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형통함의 차이
2016년 8월 7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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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Last Update 2019. 5. 21

잠언 24장 1절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형통함의 차이’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이 올해 지난 2016년 8월 5일, 우리나라나 일본 시간으로는 8월 6일 오전에 멀리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막되었습니다.
올림픽이 아무리 축제라고는 하지만 100프로 모든 사람이 즐거움을 만끽할 수는 없는 세계입니다. 그 이유는 우선 올림픽에 선발되지 못한 선수들도 있을 것이고, 선발되어 자국 국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서 경기를 치른다 하더라도, 거기도 역시 승부의 세계이기 때문에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에서 뽑힌 국가대표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시상대에 올라가서 메달을 차지할 수 있는 선수는 극히 손에 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올림픽 시상대에 오른다는 것은 개인의 명예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각 나라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국 선수가 이 올림픽 시상대에 올라 가서 메달을 받기를 원하고, 메달 중에서도 특히 금메달을 따도록 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이고, 나아가 금메달에도 포상금을 설정해서 선수들로 하여금 의욕을 높이기도 합니다. 이 금액이나 기준은 각 나라마다 그리고 각 대회마다 매번 바뀌지만, 예를 들어서 일본은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500만엔, 은메달 200만엔, 동메달 100만엔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정부에서 금메달은 6000만원, 은메달 3000만원, 동메달 1800만원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라 무슨 연금이다 여기저기에서 주는 격려금이다 하면 이보다도 훨씬 올라가겠지요. 어디 그 뿐이겠어요? 그 영광은 선수들한테만이 아니라 그 선수들을 키운 감독, 코치들한테도 돌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선수들, 감독 코치,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든 금메달을 하나라도 더 따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장려되어야 하는 것이겠죠. 공부도 노력이고 사업도 노력이고 회사생활도 노력이고 이처럼 스포츠도 노력입니다. 노력은 아름다운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말들 바로 앞에 어떤 말이 붙으면 좀 이상해집니다. 그 말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라는 말입니다. 노력은 분명 좋은 말입니다만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노력한다고 하면 이게 무슨 말이에요? 이것은 해도 되는 일 안 되는 일들을 안 가리고 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하다는 말을 저는 간혹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서 얻어진 결과라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올림픽은 많은 선수들이 자신과 자신의 나라의 명예를 걸고 경쟁을 합니다. 메달을 받고 시상대 위에 오르게 되면 그 경기장에 있는 관람객 수 천명, 수 만명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이를 지켜보는 이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습니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해서는 안 되는 행위, 부정행위를 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 집니다. 이에 대표적인 부정행위가 바로 금지약물복용입니다. 육상이나 수영처럼 속도를 다투는 경쟁인 경우에는 심한 경우에는 1초 2초가 아니라 0.01초, 0.001초를 다투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금지약물을 복용하여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부당한 방법으로 끌어올려서 승리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가 받은 메달도 박수도 영광도 칭송도 모두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언 24장 1절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여러분 한 번 테스트를 해보시겠습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이 있고, 예수를 믿어야만 축복이 있고, 예수를 믿어야만 소망이 있고, 예수를 믿어야만 죄사함이 있고, 예수를 믿어야만 우리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믿어지시나요? 지금 우리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이 뭔가 마음 구석 한켠에 남는 이 찝찝함. 그것이 과연 무엇인가요?
그래, 뭐 다 맞는 말씀이지. 성경말씀이 다 그렇잖아? 다 좋은 말씀이지만, 어디 세상이 다 그런가……라는 생각이 혹시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있지 않으십니까.
학교 다닐 때, 예를 들어서 몇 그램 되는 것을 몇 미터 위에서 떨어뜨리면 땅에 닿을 때까지는 몇 초인가. 그런데 여기서 답을 내놔도 실제로는 그렇게 딱 들어맞나요? 아니요. 그럼 왜 정확하게 맞지 않냐고 선생님한테 질문을 하면 그건 공기의 저항이 어떻고 바람의 방향이 어떻고 해서 실제로 해보면 오차가 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도 역시 그 말씀에는 예수님을 믿어야지만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된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혹시 이런 생각이 우리의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가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100% 아멘으로 믿지 못하고 한 50대 50……아니, 그래, 좋아. 70대 30 정도로 해두자. 70은 성경이 맞지만 그래도 지금이 21세기인데 30프로는 이 현실에 맞게 적용도 하고 그래야지, 그렇게 곧이곧대로 믿어서야 되겠어? 혹시 이런 생각을 가져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그러면 제가 묻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라고 하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마치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니, 누구는 예수를 믿지도 않고 교회도 안 나가고 하는데도 돈도 잘 벌고 사업도 잘 되고 그러는데, 나는 그래도 예수를 믿고 교회도 나가고 봉사도 하고 그러지만 항상 일은 꼬이고, 되는 일도 없고, 몸도 안 좋고, 문제는 많고…….
