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섬김의 의미
2017년 5월 7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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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8절~44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섬김의 의미”仕えるという意味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 한국은 대통령 선거 때문에 이에 대한 열기가 대단합니다. 제가 지금 한국에 없는데도 그 열기를 알 수 있을 정도이니, 한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정말 만나는 사람마다 선거 이야기, 무슨 말만 나왔다 하면 선거 이야기, TV를 틀면 선거 이야기…어디 그것 뿐이겠어요? 거리에 나가면 여기저기에 선거 포스터가 붙여있을 것이고, 사방에서 유세차량, 선거운동 차량이 오가고 했을 것입니다.
그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당선되면 이것을 이렇게 하겠다. 저것을 저렇게 하겠다…….
그렇게 열심히 외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 바로 자기를 대통령으로 뽑아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것일까요? 그 분들한테 물으면, 아~ 무슨 지금 한국에서는 이러이러한 문제들이 있고, 저러저러한 문제들이 있는데, 내가 당선이 되면 이것을 이렇게 하고 저것을 저렇게 하고……이런 멋진 말씀들을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말합니다. 국민을 섬기겠습니다. 국민을 최고로 섬기겠습니다. 이렇게 목이 터져라 외치고 다닙니다.

성경을 한 번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1절에 보면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あなたがたのうちの一番偉大な者は、あなたがたに仕える人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섬김>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8절~44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目には目で、歯には歯で。』と言われ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悪い者に手向かっ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の右の 頬を打つような者には、左の頬も向けなさい。あなたを告訴して下着を取ろうとする者には、上着 もやりなさい。あなたに一ミリオン行けと強いるような者とは、いっしょに二ミリオン
行きなさい。求める者には与え、借りようとする者は断わらないようにしなさい。『自分の隣人 を愛し、自分の敵を憎め。』と言われ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自分の敵を愛し、迫害する者のために祈りなさい。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섬기는 사람의 참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얼핏 보기에는 각각 서로 다른 상황을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결국은 한 가지 말씀을 하고 계신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38절~39절 말씀부터 볼까요?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目には目で、歯には歯で。』と言われたのを、あなたがたは聞いています。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言います。悪い者に手向かってはいけません。あなたの右の 頬を打つような者には、左の頬も向けなさい。


이 38절 말씀은 출애굽기 21장 23절~25절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しかし、殺傷事故があれば、いのちにはいのちを与えなければならない。目には目。歯には歯。手には手。足には足。やけどにはやけど。傷には傷。打ち傷には打ち傷。

라는 말씀입니다만, 이 말씀을 가끔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니까 율법에서는 내가 당했으면 반드시 복수를 하라……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이해하시는 분이 계신데, 이건 그렇지 않습니다.

레위기 19장 18절에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復讐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国の人々を恨んではならない。あなたの隣人をあなた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わたしは主である。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쪽에서는 복수를 하라고 했다가, 다른 쪽에서는 하지 말라고 했다가 그러는 건가요? 아니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배상책임의 한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손이나 발에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상대방의 생명을 빼앗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서 누가 나한테 100만원어치 피해를 주었다고 하면, 그 사람한테 100만원까지만 피해를 청구해야지, 그 이상으로 청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세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악한 자, 그러니까 나한테 피해를 주는 사람을 대적해서 싸우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요? 누구 좋으라구요? 라고 생각하실지는 모르지만, 성경에 봅니다.


잠언 22장 23절
“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

主が彼らの訴えを弁護し、彼らを奪う者のいのちを奪うからだ。

로마서 12장 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愛する人たち。自分で復讐してはいけません。神の怒りに任せなさい。それは、こう書いてあるからです。「復讐はわたしのすることである。わたしが報いをする、と主は言われる。」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뭐예요? 니가 힘들게 원수 갚을 필요가 없다. 내가 다 알아서 할 거야. 걱정 하지 마…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감사한 말씀입니까.
그리고 39절 후반부,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 あなたの右の頬を打つような者には、左の頬も向けなさい。

여기서는 단순히 뺨을 때린다는 것만을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다. 이 말씀에는 분명히 오른편 뺨을 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욕적인 공격입니다. 보통 오른손잡이인 경우에는 상대방의 왼쪽 뺨을 때리기가 쉽겠지요. 하지만 여기서는 오른쪽 뺨을 친다고 기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오른손잡이가 많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이는 상대방을 손바닥이 아닌 손등으로 가격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신학자는 공격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보다는 상대방에게 보다 큰 심리적인 모욕감을 안겨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이 말씀으로 알 수 있는 점은, 공격력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해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약에 오른손잡이가 상대방의 왼쪽 뺨을 가격했다고 한다면, 물론 손바닥으로 때릴 수도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주먹으로도 때릴 수 있잖아요? 그럼 정말 아프겠죠? 잘못하면 턱이 돌아가거나 어금니가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손등으로 아무리 세게 때려봤자 주먹으로 때리는 것만큼 세게 때릴 수는 없겠지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만약에 누가 나를 주먹으로 치려고 한다거나 몽둥이로 때리려고 해요. 아니면, 좀 무서운 말이지만, 총으로 쏘려고 해요. 그럴 때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이 아니에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되요? 아이, 당장 도망치거나 피하거나 해야죠.
하지만 여기서는 육체적인 통증은 별거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만약에 상대방이 나한테 심한 모욕적인 행동을 할 때, 곧바로 맞대응을 해서 똑같이 굴지 말고, 나는 그 정도 가지고는 끄떡 없어. 그래, 그 정도로 니 직성이 풀린다면 자, 이 쪽도 한 번 더 쳐봐……라고 담대하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40절을 봅니다.

