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불을 견디는 믿음
2016년 3월 13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0절~15절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불을 견디는 믿음’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스포츠 선수들을 보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체력훈련을 열심히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런닝도 하고 근력단련도 하고 다양한 운동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냥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예전에 제가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 다른 학교에 다니는 선배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 분은 상당한 실력을 가진 볼링선수였습니다. 그래서 졸업 후에도 실업팀에서 활약을 하고, 얼마 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지금은 중동 쪽 볼링팀 감독을 맡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형님이랑 1년 반 정도쯤을 함께 살았는데, 이 형님의 운동방식이 독특했습니다. 이 분이 아령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데, 사람들이 운동을 하면 묵직한 아령을 두 손에 들고 이렇게 팔운동을 하지 않나요? 그런데 이 형님이 하는 운동은 좀 달랐습니다. 비교적 작은 아령을 들고 이렇게 손목 운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그 때도 볼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니, 남자가 아령을 가지고 운동을 하면 좀 이렇게 힘차게 해야지, 세상에 요게 뭐냐고 그러면서 비웃었습니다. 참, 무식하면 사람이 이래요. 그런데 이 형님은 그런 저한테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볼링을 할 때 어깨 근육이 많으면 오히려 공을 던질 때에 방해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팔을 뒤로 제쳤을 때 근육이 있으면 똑바로 공을 굴리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팔근육보다는 손목근육이 중요하기 때문에 바로 이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 설명을 듣고보니 정말 그럴듯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는 또 흥미로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사람들을 보면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고 이른바 드래프트 회의를 거쳐서 각 팀으로부터 지명을 받고 프로 팀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프로가 되어서 훈련을 시작하면 근육통을 앓는 선수들이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근육통? 이상하지 않나요? 근육통이라고 하면 보통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운동을 하면 여기저기가 아프고 그러는 것을 말하는데, 아니, 그 선수들은 이미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상당히 운동을 열심히 해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프로에 들어왔다고 근육통을 앓아요? 이건 좀 신기했습니다만, 말을 들어보니까 근육통을 앓는 이유가, 똑같은 야구라고 하더라도 학생 때 쓰는 근육과 프로에서 쓰는 근육은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학생 때 훈련을 열심히 하고 야구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선수라고 하더라도 프로에 오면 프로에서 쓰는 근육을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쓰지 않았던 근육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근육통을 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보니까 이도 역시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스포츠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이른바 피겨 스케이트 선수나, 리듬체조 선수의 연기를 보면, 우리가 보기에는 그저 우아하고 화려하게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작정 보기에 예쁘고 멋진 동작만 하면 우승을 할 수가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그 선수들은 일반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계산된 동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무작정 점프를 많이 하고 스핀을 많이 돌면 되나요? 아니면 리듬체조에서 무조건 공을 높이 던지고 받기만 하면 되나요? 김연아 선수가 어느 토크쇼에 나왔을 때의 이야기인데, 그 진행자가 김연아 선수한테, 그 뱅글뱅글 돌 때 그걸 다 세나요?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김연아 선수가 뭐라고 했을까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당연하죠!”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정말 그냥 빙글빙글 돌아서 잘 세지도 못할 것 같은데 선수들은 그것을 다 세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어요? 그걸 세고 있는 또다른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세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바로, 심사위원들이 세고 있습니다. 스케이트에서 점프 회수가 적어도 감점이지만, 회전 회수가 적어도 또한 감점이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눈에 불을 켜고 회전 수를 세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의 삶으로 눈을 돌려보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나 자신,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지요? 예, 믿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요? 예, 사랑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지요? 예, 의지합니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도 드립니다. 자, 이제 그럼 되지 않았어? 이 정도면 됐지, 뭘 더해? 이렇게 믿음이 마치 완성된 것처럼 자기 스스로에 만족해본 적이 있지 않나요?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3:10~15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コリント人への第一の手紙 3章12節~15節
「与(あた)えられた神(かみ)の恵(めぐ)みによって、私(わたし)は賢(かしこ)い建築家(けんちくか)のように、土台(どだい)を据(す)えました。そして、ほかの人(ひと)がその上(うえ)に家(いえ)を建(た)てています。しかし、どのように建(た)てるかについてはそれぞれが注意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というのは、だれも、すでに据えられている 土台のほかに、ほかの物を据(す)えることはできないからです。その土台とはイエス・キリストです。もし、だれかがこの土台 の上に、金、銀、宝石、木、草、わらなどで建てるなら、各人の働きは明瞭になります。その日がそれを明らかにするのです。というのは、その日は火とともに現われ、この火がその 力 で各人の働きの真価をためすからです。もしだれかの建てた建物が残れば、その人は報いを受けます。もしだれかの建てた建物が焼ければ、その人は損害を受けますが、 自分自身は、火の中をくぐるようにして助かります。」

