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회 부활하신 예수님
2017년 4월 16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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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Last Update 2019. 5. 21

요한복음 20장 24절~27절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가 보지는 못했지만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에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모진 고통과 수모를 당하시고는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 처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모습은 그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쌍하게 보이려고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려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 모습은 무엇으로도 씻어낼 수 없는, 해결할 수 없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는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다면 그 죄의 무게에 따라서 누구는 벌금형, 누구는 징역형이라는 것이 있지요. 똑 같은 벌금형이라 하더라도 그 죄의 무게에 따라 액수가 바뀝니다. 징역형도 마찬가지죠. 징역 몇 개월부터 길게는 30년, 또는 무기징역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우리의 죄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600개가 넘는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합니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그 600개가 넘는 율법 중에서 하나라도 어기면 안 됩니다. 모두를 완벽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600개는 고사하고 십계명조차도 지키기 어려운 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인 것입니다. 아니, 십계명 중에서 열 개는 고사하고 그 중 한 개라도 완벽하게 지킬 수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십계명 중 제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그래, 내가 여러 죄는 졌지만 그래도 살인하지는 않았어.” 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21절~22절 말씀입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라가>라는 말은 속이 비었다. 즉 어리석다는 뜻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상대방에게 심한 모멸감을 주는 욕설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한테 심한 욕설을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욕설까지는 아니더라도 형제에게 화를 낸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에 그런 적이 있으셨다면 그건 이미 살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이 율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겉으로는 아무리 거룩한 척, 점잖은 척을 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8장 17절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니까 우리는 율법을 어긴 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율법을 어긴 죄값은 사망입니다. 저주를 받은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 저주를 받은 자는 어떻게 하라고 성경에 기록합니까.
신명기 21장 23절 후반부를 봅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저주를 받은 자는 나무에 매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 보면 여러 사람들이 나무에 매달려 죽어갔습니다. 우리의 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을 어긴 우리는 저주를 받은 죄인이기 때문에 고통과 수모를 당하고 나무에 달려 사망에 이르러야 마땅한 존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바로 예수님께서 모두 대신 받아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이미 2천년 전에 모두 대신 받아주시고,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는 죽음에서 구원으로 옮겨진 바가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는 이를 상징으로서 제사를 드렸는데, 그 제사는 양이나 염소 등을 나를 대신해서 죽이고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안 계셨다면 우리는 지금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면서 양이나 염소 등의 제물을 하나님께 바쳐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을 봅니다. 히브리서 10장 10절,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과거에는 아무리 짐승들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완전한 제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흠 없는 어린양으로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죽어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완전한 제사가 드려졌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우리는 불완전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지고, 오직 그 이름을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해졌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그러면 된 것 아니겠어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 다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사역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가장 큰 명절이 유월절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시고 애굽으로 보내서 이적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타난 이적이 바로 애굽의 첫째 아들의 사망입니다. 그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짐승들의 처음 난 새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인방과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은 죽음의 영이 지나갔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날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신약시대, 성령님의 시대에 가장 큰 명절은 바로 오늘 부활절입니다.
물론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도 우리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큰 사건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성경을 논할 수 없고, 십자가 없이는 우리의 대속을 논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을 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땅에 묻히셨다면, 만약에 그랬다면 이는 아무리 하나님의 독생자가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셨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식사를 하러 뷔페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이것도 먹고 저것도 마시고 했습니다. 뷔페니까 아무리 많이 시켜도 괜찮아요. 사람들은 그곳이 천국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자,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가려고 하니까 계산서를 가져다 줍니다. 그런데 그 계산서에 보니까 얼마가 적혀 있었어요? 얼마라고 할까요? 예, 100억 원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 보세요. 지금 무슨 장난하십니까? 식당 사장을 부릅니다. 이게 뭐 잘못된 거 아니냐. 아니, 1~2만원도 아니고 100억이라니?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있냐. 하지만 사장님은 담담하게 말합니다. 거기 안내판을 보세요. 여기 뷔페식당은 100억 원입니다. 아니, 난 그렇게 많이 안 먹었다니까……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뷔페식당은 많이 먹으나 적게 먹으나 가격이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예, 그 돈을 내야죠. 하지만 혹시 여기에 100억 현찰 가지고 계신 분들 계신가요? 그런 분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은 그 순간 자신이 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바로 심판의 때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 사람이 자신이 먹고 마신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면, 이 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항상 100억원 정도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무 것도 먹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어떻게 항상 100억 원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있겠으며, 또한 이 세상에 어떻게 해서 하나도 안 먹고 다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카드요? 그런 것 안 받습니다.
식당 사장님은 지금 당장 100억 원을 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찰에 넘기겠다고 해요. 이제 큰일 났습니다. 즐겁게 먹고 마실 때까지는 좋았지만 이렇게 될 줄을 몰랐어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한테 도움을 청합니다. 예수님,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저, 돈 없어요. 그리고 경찰한테 잡혀가기도 원하지 않습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그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팔고, 그뿐만 아니라 내 목숨까지 팔아서 네가 빚진 돈을 갚아주겠다고 하시면서, 정말로 주께서 징계를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 식당에서 나올 수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아직이에요. 왜냐하면 식당 사장님이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서 우리의 빚이 모두 탕감되었다고 인정해주어야지만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하더라도 내 빚이 그대로 있고. 내 죄가 여전히 그대로 있다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여전히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가지 문제를 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의인으로 죽으셨습니까, 죄인으로 죽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분명 아무런 죄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죄인, 그것도 아주 철저한 죄인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요한1서 2장 2절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어느 한 두 사람만의 죄가 아닌 온 세상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그 죄가 무겁겠습니까. 그처럼 우리의 죄를 모두 해결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철저한 죄인이 되셔서, 그처럼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끝이 아닙니다. 끝은 무엇인가 하면 이 제사를 받으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빚이 모두 탕감되었고 죄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인정해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인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짊어지시고 우리 모두가 받아야 할 형벌을 그 한 몸에 모두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모두 해결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활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는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빚이 모두 탕감되고 우리의 죄가 모두 사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중요한 사실은 무엇인가 하면, 이는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을 봅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에도 무려 40일 동안이나 사도들에게 보이셨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 앞아 나타나셨을 때, 그때 마침 도마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도들이 도마에게 말합니다. 이봐, 주님이 부활하셨어. 주님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셨다니까.
