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빈 집
2016년 7월 31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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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Last Update 2019. 5. 21

마태복음 12장 43절~45절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빈 집’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 때, 주로 미국 서부 쪽 캘리포니아나 네바다 쪽에 있었습니다만, 그 곳은 정말 비가 오지 않습니다. 안 가보신 분께서는 캘리포니아라고 하면 어떤 모습을 상상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1년 중에서 봄, 여름, 가을은 정말 화창합니다. 서울에서 살 때는 1년 중에 하루 종일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캘리포니아에 가보니까 정말 그렇게 화창한 날씨가 계속됩니다. 맨 처음에는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그렇다보니까 비가 안 옵니다. 특히 캘리포니아 남부 쪽에는 1년 중에서 겨울에만 잠깐 비가 내리고 그 외에는 비가 안 와요.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에 보면 잔디들이 넘쳐나고 나무들이 푸르릅니다.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는가 하면 나무들이 있고 풀들이 있는 곳에는 100% 스프링쿨러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스프링쿨러라고 하면 불이 났을 때 그 불을 끄기 위해서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는 장치를 말합니다만, 캘리포니아나 네바다에서는 비가 거의 안 오다시피 하니까 잔디나 나무가 있는 곳에 이 장치가 설치가 되어 있어서 1년 365일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물이 무슨 분수처럼 나옵니다. 그러니까 잔디 위에 벌러덩 누워 있다가 잠이라도 들면 큰일납니다. 잘못하면 물에 흠뻑 젖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만약에 가정집 뒷마당에 잔디를 심고 싶은데 스프링쿨러를 달지 않은 경우에는 매일같이 호스로 물을 뿌려야 합니다. 저도 미국에서 현지 학생들과 함께 그런 단독주택에서 1~2개월 정도 지낼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물 뿌리기를 하루라도 걸르면 벌써 잔디가 시들시들해집니다. 그리고 그 물을 뿌리는 것도 아주 흠뻑 젖도록 뿌려야 하기 때문에 그게 참 번거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 특히 서부지역에 사는 사람들한테에는 이 잔디에 물을 뿌리는 일이 거의 일과처럼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 제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한 미국인 남성 이야기인데, 이 분도 역시 매일같이 잔디에 물을 뿌리고 있었는데, 하루는 자기 마당을 유심히 보니까 어디에는 잔디가 아주 빼곡하게 나 있었는데, 어디는 잔디가 듬성듬성 나 있는 곳도 있고, 또 어디에는 잔디가 하나도 안 나 있는 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까, 아주 예쁘게 잔디가 난 곳에는 잡초가 하나도 없는데, 잔디가 듬성듬성 난 곳에는 잡초도 듬성듬성 나 있고, 그리고 잔디가 하나도 없는 곳에는 여기저기가 잡초 투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분이 생각하기를, 아하, 이 잔디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이 잡초로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그렇죠. 잡초를 뽑아버려야죠. 그래서 그 때부터 열심히 잡초를 뽑았습니다. 매일 같이 잡초를 꼼꼼하게 뽑고는 물도 열심히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을까요? 잡초는 완전히 사라지고 잔디가 풍성하게 자라게 되었습니다……라는 것을 기대했는데, 이게 웬걸요. 상황이 전혀 안 바뀌더랍니다. 잡초는 분명히 그렇게 많이 뽑아버렸는데도 어디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 뽑아버린 곳에 또 나고, 아무리 뿌리채 뽑아버려도 며칠 뒤면 또 그자리에 나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잔디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상황이 그렇다보니까 잔디도 전혀 늘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잡초를 죽이는 약을 뿌려볼까 생각도 했습니다만, 그랬다가 괜히 잔디까지 죽게 되면 큰 일입니다.
얼마 동안 고민을 하다가 이 분이 마침내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이 사람이 원했던 것은 뭐예요? 잡초가 없어지는 거예요? 아닙니다. 이 사람이 원했던 것은 잡초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잔디를 풍성하게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이 사람이 했던 것은 잔디를 풍성하게 하는 노력이 아니라 잡초를 뽑아버리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 결과는 어땠나요? 결국 잡초는 사라지지도 않았고 잔디도 늘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노력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이제 무엇을 위해서 노력했을까요. 그렇죠. 자신의 본래의 목표인 잔디를 늘리는 일에 매진했습니다. 그래서 잔디 씨를 사 와서 뿌리고는 열심히 물을 주었습니다. 잡초가 있는 곳에도 잡초를 뽑기도 하면서도 거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씨를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잔디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반면에 잡초는 조금씩 줄어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봅니다.
