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믿음의 성장
2016년 6월 26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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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3장 7절~17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믿음의 성장’ 信仰の成長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일본에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는 하나, 군마현은 정말 잘 모릅니다. 제가 이곳에 이주해온지 이제 겨우 1년 남짓 정도 되었을 정도입니다만, 그 전에 살았던 서울, 그리고 또 그 전에 살았던 동경에 비하면, 음, 좋은 말로 하면 산도 많고 공기 좋고 물맛 좋고, 밤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온천도 기가 막히고 합니다만, 반대로 보면 사람도 적고 대중교통수단도 자동차 없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제가 동경에서는 고등학교 때까지밖에 안 살았으니까 당연히 운전면허가 없었습니다. 서울에서도 운전을 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안 할 수가 없어서 결국 미국에서 면허를 따고 운전을 했습니다만, 다시 한국에 돌아간 이후에는 오랫동안 핸들을 잡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는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작년 4월 하순 쯤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정말 참 길이 어둡다는 것이었습니다. 밤에 운전을 하면 가로등도 없고, 그나마 있다 하더라도 띄엄띄엄 있어서, 운전하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아무리 시골이라도 그렇지 이렇게 어둡게 해놓아서야 어디 운전을 할 수 있겠나. 세금을 다른 데 쓰지 말고 가로등을 세우고 그러는 데에 써야지, 아니, 아무리 내가 눈이 나빠도 그렇지, 젊은 나도 이렇게 밤길이 침침한데 나이든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도대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말이야……라고 저도 모르게 불만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동차 전조등을 보니까 그 유리가 누렇더라구요. 너무 차가 오래되다보니 떼가 잔뜩 낀 것입니다. 에이, 그래도 자동차 조명이 보통 밝아요? 켜니까 앞이 환하긴 해요. 그래서 별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여기 군마는 원래 촌이라서 밤에는 아무리 전조등을 켜도 어두컴컴하고 차선도 잘 안 보이고 그러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좀 이상해요. 너무나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여기저기 알아보았더니 6400엔인가를 내면 전조등을 깨끗하게 닦아준다고 합니다. 우리 목사님께 그 말씀을 드렸더니 자동차 정비소까지 차를 가지고 가셔서 무려 2170엔을 들여서 아주 깨끗하게 닦아와 주셨습니다. 정말 보니까 전에는 안에 있는 전구가 안 보였는데 이제는 정말 새 차처럼 아주 투명하고 빤짝빤짝해요.
그렇게 전조등을 깨끗하게 닦고 나서 얼마 전 처음으로 밤길을 운전을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땠을까요? 야, 정말 제 소감을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요, 지난 1년 동안 밤길을 운전하면서 사고가 안 난 것이 정말 다행입니다. 아니, 이건 다행 정도가 아니라 기적이에요. 깨끗하게 닦고 나니까 어쩌면 그렇게 환하게 보일 수가 있어요. 이건 여기 군마현이 촌이라서 자동차 불을 켜도 어두컴컴 했던 게 아니에요. 여기 군마현 행정이나 정치하는 사람들한테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 어디에 문제가 있었던 거예요? 그렇습니다. 바로 내 차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에요. 그걸 모르고 저는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고 불평 불만을 하면서 투덜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애굽을 탈출한 그들은 기쁨도 잠시, 홍해가 그들을 이제 그들한테서는 불만이 터져나옵니다.

출애굽기 14장 12절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私たちがエジプトであなたに言ったことは、こう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か。『私たちのことはかまわないで、私たちをエジプトに仕えさせてください。』事実、エジプトに仕えるほうがこの荒野で死ぬよりも私たちには良かったのです。」

그랬더니 모세가 말합니다.

13절~14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それでモーセは民に言った。「恐れてはいけない。しっかり立 って、きょう、あなたがたのために行なわれる主の救いを見なさい。あなたがたは、きょう見るエジプト人をもはや永久に見ることはできない。主があなたがたのために戦われる。あなたがたは黙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밤새도록 홍해를 가르시고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그 마른땅을 지나게 하고는, 그 뿐만이 아니라 애굽 군대들을 모조리 멸망하게 합니다. 그 놀라운 기적을 본 이스라엘 민족들은 어땠겠습니까.


