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무엇을 보십니까
2017년 4월 30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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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1장 11절~12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무엇을 보십니까”何を見ていますか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한 가지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뭐가 보이냐고 물으십니다. 그랬더니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가지>가 보인다고 해요. 그러자 이 대답을 듣고 하나님께서는 말씁하십니다.

오늘 본문 12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すると主は私に仰せられた。「よく見たものだ。わたしのことばを実現しようと、わたしは見張っているからだ。」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일까요. 몇몇 주석서를 찾아보니 살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살구라기보다는 아몬드나 밤 같은 견과류를 뜻한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 살구나무 가지를 보여주신 이유에 대해서는, 신학자들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의견으로는, 이 아몬드나무가 겨울에서 봄이 되면 가장 먼저 봄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신속하게 성취된다는 의미라고도 하고, 존 칼빈은 '살구나무 가지'를 '파수꾼의 막대기'로 해석하면서 선지자들의 말이 공허하게 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파수꾼처럼 지켜볼 것이란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고 하고요, 또한 아담 클라크(Adam Clarke)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전달한 심판의 예언이 이루어지도록 깨어서 지켜본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글쎄요. 제가 좀 공부부족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잘 와 닿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자료를 보니까 매우 흥미로운 해석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살구나무’의 발음입니다. 제가 발음이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히브리어로 살구나무는 ‘shaqed’라고 하는데, 이와 비슷한 발음인, ‘shoqed’가 바로 <계속 지키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구나무를 보여주시면서 뭐가 보이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샤케드>가 보인다고 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래 내 말을 <쇼케드>해서 그대로 이룰 것이다……이렇게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니 좀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구나무를 보여주시면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길, 내가 일을 이루려고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보여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3장 14절~15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ロトがアブラムと別れて後、主はアブラムに仰せられた。「さあ、目を上げて、あなたがいる所から北と南、東と西を見渡しなさい。わたしは、あなたが見渡しているこの 地全部を、永久にあなたとあなたの子孫とに与えよう。

창세기 22장 17절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わたしは確かにあなたを大いに祝福し、あなたの子孫を、空の星、海辺の砂のように数多く増し加えよう。そしてあなたの子孫は、その敵の門を勝ち取るであろう。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그냥 무슨 막연한 것, 추상적인 것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은 누구나가 볼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인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열왕기상 18장을 봅니다. 열왕기상 18장 41절~46절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v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v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それから、エリヤはアハブに言った。「上って行って飲み食いしなさい。激しい大雨の音がするから。」そこで、アハブは飲み食いするために上って行った。エリヤはカルメル山の頂上に登り、地にひざまずいて自分の顔をひざの間にうずめた。それから、彼は若い者に言った。「さあ、上って行って、海のほうを見てくれ。」若い者は上って、見て 来て、「何もありません。」と言った。すると、エリヤが言った。「七たび
vくり返しなさい。」七度目 に彼は、「あれ。人の手のひらほどの小さな雲が海から上っています。」と言った。それでエリヤは言った。「上って行って、アハブに言いなさい。『大雨に閉じ込められないうちに、車を整えて下って行きなさい。』」しばらくすると、空は濃い雲と風で暗くなり、やがて激しい大雨となった。アハブは車に乗って
vイズレエルへ行った。主の手がエリヤの上に下ったので、彼は腰をからげてイズレエルの入口までアハブの前を走って行った。

오랫동안 가뭄이 이어진 가운데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사환에게 말하기를 바다쪽으로 가서 뭔가 보이는지 가보라고 시킵니다. 그래서 가봤더니 아무것도 안 보인대요. 그러자 또 기도해보고, 얘 어서 가봐. 그랬더니 역시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번까지 다시 가보라고 시켰대요? 예, 일곱 번씩이나 다시 가보라고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어에 보면 <손 만한>이라기보다는 <손바닥만한>이라고 해야 정확한 번역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요만한 구름이 하나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뭐라고 해요? 아합 왕에게 하는 말이 <비가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치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합니다. 아니, 비가 지금 오고 있지도 않아요. 당시 가뭄은 그냥 가뭄이 아닙니다. 무려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거대한 시커먼 비구름도 아닌, 그저 손바닥만한 구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엘리야는 달랐습니다. 분명히 그 구름을 보고 그리고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다고 성경은 기록합니까.

열왕기상 18장 45절에는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しばらくすると、空は濃い雲と風で暗くなり、やがて激しい大雨となった。

이것이 바로 놀라운 믿음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어요? 예, 정말로 그 땅을 주셨습니다. 엘리야는요? 예, 그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고 믿은 믿음이 실제로 크게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본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간혹 살다가 보면, 우리는 분명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안 볼 때, 못 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을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십니다.