우리의 삶은 하루하루가 터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믿음 생활은 오늘 말씀에 의하면 하루하루가 예수라고 하는 터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런데 그 집이 얼마나 뛰어나고 훌륭한 집인지를 평가하는 방법이 조금 독특합니다. 그것은 바로 불에 태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이 타고 난 다음에 남아있는 것 바로 그것에 따라 이 그 사람이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왜 불에 태우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겉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겉보기에는 훌륭해 보이고 믿음생활을 열심히 하루하루를 산다고 했지만, 막상 우리가 예수님 앞에 가서, 자, 이제 너의 믿음생활, 내 위에 세운 집 위에 불을 붙여서 무엇이 남는지 무엇이 불에 타버리는지 한 번 보자. 그리고 그 중에서 남아 있는 것만큼 너에게 상을 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내가 평생 동안 쌓아온 집에 불을 붙입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당당할 수 있을까요?
성경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다니엘서 3장에 보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자신의 모습을 본딴 금으로 만든 우상을 세우고는 그 우상을 향해서 절하지 않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집어넣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유다에서 끌려온 포로 중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절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비록 포로들이긴 하지만 왕이 특별히 명해서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한, 말하자면 왕의 총애를 받는 엘리트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갈대아인 즉 바벨론 사람 중 누군가가 왕이 세운 금신상을 향해서 이 세 사람이 절을 하지 않는다고 고자질을 합니다. 이에 화가 난 느부갓네살 왕이 당장 이 셋을 끌어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하는 말이 다니엘 3장 14절에서 15절입니다.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ネブカデネザルは彼らに言った。「シャデラク、メシャク、アベデ・ネゴ。あなたがたは私の神々に仕えず、また私が立 てた金の像を拝みもしないというが、ほんとうか。
もしあなたがたが、角笛(つのぶえ)、二管(にかん)の笛(ふえ)、立琴(たてごと)、三角(さんかく)琴(ごと)、ハープ、風笛(かざぶえ)、および、もろもろの楽器の音を聞くときに、ひれ伏して、私が造った像を拝むなら、それでよし。しかし、もし拝まないなら、あなたがたはただちに火の燃える 炉(ろ)の中に投げ込まれる。どの神が、私の手からあなたがたを救い出せよう。」

벌써 이 말을 들으면, 비록 그런 신고가 접수되긴 했으나 지금이라도 절하면 용서해주겠다고 하는, 정말 이 느부갓네살이 얼마나 그들을 아꼈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제라도 절을 해라. 딱 한 번만 절을 해라. 이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을 이용하는 것이 마귀의 수법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광야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했을 때 바로가 뭐라고 하죠?

출애굽기 8장 28절에 보면,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 パロは言った。「私は、おまえたちを行かせよう。おまえたちは荒野でおまえたちの神、主にいけにえをささげるがよい。ただ、決して遠くへ行ってはならない。私のために祈ってくれ。」

그래, 너희를 보낼게 하지만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이게 무슨 뜻이에요? 예수를 믿어? 하나님을 믿어? 그래. 믿는 것까지는 좋아. 하지만 적당히 믿어. 너무 빠지지는 마. 이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한테도 마귀가 어떤 식으로 유혹하던가요?