이렇게 말하자 도마는 뭐라고 말을 하냐 하면 참으로 불손한 말을 합니다. 오늘 말씀 중 25절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5절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참 끔찍한 말을 합니다. 그랬더니 곧바로 예수님이 나타나셨어요? 아니에요. 26절을 보니까 그 후 여드레, 즉 8일이 지나고 난 다음에, 그 때는 도마도 있었는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를 보고 뭐라고 하세요?
요한복음 20장 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참 한 구절 한 구절이 놀랍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보고, 아 참 신기하네~ 라고 끝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먼저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말씀을 듣고 계십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도마가 “내가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본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말을 할 때, 분명 예수님은 그 자리에 안 보이셨지만, 그 말씀을 모두 듣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 눈에 예수님이 보이든 안 보이든 모든 대화를 예수님께서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영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육신을 갖고 나타나셨습니다. 즉, 육신은 그대로 무덤 안에 있고 영만으로 희미하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완벽한 육신을 가지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도마가 예수님의 못 자국을 만질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욱 자세한 부분은 누가복음 24장 38절~39절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만질 수 있는 육신을 가진 채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예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십니다. 오늘 26절에 보면 분명 문이 닫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기 전에는 우리와 똑 같은 3차원이라는 틀에 갇힌 존재이셨습니다만,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육체를 가지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가둬놓은 공간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버리신 존재가 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을 주목해 봅니다. 27절을 다시 봅니다.
요한복음 20장 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이렇게 도마가 매우 불손한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도마를 꾸짖기는커녕 오히려 내 손을 보고, 그리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말씀입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마지막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뭐라고 하세요?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래? 그렇게도 못 믿어져? 그렇다면 내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봐. 괜찮아. 네가 원한다면, 네가 믿기만 하겠다면, 나는 괜찮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그 모진 고통과 수모를 겪고 죽었는데 내가 그 정도 못 해주겠니. 그렇게 해서 안 해보고 안 믿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해보고 믿는 사람이 되라……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한 말씀 한 말씀이 얼마나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넘칩니까.
여러분, 이것을 또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혹시 이런 말을 들으신 적 있으십니까? “안 보고 믿는 믿음이 보고 믿는 믿음보다 크다” 이런 말이 성경에 있습니까? 이런 말을 언제 쓰냐 하면, 아, 나는 예수님을 만나보지 못했어, 예수님한테 기도 응답을 받지 못했어. 뭐, 이런 말을 하면, 그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안 보고 믿는 믿음이 보고 믿는 믿음보다 크다”……그러니까 이 말은 뭐예요? 예수님을 만났건 안 만났건, 기도 응답을 받았건 못 받았건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믿어! 이거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그러셨나요?
이 말과 비슷한 말씀은 성경에 있습니다. 그게 바로 요한복음 20장 29절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이 구절은 역시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인데, 예수님께서 직접 눈앞에 나타나셔서 자, 만져봐. 손가락? 그래 넣어봐. 그러니까 도마가 어떻게 됐겠습니까.
요한복음 20장 28절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완전히 두 손 들었죠. 아니, 예수님이 직접 눈 앞에 나타나셨는데, 어떻게 안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완전히 주님한테 항복선언을 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아까 살펴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으로부터 기도 응답을 받지 말고도 무작정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2천년 전에 직접 우리 육안으로 보지 않고서도 믿은 자들, 그러니까 바로 우리들이 복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8절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냥 믿으라면 믿어!”라고 말씀하셨다면, 왜 예수님께서 오셨겠습니까. 예수님이 오신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직접 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니, 볼 뿐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을 우리도 믿음만 있으면 또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 중에서, “이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나만이 할 수 있어”라고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너희들도 믿음이 있으면 다 할 수 있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이 산도 옮길 수 있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딱 하나 있었죠? 예, 그것은 가장 힘든 것, 가장 고된 것, 우리를 위해서 고통과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 이것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과거에 바리새인들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의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들, 힘든 일들을 강요하면서 자신들은 손 하나 까딱 안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일, 가장 힘든 일을 홀로 모두 다 감당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안 봐도 믿어! 가 아닌, 잘 보고 믿어!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바로 우리가 마지막 날에 부활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십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이 부활이라는 것은 단순히 죽었다가 그대로 살아나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교도소 안에서 죄인으로 죽었는데, 부활해보니 여전히 교도소 안에 갇혀 있어요. 그렇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마지막 날에 예수님의 능력으로 부활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인 것입니다.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모든 근심 걱정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부활이요 진정한 해방인 것입니다.
오늘은 이처럼 놀라운 부활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신 부활절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께서 하나도 남김 없이 대신 짊어지셨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부활에 대한 소망을 품을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조금 힘들면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가 조금 고달프면 어떻습니까. 우리 주님 품에 있기만 합시다. 그리고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럼으로 인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소망을 품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루 하루, 한 순간 한 순간 주어진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고 승리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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