마태복음 5장 40절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あなたを告訴して下着を取ろうとする者には、上着もやりなさい。

이 말을 또 잘못 이해를 하면요, 아니, 누가 달라고 하면 다 줘야 하는 겁니까. 만약에 누가 나한테 내가 타고 있는 차를 달라고 하면 차도 줘야 하고, 집을 달라고 하면 집도 줘야 하는 겁니까……. 하는 분도 계실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본문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읽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해석도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오히려 단순하게 <겉옷>과 <속옷>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그냥 달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나를 고발까지 해가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속옷>을 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세상이 좀 이상해져서 여성의 속옷을 훔치고 그런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당연히 여기서는 그런 뜻이 아니라, 금전적으로 그리 값어치가 없는, 말하자면 뭐 제가 입고 있는 러닝 같은 게 값어치가 있겠어요? 하지만 소송이다 고발이다 해가면서까지 이걸 내놓으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래 가져가라.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라 속옷보다 조금 더 값어치가 있는 겉옷도, 옛다 가져가라……. 이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수 백만 원 수 천만 원 하는 것을 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의 것이라면 차라리 줘버리고, 오히려 큰 분쟁을 키우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구절, 41절이죠?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あなたに一ミリオン行けと強いるような者とは、いっしょに二ミリオン行きなさい。

여기서 억지로 가게 한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을 시킨다는 것이지요. 나는 그 일을 하기 싫은데, 누군가가 억지로 일을 시키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일이든 거절하지 말고 다 하라는 게 아닙니다. 100리 200리를 가라는 게 아니에요. 여기서 5리라고 하는 것을 원어에 의하면 1000발자국. 그러니까 1~2킬로 정도? 그 정도 되는 일을 강제로 시킨다고 한다면, 그리고 자칫하면 그 일로 분쟁까지 일어날 수 있는 경우라면, 그냥 선심 쓴다고 생각하고 4~5킬로 정도까지 더 가 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42절,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求める者には与え、借りようとする者は断わらないようにしなさい。

이는 지금까지 문맥으로 봤을 때 큰 돈을 꿔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한테 없는 돈을 꿔달라는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 풀어서 말씀 드리면, 나한테는 그다지 큰 돈도 아니고,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정도의 돈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런 돈을 누가 간절하게 필요로 할 때에는 거절하지 말고 그냥 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43절을 볼까요?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라는 말씀이 구약에 있을까요? 없을까요? 정답을 말씀 드립니다. 앞서 살펴본 구절을 다시 한번 볼까요?


레위기 19장 18절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復讐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国の人々を恨んではならない。あなたの隣人をあなた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わたしは主である。

이처럼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있습니다만, <네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때에도 이미 성경을 왜곡해서, 있지도 않은 성경 말씀을 사람들이 마음대로 집어넣은 것입니다. 성경은 구약이든 신약이든 이웃을 사랑하라고만 되어 있지, 미워하라는 말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4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입니다. 이제 좀 눈치를 채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말씀을 간단하게 정리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모욕을 주었다면 얼마나 속이 상하고 열 받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뭐 어째고 어째? 라고 하고 싶은 그 마음을 예수님께서 모르시겠어요? 하지만 그걸 그냥 넘기라는 것입니다.
돈이나 일이나, 나한테 큰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조금 도와 달라면, 너무 야박하게 거절하지 말고 기왕 도와주는 것 조금 더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원수가 잘 되는 걸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원수는 내가 갚겠다. 그러니까 사람을 미워하는 죄를 짓지 말고, 차라리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고 한다면, 오늘 이 말씀에는요 큰 돈이 들어가거나, 아니면 대단한 육체적인 희생이 따라야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필요하죠? 예,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참기 힘드십니까?

