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회 하나님의 축복을 앞당기는 방법
2017년 1월 8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49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축복을 앞당기는 방법”神様の祝福を早める方法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은 참으로 두꺼워서, 우리에게는 생소하고 어려운 이야기도 많은 반면에, 잘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도 적지 않습니다. 이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믿음이 없는 분들도 많이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사사시대를 거쳐 사울이 초대 왕으로 앉아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호시탐탐 노리면서, 수도 없이 괴롭히곤 했었습니다.
이번에도 쳐들어와서는 시비를 거는데, 이번에는 평소와 조금 더 달랐습니다. 적군에는 골리앗이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용모가 남달랐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절~7절에 보면 이 골리앗에 대한 묘사가 나와 있는데,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
V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ときに、ペリシテ人の陣営から、ひとりの代表戦士が出て来た。その名はゴリヤテ、ガテの生まれで、その背の高さは六 キュビト半。頭には青銅のかぶとをかぶり、身にはうろことじのよろいを着けていた。よろいの重さは青銅で五千シェケル。足には青銅のすね当てを着け、肩には青銅の投げ槍を背負っていた。槍の柄は 機織の
V巻き棒のようであり、槍の穂先は、鉄で六百シェケル。盾持ちが彼の先を歩いていた。

라고 기록합니다. 골리앗의 키가 여섯 규빗과 한 뼘이라고 하는데, 이를 요즘 척도로 바꾸면 대략적으로 2미터 90센티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게 어느 정도의 키인지 잘 상상이 안 가시죠?

참고로 2015년 현재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는 사람은 2미터 36센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2미터 90센티라고 하는 키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제일 키가 큰 사람보다도 50센티 이상이나 더 컸다고 하니 말 다했죠.
그런 골리앗이 입고 있던 갑옷의 무게가 5천세겔이라고 하는데, 이은 대략 60킬로그램에 해당합니다. 여기에 다윗은 그럼 어땠을까 하면, 당시 다윗의 나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습니다만 소년 또는 청년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리 많아봤자 20세 이하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청년 다윗이 골리앗과 대결할 때 그는 갑옷을 전혀 입지 않았습니다.
자…이 둘이 대결을 합니다. 한 쪽은 이방인 블레셋의 거대한 장군, 용사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다윗은 전쟁터에 나간 형들한테 도시락 심부름을 나왔는데 그 때 골리앗을 보고 덤벼든 철없는 청년으로 비추었을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승부는 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뭐라고 합니까.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볼까요?


사무엘상 17장 45절~47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V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ダビデはペリシテ人に言った。「おまえは、剣と、槍と、投げ槍を持って、私に向かって来 るが、私は、おまえがなぶったイスラエルの戦陣の神、万軍の主の御名によって、おまえに立 ち向かうのだ。きょう、主はおまえを私の手に渡される。私はおまえを打って、おまえの頭を胴体から離し、きょう、ペリシテ人の陣営のしかばねを、空の鳥、地の
V獣に与える。すべての国は、イスラエルに神がおられることを知るであろう。この全集団 も、主が剣や槍を使わずに救うことを知るであろう。この戦いは主の戦いだ。主はお前たちをわれわれの手に渡される。」」

그리고 물매를 던졌더니 그 돌맹이가 이마에 박혀서 거구 골리앗 장군이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장면입니까. 이로서 다윗은 하루만에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자, 이 구절을 교회에서 들어보신 분들 많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결론은 어떻게 되나요? 할렐루야, 어린 다윗이 골리앗 장군을 쓰러뜨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이와 같은 기적을 일으키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이것이 일반적인 설교 스토리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러한 말씀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이런 말씀을 들어보았고 은혜도 많이 받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내용을 읽고, 아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신기하네……. 이걸로 끝난다면 얼마나 허무합니까. 다윗은 다윗이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은 성경이 아닙니다. 그저 여느 신화나 세상에 널린 이야기책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성경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설교하라고 목사를 위해 쓰인 것도 아니고, 내 옆에 시간 많고 돈 많은 사람이 심심풀이로 읽으라고 쓰인 책도 아닙니다. 누구를 위해서 쓰인 책입니까.

