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예수님의 고난
2016년 3월 20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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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5절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예수님의 고난’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는 부분부터 살펴보려고 합니다. 교회사를 공부하다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진 피조물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고, 또는 우리처럼 사람이지만 그 능력과 품성이 뛰어나서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아들로 지정되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고, 그 외에도 자신의 말로 지어내거나 아니면 성경에 있는 말들을 이것저것 자신의 생각에 맞도록 끼워맞추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3절에 의하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初めに、ことばがあった。ことばは神とともにあった。ことばは神であった。この方(かた)は、初めに神とともにおられた。すべてのものは、この方(かた)によって造られた。造られたもので、この方(かた)によらずにできたものは一つもない。

여기서의 ‘그’라고 하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창세기 1장 1절에 의하면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지만, 이 요한복음 1장 2절과 3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이 창조 역사를 시작하실 때에 예수님 없이 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기록하십니다.
이 사실을 알고 성경을 보면 우리가 놓쳤던 부분들이 큰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의 장면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そして神は、「われわれに似るように、われわれのかたちに、人を造ろう。そして彼らに、海の魚、空の鳥、家畜、地のすべてのもの、地をはうすべてのものを支配させよう。」と仰せられた。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면서 바벨탑을 세우셨을 때를 성경은 창세기 11장 6절~8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主は仰せになった。「彼らがみな、一つの民、一つのことばで、このようなことをし始めたのなら、今や彼らがしようと思うことで、とどめられることはない。
さあ、降りて行って、そこでの彼らのことばを混乱させ、彼らが互いにことばが通じないようにしよう。」
こうして主は人々を、そこから地の全面に散らされたので、彼らはその町を建てるのをやめた。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일을 하실 때에 이처럼 ‘나’가 아닌 ‘우리’로 일을 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예수님과 함께 계셨고,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 6절~8절에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ピリピ人への手紙 2장 6절~8절
キリストは、神の御姿であられる方なのに、神のあり方を捨てることができないとは考えないで、
ご自分を無にして、仕える者の姿をとり、人間と同じようになられたのです。
キリストは人としての性質をもって現われ、自分(じぶん)を卑(いや)しくし、死にまで従い、実に十字架の死にまでも従われたのです。


예수님은 곧 하나님의 본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어서 성경을 조금 더 살펴봅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5절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キリストは、今の悪の世界から私たちを救い出そうとして、私たちの罪のためにご自身をお捨てになりました。私たちの神であり父である方のみこころによったのです。
どうか、この神に栄光がとこしえにありますように。アーメン。

요한일서 2장 1절에서 2절에는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私の子どもたち。私がこれらのことを書き送るのは、あなたがたが罪を犯さないようになるためです。もしだれかが罪を犯したなら、私たちには、御父の御前で弁護してくださる方があります。それは、義なるイエス・キリストです。
この方こそ、私たちの罪のための、―私たちの罪だけでなく全世界のための、―なだめの供え物なのです。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어 주시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자기 몸을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예수님이 피조물이었다고 한다면, 우리들도 누군가를 위해서 죄를 대속할 수 있다고, 내가 고난을 받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죄를 씻어줄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야 할텐데, 우리 피조물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다른 사람의 죄는커녕 나 스스로의 죄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었다고 한다면 역시 다른 사람을 위해 죄를 대신 갚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만 위할 뿐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고 기록합니다.

私たちの罪だけでなく全世界のための、―なだめの供え物なのです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우리의 죄를 위해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서 사람의 형체로 내려오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예수님은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라면 우리 같은 인간과는 분명히 다를 거야. 우리한테는 힘든 일이라도 하나님은 쉽게 하실 수가 있어. 사람이 채찍에 맞으면 아프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니까 괜찮았을 거야.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 아프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니까 안 아팠을 거야.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일이 있으신가요?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한테 힘든 일 정도가 아니라 우리같은 사람 수 천만 명이 모여도 할 수 없는 일은 예수님은 능히 하실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뭐라고 하시나요?

빌립보서 2장 7절에서,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ピリピ人への手紙
ご自分を無にして、仕える者の姿をとり、人間と同じようになられたのです。

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셨고, 우리와 똑같은 슬픔과 고단함과 아픔을 느끼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8절에는,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翌朝(よくあさ)、イエスは都に帰る途中、空腹を覚えられた。


요한복음 4장 6절에 보면,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そこにはヤコブの井戸があった。イエスは旅の疲れで、井戸のかたわらに腰をおろしておられた。時は六時ごろであった。

하나님이 배고픔을 느끼시나요? 아니면 하나님이 피곤함을 느끼시나요? 그건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죠. 하지만 성경에서는 곳곳에서 예수님도 우리 인간들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채찍에 맞으실 때의 고통은요?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까지 가시고, 거기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의 고통은 어떠셨겠습니까. 예수님의 온몸은 피로 물들었고 그 아픔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고통이 그렇다면 과연 그뿐이었을까요? 예수님은 채찍과 십자가에 의한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닌 또다른 고통도 느끼셨습니다.