저는 글쎄요. 아무래도 이 모욕적인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누가 나한테 심한 모욕을 주었어요. 아니면 심한 창피를 주게 했어요. 그런데 그걸 가만히 넘기는 것. 글쎄요. 그게 과연 쉬울까요? 어렵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더욱 어려운 것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마태복음 27장 39절~44절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
V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道を行く人々は、頭を振りながらイエスをののしって、言った。「神殿を打ちこわして三日で建てる人よ。もし、神の子なら、自分を救ってみろ。十字架から降りて 来い。」同じように、祭司長たちも律法学者、長老たちといっしょになって、イエスをあざけって言った。「彼は他人を救ったが、自分は救えない。イスラエル
の王さまなら、今、十字架から降りてもらおうか。そうしたら、われわれは信じるから。彼は神により頼 んでいる。もし神のお気に入りなら、いま救っていただくがいい。『わたしは神の子だ。』と言っているのだから。」イエスといっしょに十字架につけられた強盗どもも、同じようにイエスをののしった。

마가복음 15장 19절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また、葦の棒でイエスの頭をたたいたり、つばきをかけたり、ひざまずいて拝んだりしていた。


참으로 온 백성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모욕을 참으셨는데 우리가 참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자존심입니다.

그 자존심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자존심이 예수님의 자존심보다도 큰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얼마 전 일본의 어떤 장관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한 기자가 질문을 한 것을 가지고 성질을 냈습니다. 그런데 그 기자의 질문하는 방식도 좀 사람을 긁는 듯한 태도였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장관이 기자한테 말하기를, 당장 여기서 나가라, 다시는 오지 말아라, 시끄럽다……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국 몇 시간 뒤에 기자들 앞에서 사과를 했습니다만, 이 일을 두고 어떤 분이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기자들한테 말을 할 때에는 눈앞에 있는 기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시청자들, 국민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행동을 바라보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누구십니까. 예, 바로 우리 주님이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 정말 때로는 얄밉고 치사하게 보이는 그 이웃 너머에서 주님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앞서 대통령선거 이야기를 말씀 드렸습니다만, 그렇다고 정치인들을 비판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정치인들로부터 배워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선거운동 기간 중에 그 후보들이 국민들을 만나고, 악수하고, 목청껏 외치고, 때로는 자존심도 뭐도 다 버리고 고개를 숙이고, 또 큰 절까지 하면서 부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정말로 국민을 그처럼 존경해서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정말로 국민의 머슴으로서 국민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요? 에이, 솔직해져야죠.

현재 한국에서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특권들이 있을까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장난이 아니더군요. 지금이 무슨 사회 수업도 아니니까 간략하게 정리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한국 대통령이 되면, 현재 대통령 연봉은 대략 1억 8천만원 정도, 월급으로는 155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대통령에서 물러나더라도 매달 월급의 95%에 해당하는 1000여만원을 받습니다. 여기에 교통 통신비 면목으로 지원되는 1700만원을 더하면 모두 2788만원을 받는 셈입니다. 또한 퇴임 후 전직 대통령이 사망하면 배우자가 보수의 70%를 받게 됩니다.
여기에 전속 의료진과 요리사가 붙고, 그것만이 아니라 전속 스타일팀이 붙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연히 경호팀이 붙게 되는데, 이는 대통령 취임 이전에도 당선된 순간부터 경호를 받게 됩니다. 이는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특별경호를 받게 된다고 하네요. 대통령 차량은 당연히 최고급 특수차량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대통령 전용기는 보잉 747, 여기에 전용헬기와 전용 KTX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63만 국군 통수권자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대통령은 공무원 임명권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쥐고 있는 공무원 임명권은 직접적인 것만 하더라도 1500개, 간접적으로는 2만여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어떠세요? 이 정도면 대통령 한 번 해보고 싶어지지 않으세요? 이렇게 한 번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적어도 5년 동안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이 대통령 한 번 해보려고 안간 힘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당연히 국민의 세금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하면, 이는 대통령이 국민을 섬기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이 대통령을 섬기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대통령 자리를 노리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을 상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자기 자존심도 버리고 안간 힘을 쓰는 것입니다. 지금 그 순간은 힘들고 괴롭더라도 당선만 되면 모든 권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자기를 버리고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장차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상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작은 노력을 아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절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勝利を得る者、また最後までわたしのわざを守る者には、諸国の民を支配する権威を与えよう。

요한계시록 22장 3절~5절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もはや、のろわれるものは何もない。神と小羊との御座 が都の中にあって、そのしもべたちは神に仕え、神の御顔を仰ぎ見る。また、彼らの額には神の名がついている。もはや夜がない。神である主が彼らを照らされるので、彼らにはともしびの光も太陽の光もいらない。彼らは永遠に王である。

우리가 받을 상은 5년짜리 임금님 놀이가 아닙니다.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그깟 알량한 자존심 팔아서, 우리의 작은 노력을 팔아서, 우리의 인내심 하나 팔아서, 하나님으로부터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수 있다면, 이건 정말 남는 장사 아니겠습니까?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そこで、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心を尽くし、思いを尽くし、知力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愛せよ。』これがたいせつな第一の戒めです。『あなたの 隣人をあなた自身のように愛せよ。』という第二の戒めも、それと同じようにたいせつです。律法全体と預言者とが、この二つの戒めにかかっているのです。」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우리가 이웃을 섬긴다는 것은,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릅니다만 여기에 따라오는 상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섬기고, 우리 이웃을 나 자신 같이 사랑함으로 섬김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질 크나큰 상을 놓치지 않고 모두 받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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