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회 거룩하다는 것
2017년 8월 6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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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레위기 11장 45절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거룩하다는 것” 聖なるということ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하십니다.

성경 말씀에 보면 모든 것이 다 명령, 즉 반드시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것만이 아닙니다만, 오늘 하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보면 <거룩해도 된다>가 아니라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선택지가 없습니다. 거룩해도 되고 안 되도 뭐 어쩔 수 없고……가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룩해져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도대체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지 거룩해질 수 있겠지요.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거룩해지고 싶어도 거룩해질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거룩하다는 의미에 대해서 3가지로 정리해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함에 대해서 묵상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으로 우리가 거듭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첫째로 우리가 먼저 거룩하다는 것에 대해서 알아볼 것은 <어디가 거룩한가>가 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 이유는 그냥 얼굴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애굽에서 핍박 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막중한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 때 호렙산(ホレブ) 불타는 떨기나무(柴木)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신 첫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출애굽기 3장 5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神は仰せられた。「ここに近づいてはいけない。あなたの足のくつを脱げ。あなたの立っている場所は、聖なる地である。」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신 곳이 호렙산이라고 하는데, 이는 시내산과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만이 아니라 모세 오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시내산에 나타나시고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기도 하셨던 곳이지요.

예전에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그 곳 신학교에서는 성지순례를 가는 커리큘럼이 있어서 신학교 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 참가하는 학생 중에는 목사님들도 계시다고 해요. 그 코스 중에는 시내산을 등산하는 코스도 있다고 하는데, 요즘도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특히 한국 목사님들은 이 산을 오를 때 넥타이에 양복을 입고, 그리고 구두를 신고 오르신대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시내산은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산이라고 해서 예를 갖추는 의미에서 정장을 입고 산을 오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 산이 양복 차림에 구두를 신고 오를 만한 산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휴, 그렇지 않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아니 그러면 그런 차림으로 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만, 조금 올라가면 땀도 나고 발도 아파지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야 그렇겠죠. 그래서 그럼 다른 사람들도 다 양복을 입고 올라가냐고 했더니만, 아니래요. 한국 목사님들만 그러신다는 것입니다. 제게 이 말을 해준 분은 당시 전도사님이셨는데, 자기는 그냥 편안한 차림으로 올라갔다고 해요.

글쎄요. 뭐, 그런 경건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셨을 줄 압니다만,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 만난 어떤 목사님께서는 제게 또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분께서는 한국에서 신학교를 다니시면서 이른바 성지순례를 하고 오셨다고 하는데, 그 분이 가셨던 코스에는 이른바 <엠마오로 가는 길>エマオ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한테 나타나시고는 함께 걸으시면서 성경을 풀어주셨던 곳이지요.

그러면서 이 목사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이, <홍 전도사, 거기 갈 때에는 정말 기도를 많이 하고 가야 해. 그런데 기도를 많이 하고 가면 정말이지 그 길을 걷고 있을 때, 예수님이 나와 함께 걸어주시는 느낌이 든다니까> 라고 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음……뭐, 그래요. 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만 계신가요? 누구는 이른바 성지순례를 하는 이유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저는 이 <성지순례>라고 하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예루살렘이나 시내산에 가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언제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하게는 <성지순례>가 아니라나 어디까지나 <성지관광>이지요.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꼭 예루살렘에 가야만 하나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오르신 <비아 돌로로사 ヴィア・ドロローサ >를 꼭 걸어야지만 예수님을 느낄 수가 있나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셨던 시내산에 가야지만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건가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유비쿼터스.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 하시다고 하잖아요. 무소부재. 안 계신 곳이 없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임마누엘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자리에도 이 순간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은 단순히 <호렙산>, <시내산>이 거룩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시는 바로 그 장소 거룩한 것이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시는 바로 그 시간, 바로 그 순간이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는 언제가 거룩합니까. 어디가 거룩합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예배 드리는 교회 성전 만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께 기도를 드리는 바로 그 시간, 주님께 찬송을 드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거룩하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이 거룩한 곳에서의 거룩한 시간을 1분 1초라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둘째로 우리가 거룩하다는 것에 대해서 알아볼 것은 <누가 거룩한가>가 입니다.

성경에는 모세만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많은 왕과 선지자, 예언자, 제사장, 그리고 사도들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중에서 누가 거룩한 것일까요. 이는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의 지위나 직분 같은 것은 주님 안에서 그 가치가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었다면 하늘나라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어요? 교회에서 높은 직분을 받았다면 하늘나라에서도 높은 직분을 받나요? 물론 꼭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보장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 거룩한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그냥 우리를 가만히 지켜만 보시는 분이신가요?

이사야 59장 1절에 의하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イザヤ書59章1節
見よ。主の御手が短くて救えないのではない。その耳が遠くて、聞こえないのではない。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손을 펴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심판의 날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금방 심판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래 참으시기는 하되 영원히 참으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심판의 날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날을 대비해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하다는 것을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계십니까.

히브리서 10장 10절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へブル人への手紙10章10節
このみこころに従って、イエス。キリストのからだが、ただ一度だけささげられたことにより、私たちは聖なるものとされているのです。

히브리서 10장 14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へブル人への手紙10章14節
キリストは聖なるものとされる人々を、一つのささげ物によって、永遠に全うされたのです。



히브리서 13장 12절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へブル人への手紙13章12節
ですから、イエスも、ご自分の血によって民を聖なるものとするために、門の外で苦しみを受けられました。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피를 흘리신 이유는 바로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요 사회적 지위가 높고 많이 배우고 돈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에 의지할 수 밖에는 없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거룩하다는 것에 대해서 알아볼 것은 <나는 거룩한가>가 입니다.