그렇죠. 바로 나 보라고, 나 읽으라고,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라고,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라고 쓰인 책이 바로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 오늘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그저 와~ 신기하네. 이걸로 끝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은 이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내용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깨닫고, 바로 내가, 우리가, 다윗과 같은 놀라운 능력을 받고, 축복을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당시 골리앗 앞에 섰던 다윗, 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성경을 자세히 읽지 않았거나, 또는 읽긴 읽었지만 왠지 내 머리 속에, 여러분 머리 속에 있는 다윗의 이미지는 어떠십니까. 흥미롭게도 꽤 많은 분들이 좀 몸집이 작고 나약하고 볼품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을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2절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エッサイは人をやって、彼を連 れて来させた。その子は血色の良い顔で、目が美しく、姿もりっぱだった。主は仰せられた。「さあ、この者に油を注げ。この者がそれだ。」

사무엘상 17장 42절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ペリシテ人はあたりを見おろして、ダビデに目を留(と)めたとき、彼をさげすんだ。ダビデが若くて、紅顔の美少年だったからである。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17장 34절~35절을 보면,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ダビデはサウルに言った。「しもべは、父のために羊の群れを飼っています。獅子や、熊が来て、群れの羊を取 って行くと、私はそのあとを追って出て、それを殺し、その口から羊を救い出します。それが私に襲いかかるときは、そのひげをつかんで打ち殺しています。

이미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치는 일을 했었는데, 그 때 사자나 곰들이 공격을 해오면 수염을 잡고 물리쳤다고 하는데, 이게 아무나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이 다윗의 말이 과장이나 거짓말이 아닌 이상, 다윗도 상당히 싸움에 능숙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8절~39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サウルはダビデに自分のよろいかぶとを着させた。頭には青銅のかぶとをかぶらせ、身にはよろいを着けさせた。ダビデは、そのよろいの上に、サウルの剣を帯び、思い切って歩いてみた。慣れていなかったからである。それから、ダビデはサウルに言った。「こんなものを着けては、歩くこともできません。慣れていないからです。」ダビデはそれを脱ぎ、

다윗이 블레셋의 용사 골리앗을 상대하러 나가겠다고 사울 왕한테 말을 하니, 사울 왕은 자신의 갑옷을 벗어서 다윗에게 입혀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울의 몸집은 어땠을까요?

사무엘상 9장 2절에 보면,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キシュにはひとりの息子がいて、その名をサウルと言った。彼は美しい若い男で、イスラエル人の中で彼より美しい者はいなかった。彼は民のだれよりも、肩から上だけ高かった。

사울 왕은 키가 모든 백성보다 컸다고 하는데, 그 컸던 사울이 다윗에게 자신의 갑옷을 입혀주려고 했습니다. 갑옷도 물론 사이즈가 있었겠지만, 자신의 갑옷이 다윗에게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았으면 애초에 입혀주려고 하지도 않았겠지요. 그리고 다윗이 그 갑옷을 입었습니다만, 너무 커서 벗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익숙하지 않아서 벗었다고 합니다.
이상과 같은 기록을 종합해본다면 다윗의 나이는 20세 또는 그 이하의 젊은 나이에 몸집은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컸고 용모는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양들을 공격하는 사자나 곰 같은 사나운 동물들도 물리칠 힘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나이 어리고 외소하고 볼품없는 소년이 싸웠던 것이 아닌, 몸집도 능력도 어느 정도 되는 청년 다윗이 블레셋의 용사 골리앗 앞에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골리앗을 물리친 것이 다윗 혼자의 실력이었다고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전쟁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아무리 힘이 강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지만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어떻게 해서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쳤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다윗을 여기까지 만들어오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초대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셨던 사울을 버리십니다.

사무엘상 15장 11절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わたしはサウルを王に任じたことを悔いる。彼はわたしに背を向け、わたしのことばを守らなかったからだ。」それでサムエルは怒り、夜通 し主に向かって叫ん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을 부으시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사울은 처음에 왕으로 세움을 받을 때에는 너무나도 겸손해서 짐보따리 뒤에 숨었을 정도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셔서 왕으로 통치하게 되고 전쟁에서 성과도 올립니다. 이렇게 되니 그는 이제 처음에 가졌던 겸손한 마음을 버리고, 그 빈 자리를 교만함이 자리잡게 됩니다. 하나님께는 불순종을 거듭하고,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뜻대로 행하게 됩니다.

