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회 예수께서 기뻐 웃으시더라
2016년 10월 2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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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5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께서 기뻐 웃으시더라’ イエスが喜び笑いになられた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신구약 합쳐서 66권, 1189장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절 수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만 대략 3만 천 구절이 조금 넘습니다. 그 중에는 긴 구절도 있고 짧은 구절도 있지요. 그렇다면 긴 구절은 중요하고 짧은 구절은 중요하지 않나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장 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장 수가 긴 책은 바로 시편, 그리고 가장 짧은 책은 요한2서인데, 그렇다면 성경에서 시편이 제일 중요하고 요한2서는 가장 안 중요한가요? 아니요. 성경은 그런 책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聖書はすべて、神の霊感 によるもので、教えと戒めと矯正と義の訓練とのために有益です。それは、神の人が、すべての良い働きのためにふさわしい十分に整えられた者となるためです。

성경은 신구약 모두 약 40명에 의해 쓰여졌습니다만, 이는 그들의 저작물이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감동,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내용은 어느 한 개인의 말이 아니라 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를 우리가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 150편 전체든 요한2서든 모두 같은 중요성을 가진다고 우리는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중에서 가장 짧은 구절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이는 물론 번역본에 따라서 많이 다릅니다만, 개역개정 성경 중에서 짧은 구절은 두 구절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구절이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항상 기뻐하라”

テサロニケ人への第一の手紙 5章 16節
いつも喜んでいなさい。

참고로 이 말씀은 항 ・ 상 ・ 기 ・ 뻐 ・ 하 ・ 라……이렇게 여섯글자입니다만, 신약성경 원문인 헬라어 성경에서도 바로 이 구절, 헬라어로는 <판토테 카이레테>라고 하는데 이 구절이 가장 짧은 구절입니다. 이 짧은 말씀 한 마디에도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까. 이왕 말이 나왔으니 이 구절을 조금 더 살펴볼까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18절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いつも喜んでいなさい。
絶えず祈りなさい。
すべての事について、感謝しなさい。これが、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神があなたがたに望んでおられることです。

이 데살로니가전서는, 비록 저자는 바울이지만,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심각한 문제를 안고 시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나한테 와서 하는 말이 “항상 기뻐하세요”라는 말 한 마디 툭 던지고 지나간다면, 여러분 심정은 어떻겠어요?
“이게 누구 속 뒤집어지는 꼴을 보려고 그러나…….”
안 그러겠어요? 아니, 내가 지금 머리가 아파서 미칠 지경인데, 지가 뭘 안다고 나더러 항상 기뻐하래? 누구 지금 팔짝 뛰는 꼴을 보려고 그래? 라는 말이 안 나오겠어요? 그러면 주님이 우리한테 <항상 기뻐하라> 라고 말씀하신 건 우리 속 뒤집어지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예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뭐죠? 어차피? 나는? 잘 됩니다. 그렇죠. 어차피 나는, 어차피 우리는 잘 됩니다. 왜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해주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친히 역사해주실 것이기 때문이기를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중에 그럴 것 아니에요. 아이 참, 이렇게 잘될 줄 알았으면 그렇게 인상 찌푸려가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네. 괜히 그렇게 잠도 못 자고 가슴 졸여가면서 고민했잖아…그럴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미리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공수표를 난발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 끝날까지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리고 짤은 구절은, <항상 기뻐하라>가 몇 글자죠? 예, 여섯 글자입니다만, 똑같이 여섯 글자인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마가복음 6장 41절입니다.

마가복음 6장 42절,
“다 배불리 먹고”
人々はみな、食べて満腹した。

자~ 이 또한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이 말씀도 앞뒤를 살펴보기 위해 마가복음 6장 41절~44절까지 살펴보겠습니다.


