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
2016년 11월 6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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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15절~30절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사람 수효대로 한 사람에 한 오멜씩 거두되 각 사람이 그의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거둘지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여섯째 날에는 각 사람이 갑절의 식물 곧 하나에 두 오멜씩 거둔지라 회중의 모든 지도자가 와서 모세에게 알리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그들이 모세의 명령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모세가 이르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들에서 그것을 얻지 못하리라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일곱째 날에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 神様が下さる糧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 만나를 내려주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만나는 오늘 본문 15절에 기록에 의한 것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양식입니다.
이 만나의 특징을 보면 몇 가지로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솔직히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특징을 정리하다보니 다섯가지가 되었습니다만, 이거 하다보니까 너무 많고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무슨 학교 레포트를 쓰고 그런다면 짧은 것도 억지로 늘려서 쓰고 그러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하나님 말씀을 전해드리는데 복잡하고 난해하게 해드릴 이유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줄여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다섯가지로 정리했던 이 광야에서 허기진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인 만나의 특징. 몇 가지로 줄이면 이해하시기가 쉬우실까요? 네 가지요? 아니면 세 가지 정도면 될까요?

예, 단 한 가지로 줄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줄였느냐 하면, 만나의 특징.
<쌓아두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다>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시기를, 만나를 거둬들인 다음에 그것은 다 그 날에 먹고, 다음 날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20절에서 하시는 말씀이, 다음 날까지 남겨두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유통기한이 짧았어요? 하나님의 기술이 그 정도밖에 안 되나요?
여기에는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고 쉬어야 하니까 그 전날에는 다음 날 몫까지 거두더라도 벌레도 나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걸 보면 하나님의 만나 제조 기술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하셨을까요? 우리 그런 말 있죠? 아니, 왜 먹는 걸 가지고 그러냐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먹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 어렵게, 복잡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왜 하필 먹는 것을 가지고 치사하게 그러시나요? 만나를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는 게 아까워서요? 아니면 정말로 하나님이 치사해서요?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그렇다면 왜 그러셨을까 하는 답이 성경에 있습니다.

