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삯과 은혜
2016년 6월 19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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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1절~16절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삯과 은혜’ 報酬と恵み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회사원들이 기다리는 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월급날입니다. 옛날 같았으면 월급봉투를 받거나, 요즘 같으면 글쎄요, 월급이 입금된 통장을 보면 마음이 좀 뿌듯할 것입니다. 일반 직장인들은 이렇게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에 월급을 받습니다만, 일용직 근로자들은 일당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하루하루 일하면 그 날에 일한 만큼을 받습니다. 2016년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6030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8시간을 일하면 적어도 48,000원 정도를 받습니다. 일본은 지역에 따라서 최저시급 차이가 있는데 동경은 907엔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8시간 일을 하면 7256엔, 군마현은 물가도 싸기 때문에 최저시급도 적어서 737엔입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5896엔 정도를 받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 세금도 빠지게 되니까 실수령액은 더 적어지겠죠.
이렇게 각 나라마다 그리고 각 시대마다 기준은 조금 다르지만, 특별한 전문직이나 고위직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일을 많이 하면 많이 받고, 적게 일하면 적게 받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이고 이것이야말로 평등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에 이런 경험이 있는데, 가끔 일손이 부족할 때에는 그날 아침에 차로 어디를 갑니다. 그럼 거기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요. 거기서 이제 흥정을 하는 거예요.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영어는 할 줄 아느냐, 몇 명이 필요한데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얼마로 일을 할 수 있느냐……, 이렇게 해서 시급을 정하고 합의가 되면 그 사람들을 차에 태우고 일터로 갑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그 사람들을 차례대로 세우고 일당을 주죠. 그리고 하루 일과가 끝납니다. 이 과정에서 도중에 사람이 추가로 필요하면 다시 그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너무 늦으면 또 사람들이 없어요. 하지만 운이 좋으면 시간이 조금 지나도 사람이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역시 그 사람들도 데리고 다시 일터로 갑니다. 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일한 사람과 대낮부터 일한 사람들의 임금이 똑같을 리가 있겠어요? 당연히 다르죠. 많이 일한 사람은 그 만큼 많이 주고, 적게 일한 사람은 적게 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적게 일한 사람이 왜 나한테는 조금 주냐고 말을 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염치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에 일꾼을 구하러 나갑니다. 그리고 일당을 정합니다. 너희들한테 한 데나리온 씩을 줄 테니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이라고 하는 돈은 당시 표준적인 일당이라고 해서 은화 3.88그램 정도이고 요즘 시가로 하면 70,000원~80,000원 정도였을 거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앞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대략 동경의 인건비 물가 정도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를 보고 포도원으로 들여보냅니다.
그런데 일꾼이 부족했나봅니다. 제 삼 시……그러니까 지금 시간으로 아침 9시에 나가보니까 사람들이 있어서 또 들여보니고, 제 육시와 제 구시, 지금 시간으로 오후 12시와 오후 3시, 그리고 제 십일시, 지금 시간으로 오후 5시에 나가보니까 아직도 거기 일하지 않고 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도 어서 내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퇴근시간 6시가 됐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나와서 일당을 줍니다. 그런데 오후 5시에 들어온 사람들부터 먼저 주게 되었는데,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보니까, 아니, 오후 5시에 들어와서 6시까지 일했으면 1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데 한 데나리온을 받는걸 보고는, 아하, 우리 주인님이 생각이 바뀌었구나. 저기 저 1시간만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으니, 이른 아침부터 쌔빠지게 일을 한 우리는 저것보다도 더 받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땠습니까. 이제 자기 차례가 와서 돈을 잔뜩 기대에 부풀어서 손을 내미니까 거기에 달랑 한 데나리온 밖에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보고 화를 냅니다. 누가요? 예, 일찍 온 사람들이 화를 냅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했다고 하는 말이 오늘 성경 본문에 나와 있죠?

