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예수님을 만나면 변합니다
2017년 1월 15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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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5장 25절~34절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면 변합니다”イエス様に逢うと変わりま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12년 동안을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이 예수님에게 손을 대었더니 곧바로 병이 나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나고 병을 치료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만, 오늘은 이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어 치료 받은 여인을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이 여인이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 나이가 젊은지 많은지, 이름이 무엇인지조차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이름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사람이 어디 사랑인지, 그 사람이 몇 살이나 먹었는지 정도는 금방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갈 텐데, 그에 대한 기록은 없고, 오히려 금방 봐서는 잘 알 수 없는 정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이 여인에 대해서 12년 동안을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 그러나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인이라고 소개됩니다. 성도 없고 이름도 없고 단지 이 짧막한 설명이 이 여인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이 여인을 설명하는 데에 부족한가요? 아니요, 이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여인은 12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이 혈루증이라고 하는 질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혈루증은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부인병이고, 월경이 아닌데도 계속해서 출혈이 있는 질병입니다. 그런데 이 질병은 여느 질병과 달리 특별합니다. 그 이유는, 이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이른바 부정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는, 쉽게 말하자면 차별대상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질병, 즉 팔이 아프거나 다리가 아프거나, 앞을 보지 못하거나 일어서지 못 하거나 하는 질병이나 장애는, 물론 일상생활에는 매우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부정하다>는 말을 듣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혈루증, 구약에서는 유출병이라고 하는데 레위기 15장에 보면 율법적으로 이 질병은 부정하다고 되어 있어, 이는 마치 나병처럼 이에 대한 세부적인 규례가 적혀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를 쉽게 말하자면 이 질병을 앓는 환자는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설 수도 없고 가까이 가서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33절에 보면,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女は恐れおののき、自分の身に起こった事を知り、イエスの前に出てひれ伏し、イエスに真実を余すところなく打ち明けた。

라고 되어 있는데, 여인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두려워했다는 이유는, 사람들 앞에 나와서는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실이 탄로났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성경에 치료 받은 사람들은 많지만, 이 여인처럼, 인간적으로 보자면, 예수님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 치료 받은 사람은 아마 이 여인이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성경에는 이 여인이 예수님께 손을 댄 이유가, 28절에 보면,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お着物にさわることでもできれば、きっと直る。」と考えていたからである。


즉, 다른 건 모릅니다.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지금 부정한 몸인데, 그래도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것은 하나도 알지 못했지만, 단 하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저 예수님한테 가서, 예수님 옷자락에 손이라도 댈 수 있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나음을 입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어떻게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어려움 가운데에 처해 있을 때, 죄악에 빠져 허덕이고 있을 때, 네가 네 어려움을 다 해결하고 오라? 아니면 네가 네 힘으로 네 죄를 다 해결하고, 그리고 나서 깨끗하게 된 다음 내게로 오라? 그것도 아니면 너 혼자서는 능력이 안 되니까, 내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한테 부탁해서 같이 오라?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すべて、疲れた人、重荷を負っている人は、わたしのところに来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休ませてあげます。

예수님한테 오는 사람은 조건이 없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돈이 많은 사람, 없는 사람, 남녀노소, 누구든지 오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거룩한 척, 아무리 깨끗한 척을 해봐야 우리 모두는 다 같은 죄인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죄 가운데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지금 물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세상 법적으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을 그냥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구, 쯧쯧. 그러길래 미리 수영을 배워놓지 그랬어. 그리고 아무 일도 안 하고 보고만 있었어요. 살려주고 싶어도 내가 수영을 못해요?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건 아니죠. 옆에 튜브든지 끄나풀이든지 있으면 던져줄 수도 있고, 그것도 없다면 119로 전화를 한다거나, 주변에 도움을 줄만한 사람을 찾아나선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아무것도 안 하다가 그 사람이 죽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래요. 난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요. 그 사람을 죽으라고 무엇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형법상 부작위에 의한 고의라고 해서 살인죄로 처벌 받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 가운데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람한테, 넌 예수 믿을 준비가 아직 덜 됐으니까 나중에 믿으라고 해요? 너 같이 맨날 나쁜 짓만 하는 사람은 예수 믿을 자격이 없다고 해요? 아니면, 교회에 바칠 헌금이 없다고 해서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해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더러 뭐라고 하겠습니까. 역시 똑같이 벌을 받게 되겠지요.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데에는 준비가 필요 없습니다. 지금 그냥 있는 그대로 예수님 앞에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 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체면이고 율법이고 간에 이것저것 안 가리고 무조건 예수님한테 갔습니다. 그녀한테 있었던 것은 단 한 가지. 예수님한테만 가면, 예수님의 그 옷자락만 잡더라도 내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만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어떻게 해서 이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여인의 과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5절과 26절을 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ところで、十二年 の間長血(ながち)をわずらっている女がいた。この女は多くの医者からひどいめに会わされて、自分の持ち物をみな使い果たしてしまったが、何のかいもなく、かえって悪くなる一方であった。