마가복음 15장 17절~19절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そしてイエスに紫の衣を着せ、いばらの冠を編んでかぶらせ、
それから、「ユダヤ人の王さま。ばんざい。」と叫んであいさつをし始めた。
また、葦の棒でイエスの頭をたたいたり、つばきをかけたり、ひざまずいて拝んだりしていた。

누가복음 22장 63절~65절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さて、イエスの監視人どもは、イエスをからかい、むちでたたいた。そして目隠しをして、「言い当ててみろ。今たたいたのはだれか。」と聞いたりした。また、そのほかさまざまな 悪口(あっこう)をイエスに浴びせた。


예수님에 대한 모욕은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이어집니다.

누가복음 23장 35절~37절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民衆はそばに立 ってながめていた。指導者たちもあざ笑って言った。「あれは他人を救った。もし、神のキリストで、選ばれた者なら、自分を救ってみろ。」兵士たちもイエスをあざけり、そばに寄って 来て、酸(す)いぶどう酒を差し出し、「ユダヤ人の王なら、自分を救え。」と言った。

이와 같은 치욕적이고도 모욕적인 일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묵묵히 견디십니다.

이 모습을 이사야 53장 7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彼は痛めつけられた。彼は苦しんだが、口を開かない。ほふり場に引かれて行く小羊のように、毛を刈る者の前で黙っている雌羊(めすひつじ)のように、彼は口を開かない。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아니면 스스로의 죄가 많아서 이렇게 그 입을 다물고 견디셨을까요?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가 저항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6장 53절~54절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それとも、わたしが父にお願いして、十二軍団よりも多くの御使いを、今わたしの配下 に置いていただくことができないとでも思うのですか。だが、そのようなことをすれば、こう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書いてある聖書が、どうして実現されましょう。」

제사장들이 보낸 군인들한테 잡힌 후에도,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신 후에도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고통과 고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권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완수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감수하시고 인내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자신에게 일어날 이와 같은 고난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아직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예루살렘에서 일어나실 일을 모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17절~19절에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さて、イエスは、エルサレムに上ろうとしておられたが、十二弟子だけを呼んで、道々彼らに話された。
「さあ、これから、わたしたちはエルサレムに向かって行きます。人の子は、祭司長、律法学者たちに引き渡されるのです。彼らは人の子を死刑に定めます。
そして、あざけり、むち打ち、十字架につけるため、異邦人に引き渡します。しかし、人の子は三日目によみがえります。」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마가복음 14장 27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あなたがたはみな、つまずきます。『わたしが羊飼いを打つ。すると、羊は散り散りになる。』と書いてありますから。

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이방인에게 잡히게 되면 육체적인 고난 만이 아니라, 3년 이상이나 가장 가까이에서 지내왔던 제자들로부터도 버림을 받는, 이와 갈은 인간적인 배신도 당하셔야 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마태복음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三時ごろ、イエスは大声で、「エリ、エリ、レマ、サバクタニ。」と叫 ばれた。これは、「わが神、わが神。どうしてわたしをお見捨てになったのですか。」という意味である。

예수님은 그 때까지 자신을 따랐던 백성들, 그리고 제자들한테서 뿐만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으로부터까지 버림을 받았습니다. 아주 철저하게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8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キリストも、多くの人の罪を負うために一度、ご自身をささげられましたが、二度目は、罪を負うためではなく、彼を待ち望んでいる人々の救いのために来 られるのです。

우리가 죄 안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우리가 죄인인 상태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모두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즉,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우리를 대신해서 철저하게 죄인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철저하게 죄인이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저주를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고, 우리가 받을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고, 우리가 받을 사망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될 수 있어요?


베드로전서 2장 24절~25절에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아멘.

そして自分から十字架の上で、私たちの罪をその身に負われました。それは、私たちが罪を離れ、義のために生きるためです。キリストの打ち傷のゆえに、あなたがたは、いやされたのです。あなたがたは、羊のようにさまよっていましたが、今は、自分のたましいの牧者であり監督者である方のもとに帰ったのです。

우리고 오늘 본문 이사야 53장 5절 말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しかし、彼は、私たちのそむきの罪のために刺し通され、私たちの咎のために砕かれた。彼への懲らしめが私たちに平安をもたらし、彼の打ち傷によって、私たちはいやされた。

이제 우리는 우리를 억누르고 있었던 죄로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어떻게 함으로 자유를 얻었나요?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しかし、この方を受け入れた人々、すなわち、その名を信じた人々には、神の子どもとされる特権をお与えになった。

우리는 이제 그 이름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죄값을 모두 철저하게 치러주신 예수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이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고,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았기 때문에 우리는 나음을 받을 수가 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죄값을 2천년 전에 모두 해결해주셨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2천년 전에 모두 해결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질병을 2천년 전에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고통과 고난과 질병 가운데에 있습니까? 이는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이미 해결된 것인데 왜 우리가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이미 빚을 탕감했는데도 왜 우리가 빚쟁이가 들이닥칠까봐 떨고 있습니까.

로마서 10장 10절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라고 기록합니다.

人は心に信じて義と認められ、口で告白して救われるのです。

마음으로 믿는 것만이 아니라 입으로 시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고민이 있습니까? 문제가 있습니까? 질병이 있으십니까?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다”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어렵게 어렵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문제를 십자가 위에서 해결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은 단순히 옛날에 있었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2천년 전에 있었던 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지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 고난주간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순간순간마다 십자가의 은혜와 십자가의 능력으로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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