31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イスラエルは主がエジプトに行なわれたこの大いなる御力を見たので、民は主を恐れ、主とそのしもべモーセを信じた。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해서 행하신 그 놀라운 기적을 보았고, 큰 역사를 보았으니 안 믿을 수가 있겠어요?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한 그 종 모세를 믿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장 15장 1절에서는 21절까지는 그 때까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역사를 찬양하는 노래가 이어집니다. 아, 우리를 위해 이렇게 크고 놀라운 역사를 행하셨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위대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이러면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노래합니다.
그야말로 믿음이 충만했겠죠. 그 노래가 21절까지 이어지지만, 바로 24절에 무슨 구절이 있느냐 하면,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民はモーセにつぶやいて、「私たちは何を飲んだらよいのですか。」と言った。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했던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이 이스라엘 민족들은 무엇을 합니까. 마실 물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들의 원망은 이어집니다.

바로 뒤인 16장 2절~3절,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そのとき、イスラエル人の全会衆 は、この荒野でモーセとアロンにつぶやいた。イスラエル人は彼らに言った。「エジプトの地で、肉なべのそばにすわり、パンを満ち足りるまで食べていたときに、私たちは主の手にかかって死んでいたらよかったのに。事実、あなたがたは、私たちをこの荒野に 連れ出して、この全集団を飢え死にさせようとしているのです。」
17장 3절에도 봅니다.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民はその所で水に渇いた。それで民はモーセにつぶやいて言った。「いったい、なぜ私たちをエジプトから連 れ上ったのですか。私や、子どもたちや、家畜を、渇きで死なせるためですか。」

민수기 11장 4절~5절,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また彼らのうちに混じってきていた者が、激しい欲望にかられ、そのうえ、イスラエル人もまた大声で泣いて、言った。「ああ、肉が食べたい。
エジプトで、ただで魚を食べていたことを思い出す。きゅうりも、すいか、にら、たまねぎ、にんにくも。

참 불만도 가지가지입니다. 그리고 이제 광야를 통과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 합니다. 모세는 12명을 택해서 정탐꾼을 보냅니다. 정탐을 마치고 온 갈렙은 민수기 13장 30절에서,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そのとき、カレブがモーセの前で、民を静めて言った。「私たちはぜひとも、上って行って、そこを占領しよう。必ずそれができるから。」

하지만 나머지 열 명은 뭐라고 합니까. 31절~33절에 보니,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しかし、彼といっしょに上って行った者たちは言った。「私たちはあの民のところに攻め上れない。あの民は私たちより強いから。」彼らは探って来 た地について、イスラエル人に悪く言いふらして言った。「私たちが行き巡って探った地は、その住民を食い尽くす地だ。私たちがそこで見た民はみな、背の高い者たちだ。そこで、私たちはネフィリム人、ネフィリム人のアナク人を見た。私たちには自分がいなごのように見えたし、彼らにもそう見えたことだろう。」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민족은 이제 그들의 특기를 또 발휘합니다. 그들이 특기가 뭐였죠? 그렇습니다. 불평 불만을 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1절~4절,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全会衆は大声をあげて叫び、民はその夜、泣き明かした。イスラエル人はみな、モーセとアロンにつぶやき、全会衆 は彼らに言った。「私たちはエジプトの地で死んでいたらよかったのに。できれば、この荒野で死んだほうがましだ。なぜ主は、私たちをこの地に導いて来 て、剣で倒そうとされるのか。私たちの妻子は、さらわれてしまうのに。エジプトに帰ったほうが、私たちにとって良くはないか。」そして互いに言った。「さあ、私たちは、ひとりのかしらを 立ててエジプトに帰ろう。」

이처럼 또다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 지도자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 다음 6절~9절을 봅니다.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すると、その地を探って来た者のうち、ヌンの子ヨシュアとエフネの子カレブとは自分たちの着物を引き裂いて、イスラエル人の全会衆 に向かって次のように言った。「私たちが巡り歩いて探った地は、すばらしく良い地だった。もし、私たちが主の御心にかなえば、私たちをあの地に導き入れ、それを私たちに下さるだろう。あの地には、乳と蜜とが流れている。ただ、主にそむいてはならない。その地の人々を恐れてはならない。彼らは私たちのえじきとなるからだ。彼らの守りは、彼らから 取り去られている。しかし主が私たちとともにおられるのだ。彼らを恐れてはならない。」

그 가나안 땅이 어떤 땅입니까. 400년도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땅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한 땅이 아니었습니까.
이런 참담한 광경을 바라본 정탐꾼 중의 두 명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죽을 힘을 다해서 소리칩니다. 우리가 본 땅은 정말 아름답다. 하나님께서 그 좋은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아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고 외칩니다. 하지만 이미 겁에 질리고 불평불만에 사로잡힌 회중들한테는 막무가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도 여호수아와 갈렙의 외침도 그들한테는 소용없었습니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이스라엘 민족들을 하나님께서 그냥 가만히 두고 보시겠습니까.

