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회 튼튼한 믿음
2017년 7월 23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5장 1절~11절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튼튼한 믿음”丈夫な信仰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게네사렛 호수라고 하는 곳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게네사렛 호숫가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갈릴리 호수입니다. 말이 호수이긴 합니다만, 워낙 넓은 호수이기 때문에 웬만한 바다처럼 대단히 넓고 그리고 파도도 치고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침에 갈리리 갈릴리 호숫가에 가셨더니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많은 무리들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무리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바닥에 앉아서 말씀을 전하시게 되면 전달이 잘 안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호숫가 바닥에 강대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마침 그러던 중에 보니까 두 척의 배가 있어요. 그래서 그 중 시몬의 배에 오르시고는 조금 떨어진 그 곳에서 육지에 있는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을 사모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무리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는 다른 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었어요? 예, 바로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했던 어부들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어부들이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갈릴리 호수에서의 고기잡이는 낮에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낮에 하면 물이 너무 맑아서 고기들이 그물을 보고 다 도망간다고 해요. 그래서 어두운 밤에 고기잡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오늘 시몬이라고 하는 베드로의 말을 들어보니 역시 밤이 새도록 고기잡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하고 지금 뭍으로 올라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는 것인데, 만약 어느 정도 고기잡이의 수확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잡은 물고기를 손질하거나, 아니면 시장으로 운반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했었겠지요. 그리고 물고기를 많이 잡았었다고 하면 배에는 비린내가 진동하고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배에 오르셔서 말씀을 전하시기에는 조금 부적합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상황이 어땠어요? 당시 그 자리에는 베드로 외에 10절에 보니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야고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밤새도록 타고 있던 배에는 전혀 비린내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물고기를 손질하지도 않았고 운반하기 위한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예,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했는데도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배 안에는 비린내는커녕 물고기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여들었지만,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하고 피로에 지친 그들, 더구나 한 마리도 못 잡아서 허탈한 마음에 사로잡힌 그들한테 있어서 구원이다, 천국이다 하는 말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예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아이구, 이제 오늘 하루 공쳤으니 생활비 걱정이 되겠지요. 베드로는 부인도 있었기 때문에,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겠구나……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허탈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호숫가 한 쪽에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피곤함과 허탈함에 가득 찬 베드로 쪽을 보고 말씀을 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深みに漕ぎ出して、網をおろして魚をとりなさい。


이와 같은 갑작스러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다시 배에 올라 고기잡이를 하러 갑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과연 베드로한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그와 같은 말씀을 하셨을 때, “믿습니다! 아멘!”이라는 고백과 함께 기적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나갔을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상황을 한 번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이 말씀을 하셨을 때에는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던 많은 무리들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보고 말씀을 하시니까 그 많은 무리들도 모두가 베드로 쪽을 돌아보았겠지요. 메시아다 천국이다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베드로도, 예수님을 많은 무리들이 존경하면서 따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눈앞에 모여 있는 수많은 무리들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몰려온 그 무리들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물론 먼 타지에서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그 지역 사람들, 베드로나 요한이나 야고보와 한 지역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들보다 젊은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어쩌면 그들의 친인척들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지역의 유지들도 섞여있었는지 모를 일이지요.

그와 같은 사람들이 지금 존경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는데, 그 당사자이신 예수님께서 친히 베드로한테 “깊은 데에 가서 고기를 잡으라”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 그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아니, 저 베드로 저 녀석은, 건방지게 지가 뭔데 우리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안 들어? 뭐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존경하면서 따르는 사람들까지도 무시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입장이 되어 보세요. 밤새도록 일을 했으니 얼마나 몸은 피곤했겠습니까. 거기다가 성과도 없었으니 만사가 귀찮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방금 돌아온 것이 아니에요. 이미 배 정리는 다 끝냈고, 이제 그물을 씻고 집으로 돌아가서 잠 자는 것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배를 타고 나가래요.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보니까 전혀 뱃사람 같이 생기지도 않았어요.

우리는 고기잡이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인데 지가 뭘 안다고 우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지가 선생이면 다야? 천국이다 구원이다 하는 것을 알면 고기잡이를 알아?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이런 생각을 했을지는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리들을 생각해서라도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긴 가야겠는데, 그렇다고 그냥 갈 수야 없는 노릇이잖아요? 한 마디라도 하고 가야지요. 그래서 한 말이 뭐였습니까.

누가복음 5장 5절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するとシモンが答えて言った。「先生。私たちは、夜通し働きましたが、何一つとれませんでした。でもおことばどおり、網をおろしてみましょう。」

이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보쇼. 당신이 잘 모르고 하는 소리 같은데 말이야. 우리가 이미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했어. 그런데 한 마리도 못 잡았거든. 그런데도 지금 당신이 그렇게 말하니까 좋아, 우리가 가 줄게. 하지만 그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당신이 책임져.