예전에 제가 한국에서 텔레비전을 보니까 한국최초 여성 비뇨기과 의사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그게 1999년이더라구요. 지금은 여성 비뇨기과 전문의가 30여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최초이다보니까 큰 화제가 되어서 토크쇼에도 나오고 했었습니다만, 저도 우연히 그 중 한 방송을 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분이 그 방송에서 여러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그 토크쇼 사회자가 그 의사 선생님한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혹시 시청자분들한테 좀 하고 싶은 말씀이나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라고 했더니, 이 분이 하시는 말씀이 그거예요.

뭐라고 하셨냐 하면, 좀 오시기 전에 목욕을 하고 오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진찰을 하다 보면 특히 남성 환자보다도 여성분이 겉은 예쁘게 차려 입고, 화장도 곱게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좀 진찰을 하려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는 말씀을 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무슨 여기서 남자보다 여자가 더 불결하다, 뭐 이런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제가 알던 어떤 남자분은요, 미용실에 가기 전에 절대로 머리를 안 감으세요. 아니, 거기 가면 감아주는데 뭐하러 감고 가느냐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여러 가지가 생각 나네요. 제가 한국에서 일본 대학을 가고자 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의 일인데, 어떤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아주 공부를 잘해서 일본 명문 국립대에 진학을 했어요. 그런데 이 학생의 아버님이 치과의사이신데, 대학에 다니다가 방학 때 잠시 귀국했을 때 찾아왔길래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아버님이 좀 일찍 은퇴를 하려고 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 그럴 연세도 아니실 텐데 하고 그 이유를 물었더니만, 그 학생 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환자들한테서 나는 입 냄새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니, 아버님이 오랫동안 치과 선생님을 하셨는데 여전히 힘들다고 하시냐고 했더니만,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게 더 견디기가 힘들어진다고 하시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오죽하면 다른 일도 아닌 치과의사를 일찍 은퇴하시려는 생각도 하시겠습니까.

정말 참 웬만하면, 병원에 가실 때에 목욕도 하고 가시고, 치과에 가기 전에는 깨끗하게 양치질도 하고 가시고, 미용실에 가시기 전에는 머리도 감고 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사실 사람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면서 속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를 들어서 본다면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 그야말로 화려한 궁전이죠. 과거에는 남녀 할 것 없이 아름답게 차려 입은 왕족들과 귀족들로 넘쳐나고 우아한 음악들과 고급 음식들로 가득찬, 그야말로 사치와 향락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베르사이유 궁전에 화장실이 없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도 해요. 화장실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뭐 당시 파리에는 오물들이 넘쳐났기 때문에 높은 구두가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사실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향수에 대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귀족들이라 하더라도 그리 목욕을 자주 하는 문화가 아니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 냄새를 지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향수라는 것입니다. 향수를 뿌리면 오랫동안은 아니라 하더라도 잠시 동안은 자신의 불결한 몸에서부터 나는 냄새를 어느 정도 가릴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요즘 세상에서 무슨 목욕을 자주 안 하는 사람만이 향수를 쓰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그와 같은 눈에 보이는 화장이나 향수가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영적인 화장이나 향수입니다.

이 영적인 화장이나 향수로 대표되는 사람이 바로 바리새인들이겠지요.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고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3장 27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マタイの福音書23章27節
わざわいだ。偽善の律法学者 、パリサイ人。おまえたちは白く塗った墓のようなものです。墓はその外側は美しく見えても、内側は、死人の骨や、あらゆる汚れたものがいっぱいです。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고 이를 석관에 안치하면 1년에 한 번 그 겉면을 회칠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얗게 칠한 한 무덤은 햇빛을 받으면 어떻게 보여요? 예, 깨끗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정결하게 보이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겉으로는 하얗게 칠을 해서 깨끗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 속은 어떻습니까. 뼈와 살이 썩어 들어가고 있는, 심히 부패한 곳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합니다. 그래요.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지요. 마치 불결한 몸에 향수를 뿌린 것처럼 어느 정도는 그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봤자 우리 속이 깨끗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깨끗한 척을 해 봤자, 아무리 우리가 의로운 척을 해 봤자, 아무리 우리가 믿음이 좋은 척을 해 봤자, 이는 우리가 구원을 받은 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른바 교회에 다니는 우리들을 성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룩해서 성도입니까?

그리고, 교회에서 예배 때 찬양을 하는 분들을 성가대라고 합니다. 요즘은 <찬양대>라고 하는 곳도 많습니다만, 그렇다면 성가대에 있는 사람들이 거룩해서 성가대입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도이고, 왜 성가대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스럽다고 하는 <성>자가 붙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성스럽고 거룩해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을 위해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모두가 목사 안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 그만두고 교회에서만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거룩합니까? 우리가 구원 받아 마땅하기에 구원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구원을 받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다고 여겨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요한복음 14장 6절을 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ヨハネの福音書14章6節
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わたしが道であり、真理であり、いのちなのです。わたしを通してでなければ、だれひとり父のみもとに来ることはありません。

사도행전 4장 11절~12절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使徒の働き4章10節~12節
「皆さんも、またイスラエルのすべての人々も、よく知ってください。この人が直って、あなたがたの前に立 っているのは、あなたがたが十字架につけ、神が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せたナザレ人イエス。キリストの御名によるのです。『あなたがた家を建てる者たちに捨てられた石が、礎の石となった。』というのはこの方のことです。この 方以外には、だれによっても救いはありません。天の下でこの御名のほかに、私たちが救われるべき名は人に与えられていないからです。」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겉으로 아무리 깨끗한 척, 거룩한 척을 해봤자 소용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하지 않고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나 깨나 아침이나 밤이나 오직 예수님을 의지하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오직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정결케 되고 거룩하게 되어서 온전히 주님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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