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회 하나님께 바치는 온전한 마음
2017년 2월 19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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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8장 61절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께 바치는 온전한 마음”神様に捧げるまことなる心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서로 관련이 있는 두 가지 사건에 대해서 잠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사건은 작년 2016년 1월 17일 밤 10시경에 경북 김천시에 있는 어느 불교 사찰에서 발생했습니다. 나이가 60대인 기독교인이 몽둥이를 들고 침입해서 법당과 시설들을 부쉈다는 것입니다. 그는 20분 후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교회에 다녀보니까 절과 성당은 미신이고 우상이다. 다 부숴야 한다. 나는 기독교 신자로서 할 일 했을 뿐이다. 불을 지르려고 했는데 못 질렀다”
이것이 첫 번째 사건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은, 바로 며칠 전인 2017년 2월 17일에 있었던 일인데, 어느 신학대학에서 신학과 교수님 한 사람을 파면조치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그 교수님은 바로 작년 경북 김천시에 있는 절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돕고자 해서 모금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금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한 신문에 게재된 내용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 사찰 불자님들에게 위로가 될까 고민하던 중 우리의 정성을 모아 법당회복을 위한 헌금을 그들에게 전달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얼마나 큰 힘이 될지, 그리고 그것으로 그리스도교인인 우리가 지은 잘못을 용서받을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로 미안한 마음과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저부터 실천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교수님은 본인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서 모금운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를 문제 삼은 것이 해당 신학대학이 속한 교단이었습니다. 교단 측 협의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신학대학 교수님이 앞장서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에 불상회복건립에 대한 것을 모금을 한다는 사실은 신앙양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는 그 일이 마치 한국교회 전체가 잘못한 것처럼 인정하고 앞장서서 의를 이루는 것 같은 모습을 손원영 교수님이 보였다는 사실에 대단히 의구심을 갖고 있다”

결국 해당 신학대학은 이사회를 열어서 이 모금운동을 벌인 교수님에 대해 파면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이 두 사건에 대해서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먼저 첫 번째 사건, 60대 기독교인이 사찰에 들어가서 법당을 훼손하고 기물을 부순 것은 잘한 일입니까, 아니면 잘못된 일입니까.
그리고 두 번째 사건, 기독교인이 저지른 이와 같은 행위에 대해, 한 기독교인으로서 사죄하고 위로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에 <불당회복모금>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통장을 만들고 모금운동을 한 신학대학 교수님의 행위는 잘한 일입니까, 아니면 잘못된 일입니까.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법대에 다니면 이런 수업을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서 갑이 을에게 어떻게 하고, 여기에 병과 정이 어떻게 했는데, 이 때 갑의 죄책은 무엇인가. 뭐 이런 식입니다. 이번 일에 대해서 우리는 판사로서가 아닌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두 번째 사건에 대해서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이 신학대학 교수님의 입장이 되어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어느 같은 기독교인이, 그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걸고 다른 종교시설에 침입해서 기물을 파괴하는 사건을 저질렀으니,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매우 송구스럽다. 본래 기독교의 취지는 그런 게 아닌데……오히려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자칫 기독교 사상이 왜곡될 수도 있겠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래, 이와 같은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종교를 초월해서 모금운동을 해보자. 그렇게 된다면 서로 종교 간에 생길 수도 있는 갈등도 해소될 것이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이 신학교 교수님이 여러분 앞에 와서 이렇게 해명을 해요. “내가 모금을 한 것이 무슨 불교를 믿자고 한 것이냐. 같은 기독교인이 잘못했으니까 이를 반성하고 상대방을 위로해주기 위해서 한 것일 뿐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했다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페이스북에 보니까 대체적으로 이 교수님이 한 일에 대해서 지지하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 신학대학에서 내린 파면이라는 조치가 부당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단순한 기독교 교인만이 아니라 여기에는 교역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교수님의 말을 들어보면 대단히 그럴듯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기독교인이 나쁜 일을 저질렀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같은 교회나 기독교인이 상대방에게 사과할 수도 있고, 피해가 있었다면 이를 복구하는 데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모금도 하고 그랬다면, 이는 충분히 미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볼 때 문제는 그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성경을 잠시 살펴봅니다.