마태복음 20장 11절~12절,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そこで、彼らはそれを受け取ると、主人に文句をつけて、言った。『この最後の連中は一時間しか働かなかったのに、あなたは私たちと同じにしました。私たちは 一日中、労苦と焼けるような暑さを辛抱したのです。』

아니, 저기 5시에 온 사람들은 1시간 밖에 일을 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하루 종일 푹푹 찌는 더위를 견디면서 일을 했는데, 저 사람들한테 우리와 똑같이 돈을 줘요? 너무한 거 아니에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니,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로 치자면 이 때는 대략 7, 8월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해가 뜨기 전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강하게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도 견디면서 일을 했는데, 오후 5시면 해도 많이 기울었잖아요. 그렇게 시원할 때 그것도 딱 1시간만 일했는데, 어떻게 우리랑 일당이 똑같을 수가 있냐고 주인한테 난리를 칩니다.
이렇게 따지고 드는 사람한테 주인은 침착하게 말을 합니다.

13절을 봅니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しかし、彼はそのひとりに答えて言った。『私はあなたに何も不当なことはしていない。あなたは私と一デナリの約束をしたではありませんか。

만약에 주인이 이 사람들한테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했으면서 나중에 한 데나리온이 아니라 반 데나리온을 주었다거나 하면 문제겠죠. 하지만 주인이 말합니다. 내가 너희들한테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한 데나리온을 받았으면 됐지, 무엇이 문제이냐는 것입니다.

이 특이한 말씀을 들으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연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누가복음 15장 4절~7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あなたがたのうちに羊を百匹持っている人がいて、そのうちの一匹をなくしたら、その人は九十九匹を野原に残して、いなくなった一匹 を見つけるまで捜し歩かないでしょうか。見つけたら、大喜びでその羊をかついで、帰って来て、友だちや近所 の人たちを呼び集め、『いなくなった羊を見つけましたから、いっしょに喜 んでください。』と言うでしょう。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が、それと同じように、ひとりの罪人が悔い改めるなら、悔い改める必要のない九十九人の正しい人にまさる 喜びが天にあるのです。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리고 아흔아홉마리가 남았다고 합니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양 아흔아홉마리가 중요합니까, 양 한마리가 중요합니까. 이것은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양 아흔아홉마리가 중요하죠. 그런데 여기서 양 주인은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잃어버린 한 마리를 포기한채 아흔아홉마리를 데리고 집에 갔대요? 아닙니다. 오히려 아흔아홉마리를 들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으러 갔다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에요? 아니면 이상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두 비유를 들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분과 은혜로 생각하는 분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분은 내가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일했다고 생각하는 분이자, 내가 아흔아홉마리 양이라고 생각하는 분일 것이고, 이 비유를 은혜로 생각하는 분은, 내가 바로 오후 5시에 일하기 시작해서 1시간만 일하고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같은 보수를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이자, 내가 바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라고 생각하는 분일 것입니다.
내가 하루 종일 일했는데 1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과 돈을 똑같이 받았다면 억울하겠죠. 내가 아흔아홉마리 양인데 나를 버려두고 그깟 한 마리 양을 찾으러 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어디 있어. 당치도 않는 소리…라고 하면서 이 또한 억울해 하겠죠. 하지만 그렇습니까? 우리 모두가 하루 종일 일했어요? 우리 모두가 아흔아홉마리 양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너희가 바로 1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이요, 너희가 바로 잃어버린 양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를 후하게 대접할 것이요, 너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아 가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줄을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해주신 일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아들을 죽여 가면서까지 구원 받기에 합당한 존재입니까? 단지 그 생명만이 아닙니다. 그 아들이 징계를 받아서 침뱉음을 당하고 주먹질을 당하면서 온갖 곤욕과 치욕과 모욕을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채찍으로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로 십자가에서 못 박히고 죽어야지만 우리의 죄가 해결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그 죄의 늪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그렇게 만들면서까지 우리가 구원을 받을만한, 우리에게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아니요.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8장 27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자신을 티끌이나 재(ちりや灰)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욥기 25장 6절에서는 더 심하게,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ましてうじである人間、虫けらの人の子はなおさらである。

야고보서 4장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あなたがたには、あすのことはわからないのです。あなたがたのいのちは、いったいどのようなものですか。あなたがたは、しばらくの間現 われて、それから消えてしまう霧にすぎません。

하나님과 비교하면 우리는 한낱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그 위대한 분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먼지와도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그렇죠. 바로 예수님, 그 귀하신 하나님의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로마서 4장 4절~5절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働く者のばあいに、その報酬は恵みでなくて、当然支払うべきものとみなされます。何の働きもない者が、不敬嶺 な者を義と認めてくださる方を信じるなら、その信仰が義とみなされるのです。