뭐 그러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면도 고기가 많이 잡힐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고기가 안 잡히면 예수님이 얼마나 망신을 당하겠어요? 그렇게 된다면 예수님을 따랐던 그 많은 무리들도 순식간에 예수님을 무시하게 되겠지요. 대단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별 것 아니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제가 좀 성격이 못돼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베드로였다면 오히려 고기가 안 잡히기를 더 바랬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천국이다 구원이다 하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양반을 멀쩡한 사람들이 따라다니면서 그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베드로가 생각하기에는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지요.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하고, 열심히 밥벌이를 해도 될까 말까 하는데 그런 허황된 말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겠습니까.

그런데 마침 찬스가 왔어요. 이제 본때를 보여줄 수가 있습니다. 자, 봐라. 당신의 말대로 깊은 데에 가서 그물을 내려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무슨 천국이다 뭐다 하면서 잘난 척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느냐. 당장 이 동네에서 나가라!

이럴 수만 있으면 얼마나 통쾌하겠어요. 그 선생이라고 하는 양반은 쩔쩔 매면서 동네를 쫓기듯이 떠나갈 것이요, 그를 따랐던 무리들은 베드로를 보고, “야 정말 베드로는 멋진 놈이야.” 이렇게 치켜세우지 않겠어요?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그물을 챙기고 갈릴리 호수로 나가지 않았을까 합니다. 아니, 꼭 베드로가 그랬다기 보다는 저 같이 좀 고약한 생각을 했었다면 그랬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땠습니까.

누가복음 5장 6절~7절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そして、そのとおりにすると、たくさんの魚がはいり、網は破れそうになった。そこで別の舟にいた仲間の者たちに合図をして、助けに来 てくれるように頼んだ。彼らがやって来て、そして魚を両方の舟いっぱいに上げたところ、二そうとも沈みそうになった。

이건 몇 마리가 잡히거나 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자기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잡혔습니다. 고기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물이 찢어집니다. 이대로는 고기가 다 도망갈지도 몰라요. 서둘러서 다른 친구들, 아마도 요한과 야고보였겠지요? 그들을 부릅니다. 지금 큰 일 났다. 빨리 와라. 어서 와서 도와달라.

그러니까 그들이 서둘러 가서 함께 그물을 끌어올립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됐대요? 한 배도 아니고 두 배에 모두 채웠는데 그 무게 때문에 두 배가 잠길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보고 베드로는 너무나도 놀랍니다. 그는 기적을 전혀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예수님한테 망신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고기잡이의 프로인 자신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이제 돌아와서 예수님 앞으로 나옵니다. 8절에 보니,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これを見たシモン。ペテロは、イエスの足もとにひれ伏して、「主よ。私のような者から離れてください。私は、罪深い人間ですから。」と言った。

베드로는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죄책감을 느낍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골탕먹일 생각에 사로잡혔던 자신이 너무나도 죄인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예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세요? 그래, 이 나쁜 놈아.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나를 무시하려고 했지? 그러시던가요? 아니요.

10절 후반부를 봅니다.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イエスはシモンにこう言われた。「こわがらなくてもよい。これから後、あなたは人間をとるようになるのです。」


괜찮아. 네 마음을 다 이해한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아라. 그리고 이제 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취하게 될 것이다……이와 같은 위로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어떻게 했다고 해요?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彼らは、舟を陸に着けると、何もかも捨てて、イエスに従った。

여기에 보면 <모든 것을 버려 두고>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그들이 버려둔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배도 있겠고 그물도 있었겠지만, 생각해보세요. 지금 배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 말대로 해서 얻게 된 물고기들, 그것도 두 배가 가라앉을 정도의 물고기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물고기는 그야말로 현찰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 잠깐만요. 이 많은 물고기들을 어서 시장에 내다 팔고 난 다음에 사람을 취하든 뭐든 할게요”

라고 하던가요?

아니요. 이제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 것에 비한다면 이런 돈이나 재산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믿음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과정을 통해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성장과정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에서는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했다가 믿음이 적어서 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지만, 나는 저 사람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을 하고는 자신의 죄책감에 사로잡혀 통곡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을 가져보려고 하다가도 실수를 하고 시험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장의 결과를 알 수 있는 구절이 어디냐 하면 요한복음 21장 11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シモン。ペテロは舟に上がって、網を陸地に引き上げた。それは百五十三匹の大きな魚でいっぱいであった。それほど多かったけれども、網は破れなかった。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고기잡이를 했더니 그물에 큰 물고기가 가득 찼는데 그물이 찢어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여기 성경에는 153마리라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신 신학자들의 해석은 참 재미가 있습니다.