사무엘상 15장 12절에는,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翌朝早く、サムエルがサウルに会いに行こうとしていたとき、サムエルに告げて言う者があった。「サウルはカルメルに行って、もう、自分のために記念碑を立 てました。それから、引き返して、進んで、ギルガルに下りました。」

이제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드러내려 합니다. 자신이 왕이 된 것이 자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우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이제 자기를 위해서 기념비를 세우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높이기에 급급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왕의 자리에서 사울을 내치고 다른 인물을 세울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사무엘에게 명령하십니다.

사무엘상 16장 1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主はサムエルに仰せられた。「いつまであなたはサウルのことで悲しんでいるのか。わたしは彼をイスラエルの王位から退 けている。角に油を満たして行け。あなたをベツレヘム人エッサイのところへ遣わす。わたしは彼の息子たちの中に、わたしのために、王を見つけたから。」

이 말씀을 듣고 이제 베들레헴으로 이새라는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다른 말은 안 하고, 너희 아들들을 데려오라고 해요. 그래서 일곱명을 불러모아놓고 하나하나 검토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거기 있는 이들이 모두 다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사무엘상 16장 11절,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サムエルはエッサイに言った。「子どもたちはこれで全部ですか。」エッサイは答えた。「まだ末の子が残っています。あれは今、羊の番をしています。」サムエルはエッサイに言った。「人をやって、その子を 連れて来なさい。その子がここに来るまで、私たちは座に着かないから。」

사무엘은 이새더러 그의 아들들을 불러 모으라고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인 아들 중에 기름을 부을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세요. 그런데 막내가 하나 남았는데 지금 양을 치고 있다는 대답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겠습니까.

선지자 사무엘이 오니까 이새라고 하는 사람이 긴장했겠지요. 더구나 아들들을 소집시키라고 하니, 서둘러 모읍니다. 그런데 다 모으면 양을 칠 사람이 없을 거잖아요. 그래서, 야 니가 해, 아니야 니가 해……이렇게 되다 보니 결국은 막내 혼자서 양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어디 한 두번이었겠어요? 양을 돌보고 먹이를 먹이고 이동시키고…이는 매우 고된 일일 것입니다. 세상에 고된 일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있어요? 회사에서나 모임에서의 일들을 보면, 할 때는 힘 들어도 그래도 일을 좀 한 티가 나면 한 보람도 있어요. 와, 이런 일을 했구나, 힘들었지? 정말 수고했어…뭐 이런 말 한 마디라도 들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정말 하기 싫은 일은 어떤 일인가 하면요, 하기는 매우 힘든데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나는 일, 그런데 안 하면 티가 확 나는 일……이런 일이 제일 힘듭니다. 대표적인 것이 집안일이겠지요.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밥도 해야 하고……물론 처음에는 알아주기도 하고 칭찬도 해주겠지만, 조금 지나면 무슨 그게 당연한 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이 줄어드나요? 아니요,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힘은 더 들어요. 그런데 티는 안 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하면 어떻게 되요? 금방 티가 나죠.
이 양을 치는 일도 어쩌면 그런 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래서 항상 제일 귀찮은 일, 제일 하기 싫은 일은 어쩌면 가장 힘이 없었던 막내 차지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날도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하니 첫째부터 둘째, 셋째 형님들이 차례로 나가게 되었고, 여느 때와 같이 제일 막내는 양이나 지키는, 어쩌면 허드렛일이나 하는 처지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막내는 어디에도 이에 대해 불평을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때가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바로 그 막내를 찾으십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그렇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청년 다윗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와 갈이 블레셋 족속들과 전쟁이 일어났을 때, 다른 형들은 전쟁에 나아갔지만,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사정 때문인지 다윗은 집을 지켜야 했고, 기껏 한다는 일이 형들을 위한 도시락 심부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다윗은 묵묵히 자기에게 맡기진 일을 하지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윗이 말하기를, 자신이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공격하면 이에 맞서 싸우고 물리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원해서 그 힘든 일을 했어요? 아니요. 그냥 아무도 안 하니까, 너도나도 떠맡기니까 할 수 없이 다윗이 그 힘은 힘대로 들고 티는 하나도 안 나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품지 않고 묵묵히 감당했기에 사자나 곰을 상대할 힘을 길를 수도 있었고, 마침내 골리앗 앞에 서서도 당당하게 맞설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솔직히 전문대도 아니고 4년제, 그것도 이공계도 아니고 문과를 졸업했다면, 회사에서 실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말이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문대는 바로 현업에 투입되어도 일을 해낼 수 있는 실무적인 일을 배우고, 이공계도 그 전문지식을 살려서 결과를 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이 문과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3개월 동안 한 일이 뭐냐 하면 회의자료 복사하는 일이랑 커피 심부름이었습니다.
회의자료 복사는 뭐 알 것도 같습니다. 부장회의다 사장단 회의다, 회장님이나 부회장님이 오시면 보고할 자료작성이다, 주간업무보고 월간업무보고……아무튼 회의가 많습니다. 그러면 그 자료들을 복사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에요. 그것도 복사만 하나요? 복사를 하면 다 분류를 해서 호치키스로 찍습니다. 요즘은 좋은 복사기들이 많아서 작업도 쉽게 끝나지만, 저 때까지만 하더라도 참 번거롭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커피 심부름… 참 이거 귀찮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상해요. 제가 처음 배치된 부서가 전략기획실이었는데, 거기가 사장실 바로 옆이거든요. 그리고 사장님 비서도 거기 있어요. 사장님이 혼자 있을 때에는 커피를 비서가 가져갑니다. 그런데 꼭 손님이 오거나 하면 당시 기획실 막내인 저한테 시키는 겁니다. 홍성필씨, 여기 커피 3잔, 홍성필씨, 여기 커피 4잔…이렇게요.