우리가 일을 하고 그 일을 한 만큼 돈을 받는다고 한다면 아무런 은혜로 여겨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데도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것이 이것이야말로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이 은혜를 다른 그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종종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3절~30절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このことから、天の御国 は、地上の王にたとえることができます。王はそのしもべたちと清算をしたいと思った。清算が始まると、まず一万タラントの借りのあるしもべが、王のところに連 れて来られた。しかし、彼は返済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ので、その主人は彼に、自分も妻子も持ち物全部 も売って返済するように命じた。それで、このしもべは、主人の前にひれ伏して、『どうかご猶予ください。そうすれば全部お払いいたします。』と言った。しもべの主人は、かわいそうに思って、彼を赦し、 借金 を免除してやった。ところが、そのしもべは、出て行くと、同じしもべ仲間で、彼から百デナリの借りのある者に出会った。彼はその人をつかまえ、首を絞めて、『 借金を返せ。』と言った。彼の仲間は、ひれ伏して、『もう少し待ってくれ。そうしたら返すから。』と言って頼んだ。しかし彼は承知せず、連れて行って、借金 を返すまで牢に投げ入れた。

아무런 가치도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죄뿐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고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이웃에게 베풀지 못합니다. 용서하지 못합니다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런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면 얼마나 슬퍼하고 화를 내시겠습니까. 여기서는 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한 데나리온이 나왔죠? 한 데나리온이 당시 하루 일당이라고 하니까 백 데나리온이라고 하면 백일 치 일당입니다. 결코 적은 액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탕감 받은 돈이 얼마요? 예, 1 달란트도 아닌 만 달란트입니다. 1 달란트를 일당으로 계산한다면 얼마나 되냐 하면요, 무려 20년치 일당입니다. 20년치 일당이 1달란트에요. 그런데 얼마를 탕감 받았어요? 예, 만 달란트입니다. 그럼, 10,000 곱하기 20년이면 얼마에요? 좀 황당한 숫자이지만, 20만년어치 일당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백일 치 일당이 적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본인은 어때요? 20만년어치 일당을 탕감받았습니다. 자기가 20만년을 일해서 그 빚을 갚을 수가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와 같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빚을 탕감 받았는데, 백일치 일당을 탕감 못해주나요? 그건 인색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도 나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하겠다고 하시나요?

마태복음 18장 32절~34절에 보면,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そこで、主人は彼を呼びつけて言った。『悪いやつだ。おまえがあんなに頼 んだからこそ借金全部を赦してやったのだ。私がおまえをあわれんでやったように、おまえも仲間をあわれんでやるべきではないか。』こうして、主人は怒って、 借金を全部返すまで、彼を獄吏に引き渡した。

그 사람을 당장 붙잡아서 만 달란트 빚을 다 갚도록 옥졸들에게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옥졸이 무엇입니까. 바로 지옥입니다. 네가 네 힘으로 20만년 동안 일해서 다 갚기 전까지는 거기서 못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죄 많고 용서 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까. 하지만 이를 위해서 한 달란트? 아니요, 만 달란트? 아니요, 돈으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을만큼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선한 일을 했다면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선한 일은커녕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온통 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그냥 한 것이라고는 막판에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갔을 뿐이에요. 오후 5시에 들어가서 나머지 1시간 동안 일이나 제대로 했겠어요? 그냥 끄적끄적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받기에는 너무나도 큰 선물, 구원과 용서와 사랑이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마태복음 5장 39절~42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悪い者に手向かっ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の右の頬を打つような者には、左の頬も向けなさい。あなたを告訴して下着 を取ろうとする者には、上着 もやりなさい。あなたに一ミリオン行けと強いるような者とは、いっしょに二ミリオン行きなさい。求める者には与え、借りようとする者は断わらないようにしなさい。

야고보서 2장 15절~17절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もし、兄弟また姉妹のだれかが、着る物がなく、また、毎日の食べ物にもこと欠いているようなときに、あなたがたのうちだれかが、その人たちに、「安心して行きなさい。暖かになり、十分に食べなさい。」と言っても、もしからだに必要な物を与えないなら、何の役に 立つでしょう。それと同じように、信仰も、もし行ないがなかったなら、それだけでは、死んだものです。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말로 다 할 수 없는 구원의 기쁨, 구원의 감격을 우리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베풀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이 한 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기쁨과 은혜에 충만해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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