출애굽기 16장 4절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主はモーセに仰せられた。「見よ。わたしはあなたがたのために、パンが天から降るようにする。民は外に出て、毎日、一日分 を集めなければならない。これは、彼らがわたしのおしえに従って歩むかどうかを、試みるためである。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즉,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를 시험해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험이 즐거우세요? 솔직히 시험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나 시험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중요합니까. 그 시험은 바로 축복의 전주곡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의 전주곡인 시험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시험이 시작한 시기입니다. 그것은 이제 16장 1절에 보면, 애굽에서 나온지 두 달 보름이 지난 후에 시작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그 때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식량이 모두 동이 났을 때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아무리 풀한포기 나지 않는 광야라 하더라도,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갖고 있는 경우라면,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에 내가 갖고 있는 재물, 내가 갖고 있는 능력, 내가 갖고 있는 힘을 바라보는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만을 믿고, 하나님 만을 바라보고, 하나님 만을 의지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아무리 만나를 주셨다 하더라도 자기들이 양식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을 의지하겠어요? 뭐? 하나님?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고……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 만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볼 때에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 보면, 지금은 학교에 맛있는 식당도 많고 그런 것 같습니다만, 제가 다닐 때만 하더라도 학교 안에 맛있는 식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순진하게, 처음에는 대학교 식당들은 원래 다 맛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가끔 다른 학교에 가보니까 학교 식당이 꽤 맛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야, 너네 학교 식당은 참 맛있구나, 라고 했더니, 그 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저를 보고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당연하지~ 맛없으면 누가 사 먹어~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 친구 학교는 시내 한 복판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교문만 나가면 식당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니까 학교에 있는 식당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맛이 있는 건 물론이고, 거기다가 가격도 저렴해야지만 경쟁력이 있는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당시에는 저희 학과 건물이 교문이랑 제일 가까웠습니다만, 그래도 교문까지 걸어가려면 꽤 멀어요. 그리고 애써 교문까지 가서, 거기를 나가봤자 이건 산골짜기에 있다보니 식당이라고는 없습니다. 그러니 어째요. 그냥 어쩔 수 없이 학교 안에서 해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 정말 당시 그 학생식당 밥은요, 다이어트 식품으로는 정말 참 괜찮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된다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도 되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더라도, 교회에 안 나가도 천국에 갈 수 있다면, 그런데도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생명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진리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시는 참된 구주되신 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사실을 가르치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써버릴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소유가 동이 났을 때, 이제는 자신들의 힘으로 식량을 얻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쌓아두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다시 아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러셨을까요.
이것을 좀 더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우리 한 번 반대로 접근해보았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양식을 쌓아둘 수 있었다면, 장기간에 걸쳐 보관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 같았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뭐, 금방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하루 치가 아니라 이왕 한 번 하는 것, 한 열흘 치 정도를 한 번에 가지고 올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뭘 귀찮게 매일 나가요. 그냥 온 가족 동원해서 한번에 확 모아오면 되죠. 그래 가지고 두고두고 먹으면 되잖아요? 안 그래요?
여기서 좀 더 머리를 쓰시는 분은 또 어떻게 할까요? 성경에 보면 정확하게 어디를 가야지만 만나가 있을 것이라고 기록은 안 되어 있습니다만,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만나를 거두러 나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집앞 문을 나서면 곧바로 있는 것이 아니라 들에 나가야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만나를 왕창 거둬들여서, 굳이 들에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어떻게 해요? 한국에서는 무슨 치킨 배달처럼, 만나 배달, 이런 것 괜찮은 비즈니스 아니에요? 되게 편리할 것 같지 않아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할 줄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아니, 제가 벌써 알만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어요? 더구나 지금도 유대인이라면 이 장사나 사업을 잘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는데, 옛날이라고 달랐겠어요? 분명히 그럴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짓궂어서요? 하나님이 우리 잘 되는 꼴을 보기 싫어서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한 번 생각해보십시다. 만약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한 달에 딱 한 번 몰아서 드리면 어떻게 될까요? 보통 주일예배가 1시간 정도라고 하면, 한 달에 4시간 깔끔하게 예배를 드리고 이제 한 달 동안 쉬는 거예요. 못할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말씀 전하는 시간을 30분 정도라고 하면 4번이면 2시간이면 되잖아요? 어려워요? 아니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한 달에 주일이 4번 있다면, 그 중에 한 번만 예배 드리고 나머지 3번은 교회에 안 나와도 되잖아요? 수요예배요? 그럼 그것도 한 번에 몰아보죠 뭐. 그럼 한 달에 2일만 좀 빡세게 예배를 드리면 이제 한달치 주일예배와 수요예배는 끝났네요?
여러분께 하나 묻겠습니다. 혹시 지난 주에 제가 어떤 말씀을 전해드렸는지, 혹시 기억하세요? 성경 어디 말씀이었는지, 기억하세요? 그렇다면 지지난주는 기억하세요? 그럼 그 전주는요?
아무리 우리가 열심히 목욕을 해도 한 달치 목욕을 한 번에 할 수 있어요? 혹시 그렇다고 우기시는 분을 위해 한 말씀만 더 드리자면, 아무리 숨을 많이 쉰다고 해도, 한 달치 숨을 한 번에 쉴 수 있어요? 이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주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먹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랑을 먹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 속에서 감사가 식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정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하루에 몰아서 해요? 그렇게 되면 성경에서 만나가 어떻게 된다고요? 예, 냄새가 납니다. 벌레가 생깁니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말을 하더라도 험한 말을 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만, 우리 마음 안에 하루라도, 아니, 한 순간이라도 주님의 은혜가 없고 주님의 말씀이 없고, 주님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 마음은 마치 벌레가 기어다니고 썩은 냄새가 나는 것처럼 변해버리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에 가져다가 쌓아놓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을 먹으라고 말씀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누가 배달해주면 될 것 아니냐.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직접 나가서 거두라고 하셨는데, 다른 사람한테 부탁한다? 물론 어떤 물건이라면, 내가 대신 받아서 가져다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여기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신 만나는 그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이라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주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 교회에 너무 가기가 싫어요. 집에서 좀 쉬고 싶어요.