마가복음 6장 41절~44절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するとイエスは、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を取り、天を見上げて祝福を求め、パンを裂き、人々に配るように弟子たちに与えられた。また、二匹 の魚もみなに分けられた。
人々はみな、食べて満腹した。
そして、パン切れを十二のかごにいっぱい取り集め、魚の残りも取り集めた。
パンを食べたのは、男が五千人であった。

이 구절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만, 왜 이 짧은 말씀이 은혜가 되는가 하면,
다시, 마가복음 6장 42절만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6장 42절,
“다 배불리 먹고”

人々はみな、食べて満腹した。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예수님을 따라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제 배가 고픕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역사하셔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람들로 하여금 먹도록 하셨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요? 어떤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대요?
예, 바로 “다” 입니다. 여기서 이 ‘다’라는 말씀, 이 말씀이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거기에 예수님을 따라 나온 사람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나온 사람들 모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전부 다 배불리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기 오늘 모인 우리도, 사랑하는 우리 주님이 주시는 축복의 양식으로 다 배불리 먹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면에, 그러면 영어 성경에서 짧은 구절은 뭐냐 하면, 바로 오늘 말씀, 요한복음 11장 35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입니다.

イエスは淚を流された。

이 구절을 영어로 한다면

“Jesus wept”




자, 이 정도라면 우리 금방 외울 수 있겠죠? 오늘은 영어성경 한 구절을 외우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Jesus wept” 요한복음 11장 35절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눈물에 대해서 모두 세 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바로 이 첫 번째가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흘리신 눈물이고, 두 번째는 누가복음 19장 41절에서 예루살렘 성을 보시면서 그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예감하시면서 우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히브리서에 5장 7절에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기록합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는 예수님의 눈물과 울음을 기록한 구절이 세 곳이나 있는 반면,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예수께서 기뻐 웃으시더라>라는 구절은 어디를 찾아보아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다니실 때 정말로 한 번도 웃지 않으셨을까요? 아니면, 웃으셨지만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었을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천국에 가서 예수님께 여쭤보지 않는 안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만. 단 한 가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예수님께서 즐기시러 오신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8장 18절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目がありながら見えないのですか。耳がありながら聞こえないのですか。あなたがたは、覚えていないのですか。

마태복음 9장 36절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また、群衆を見て、羊飼いのない羊のように弱り果てて倒れている彼らをかわいそうに思われた。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사실은 이미 구약에 계속해서 예언되어왔고, 그리고 그 예언대로 오셨습니다. 오신 이유는 물론 이 우매한 백성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천국을 전파하고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며, 죄인을 위로하고 병자들을 치료하시며, 목자 없는 양처럼 고생하는 무리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으로 이르는 길을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16: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それから、イエスは彼らにこう言われた。「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福音を宣べ伝えなさい。

누가복음 17장 6절,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しかし主は言われた。「もしあなたがたに、からし種ほどの信仰があったなら、この桑の木に、『根こそぎ海の中に植われ。』と言えば、言いつけどおりになるのです。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다면 우리도 예수님이 행하신 능력을 주님의 이름으로 능히 이룰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예수님께서 하신 일 중에서 가장 힘드신 일.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어주시는 일,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악을 해결해주시는 일, 이것만은 예수님밖에 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 외의 모든 일은 우리도 할 수 있지만, 바로 이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우리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서 청산하시는 일은 예수님밖에 하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위해 오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하물며 예수님을 몇 년 동안 따라다녔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께서 몇 번이나 말씀을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진의, 진정한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땠습니까.

마태복음 26장 35절,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ペテロは言った。「たとい、ごいっしょに死ななければならないとしても、私は、あなたを知らないなどとは決して申しません。」弟子たちはみなそう言った。

라며 끝까지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베드로와 그의 제자들, 그것이 36절입니다. 그런데 바로 밑, 57절 끝부분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마태복음 26장 56절 후반부,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そのとき、弟子たちはみな、イエスを見捨てて、逃げてしまった。

내가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지키겠습니다……이렇게 말한 그의 제자들은, 그야말로 침도 마르기 전에, 걸음아 나 살려랴 하고 모두 예수를 버리고 도망쳐버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 뿐인가요?