출애굽기 3장 10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今、行け。わたしはあなたをパロのもとに遣わそう。わたしの民イスラエル人をエジプトから連れ出せ。」

모세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안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끈질기게 설득을 하시지요. 어쩌면 모세는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내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내가 혼자 가서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온단 말이야? 그러면서 어쩌면 하나님께서 대단한 군대를 붙여주시거나 하는 걸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뭐예요?

출애굽기 4장 2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主は彼に仰せられた。「あなたの手にあるそれは何か。」彼は答えた。「杖です。」

그리고 출애굽기 4장 17절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あなたはこの杖を手に取り、これでしるしを行なわなければならない。」


이게 무슨 말씀이에요? 당시 최강의 선진국인 애굽에 사로잡혀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200만명이라고 추산되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하는데, 뭔가 새로운 무기를 주신 것도 아니요, 막강한 군대를 붙여주신 것도 아니요,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이 나무막대기로 이적을 행해서 구출해내라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참 답답하십니다. 이걸로 제가 어떻게 가요. 저는 말주변도 없어서 저는 안 돼요. 다른 사람을 보내주세요.

이렇게 말하니까 하나님이 뭐라고 하세요?

출애굽기 4장 14절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すると、主の怒りがモーセに向かって燃え上がり、こう仰せられた。「あなたの兄、レビ人アロンがいるではないか。わたしは彼がよく話すことを知っている。今、彼はあなたに会いに出て 来ている。あなたに会えば、心から喜ぼう。

하나님이 이제 화를 내십니다. 야, 그럼 니 형 아론 있잖아? 아론이랑 가!

이 말씀을 들으면 모세가 그 순간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그랬겠습니까? 당시 모세와 모세 형인 아론의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아세요?

출애굽기 7장 7절,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

彼らがパロに語ったとき、モーセは八十歳、アロンは八十三歳であった。

세상에……아니, 지금 하나님은 팔십 먹은 노인네 모세한테 하시는 말씀이, 너 혼자 애굽에 가서 왕하고 단판을 짓고, 사로잡혀 있는 200만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나오라는 것입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자면요, 여기 군마에 있는 한 팔십 먹은 할아버지한테, 지금 당장 미국행 비행기표를 끊어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가지고는 그 나라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200만명을 데리고 나오라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을 듣고 감사와 찬양이 나오는 게 정상이겠어요?

그래, 좋아요. 백 보 양보해서 그런다고 칩시다. 그런데 기껏 붙여주신다는 게, 팔팔한 젊은이 수 천 명을 붙여주셔도 모자란 판에,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팔십 삼세 노인네를 붙여주세요?

참 그래도 모세는 믿음이 좋습니다. 저 같으면, 하이고 하나님,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나는 이제 기운도 없고, 돈도 없고, 말주변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없고, 재주도 없고 그런데, 차라리 제가 미우시다면 여기서 곱게 그냥 죽으라고나 하시지 나무 지팡이 하나 짚고 노인네 둘이 애굽에 가서 뭘 어쩌라고 하시는 것입니까……이런 말이 안 나오겠어요? 제가 이상해요?

이 모세가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답답해 했던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뭐라고 하셨느냐 하면,

출애굽기 3장 12절 전반부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神は仰せられた。「わたしはあなたとともにいる。

생각해보십시오. 최신무기가 없으면 어떻고 천군만마가 없으면 또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이 말씀 한 마디면 충분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32장 27절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見よ。わたしは、すべての肉なる者の神、主である。わたしにとってできないことが一つでもあろうか。」


만군의 하나님,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결국 모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가진 것이라고는 나무 지팡이 하나밖에 없는 팔십 먹는 노인네와, 그것도 모자라서 3살이나 더 먹은 팔십 삼세 먹은 두 노인네입니다. 부족한 것이 없어요? 아니요, 세상적으로 보면 부족한 것 투성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셨을 때, 그 볼품없는 두 노인네 둘이서 무엇을 해내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 200만명을 탈출시키고 홍해를 갈라서 건너게 했을 뿐만 아니라 40년간에 걸쳐 광야에서 그들을 이끌었고 마침내 가나안 땅을 점령할만한 크나큰 용사로 성장시켰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무슨 그림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동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절하고 내 소원을 비는, 그와 같은 허망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는 없는 것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지팡이와 자신의 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바라본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바라보는 것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성도님이 이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세탁소>를 해야 할지 아니면 <샌드위치> 가게를 해야 할지를 놓고 망설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를 했대요. 그랬더니 기도하는 가운데 영어 C자가 보이는 것 같더라는 거예요. 세탁소를 영어로 하면 클리닝…이라고 해서 C이고, 샌드위치는 S거든요. 그래서, 아하, 이건 하나님께서 세탁소를 하라는 응답인가 보구나 하고 세탁소를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겠어요? 예, 영 제대로 사업이 안 되더래요. 그래서 거기 목사님한테 와서 상담을 했답니다.