마태복음 12장 43절~45절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세상에는 마귀가 없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신이 없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왜요? 봤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물론 그것도 답이 될 수는 있겠지만 완벽한 답은 아닙니다. 정답은 바로 성경에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본다면, 귀신이 원해서 나왔는지 아니면 쫓아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왔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문맥상으로 본다면 분명 이 귀신이 어떤 사람 안에 있다가 거기서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입니다. 여기서 물없는 곳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다만, 핵심은 귀신이 쉴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귀신이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반성을 합니다. 회개를 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맹세를 합니다. 하지만 또다시 그 길로 되돌아가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듣습니다.
예를 들어서 마약을 보십시오. 이 세계에 한 번 빠져들면 정말로 헤어나오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얼마전 방송에 의하면, 마약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아 그거 끊지 못한다는 것은 의지가 부족해서 그렇다. 의지만 있으면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자신의 의지만으로 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의학적인 치료를 받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토록 어렵게 마약을 끊은 다음에도 또다시 여기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이는 정말로 무서운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도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방송에서 보니까 이 도박에 빠져 있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이 도박을 하다가 안 하면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식은 땀이 나고, 온통 자기 머리 속에는 도박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마약이나 도박이나 여기에 한 번 사로잡히게 되면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사회생활도 가정생활도 인간관계도 모두 파탄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이와 같은 것들은 어디까지나 극단적인 것입니다만,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악한 죄악이라는 것 모두가 무엇 때문에 일어납니까. 바로 이 악한 마귀 사탄에 의한 것입니다. 나는 거기서 벗어나왔어. 이제 나는 그것과 상관 없어……하고 다짐을 합니다. 맹세를 합니다. 내 마음 속을 깨끗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열심히 인간적으로 노력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귀신들이 내 앞을 얼쩡거립니다. 오늘 이 말씀에 보면 그 마음 속에 있던 귀신들이 나가서 청소도 되고 수리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것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귀신이 다시 거기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 중 44절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4절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귀신이 다시 와서 보니,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서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바로 그 집이 비어있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여러분께서는 깨끗한 집을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지저분한 집을 좋아하십니까. 당연히 깨끗한 집이겠지요. 하지만 어떤 나쁜 사람들이 자기가 몰래 살 집을 구하러 다니는데, 둘 다 빈 집인데, 하나는 깨끗한 집이고, 또 하나는 지저분한 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들어가겠습니까. 당연히 깨끗한 집이겠지요. 하지만 깨끗한 집임에도 불구하고 못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언제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집에 다른 주인이 있을 때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주인 삼아야 되겠습니까.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복음 1장 12절~13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이 문밖에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실 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문을 여는 것입니다. 문밖에서 예수님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예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 어서오십시오. 어서 들어오십시오. 내 모든 것을 주관해주십시오. 내 주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고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서 예수님을 영접해드렸을 때, 예수님께서는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삼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분들한테 교회에 나가시라고 말씀을 드리면, 자신은 너무나 죄가 많아서 회개하고 난 다음에 가겠다고 합니다. 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술을 끊고 가겠다고 합니다. 담배를 도저히 끊을 수가 없어서 담배를 끊고 가겠다고 합니다.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세요? 한국의 이른바 개혁파 정통교회에 보면 술담배를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누구는 또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고기를 안 먹는다는 사람도 있고, 또 교파에 따라서는 주일에 돈을 쓰거나 요리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곳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술을 안 마시면 구원 받나요? 담배를 끊고 고기를 안 먹고 주일에 돈도 안 쓰고 요리를 하지 않으면 구원 받나요?