열왕기상 15장 11절~15절,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アサは父ダビデのように、主の目にかなうことを行なった。
彼は神殿男娼を国から追放し、先祖たちが造った偶像をことごとく取り除いた。
彼はまた、彼の母マアカがアシェラのために憎むべき像を造ったので、彼女を王母の位から退けた。アサはその憎むべき像を切り倒し、これをキデロン川で焼いた。
高き所は取り除かれなかったが、アサの心は一生涯、主と全く一つになっていた。
彼は、彼の父が聖別した物と、彼が聖別した物、すなわち、銀、金、器類を、主の宮に運び入れた。

이 아사 왕은 유다 왕 중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왕이었습니다. 그는 남색하는 자, 즉 동성애자를 몰아내고, 조상들이 숭배하던 악습의 근원인 모든 우상을 없앴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신 어머니가 우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그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서 없앴다고 합니다. 이 말만 들으면 이처럼 불효자도 없을 텐데도 성경은 이를 두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 아사의 마음이 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했다”고 기록합니다.


또한 열왕기하 10장 23절~27절,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더불어 바알의 신당에 들어가서 바알을 섬기는 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살펴보아 바알을 섬기는 자들만 여기 있게 하고 여호와의 종은 하나도 여기 너희 중에 있지 못하게 하라 하고 무리가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려고 들어간 때에 예후가 팔십 명을 밖에 두며 이르되 내가 너희 손에 넘겨 주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도망하게 하는 자는 자기의 생명으로 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하리라 하니라 번제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가 호위병과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들어가서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 하매 호위병과 지휘관들이 칼로 그들을 죽여 밖에 던지고 바알의 신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신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신당을 헐어서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エフーとレカブの子ヨナダブは、バアルの宮にはいり、バアルの信者たちに言った。「よく捜して見て、ここに、あなたがたといっしょに、主のしもべたちがひとりもいないようにし、ただ、バアルの信者たちだけがいるようにしなさい。」こうして、彼らはいけにえと、全焼のいけにえをささげる準備をした。エフーは八十人の者を宮の外に配置して言った。「私があなたがたの手に渡す者をひとりでものがす者があれば、そのいのちを、のがれた者のいのちに代える。」全焼のいけにえをささげ終わったとき、エフーは近衛兵と侍従たちに言った。「はいって行って、彼らを打ち 取 れ。ひとりも外に出すな。」そこで、近衛兵と侍従たちは剣の刃で彼らを打ち、これを外に投げ捨て、バアルの宮の奥の間にまで踏み込んだ。そしてバアルの宮の石の柱を運び出して、これを焼き、バアルの石の柱をこわし、バアルの宮もこわし、これを 公衆便所とした。それは今日まで残っている。

여호사밧의 아들인 예후는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서 바알을 숭배하는 이들을 멸하고 바알의 목상을 불살랐으며, 바알의 신당을 변소로 만들었다고 기록합니다.


사사기 6장을 봅니다. 사사기 6장 25절과 26절,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에 대해서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7년간을 미디안에게 지배를 당하게 만드셨더니, 이제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를 불쌍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을 세우시고 미디안의 손에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게 하시는데, 이 일을 행하시기에 앞서서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에게 우상을 제거할 것을 명하십니다. 그것도 멀리 있는 우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아버지한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순종한 그는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게 되고, 끝내는 미디안을 몰아내어 40년 동안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만, 절에 있는 불상은 우상입니다. 거기에 대고 절을 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리아상을 만들어놓고 절을 하는 것도 우상숭배요, 하물며 예수님이라고 하면서 동상이나 석고상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절하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이 교수님의 이력을 보니 한국에서 좋은 대학도 나왔고 미국에서도 훌륭한 대학에서 유학을 했습니다만, 그와 같은 훌륭한 지식이 있다면 그 정도는 아실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그 신학교 교수님 말에 의하면 헐어버린 우상을 복구하기 위해 모금을 해서 그 우상을 건립하는 데에 도움을 주려고 했다는 것인데,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면, 그 분은 앞서 살펴본 성경 구절을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그럼 어떤 분은 이렇게 되물을지도 모르지요.