1. 당시의 세계 언어의 숫자이다
2. 복음의 그물이 펼쳐질 세계의 인종이나 종족의 숫자이다
3. 갈릴리 바다 또는 세계의 물고기 종류의 숫자이다
4. 율법을 상징하는 10을 구약으로, 성령을 상징하는 7을 신약으로 보고 이 둘을 합한 수인 17에 이르기까지 1부터 더해 나가면(1+2+3+4+5...+17) 153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서 이 153이라는 숫자는 신. 구약 시대를 통틀어 하나님의 선택적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게 될 자들의 수를 가리킨다.
5. 100을 이방인의 수로, 50을 유대인의 수로 그리고 3을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는 수로 보는 해석을 제시했다. 이렇게 볼 때 100+50+3=153이라는 수는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삼위 일체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됨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의견에 저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물론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처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믿습니다만,
聖書はすべて、神の霊感によるもので、
이와 같은 해석이 필요한 부분은 주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환상이나 예언의 말씀을 주셨을 때인데, 오늘 이 153마리를 잡았다는 기록은 무슨 환상이나 예언이나 비유가 아닌 객관적 사실로서 적혀 있습니다.

이 기록을 적은 요한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베대의 아들, 즉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어부출신이었지요. 그러니까 요한은 물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는데도 그물이 안 찢어졌다는 것을 매우 놀라운 사실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글쎄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당시 그물이 몇 마리의 물고기까지 견딜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당시 요한을 비롯해서 어부들에게 있어서는 보통 크기도 아닌 큰 물고기가, 그것도 100마리도 아니고 150마리다. 그것도 150마리도 아닌 153마리나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당시 어부들이라면 마치 몇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떡 다섯 개과 물고기 2마리로 모두가 배불리 먹었다는 것처럼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는 베드로의 믿음이 이제는 더 이상 찢어지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취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믿음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튼튼한 믿음으로 성장한 베드로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때,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보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3장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すると、ペテロは、「金銀は私にはない。しかし、私にあるものを上げよう。ナザレの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歩きなさい。」と言って、

그곳은 예루살렘 성전 바로 앞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베드로는 그 못 걷게 된 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외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참 아찔한 순간입니다. 그 걷지 못하는 사람이 베드로한테 고쳐달라고 한 게 아니에요. 그냥 옆에서 구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지나친다고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괜히 일어나라고 했다가 안 일어나면 이게 무슨 망신입니까.

그들은 사도였습니다만, 만약 여기서 망신을 당하게 된다면 그들의 사역은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잘못 했다가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그냥 지나치는 게 인간적으로 보면 백 번 나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베드로는 찢어지는 믿음, 약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기적을 기대하는 튼튼한 믿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사람을 바라보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래도 안 일어나니까 오른손을 잡고 일으킵니다.

그러자 사도행전 3장 7절과 8절에 보면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たちまち、彼の足とくるぶしが強くなり、おどり上がってまっすぐに立 ち、歩きだした。そして歩いたり、はねたりしながら、神を賛美しつつ、ふたりといっしょに宮にはいって行った。

라고 기록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사도행전 4장 4절,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しかし、みことばを聞いた人々が大ぜい信じ、男の数が五千人ほどになった。

여기서도 남자의 수만 약 5천 명이었으니 여자나 미성년자까지 포함한다면 훨씬 많은 숫자였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찢어지는 믿음, 약한 믿음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지만, 튼튼한 믿음은 놀라운 믿음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스스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보아야 할 줄을 믿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그물을 씻으면서 텅 빈 배를 바라보며 한 숨만 쉬십니까. 이제 우리는 찢어지는 믿음, 약한 믿음에서 벗어나 강한 믿음, 튼튼한 믿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에 나가며 직분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찢어지는 믿음, 약한 믿음은 기적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전혀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강한 믿음, 튼튼한 믿음은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주님의 기적을 기대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바로 어떤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합니다. 하박국 3장 17절~18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そのとき、いちじくの木は花を咲かせず、ぶどうの木は実をみのらせず、オリーブの木も実りがなく、畑は食物を出さない。羊は囲いから絶え、牛は牛舎にいなくなる。しかし、私は主にあって 喜び勇み、私の救いの神にあって喜ぼう。

아멘!

이제 약한 믿음, 찢어지는 믿음에서 벗어나, 주님의 역사를 의지하고 주님의 기적을 기대하는 놀라운 믿음으로 성장해서, 아무리 큰 물고기를 잡는다 하더라도 찢어지지 않는 튼튼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큰 축복에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88회 잘 되어야 합니다 →

← 제86회 그는 무엇을 팔았는가

 

이카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