마태복음 27장 46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三時ごろ、イエスは大声で、「エリ、エリ、レマ、サバクタニ。」と叫 ばれた。これは、「わが神、わが神。どうしてわたしをお見捨てになったのですか。」という意味である。

이는 시편 22편을 인용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순간 예수님은 제자들로부터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까지도 철저하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의인으로서 못 박히셨습니까, 아니면 죄인으로서 못 박히셨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한 죄인으로서 못 박히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죄를 지으셨나요?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은 티끌만한 죄도 없습니다. 이 모두가 다 우리의 죄, 나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철저하게 죄인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죄인을 하나님이 사랑하십니까? 아닙니다. 죄인은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맙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은 아무런 죄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철저한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이렇게 될 줄 모르셨을까요? 아니야,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베드로나 요한이나 야고보가 나를 구해줄 지도 몰라……그러셨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제 3일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베드로가, 아닙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16장 23절,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しかし、イエスは振り向いて、ペテロに言われた。「下がれ。サタン。あなたはわたしの邪魔をするものだ。あなたは神のことを思わないで、人のことを思っている。」

예수님께서는 화를 내십니다.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하는 베드로를 칭찬하시기는커녕 오히려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심한 말씀으로 꾸짖으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십자가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치르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사실, 그들에게 잡힐 때에는 모든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이고, 십자가에서는 하나님마저도 예수를 버리신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을까요, 모르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스스로 감당하셔야 할 그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고난을 이미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어떤 기쁨인들 예수님을 기쁘게 웃으시도록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웃지 않으셨던 것은 어쩌면 우리의 죄악을 짊어지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슬픔과 고뇌와 절망까지도 모두 짊어지셨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이 땅에 계실 동안 예수님께서는 웃지 않으셨지만,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인생살이를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어떠십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께 기쁨을 드린 적이 많으십니까. 아니면 눈물을 드린 적이 많으십니까. 혹시 기쁨이 아닌 눈물을 드린 적이, 슬픔을 드린 적이 많지 않으십니까.
저부터도 솔직히 고백하자면, 예수님께 눈물을 드린 적, 슬픔을 드린 적이 훨씬 많지 않나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내 삶을, 내 행동을, 내 마음을 바라보시고 예수님이 슬퍼하신다면, 눈물을 흘리신다면 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일입니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슬퍼하시면, 누가 기뻐합니까. 아무도 기뻐하지 않아요? 아니요, 분명히 누군가가 기뻐합니다. 그것이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마귀 사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슬퍼하실 만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100% 마귀 사탄은 기뻐서 날뜁니다.
여러분, 예수님과 마귀 사탄이 동시에 기뻐하는 일이 존재합니까? 아니요, 절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슬퍼하시는 일은 마귀 사탄이 대단히 기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원수 마귀 사탄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렇죠. 예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슬퍼하시는 모습이 잘 안 떠오르십니까? 그렇다면 마귀 사탄이 기뻐하는 모습은 상상이 되십니까? 생각해보세요. 내가 어떤 말을 합니다. 어떤 행동을 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귀 사탄이 기뻐 웃으면서 박수치고 좋아합니다. 이게 얼마나 섬찟하겠습니까.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을 봅니다.

로마서 12장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そういうわけですから、兄弟たち。私は、神のあわれみのゆえに、あなたがたにお願いします。あなたがたのからだを、神に受け入れられる、聖い、生きた供え物としてささげなさい。それこそ、あなたがたの 霊的な礼拝です。

우리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웃으며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반드시 예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올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16년 1월에 세우신 여러분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 되었습니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6년,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여기 모인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아직 이 땅에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2016년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남겨진 생애 동안, 정말 예수님께서도 놀라실 정도로,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를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기쁨의 예배, 주님께 크나큰 기쁨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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