람들이 죽었으니 이제 자손을 남길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서, 이 또한 사람의 생각으로 자신의 아버지 롯를 술 취하게 해서 아이를 갖고 출산하게 되는데 그 아이가 큰 딸이 낳은 아이는 모압이고 작은 딸이 낳은 아이는 암몬입니다. 성경을 어느 정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이스라엘 민족을 얼마나 괴롭히게 되는지 모릅니다. 이것도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 세상적인 생각을 의지했던 아브라함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머리로 살아가고자 했던 아브라함,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창세기 22장 1절에서 2절에 보니,
“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신 적은 이 때가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번제로 드리기를 원하셨나요? 아니요, 이것은 그야말로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상황을 만드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제 아브라함의 머리로는, 자기의 생각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드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이제 두 가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아니면 불순종 하느냐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무엇을 선택합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순종입니다.

22장 7절에서 12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와 같이 해서 하나님 앞에 아브라함은 백기항복을 합니다. 그 때까지의 아브라함이었다면 아마도 이삭과 함께 번제할 양도 같이 짊어지고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아브라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왜요? 8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해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요?

1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그리고 그 다음 구절에 아브라함의 고백이 나옵니다.

14절에,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 이레, 이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사람의 도움을 받기 원하시겠어요? 아니요. 하나님이 바쁘셔서 미처 하실 일을 혼자서는 다 못하시기 때문에 사람이 도와주기를 바라시겠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에게 주실 축복을 이미 준비해놓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다 마련해놓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이 만약에, 아니요 하나님, 괜찮습니다. 내 생각대로 할게요. 내버려두세요, 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시편 103편 3절에서 5절에는,
“3.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이미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생각을 믿고 의지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이 어떤 행위를 잘 해서 의로 여기셨다고 하셨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생각과 판단으로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은 본인들만이 아니라 우리 자손들에게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을 받게 되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모든 일에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판단을 믿고 의지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주신 모든 축복을 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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