12년을 혈루증을 앓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더구나 그 당시는 지금처럼 위생용품도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출혈이 심하니까 몸도 마음도 쇠약해지고,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용하다는 의사가 있으면 거기 가서 비싼 돈을 들이고 치료를 받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죠? 그 치료 받는 것은 그럼 쉽습니까. 무슨 조직검사다 무슨 검사다, 이런 치료다, 저런 치료다, 이런 약이다 저런 약이다……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해보신 분이라면, 돈도 돈이지만 그 치료과정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정말 그런 일을 12주나 12개월도 아닌 12년이나 해왔다니, 벌써 그 여인의 상태가 어땠겠습니까.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재산까지도 탕진했는데, 병이 낫기는커녕 도리어 더 중해졌다고 합니다.
그 여인한테는 이제 꿈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어. 그런데 이제 기력도 없고 돈도 없고, 소망까지 없으니 어떻게 살아갈까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바로 그때,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어. 그래도 안 되더라…이겁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한테 가면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던 그녀에게 비로소 희망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로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힘 센 남자들도 있었겠지요. 젊은 사람들도 많았겠지요. 그런데 그 사이를 이제 몸도 마음도 쇠약해진 한 여인이 뚫고 들어간다는 것이 어디 쉬웠겠습니까.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제 희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이제 체면이나 율법이나 이 세상 의사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예수, 오직 예수, 그녀에게는 예수님만이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무리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오직 예수님만이 보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았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 많은 인파들 사이를 뚫고 손을 뻗습니다. 죽을 힘을 다 해서 뻗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5미터, 4미터, 조금만, 조금만 더, 하지만 많은 무리들 때문에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립니다. 하혈이 심했던 그녀한테서는 불결한 냄새가 났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무리 바깥으로 내칠지도 모른다는 위험도 있었습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도 찢어지고 신발도 벗겨졌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안간 힘을 다 해서 손을 뻗습니다.
3미터, 2미터, 1미터.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습니다. 그 순간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 29절,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すると、すぐに、血の源がかれて、ひどい痛みが直ったことを、からだに感じた。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이 닿는 순간 <곧> 질병이 나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손을 뻗고 3미터일 때까지, 2미터일 때까지, 1미터일 때까지 아무 일도 안 일어났습니다. 조금씩 나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마침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이 닿았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이 여인은 이제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떤 변화일까요.

이 변화를 다음 3가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첫째는, 당연히 건강상의 변화입니다. 12년 동안 그녀를 괴롭혀 왔던 질병으로부터 나음을 받았습니다. 해방되었습니다. 그녀는 건강,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건강이라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혈루증이 나은 그녀는 기력이 회복됩니다. 힘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제 세상을 살아가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직전과 만나고 난 직후는 완전히 다른 삶입니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녀가 아니라 이제 새로운 꿈,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펼치는 인생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둘째는, 경제적인 변화입니다. 하루 이틀도 아닌 12년을 질병의 치료에 매달렸습니다. 그녀가 전에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능력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더 이상 남은 돈도 없습니다. 모두를 탕진했습니다. 그 동안 어떤 수입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그야말로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질병이 나았습니다. 치료 받았습니다. 더 이상 병원비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경제적으로 안정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사회적인 변화입니다. 우리 속담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합니다만, 12년 동안 앓아오는 과정에서 그녀 주변에서는 가족도 떠나도 친구도 떠나고, 그리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혈루증을 앓고 있는 것은 율법적으로 부정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소외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그 지긋지긋한 질병이 치료되고, 지긋지긋한 문제에서 해방되어, 이제는 당당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유인으로서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다니면 사람들이 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 예수를 만나야 한다, 예수를 만나야지만 된다……이런 말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예수님을 만나요? 그건 뭐,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얼굴도 마주보고, 대화도 하고, 그래야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건가요? 그렇다면 전 예수님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저는 아직까지 직접 본 적이 없어요.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가 이 눈으로 얼굴을 보고 말을 하고……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는 내가 꿈에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과 말을 했다, 그런 분들도 계십니다만, 그런데 막상 그 사람의 삶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예수님을 만나면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 삶이 변화됩니다. 우리 삶이 변화되었다면 그것은 누가 먼저 알아요? 나 자신이요? 아니요, 내 주변 사람들이 제일 먼저 알아봅니다.