그래서 교회에 가는 가족 중 누구한테, 예를 들어서 엄마한테, 엄마, 나 오늘 교회 가기 싫으니까 나 대신 내몫까지 교회에 나가줘……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니, 내가 받을 축복을 다른 사람한테 나 대신 받고, 그것을 가져다줄 수 있나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아니, 이것도 혹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그렇다면 이건 어떠세요? 아까 말씀드렸던 예를 다시 들어보죠. 나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목욕을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내가 좀 깨끗해지나요? 아니면, 나를 대신해서 숨을 쉬어 줄 수가 있어요? 나를 대신해서 밥을 먹어줄 수가 있어요? 그럼 나도 배가 불러지나요? 이것들도 모두 불가능합니다. 축복은 반드시 내가 받아야지 내 축복이 되는 것이지, 아무리 친부모나 친형제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축복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대신’이라는 말은 딱 한 경우에만 성립합니다. 그건은 언제예요?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받을 징벌을 모두 받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 구주로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우리의 죄는 사라지고, 눈보다도 희게 되는 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 만나는 재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능력으로 돈을 많이 벌어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역시 오해입니다. 교만이지요. 얼마 전에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바로 이 말을 했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알고 보면 극히 적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은 그 사람이 이러더라구요? “에이,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나 자신이 불쌍해지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당신이 노력을 해서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당신이 노력해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어? 생각해봐. 당신이 아무리 노력했어도, 당신보다 잘난 사람이 지원을 많이 했었다면 떨어졌었어.” 제 말이 이상한가요? 생각해보세요. 저부터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저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어요? 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시험을 볼 때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 제 능력만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아니요. 저보다도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몰렸더라면 저는 꼼짝 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장사를 잘해서 수입이 늘어나나요?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손님이 안 들어오면 굶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예를 들어서 식당이라 한다면, 아니, 맛도 좋고, 목도 좋은데, 이상하게 손님이 안 들어오는 식당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맛도 그저그렇고 위치도 별로 안 좋은데 손님들이 바글바글한 곳도 역시 많이 있습니다. 내가 잘 해서, 내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장사가 잘 되요? 물론 노력도 중요하지요.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다가 안 되면이 아니라, 아주 맨 처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나가면,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기 시작하십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나에게 들어오는 수입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는 당연한 것이라고, 내가 노력해서 얻어진 성과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혜도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그것을 내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물을 바칠 때에도 아깝고, 십일조를 바칠 때에도 손이 벌벌벌벌 떨리는 것입니다.
누구는 그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고약한 냄새 중에 가장 고약한 냄새가 무엇이인가 하면, 바로 돈냄새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정치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원칙도 소신도 없이 갈팡질팡 하니까 온 나라가 갈팡질팡입니다. 여기에 단물을 빨아먹으려고 여기저기서 빨대를 꽂습니다.

그러다보니 엉뚱한 사람들이 득세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반드시 돈이 엮여 있습니다. 그것도 백만원, 이백만원이 아니죠. 기본이 몇 백억 몇 천억입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남용해서 여기저기서 끌어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가면서 자신의 배를 채웁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마치 파리가 몰려들듯이 벌레가 우글거리고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축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축은 중요하지요. 하지만 오늘 말씀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오늘 본문 중에서 출애굽기 16장 17절~18절을 봅니다.

출애굽기 16장 17절~18절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そこで、イスラエル人はそのとおりにした。ある者は多く、ある者は少なく集めた。
しかし、彼らがオメルでそれを計ってみると、多く集めた者も余ることはなく、少なく集めた者も足りないことはなかった。各自は自分の食べる分だけ集めたのである。

그렇습니다. 각 사람이 먹을 만큼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만나가 얼마나 되는 양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록이 안 되어 있습니다만, 21절에 보면, 아침해가 쬐기 시작하면 사라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무한정으로 보관할 수 있었다면, 만나를 싹쓸이해서 나중에 미처 만나를 거두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비싸게 팔아 먹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큰 돈을 벌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노력해서 번 것으로 착각을 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양식을 지나치게 독점해서 다른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결과입니다. 그것에 어디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은혜가 있겠습니까. 그런 재물에는 벌레가 끓고 냄새가 날 따름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의 참 주인되심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루하루 주시는 말씀과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배불리 먹고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여져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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