민수기 14장 26~35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主はモーセとアロンに告げて仰せられた。「いつまでこの悪い会衆は、わたしにつぶやいているのか。わたしはイスラエル人が、わたしにつぶやいているつぶやきを、もう聞いている。あなたは彼らに言え。これは主の御告げである。わたしは生きている。わたしは必ずあなたがたに、わたしの耳に告げたそのとおりをしよう。この荒野であなたがたは死体となって倒れる。わたしにつぶやいた者で、 二十歳以上 の登録され数えられた者たちはみな倒れて死ぬ。ただエフネの子カレブと、ヌンの子ヨシュアのほかは、あなたがたを住まわせるとわたしが誓った地に、だれも決してはいることはできない。さらわれてしまうと、あなたがたが言ったあなたがたの子どもたちを、わたしは導き入れよう。彼らはあなたがたが拒んだ地を知るようになる。しかし、あなたがたは死体となってこの荒野に倒れなければならない。あなたがたの子どもたちは、この荒野で 四十年 の間羊を飼う者となり、あなたがたが死体となってこの荒野で倒れてしまうまで、あなたがたの背信の罪を負わなければならない。あなたがたが、かの地を探った日数は四十日であった。その一日を一年と数えて、 四十年 の間あなたがたは自分の咎を負わなければならない。こうしてわたしへの反抗が何かを思い知ろう。主であるわたしが言う。一つになってわたしに逆らったこの悪い会衆のすべてに対して、わたしは必ず次のことを行なう。この荒野で彼らはひとり残らず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

이스라엘 민족이 뭐라고 원망했어요? 민수기 14장 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イスラエル人はみな、モーセとアロンにつぶやき、全会衆 は彼らに言った。「私たちはエジプトの地で死んでいたらよかったのに。できれば、この荒野で死んだほうがまし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뭐? 내가 그렇게 큰 능력을 보여주고 너희들을 인도해내었는데, 뭐라고?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네 이 놈! 좋다. 내 귀에 들린 대로 해주마. 너희들은 내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기로 약속한 땅에 절대로 들어가지 못해! 광야에서 죽어!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이십니까.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을 몰랐나요? 아니요,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몰랐나요? 아니요, 알았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들이 눈이 맑았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그 땅, 아름다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보였을 것이고, 강한 믿음을 갖고 가나안 정복을 했을 것이지만, 그들은 어땠습니까. 그들의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순종의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40여년 동안 광야를 돌아야만 했고, 당시 여호수아와 갈렙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했던 20세 이상의 성인은 모두 죽은 후에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되고 만 것입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모래바람 부는 광야 땅을 떠돌다가 죽는 길만이 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광야 1세대가 모두 죽고, 이제 2세대가 가나안 땅을 향해 요단강을 건넙니다. 그 모습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여호수아 3장 13절~17절까지 다시 보겠습니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全地の主である主の箱をかつぐ祭司たちの足の裏が、ヨルダン川の水の中にとどまると、ヨルダン川の水は、上から流れ下って来る水がせきとめられ、せきをなして 立つようになる。」民がヨルダン川を渡るために、天幕を発ったとき、契約の箱をかつぐ祭司たちは民の先頭にいた。箱をかつぐ者がヨルダン川まで来 て、箱をかつぐ祭司たちの足が水ぎわに浸ったとき、―ヨルダン川は刈り入れの間中、岸いっぱいにあふれるのだが―上から流れ下る水はつっ立 って、はるかかなたのツァレタンのそばにある町アダムのところで、せきをなして立 ち、アラバの海、すなわち塩の海のほうに流れ下る水は完全にせきとめられた。民はエリコに面するところを渡った。主の契約の箱をかつぐ祭司たちがヨルダン川の真中のかわいた地にしっかりと 立つうちに、イスラエル全体は、かわいた地を通り、ついに民はすべてヨルダン川を渡り終わった。