마태복음 4장 9절에는,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言った。「もしひれ伏して私を拝むなら、これを全部あなたに差し上げましょう。」

더도 원하지 않아. 딱 한 번만 절을 해. 그러면 될 거 아냐. 편안하게 살아. 이것이 마귀의 유혹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한테도 역시 똑같았습니다. 딱 한 번만 절해. 그러면 살려줄게. 그랬더니 이 셋은 뭐라고 합니까.

다니엘 3장 16절에서 18절을 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シャデラク、メシャク、アベデ・ネゴはネブカデネザル王に言った。「私たちはこのことについて、あなたにお答えする必要はありません。
もし、そうなれば、私たちの仕える神は、火の燃える炉から私たちを救い出すことができます。王よ。神は私たちをあなたの手から救い出します。
しかし、もしそうでなくても、王よ、ご承知ください。私たちはあなたの神々に仕えず、あなたが立てた金の像を拝むこともしません。」

이미 대화는 끝났다. 타협 같은 것은 기대하지 말아라.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건져내시겠고,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아니할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을 것이고 왕이 세운 금 신상에도 절하지 않을 테니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단둘이 있을 때 이 말을 했나요? 아니요. 모든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감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의 면전에 대고 담대하게 말을 한 것입니다. 왕의 자존심이 보통 상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화가 단단히 난 느부갓네살 왕이 “풀무불의 열기를 평소보다 일곱배나 뜨겁게 하라.” 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사실 일곱 배 뜨겁든 평소처럼 뜨겁든 어차피 풀무불 구덩이 속에 떨어지면 살아남을 길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글로 보면 느부갓네살 왕의 화가 얼마나 났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22절에 보면 그 불이 얼마나 뜨거운지 이 세 사람들을 결박해서 끌고 갔던 병사가, 그 끌고 가는 길에 불이 옮겨 붙어서 타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 불구덩이 속으로 이 세 사람은 던져지는데,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나요?

다니엘 3장 24절에서 25절에 보면,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そのとき、ネブカデネザル王は驚き、急いで立 ち上がり、その顧問たちに尋ねて言った。「私たちは三人の者を縛って火の中に投げ込んだのではなかったか。」彼らは王に答えて言った。「王さま。そのとおりでございます。」
すると王は言った。「だが、私には、火の中をなわを解かれて歩いている四人の者が見える。しかも彼らは何の害も受けていない。第四の者の姿は神々の子のようだ。」


왕이 궁금해서 그 속을 들여다보니 이상합니다. 분명히 세 사람을 결박해서, 그것도 일곱 배나 뜨겁게 해서 던져 넣었으니까, 이제 머지않아 비명소리, 뜨거워서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절규 소리가 들려오고, 살이 타 들어가는 끔직한 냄새가 나야 하는데, 아무런 소리도 냄새도 안 납니다. 이상해서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결박하지 않은 세 사람과 또 누가 다니는데, 그 네 번째 사람은 마치 신들의 아들 같다고 합니다. 이 느부갓네살 왕이 본 신들의 아들처럼 보이는 이가 누구이겠습니까. 그렇죠.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고통 가운데에 허덕일 때에, 우리가 가장 힘들어하고 불구덩이 속에 들어 있는 것만 같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捨てて孤児にはしません。わたしは、あなたがたのところに戻って来るのです。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서 이제 그 셋을 건져올립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은 어땠다고 하죠?