아니, 비서가 있으면 비서한테 시키면 되지, 왜 나한테 시킬까. 아니, 그런 생각이 안 들겠어요?
그런데 저처럼 생각하는 신입사원들이 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 동안 나름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고 그랬는데, 아니, 기껏 시키는 게 이거야? 맨날 종이 복사나 하고, 커피 심부름이나 하고……내가 이런 거 하려고 여기 왔나?
이런 자괴감도 들고 환멸도 느끼곤 한답니다. 그렇다면 상사나 직장 선배들이 이런 일을 시키는 이유가, 그저 귀찮은 일이니까 시키는 것뿐일까요? 아닙니다. 사실은 이 아무 일도 할 줄 모르는 신입사원을 생각해서 시키는 일입니다.
먼저, 복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솔직히 그 회사의 부장회의나 사장단 회의 같은 데에 다루어지는 내용들은 모두가 대외비입니다. 매우 중요한 내용들이 다루어지고 결정됩니다. 그런 자료들은 갓 들어간 신입사원이 감히 볼 수도 없는 자료입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는 이 자료를 너한테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복사하면서 힐끔힐끔이라도 보면서 분위기를 익히라는 그런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죠.

그리고 꼭 손님이 오면 커피심부름을 시키는 사장님는 왜 그랬을까요? 생각해보세요. 당시 다니던 곳이 그래도 꽤 지명도가 있는 회사였습니다만, 그 회사 사장님을 만나러 오는 손님들이 무슨 말단 직원이었겠어요? 그것도 사장님이 커피까지 대접하려는 손님은 적어도 대기업 부장급 이상은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이 또한 갓 들어간 신입사원이 언제 만나보겠어요? 그러니까 커피를 타서 들어갈 때에 얼굴이라도 익히고 인사라도 나누라고 하는, 이 또한 매우 깊은 뜻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도대체 날 뭘로 보기에 이런 잡일이나 시키는 거야, 나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내가 이런 일이나 하려고 여기 들어온 줄 알아? 내가 이래뵈도 말이야……. 이렇게 불만이나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들이 시키는 일들을 이런 불만 저런 핑계를 대면서 요리 빼고 조리 빼고 했으면, 그는 사자나 곰을 상대할 힘이나 능력도 기르지 못했을 것이요, 골리앗도 물리치지 못했을 것이요, 장차 이스라엘 왕이 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걸 거꾸로 생각하면 어떻게 되요? 형들이 귀찮아 했던 그 일들은 바로 이스라엘 왕이 되기 위한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형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하면, 내가 그 일을 함으로써 이스라엘 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설마 막내한테 일을 떠맡겨겠어요? 아니요,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무런 불만 없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구약의 요셉은 어떻습니까. 노예로 팔려서 애굽으로 가는 길이 장차 나이 서른에 애굽의 총리가 되는 길이었다고 생각했다면 형들이 요셉을 팔았겠습니까? 아니요, 어쩌면 내가 먼저 노예로 팔려가겠다, 아니, 내가 가겠다, 이러면서 싸움이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형들을 원망했다는 기록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은 어땠습니까.

창세기 12장 10절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さて、この地にはききんがあったので、アブラムはエジプトのほうにしばらく滞在するために、下って行った。この地のききんは激しかったからである。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는 가나안 땅에 도달했으면 이를 믿고 거기 있어야죠. 기근이 들었다고, 조금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갑니까. 성경에서 애굽은 단지 그 나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말합니다.

이사야 31장 3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エジプト人は人間であって神ではなく、彼らの馬も、肉であって霊ではない。主が御手を伸ばすと、助ける者はつまずき、助けられる者は倒れて、みな共に滅 び果てる。