이 본문은 지난 광야에서 40여년을 보내면서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 모습은 40여년 전에 홍해를 건널 때와는 사뭇 다릅니다. 홍해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원망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죽게 만들었다고 탄식을 합니다. 모세가 괜한 짓을 했다고 난리를 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모세를 시켜서 홍해를 먼저 가르고 난 다음에 건너도록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약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주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홍해를 건너고서 얻은 것이 있었나요? 아니요, 기다리고 있던 것은 광야생활이었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광야에서의 혹독한 생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먼저 물에 발을 담그라는 것입니다. 저는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의 요단강은 그 강폭이 매우 좁다고 합니다만 당시에는 대단히 큰 강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구나 15절에 보니까 그 시기에 강물이 넘칠 정도로 물이 많았다고 기록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을 시험합니다. 너희들의 믿음이 얼마나 컸는지 보자. 얼마나 믿음이 성장했는지 한 번 테스트해보자. 미리 물을 갈라? 아니야. 네가 먼저 발을 담궈봐라. 라고 하십니다.
광야 1세대였다면 이 시점에서 뭐라고 했겠습니까. 이 13절과 14절 사이에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원망하여 이르기를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를 죽게 하느냐”
“여호수아를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요단강에 빠져 죽게 하려는가 하더라”
뭐 이런 말이 들어가기에 딱 좋습니다. 하지만 이제 광야2세대는 어떻게 했습니까. 묵묵히 침묵을 지킵니다.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우로 가라 하면 우로 가고, 좌로 가라 하면 좌로 갑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 성장한 하나님의 충성된 일꾼, 충성된 민족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리고성을 공략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 공략하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6일 동안 하루에 한 번 여리고성을 돌고 마지막 날에는 일곱번 돌고 함성을 지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여리고성이 무너진대요. 인간적인 생각으로 볼 때는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6장 6절~9절을 봅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そこで、ヌンの子ヨシュアは祭司たちを呼び寄せ、彼らに言った。「契約の箱をかつぎなさい。七人の祭司たちが、七つの雄羊 の角笛を持って、主の箱の前を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ついで、彼は民に言った。「進んで行き、あの町のまわりを回りなさい。武装した者たちは、主の箱の前を進みなさい。」ヨシュアが民に言ったとき、七人の祭司たちが、七つの 雄羊の角笛を持って主の前を進み、角笛を吹き鳴らした。主の契約の箱は、そのうしろを進んだ。武装した者たちは、角笛 を吹き鳴らす祭司たちの先を行き、しんがりは箱のうしろを進んだ。彼らは進みながら、角笛を吹き鳴らした。

이 7절과 8절 사이에도 민수기 14장 1~3절에 기록된 불만이 들어가기에 딱 좋습니다. 모세가 보낸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보고를 듣고는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불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없이 여호수아의 지시 그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말하자면 이 7절과 8절 사이에 있었을 7.5절이 빠지기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40여 년에 걸친 가혹한 광야생활을 겪었던 것이며, 이로 인해 최단시일 내에 성공적으로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성공적으로 공략할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信仰は望んでいる事がらを保証し、目に見えないものを確信させるものです。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확고한 믿음은 눈에 보이는 여느 증거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때로는 지루하고 돌아가는 것 같고, 가끔은 기도를 해도 공허하게 느껴져 정말 주님이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도 의심이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주님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우리이며 ‘나’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놓고 허송세월 하는 모습을 즐기지 않으시며 우리를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 가장 빠른 길로 인도하려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十字架のことばは、滅びに至る人々には愚かであっても、救いを受ける私たちには、神の力です。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あなたがたのあった試練はみな人の知らない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神は真実な方ですから、あなたがたを耐えることのできないような試練に会わせるようなことはなさいません。むしろ、耐えることのできるように、試練とともに、脱出の道も備えてくださいます。

아무리 눈앞이 캄캄하고 암담하거나 막혔다 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해답을 분명히 예수님은 가지고 계시며,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 또한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 안에 불평과 불만이 가득 차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을 때가 있으십니까. 아니면 우리 주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고 계신지 의심이 들 때가 있으십니까. 어쩌면 얼마 전 재 자동차처럼 내 마음 속 눈이 흐려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내 눈을 맑게 하는 방법은 기도와 믿음과 순종과 찬양입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찬양하며 언제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낙심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발을 내디딜 때 눈앞에 펼쳐지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의 성장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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