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회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
2017년 6월 18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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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祝福の門を開く鍵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럼 삼위일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러 해석을 하시는 분들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만, 우리가 가장 기본으로 삼아야 할 자료가 있다면 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을 들 수가 있습니다. 요리…라고 해서 무슨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중요한 교리……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격에는 삼위가 계시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말하며, 이 삼위는 한 하나님으로 본체는 하나이시며, 권능과 영광은 동등하시다.


神には、三つの位格があります。御父と、御子と、聖霊です。この三位は、実体が同じで力と栄光において等しい、ひとりの神です。

이해가 되시나요?

자, 먼저 오늘은 이 점부터 명확하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몇 분이시죠? 예,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그 한 분이신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이시라는 점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만, 여기에 대해서 해석이 분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이 틈을 타서 이단들이, 그리고 마귀 사탄들이 자기 멋대로 해석을 해서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리기도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먼저, 성부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성자는 예수님이다. 삼위일체란 마치 태양과도 같은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태양의 본체처럼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성자 하나님은 볼 수가 있기 때문에, 태양으로 본다면 마치 빛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눈에는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있는, 마치 열과도 같은 것이다……그러니까 성부 하나님은 태양이고, 성자 하나님은 빛이고 성령 하나님은 열이다……참 그럴 듯한 해설이기는 합니다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잘못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예를 들어서 하나님으로서의 완전한 형체가 태양이라고 한다면, 빛이나 열은 완전한 형체라는 뜻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죠. 빛이나 열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태양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의 일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뜻이 되느냐 하면, 이 논리로 본다면, 완전한 하나님의 형체를 태양으로 가정한다고 하면, 여기서는 성부 하나님 만이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나머지 빛이라고 하는 예수님, 열이라고 하는 성령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성부 하나님은 100%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빛이니까 그럼 대충 50% 하나님, 성령님은 눈에도 안 보이고 느낄 수만 있으니까 그럼 대충 한 20% 하나님이신건가요? 그럼 모두 합해서 170% 하나님이신 거겠네요? 아니면 성부 하나님 33.3%, 성자 하나님 33.3%, 성부 하나님 33.3% 해서 모두 합하면 100%가 되는 하나님이신 건가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30%짜리 오렌지 주스 3통을 같이 부으면 90%짜리가 됩니까? 그러면 4통을 같이 부으면 120% 오렌지 주스가 되겠네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그것도 이단도 아닌 복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목사님들이 당당하게 말씀을 하고 계시니 성도님들이 혼란스러워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만으로는 부족하십니까? 성령님 만으로는 부족하십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이신 여호와 하나님도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완전한 하나님이시요, 성령 하나님도 완전하신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자,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도록 하지요.

많은 분들이 매일 일기예보를 봅니다. 거기서는 내일 날씨를 알려주죠? 내일 날씨는 어떻고 기온은 어떻고 그러면서 설명을 해줍니다. 그러면서 뭘 알려주냐 하면 바로 비가 내릴 확률을 알려줍니다.

이 비가 올 확률이라는 게 무척 대단한 것처럼 들릴지는 모릅니다만, 알고 보면 참 모호합니다. 확률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일 확실히 비가 온다고 하면 확률이 필요 없겠지요.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 전문가인 자기들도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확률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확실히 모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과학이 예전에 비해 많이 발전을 했지만 아직까지는 불완전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떠십니까. 자, 문제를 내겠습니다. 잘 들으셔야 합니다. 자, 모세가 있습니다. 뒤에서 애굽 군대들이 쫓아 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14장 16절,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あなたは、あなたの杖を上げ、あなたの手を海の上に差し伸ばし、海を分けて、イスラエル人が海の真中のかわいた地を進み行くようにせ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지팡이를 가지고 있지? 그 손을 들고 바다 위로 내밀어서 갈라지게 하라……그러면 바다가 갈라져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마른 땅으로 행할 것이다……

자, 여기서부터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홍해가 갈라질 확률이 몇 프로입니까. 30%요? 50%요? 90%요? 예, 100%입니다. 왜요? 왜 우리가 100%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홍해가 갈라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21절,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そのとき、モーセが手を海の上に差し伸ばすと、主は一晩中強い東風で海を退かせ、海を陸地とされた。それで水は分かれた。

지금 제가 내드린 문제가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예, 쉽죠. 성경에 다 적혀 있는 그대로를 제가 말씀 드렸습니다. 이처럼 쉬운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신약으로 넘어오겠습니다. 예수님 앞에 5천명이 앉아 있습니다. 주변에는 편의점도 없고 자판기도 없습니다. 다들 배가 고파 합니다. 안드레가 어떤 소년이 도시락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반신반의로 그 도시락을 예수님께 가져옵니다. 거기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또 문제가 나갑니다. 거기 있던 5천 명, 사실 5천명이라는 숫자는 성인 남자만 5천명이지 여성과 미성년자를 포함하면 최소한 만 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작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확률은 몇 프로이겠습니까? 30%요? 50%요? 90%요? 예, 100%입니다.

왜요? 왜 우리가 100%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것도 역시 답은 간단합니다.

마태복음 14장 19절~21절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そしてイエスは、群衆に命じて草の上にすわらせ、五つのパンと二匹の魚を取り、天を見上げて、それらを祝福し、パンを裂 いてそれを弟子たちに与えられたので、弟子たちは群衆に配った。人々はみな、食べて満腹した。そして、パン切れの余りを取 り集めると、十二のかごにいっぱいあった。食べた
v者は、女と子どもを除いて、男五千人ほどであった。


다 아는 이야기인데 이걸 문제라고 내냐 하고 화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간단하게 알아본 두 문제에서 모두 100%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었던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단순히 <결과를 우리가 알 고 있었기 때문에>……라고 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그저 이야기책 수준으로 받아들일 뿐이고, 성경에서 아무런 지혜도 가르침도 얻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된다고 하시면 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라고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머리에서 생각해 낸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확률이 따라다닙니다.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도 확답을 하지 못하는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안해하지 말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을 것은 우리가 100%의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30%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50%나 90%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오직 100%입니다.