제가 한국에서 일본 대학 시험 보는 아이들을 가르쳤을 때의 일입니다만, 그 중 한 학생이 있었는데. 얘가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맨날 까불고 그러는 애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친구들이랑도 야, 누구누구야 하면서 맨날 장난도 치고 그랬던 애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한테는 얼마나 귀찮게 하는지, 맨날 얼굴만 보면 선생님~ 이러고 와서 이런저런 질문을 해요.

하도 그러다보니까 어떤 선생님은 이 아이만 보면 도망가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이, 그렇다고 정말로 도망간게 아니라 그냥 장난으로 도망가는 척도 하고 그랬던 것입니다.
유학시험의 경우에는 각 대학마다 시험날짜도 다르고 해서 발표날짜도 다 제각각이에요. 얘는 실력도 되는 아이였기 때문에 케이오대학을 쳤어요. 그것도 경제학부입니다. 케이오대학에서 대표적인 과가 문과에서는 법학부랑 경제학부거든요.
그런데 발표날 얘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뭐, 예상은 했었습니다만, 딱 붙은 거예요. 그러니까 저도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본인도 기뻐하고 부모님도 기뻐했겠지요. 그리고 다음 날 학원에 왔습니다. 제 교실에 들어왔어요. 옷차림도 원래 입던 그대로, 얼굴 인상도 당연히 그대로, 눈으로 보기에는 바뀐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얘가 들어오면 교실에 있던 친구들이 서로 누구누구야, 뭐,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하고 그랬을 텐데, 합격자 발표가 난 다음 날에는 이미 학원에 소문이 다 났겠죠? 그러니까, 얘가 교실 문을 딱 열고 들어와요. 그러니까 다른 아이들이 얘를 보고, 딱 한 마디 “와……”하더라구요.

그렇죠. 이제 걔는 수험생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얘가 삼수를 했는데, 이제 얘는 더 이상 삼수생이 아니라, 뭐예요? 케이오대 합격생이었던 것입니다.
본인은 잘 모르지만, 이미 주변에서 그 아이를, 칙칙한 별볼 일 없는 삼수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당당한 케이오대 합격생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5년 10년 교회에 다닌다고 하는 사람이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차이가 없어요? 건강상의 변화도 경제적인 변화도, 사회적인 변화도 없어요? 기도 응답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내 주변에서 아무도 나를 보고 바뀌지 않았대요? 아무도 나를 예수 믿은 사람으로 알아보지 않아요?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기도할 때 주님 나를 만나주소서, 가 아닙니다. 내가 가만히 앉아서 주님더러 이리 오시라고 해요? 그게 아니라, 내가 가야죠. 오늘 이 혈루증을 앓던 여인처럼 주님께로 가야지요. 어떻게 가요? 점잔 빼고 가나요? 아니요, 영적으로 물불 안 가리고, 그야말로 기를 쓰고 가야합니다. 그러면 변화 받습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치료 받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에게 소망이 생깁니다. 희망이 생깁니다. 힘이 생깁니다. 꿈이 생깁니다. 우리 삶이 변화됩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안 시켜도 기도합니다. 누가 안 시켜도 전도합니다. 누가 안 시켜도 간증합니다. 누가 안 시켜도 기뻐합니다. 누가 안 시켜도 찬양합니다. 누가 안 시켜도 봉사합니다.
이렇게 되면 어디 감히 사탄이 틈을 타겠습니까. 어디 감이 죄가 들어오겠습니까. 어디 마귀가 기웃거리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변화 받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축복 받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은혜가 충만해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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