목사님…아무래도 제가 기도할 때 보였던 글자가 C가 아니라 그 밑이 조금 꼬부라진 S였나봐요……했다는 거예요.

여러분께서는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든지 아니면 밤에 잠을 잘 때든지 하면 가끔 꿈이나 환상 같은 것을 보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믿음 안에서 모두 믿어야 하는 것인가요? 어떤 때는 누가 또 꿈을 해석해주는 무슨 해몽 같은 것을 해주기도 하고, 또 그것을 믿기도 하는 분도 더러는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걸 왜 믿느냐고 하면, 아니, 성경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는 거예요. 맞습니다. 그런 경우가 있어요. 창세기 40장에 보면 요셉이 함께 갇혀 있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기도 했었지요. 그리고 다음 41장에 보면 애굽의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애굽의 총리 자리에 앉게 됩니다.

다니엘 2장에서는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왕이 꾼 꿈이 어떤 것인지 말을 하기도 전에 꿈의 내용까지도 왕에게 말해줍니다.

그래서 다니엘 2장 48절에 보면,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そこで王は、ダニエルを高い位につけ、彼に多くのすばらしい贈り物を与えて、彼にバビロン全州を治めさせ、また、バビロンのすべての知者たちをつかさどる長官とした。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꿈이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요, 모든 환상이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인가요?

여기에 대해서 예레미야서를 보면 매우 흥미로운 구절이 나옵니다.

예레미야 29장 8절~9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まことに、イスラエルの神、万軍の主は、こう仰せられる。「あなたがたのうちにいる預言者たちや、占い師たちにごまかされるな。あなたがたが夢 を見させている、あなたがたの夢見 る者の言うことを聞くな。なぜなら、彼らはわたしの名を使って偽りをあなたがたに預言しているのであって、わたしが彼らを遣わしたのではないからだ。―主の御告げ。―」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무조건 꿈을 꿨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꿈이다 계시다 하고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말라고 성경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기독교를 가장한 종교들이 판을 치고, 선지자를 가장한 사이비 교주들이 있는 곳은 비단 요즘만이 아닙니다. 이 예레미야 시대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14장 14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主は私に仰せられた。「あの預言者たちは、わたしの名によって偽りを預言している。わたしは彼らを遣わしたこともなく、彼らに命じたこともなく、語ったこともない。彼らは、偽りの幻と、むなしい占いと、自分の心の偽りごとを、あなたがたに預言しているのだ。

예레미야 23장 32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見よ。わたしは偽りの夢 を預言する者たちの敵となる。―主の御告げ。―彼らは、偽りと自慢話をわたしの民に述べて惑わしている。わたしは彼らを遣わさず、彼らに命じもしなかった。彼らはこの民にとって、何の役にも 立ちはしない。―主の御告げ。―

예레미야 27장 15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

「わたしは彼らを遣わさなかったのに、―主の御告げ。―彼らは、わたしの名によって偽りを預言している。それで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追い散らし、あなたがたも、あなたがたに預言している預言者たちも 滅びるようにする。」


예레미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600년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600년 이상이나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인데, 이미 그 때부터 벌써 백성들을 미혹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주의해야 하는 것은, 여기서 미혹하는 대상이 그냥 일반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이비 신자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보다도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0절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そして、彼らを惑わした悪魔は火と硫黄(いおう)との池に投げ翔まれた。そこは獣も、にせ預言者もいる所で、彼らは永遠に昼も夜も苦しみを受ける。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헛된 꿈이나 하나님 말씀을 어지럽히는 헛된 예언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信仰の創始者であり、完成者であるイエスから目を離さないでいなさい。イエスは、ご自分の前に置かれた喜 びのゆえに、はずかしめをものともせずに十字架を忍び、神の御座の右に着座されました。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닙니다. 눈앞에 놓인 현실이 아닙니다. 믿음의 근원이시고 우리 믿음을 완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29절~31절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何を食べたらよいか、何を飲んだらよいか、と捜し求めることをやめ、気をもむことをやめなさい。これらはみな、この世の異邦人たちが切に求めているものです。しかし、あなたがたの父は、それがあなたがたにも必要であることを知っておられます。何はともあれ、あなたがたは、神の国を求めなさい。そうすれば、これらの物は、それに加えて与えられます。

많은 사람들은 있는 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바라보지 않고, 없는 것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없는 것만 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미 주셨고,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계시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예,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눈앞에 놓인 시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계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없다고 불평 불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 주신 것을 바라보며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바라봅시다.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믿고, 언제나 나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는 만군의 하나님, 사랑의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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