이와 같은 것을 강요하는 이른바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스스로 어떤 일들을 저지르고 다닙니까.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한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회나 교회 지도자가 나라의 법을 어기고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될 때마다 정말 저 자신 또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를 보면, 누구를 가장 꾸짖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바리새인들, 율법교사들, 서기관들, 제사장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46절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이 말씀을 보았을 때 과연 지금의 목회자나 교역자 또는 교회의 직분자들이 과연 과거의 바리새인이나 율법교사들보다 믿음이 더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을 때, 아니요, 과거의 바리새인이나 율법교사가 지금의 그 분들보다 차라리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이렇게 혼이 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조건 잡초만 뽑으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대우를 잘 하라는 것입니다. 교만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이른바 교회 지도자는 이 과거에 바리새인이나 종교지도자들보다도 훨씬 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예수님이 언제 먼저 네 힘으로 청소 다 하고 수리 다 한 다음에 그 다음에 나한테 오라고 말씀하셨나요?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그냥 오라고 하십니다. 왜요? 어차피 네가 네 힘으로 깨끗하게 되려고 해도 안 되잖아. 그러니까 괜히 쓸데없이 힘 낭비하지 말고 그냥 어서 나한테로 와. 그럼 내가 알아서 다 해줄게. 나한테로 와서 내가 두드릴 때 문을 열어줘. 그러면 내가 네 안으로 들어가서 잔디가 풍성해지면 잡초도 없어진다니까. 왜 니가 혼자 노력하려고 해. 예수님께서는 바로 지금 그러고 계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우리 마음 속에 뿌려진 잡초, 가라지. 이걸 누가 뿌렸어요? 하나님이요? 아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탄이 뿌렸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말하기를 이걸 다 뽑아버릴까요? 하니까 29절~30절을 다시 보면,
마태복음 13장 29절~30절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이 말씀을 보시면, “가라지가 있는 것” “곡식이 뽑히는 것” 이 둘 중에서 하나님은 무엇에 더 무게를 두고 있으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가라지가 있어? 그건 그 나쁜 원수가 한 짓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요? 뽑아버려야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다가 자칫 잘못해서 그나마 있는 곡식까지 뽑힐 것을 우려하고 계신 것입니다. 가라지는 없애버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믿음의 알곡까지 뽑혀버리면 오히려 더 큰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사람이 모두 지킬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600가지 이상이라고 합니다만 그것을 모두 지킬 수가 있습니까?
야고보서 2장 10절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그 율법 중에서 하나라도 어기면 율법 전체를 어겼다는 것이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율법 하나라도 어긴 적이 없나요?
로마서 3장 10절 말씀처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야말로 이와 같은 율법을 지킬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예수님말로 누가 있겠습니까. 또한 술담배를 하지 않는 사람은 술담배를 하는 사람보다 의롭습니까. 주일에 돈을 안 쓰고 요리를 안 하면 주일에 돈을 쓰거나 요리를 하는 사람들보다 더 의롭습니까. 그렇지 않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이와 같은 율법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너희들이 아무리 행위로 거룩해지려고 해봤자 안돼. 어림 없어. 그 사실을 알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거룩한 척 하고 목에 힘을 줘봤자, 너나 나나 다 똑같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억지로 안 그럴려고 해도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6장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리의 이 무거운 죄를, 죽음에서 헤어날 수 없는 끔찍한 죄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해결해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또한 우리의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잔디를 풍성하게 만들겠다고 해서 아무리 잡초를 뽑아봤자 그 자리에서는 또다시 잡초가 납니다. 오히려 뽑기 전보다 더 많이 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예, 그 곳에 잔디를 심어야 합니다. 가라지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뽑아보겠다고 했다가 자칫 그나마 있는 알곡까지도 해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알곡이라는 이름의 믿음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잡초를 뽑는 것보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믿음이 성장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급선무입니다.
마태복음 13장 31절~32절에 보면,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풀이 풀로 있을 때에는 잡초도 걸리적거리고 가라지가 훼방할지도 모르지만, 이를 견디고 풍성해지면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와서 깃들게 된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나무가 성장하면 그까짓 잡초가 문제입니까? 가라지가 문제입니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목표는 빈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집, 주님을 모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주님이 우리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럴 때 주저없이 우리의 마음을 여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일 때에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서 큰 나무를 이루고 마침내 30배 60배 100배 풍성하게 믿음의 열매를 맫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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