그러니까, 가나안 땅을 버리고 애굽을 의지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약속을 버리고 세상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잘 살게 되었나요? 아니요. 하마터면 자기 부인을 빼앗길 위기에 처해지고, 세상적으로도 수치를 단단히 겪고 또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사랑하세요. 예,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의 목숨까지도 우리를 위해서 내주셨을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이는 과거가 아닙니다. 사랑하셨습니다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무런 이유 없이 심심풀이로 우리에게 고난과 고통을 주시겠습니까. 아니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 고통과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고난과 역경은 바로 믿음 안에서 우리를 이스라엘 왕 다윗으로 만드시기 위한 과정, 믿음 안에서 우리를 애굽의 총리 요셉으로 만드시기 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あなたがたのあった試練はみな人の知らないようなものではありません。神は真実な方ですから、あなたがたを耐えることのできないような試練に会わせるようなことはなさいません。むしろ、耐えることのできるように、試練とともに、脱出の道も備えてくださいます。

우리가 고민하고 힘들어 할 때, 우리 주위에 아무도 내 어려움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내 가족도 내 친구도 내 이웃도 내 고난에 대해서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요.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되잖아요. 그리고 피할 길을 내어 감당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욥기 23장 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しかし、神は、私の行く道を知っておられる。神は私を調べられる。私は金のように、出て来る。

광야에서 모세 뒤를 따라 애굽을 빠져 나온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이었습니까. 무슨 일이 닥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뭐예요?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民はモーセにつぶやいて、
民はモーセにつぶやいて、

결국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 기껏 노예로 살던 애굽에서는 해방되었으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구경도 못해보고 광야에서 다 죽어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막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안에 있는 원망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원망, 이것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앞당기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아침에도 감사, 밤에도 감사, 잘 될 때도 감사, 잘 안 될 때도, 그 때는 결국은 잘 될 거니까 감사……. 내 마음과 내 입에서 감사와 순종과 찬송이 넘쳐나면 축복이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옆집에 갈 축복도 나한테 쏟아집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믿으시나요? 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순종함으로 감사함으로 따를 때 놀라운 축복이 쏟아집니다. 요셉한테 임했던 축복, 다윗한테 임했던 축복이 쏟아질 줄 믿습니다.

잊지 맙시다. 우리는 결국은 잘 됩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을 의지하듯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와 넘치는 순종과 넘치는 찬양을 드릴 때, 넘치는 축복과 넘치는 은혜를 폭포수처럼 받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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