이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우리 믿음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강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강한 믿음을 갖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대상이 연인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친척일 수도 있고, 선생님일 수도 있고, 제자일 수도 있고,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부하직원일 수도 있고, 그리고, 부모님일 수도 있고, 자식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 상대방을 매우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 상대가 나한테 말을 합니다. 나는 “당신을 99% 믿는다.” 그 말을 들으시면 기분이 좋으신가요? 아,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나를 99%나 믿어주고 있네, 기쁘다……이렇게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오히려 별로입니다. 왜죠? 그것은 바로 “1%는 안 믿는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은 99%는 믿어요, 라고 말을 한다면 그 뜻은 뭐겠습니까. 주님, 난 주님을 1%는 안 믿어요. 라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99% 율법을 지키다 1%를 안 지키면 나머지 99%까지도 모두 안 지키는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가복음 6장 48절~49절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즉, 100%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믿음의 집을 잘 지었기 때문에 어떤 시험이 닥쳐와도 요동하지 않지만, 믿음이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번드레해보이지만 그 마음 안에 믿음이 서지 않았기 때문에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다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을 보면 믿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장사도 잘 되고 돈도 잘 벌고 출세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작 자기는 믿음이 있는데도 잘 안 되고 고생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들이 언제부터였을까요? 5년 전? 10년 전? 그러면 그 전에는요? 오늘 말씀이 적힌 잠언은 주로 이스라엘 다윗 왕의 아들인 솔로몬 왕의 말이 적힌 글입니다만, 솔로몬 왕은 기원년 900년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적어도 예수님이 오시기 900년 전에 벌써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잠언 24장 1절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라도 형통하는 악인을 부러워할까봐, 잠언에 이렇게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잠언 24장 19절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행악자가 나한테 무슨 나쁜 일을 저질러도 화를 내지도 말고, 그로 인해서 악인이 형통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시편 73편 12절~15절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이 시편 기자도 말하기를, 악인들은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불어나는데 자신은 종일 재난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벌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구절은 무엇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일까요. 악인은 항상 잘 되고 의인은 고생만 죽도록 하지만 너는 그냥 참아라? 예수님께서 그렇게 끔찍한 말씀을 하시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뒤가 있습니다.
시편 73편 16절~20절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을까, 아이고 내 팔자야, 아아, 주님 나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요, 하고 생각하고 생각해봤더니 이것이 심한 고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람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는 마치 곱셈과 나눗셈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덧셈과 뺄셈 만으로 풀려고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 우리 주님의 마음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아하! 하나님께서 이렇게 악인을 파멸하게 하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실 계획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그들을 파멸에 던지시는데, 어떻게 그렇게 황폐되었는지 놀랄 정도로 전멸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일제시대 때 많은 지식인들이 이른바 친일을 했습니다. 자신의 조국을 팔고 자신의 양심을 팔아서 자기 배를 불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바보였습니까? 아니요. 남부럽지 않을만큼 배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해방되고 친일파를 소탕한다고 하면서 잡아들이고는 형사들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배운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사람이 왜 친일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같이 하는 말이, 이렇게 빨리 일본이 망할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일본 정식 국호는 ‘일본국’이지만, 태평양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대일본제국>이었습니다. 대일본제국? 이거 너무 건방진 이름 아냐? 라고 생각하실지는 모르지만, 당시 일본의 규모를 본다면 이건 전혀 과장되지도 않은 이름입니다. 그 때 일본은 대만이나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그리고 조선은 물론이고 중국 만주까지 모두 일본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본이 한순간에 패망할 것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많은 지식이 있었던 그 사람들도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가는 시점에서도, 어느 정도에서 미국과 일본이 휴전을 하고 적정한 상황에서 전쟁이 끝나고는 강대국 일본은 계속 이어질 줄만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토록 대단했던 강대국이었던 대일본제국은 3년 반 남짓의 전쟁으로 순식간에 모두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악인들이 형통하게 보이는 일은 있습니다. 그러나 형통하게 보인다고 해서 악인이 의인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주일을 지키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겠습니까. 교회에도 가지 않고 주일도 쉬지 않고 365일 일하는 사람이 돈을 잘 벌겠습니까. 세상적으로 본다면 하루라도 더 일하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겠지요. 자신의 수입 중에서 십일조를 바치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겠습니까. 십일조를 안 내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겠습니까. 십일조는 무슨 십일조! 한 푼이라도 더 쌓아놓아야지! 이것이 세상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시편 37편 7절~10절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악인이 형통하는 것, 악한 꾀, 잔머리를 굴리는 이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화를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질투하고 시기하고 배아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도저히 찾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잠언 10:28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욥기 27장 13절~19절
“악인이 하나님께 얻을 분깃, 포악자가 전능자에게서 받을 산업은 이것이라 그의 자손은 번성하여도 칼을 위함이요 그의 후손은 음식물로 배부르지 못할 것이며 그 남은 자들은 죽음의 병이 돌 때에 묻히리니 그들의 과부들이 울지 못할 것이며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준비할지라도 그가 준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의 은은 죄 없는 자가 차지할 것이며 그가 지은 집은 좀의 집 같고 파수꾼의 초막 같을 것이며 부자로 누우려니와 다시는 그렇지 못할 것이요 눈을 뜬즉 아무것도 없으리라”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이 되지만 악인의 소망은 끊어집니다. 악인이 갖은 노력을 해서 재물을 모으고 한다 하더라도 그 재물은 죄 없는 의인이 차지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시편 1편 1절~2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의인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도 않고 부러워하지도 않고 함께 하지도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13절~15절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올림픽에서는 경기가 끝나고 상위권 선수들한테는 도핑테스트라고 하는 약물검사를 하게 됩니다. 그가 정당한 방법으로 메달을 땄다면 그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당당히 검사를 통과해서 그가 받은 영광을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그 검사에서 만약에 금지약물이 검출이 된다면 그는 메달을 박탈 당하고 그와 함께 그의 모든 노력과 영광과 환호와 칭송과 미래도 모두 빼앗기고 말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3장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하나님은 속히 오신다고 합니다. 속히 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순간까지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99% 아멘이 아니라 100% 아멘으로 믿고, 우리가 가진 믿음을 굳게 잡고 우리가 받을 상을, 면류관을 아무한테도 빼앗기지 않도록 항상 근신하고 온전히 주님만 바라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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