성경은 100%를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するとイエスは言われた。「できるものなら、と言うのか。信じる者には、どんなことでもできるのです。」

요한복음 1장 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しかし、この方を受け入れた人々、すなわち、その名を信じた人々には、神の子どもとされる特権をお与えになった。

사도행전 16장 31절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ふたりは、「主イエスを信じ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もあなたの家族も救われます。」と言った。


이 세상에 100%가 어디 있겠습니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성공한다? 놀지 않고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것이 100%입니까? 이것을 모두 100%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어떻습니까. 성경에는 온통 100%로 넘칩니다. 그 이유는 99%도 아닌 100%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셨기에 우리를 죄 가운데에서 구원해주셨던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을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예,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2장 8절~9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あなたがたは、恵みのゆえに、信仰によって救われたのです。それは、自分自身から出たことではなく、神からの賜物です。 行ないによるのではありません。だれも誇ることのないためです。

우리가 구원을 받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래요. 자고로 선물이라는 것은 대가가 없습니다. 그냥 거저 주는 것이 선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떻게 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십자가를 통해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 한 번 생각해보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하지만 죄인인 우리가 이대로는 하나님 아버지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지 않으세요. 그러면 우리가 갈 곳은 한 곳뿐입니다. 그게 어디겠습니까. 예, 지옥입니다. 그리고 멸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셔야 해요. 그런데 우리 능력으로는, 우리 노력으로는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러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우리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를 그토록 너무나도 사랑하시고 완전하신, 100%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기도문입니다.

우리가 이 주기도문을 보면 주일예배 외에, 축도 대신 예배를 마무리 하는 시점에 외우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우리는 이걸 무슨 주문외우듯이 하면 안되겠지요. 주기도문을 외울 때에는 그 의미를 하나하나 되새겨가면서 주님께 진정한 기도를 드리는 마음으로 주기도문을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이 기도문은 어떤 신학자나 선지자 같은 사람의 지혜로 만들어낸 기도문도 아니요, 완전하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완전한 기도문이겠습니까. 그런데 이 주님께서 알려주신 기도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군데 좀 독특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12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私たちの負いめをお赦しください。私たちも、私たちに負いめのある人たちを赦しました。

わたしたちに負債のある者をゆるしましたように、わたしたちの負債をもおゆるしください。(口語訳)

이 말씀이 참 묘합니다.


그런데 이 주기도문에서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부터 시작해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까지 보면 딱 한 군데, 예수님께서 조건을 달아놓으셨습니다.

天にましますわれらの父よ   国とちからと栄えとは、限りなくなんじのものなればなり。

예수님께서 기도문을 주시면서 그냥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고 조건들 다셨어요.

왜 이러한 조건을 다셨을까요. 그냥 우리 죄를 사해주시기 아까워서요? 억울해서요?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는데, 우리에게 무엇을 더 아끼시겠습니까.

이와 같은 조건을 다신 이유, 그것은 바로 이 용서야말로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도문을 가르쳐주시고 난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말씀이 또 용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14절~15절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もし人の罪を赦すなら、あなたがたの天の父もあなたがたを赦してくださいます。しかし、人を赦さないなら、あなたがたの父もあなたがたの罪をお赦しになりません。

용서가 얼마나 중요하면 기도문을 말씀하시자마자 또 하셨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이 외에도 용서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あなたがたもそれぞれ、心から兄弟を赦さないなら、天のわたしの父も、あなたがたに、このようになさるのです。」

에베소서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お互いに親切にし、心の優しい人となり、神がキリストにおいてあなたがたを赦してくださったように、互いに赦し合いなさい。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릴 때에도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이는 자들에 대해서까지도 용서로 기도를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そのとき、イエスはこう言われた。「父よ。彼らをお赦しください。彼らは、何をしているのか自分でわからないのです。」彼らは、くじを引いて、イエスの着物 を分けた。

우리는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3장 17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神が御子を世に遣わされたのは、世をさばくためではなく、御子によって世が救われるためである。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실 때, 그 때는 분명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2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심판이 아닌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용서받게 하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용서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용서 받는 사람과 용서 받지 못한 사람은 무언가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あなたがたに新しい戒めを与えましょう。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愛し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もし互いの間に愛があるなら、それによってあなたがたがわたしの弟子であることを、すべての人が認めるのです。」


여기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내가 내 목숨을 다 바쳐서 너를 용서했는데, 너는 네 이웃 하나 용서를 못하겠니?”

예수님께서는 우리더러 그러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실 만도 한데, 아직 축복을 못 받은 것 같습니까? 여러분, 한 번 우리 마음 속을 되돌아보시기 원합니다. 내가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릅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그 사람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을 용서하면, 내 이웃을 용서하면 내가 축복 받을 확률이 몇 프로입니까. 그렇습니다. 100%입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회개는 잘 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잘 못합니다. 이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신 축복을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용서인줄 믿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혹시 그 마음 속에 <내가 다른 사람은 용서해도 그 인간만은 용서를 못해>라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축하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드디어 당신께서 큰 축복을 받으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바로 지금, 그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을 지금 바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이 뭘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해주셨기 때문에, 바로 그 때문에 그 사람을 용서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99%가 아닙니다. 100% 완전하신 주님께서 100% 넘치는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우리를 용서해주신 것처럼 우리 이웃을 용서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주시는 완전한 축복, 100%의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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