“이봐 홍 목사. 그럼 당신은 절에 들어가서 거기 기물을 부수고 그러자는 것이냐.”

여기에 대한 저의 답변은 명확합니다. 종교시설이냐 아니나를 떠나서, 무단으로 침입하여 그 시설이나 건물 내에 있는 물건들을 훼손하거나 하면 이는 분명 무단침입과 기물손괴라고 하는 불법행위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 말씀처럼 사회법 위에 제사법이 있다? 그러면서 세상법은 따를 필요가 없다? 그것은 아니죠. 만약에 세상 법이 기독교를 억압하고 탄압한다면 이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이 법을 준수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일 것입니다. 아무리 다른 종교라고 하더라도 불법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은 법치국가에서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는 우상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성경에 적힌 말씀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요, 그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이 성경 기록입니다. 그것이 어디 한 두 군데 기록되어 있나요. 성경에는 수도 없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と並べて、銀の神々を造ってはならない。また、あなたがた自身のために金の神々も造ってはならない。

출애굽기 22장 20절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

ただ主ひとりのほかに、ほかの神々にいけにえをささげる者は、聖絶しなければならない。

신명기 4장 35절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あなたにこのことが示されたのは、主だけが神であって、ほかには神はないことを、あなたが知るためであった。

신명기 5장 7절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あなたには、わたしのほかに、ほかの神々があってはならない。


신명기 6장 14절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ほかの神々、あなたがたの回りにいる国々の民の神に従ってはならない。

이사야 45장 21절
“너희는 알리며 진술하고 또 함께 의논하여 보라 이 일을 옛부터 듣게 한 자가 누구냐 이전부터 그것을 알게 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告げよ。証拠を出せ。共に相談せよ。だれが、これを昔から聞かせ、以前からこれを告げたのか。わたし、主ではなかったか。わたしのほかに神はいない。正義の神、救い主、わたしをおいてほかにはいない。

호세아 13장 4절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しかし、わたしは、エジプトの国にいたときから、あなたの神、主である。あなたはわたしのほかに神を知らない。わたしのほかに救う者はいない。


요엘 2장 27절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あなたがたは、イスラエルの真ん中にわたしがいることを知り、わたしがあなたがたの神、主であり、ほかにはないことを知る。わたしの民は永遠に恥を見ることはない。

부족합니까? 얼마나 더 기록되어야 하겠습니까. 진정한 하나님, 이 세상의 신 중의 신이요 왕 중의 왕인 하나님은 우리가 믿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또 하나 어려운 질문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그렇다면 다른 종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그것들은 모두 우상이니까 우리 손으로 다 없애버려야 한다? 만약에 그렇다면 앞서 살펴본, 절에 들어가서 난동을 부린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종교를 존중해야 합니까? 만약에 다른 종교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믿는 우상을 우리가 신으로 인정한다는 것이 되고 맙니다.

혹시 여러분께서는 종교다원주의라는 말씀을 들어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종교다원주의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모든 종교는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종교를 믿더라도 열심히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깊이 생각을 하지 않고 이 말을 듣는다면 어떻습니까. 그래. 뭐, 어디 종교가 다 나쁜 짓 하라는 종교가 있나, 다 좋은 거 아니야? 욕심 부리지 말고,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라고 하는 게 종교잖아? 그렇게 살면 나중에 죽어서 천국에도 가고 극락에도 가고, 그러면 되는 거잖아? 뭐 꼭 교회에만 가야 하나? 꼭 예수님만 믿어야 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나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성경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わたし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いのちなのです。わたしを通してでなければ、だれひとり父のみもとに来ることはありません。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참된 구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아버지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 하나님께로 이어지는 길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1절~12절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あなたがた家を建てる者たちに捨てられた石が、礎の石となった。』というのはこの方のことです。この方以外には、だれによっても救いはありません。世界中 でこの御名のほかには、私たちが救われるべき名としては、どのような名も、人間に与えられていないからです。」

예수님 외에 다른 길이 없어요. 구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라는 길을 통해서만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A가 진리라고 하면 A 외에 다른 정답은 없다는 뜻입니다. 오직 정답은 A 뿐이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우리 앞에는 두 가지 목적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이냐 사망이냐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この方にいのちがあった。このいのちは人の光であった。