다니엘 3장 26절에서 27절에 기록하기를,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それから、ネブカデネザルは火の燃える炉の口に近づいて言った。「シャデラク、メシャク、アベデ・ネゴ。いと高き神のしもべたち。すぐ出て来 なさい。」そこで、シャデラク、メシャク、アベデ・ネゴは火の中から出て来た。
太守、長官、総督、王の顧問たちが集まり、この人たちを見たが、火は彼らのからだにはききめがなく、その頭の毛も焦げず、上着 も以前と変わらず、火のにおいもしなかった。

그 어마어마한 불구덩이 속에서 나온 그들의 모습이 어땠대요?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것을 읽고 불에 타지 않은 것이 그냥 아…신기하다…라고만 생각하면 그것은 성경을 반쪽밖에 읽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 12절에서 15절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もし、だれかがこの土台の上に、金、銀、宝石、木、草、わらなどで建てるなら、
各人の働きは明瞭になります。その日がそれを明らかにするのです。というのは、その日は火とともに現われ、この火がその力 で各人の働きの真価をためすからです。
もしだれかの建てた建物が残れば、その人は報いを受けます。
もしだれかの建てた建物が焼ければ、その人は損害を受けますが、自分自身は、火の中をくぐるようにして助かります。

우리가 구원을 받긴 받습니다. 그러나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지만, 공적이 불에 타고 없어진다면 해를 받는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어땠다고 합니까. 불에 타고 없어지기는커녕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고 겉옷 빛깔도 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공적입니다.

욥기 23장 8절에서 10절을 보면,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ああ、私が前へ進んでも、神はおられず、うしろに行っても、神を認めることができない。
左に向かって行っても、私は神を見ず、右に向きを変えても、私は会うことができない。
しかし、神は、私の行く道を知っておられる。神は私を調べられる。私は金のように、出て来る。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는 들리지 않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더라도 내가 가장 어려울 때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는 길을 우리 주님이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세상과 대충 타협하고 믿음을 저버리고 믿음을 떠나서 기를 쓰고 열심히 산다고 살아봤자 힘은 힘대로 들고 점수는 못 따는 3류 피겨선수나 리듬체조 선수 꼴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서 불이 붙으면 화악 타버리고 사라져버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렇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 생활을 통해서 영적으로 강해져야만 합니다. 성령 충만해야만 합니다. 물속에 들어가서 아무리 있는 힘을 다해 허우적거려봤자 수영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초등학생을 당해낼 수가 있겠습니까? 실력이 아무리 좋은 피겨선수나 리듬체조 선수라고 해도 무조건 화려하고 힘든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고 있는 심사위원으로부터 점수를 딸 수 있는 연기를 해야 우승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하나님으로부터 점수를 딸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점수를 딸 수 있어요? 그럼 누구는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럼 헌금 많이 내면 점수를 따나? 아니, 축복 받는 길이 꼭 헌금 많이 내는 길밖에 없나요? 지금까지 기도 생활을 별로 안 했어요? 그렇다면 해 보세요. 하루에 한 마디라도 좋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세계적인 목회자인 빌리 그레함 목사님의 집회에 갔을 때에 그 분이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이 한 마디도 훌륭한 기도입니다. 만약에 아니라고 한다면 빌리 그래함이 그랬다고 하십쇼.” 이렇게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 기도 한 마디가 오늘을 바꾸고 내일을 바꾸고 마침내는 내 인생을 바꾸게 됩니다. 봉사를 안 했어요? 그렇다면 봉사를 해보세요. 성경을 안 읽으셨나요? 이제 성경을 하루에 한 장이라도 읽어보세요. 찬양을 많이 안 해봤어요? 집에서 혼자 있을 때 하루에 한 곡이라도 찬송가를 불러보세요. 내가 수입이 있는데 아직 십 분의 일을 바쳐본 일이 없나요? 그렇다면 다음부터 한 번 바쳐보세요. 이렇게 하나님께 점수를 따는 생활을 했는데도 아무 것도 안 바뀌어요?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을 왜 믿겠습니까.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절대 자기만족이 아닙니다.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야호~라고 소리 지르면 속이 후련해질 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단순히 느낌이에요. 하지만 믿음은 느낌도 아니고 스트레스 해소도 아니고, 자기만족이 아닌, 반드시 응답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마침내 불을 견디는 굳건한 믿음으로 자라서, 모든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단련을 통과해서 순금 같이 되어 나오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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