우리가 가야 할 길,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바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으로 이르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으로 이르는 다른 정답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생명을 얻을 방법은 없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만이 구원으로 이르는 유일한 길이요,
예수 그리스도 만이 구원으로 이르는 유일한 정답이요,
예수 그리스도 만이 생명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이렇게 되면 어떤 분은 이러실지도 모릅니다. 그럼 어쩌라는 거야? 다른 존중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우리는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를 존중해요? 만약에 다른 종교를 존중한다면 그들이 섬기는 신에 대해 절을 하고 그 신 또한 하나님과 동등한 신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됩니다. 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요? 그것은 바로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그 사람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사람들도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 받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에게로 돌아오기를 주님께서는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가복음 16장 15절,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それから、イエスは彼らにこう言われた。「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福音を宣べ伝えなさい。

예수님께서는 온 천하에 다니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분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만민>에 포함되지 않나요? 아니요, 당연히 그분들도 만민입니다. 그 분들에게도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막무가내로 다른 종교시설에 들어가서 성경을 외우고 억지로 교회에 끌어오고……그것이 진정한 복음전파인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우리의 그런 모습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의 ‘이웃’이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아닌,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까지도 모두가 포함됩니다. 우리가 그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서, 우리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 사람이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겠습니까. 어떻게 우리의 말에 마음을 열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상 8장 61절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

あなたがたは、私たちの神、主と心を全く一つにし、主のおきてに歩み、今日のように、主の命令を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어떻게 바치래요? 예, 온전히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전하게 바쳐서 완전하게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놀이공원 입장료가 10,000원이었다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거기 들어가기 위해서는 10,000원을 내야 되겠지요? 그래야 합법적으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돈을 안 내고 들어갔어요. 그럼 어떻게 되죠? 예, 당연히 붙잡히죠. 그리고 밖으로 쫓겨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5,000원만 냈어요. 그럼 어떻게 되요? 절반만 냈으니 절반만 즐길 수 있다? 아니요, 입장료는 10,000원인데 5,000원만 냈다고 들여보내 주나요. 역시 붙잡히고 쫓겨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9,000원만 냈다면요?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9,999원만 냈다면요? 글쎄요 실제로는 뭐, 그 정도 냈다고 하면 인정상 봐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예를 들어서 기계로 입장권을 구입한다면, 10,000원을 넣어야 입장권이 나오는데 9,999원을 넣었다면 어떻게 되요? 불과 1원이 부족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역시 돈을 하나도 안 넣었을 때처럼 표는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50%나 90%, 나아가 99.999%를 바친다 해도 부족합니다. 온전히 100% 모두를 바쳐야 합니다. 그래야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도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열왕기상 15장 에서 남색하는 자, 즉 동성애자들을 쫓아냈다고 합니다만, 동성애자들도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동성애를 동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자는 것이 우리도 다른 종교를 섬기자는 것이 아닌 것처럼, 동성애자들을 존중한다는 것이 동성애에 동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분들을 존중해주고 주님의 사랑으로 보듬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진정으로 그분들의 마음이 열리고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을 믿습니다.
참고로 앞서 말씀 드렸던 신학교 교수님이 불상회복건립기금을 모금 했는데, 그 결과 100여명으로부터 총 267만원을 모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돈을 그 절의 주지스님한테 전달하려고 했더니, 그 기독교 성금 받기를 사양했다고 합니다.
그 주지스님의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신교를 비롯해 기독교계에서 우리 절을 돕겠다고 성금 모금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다. (우리 절이 기독교계로부터) 돈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저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이고 우상이고를 떠나서 자신이 믿고 있는, 자신이 갖고 있는 신앙에 대한 확고함이 신학교 교수님과 주지스님과 어느 쪽이 강합니까.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한 이유는, 그렇다고 어느 누구를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믿음에 대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일들이 아닐까, 정말 이 시점이야말로 우리 스스로의 자성이 필요하고,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정말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예수님이라는 반석 위에 굳건히 세우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구원에 이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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