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회 간증을 예비하는 삶
2017년 10월 8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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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명기 5장 32절~33절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간증을 예비하는 삶” 証しに備える生き方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는 참 훌륭한 책들도 많고 훌륭한 교육자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공부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신앙적으로 보더라도 세계적인 교회나 목회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나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그리고 신앙적으로 보더라도 문제가 끊이질 않습니다.

똑똑한 사람들도 많고 훌륭한 사람들도 많고, 그리고 믿음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왜 이렇게 문제가 끊이질 않을까……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 하나가 바로 내가 말하는 것처럼 내가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슨 똑똑하다거나 훌륭하다는 것도 아니요, 믿음이 좋다는 것을 자랑하거나 내세우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문제점은 어쩌면 가까운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물론 잘못한 것도 많고 실수도 많이 하고 그랬습니다만, 사실 주님 앞에 그렇게 막 내 잘못을 회개하고 뉘우치고 그랬던 적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물론 그렇다고 제가 무슨 대단한 의인이라서가 아니라,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해서 제 잘못을 깨닫지 못해서이기 때문이겠습니다만, 그런데 적어도 지난 며칠 동안은 참으로 많은 회개를 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제 회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가 재작년 2015년에 다시 일본에 오고 난 후 바로 직면한 것은 교회 재정문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목회를 하면서 또 다른 직업을 갖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일본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약 7년 정도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건 자화자찬 같습니다만, 그래도 그 7년 정도는 정말 여러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았습니다. 일본어 독해에 대한 책도 쓰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일본 군마에서 알아보니까 일본어를 가르치는 곳이 있었기에 금방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 반 정도 근무를 했습니다. 저로서는 이것도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지 않아요. 잘 풀릴 것만 같다가도 일이 꼬이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됐냐 하면 결국 1년 반 만에 아무런 잘못도 없이 나오게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길이라면 어려움을 겪다가도 길이 열리고 해야 할 텐데, 나오게 되었다는 것은 이건 완전히 막혀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3개월 정도는 그저 말씀을 전하면서 전도도 하러 다니고 그랬습니다. 그러자 또 하나의 찬스가 돌아왔어요. 그건 바로 일본어교사 자격증 과정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자격증이 없이 경험이 있으면 가르칠 수 있었는데, 이제 제도가 엄격해져서 일본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려면 그 자격증을 따야 한다는 것이에요. 한국에서는 회화반은 자격증이 필요한데 제가 한국에 있을 때 맡았던 과목은 줄곧 시험반이라서 자격증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7월과 8월은 매일 학교에 가서 자격증 수업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들었습니다. 참 얼마나 피곤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재정적으로 어려운데 제가 나설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이것도 또한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견뎠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이 과정을 마치고 다시 일본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왠걸요. 여기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만, 거두절미하고 가르치기 시작한지 2주 만에 또 길이 막힌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제 그 2주 동안 가르쳤던 비용도 못 받게 되기까지 했지요.

이렇게 길이 열릴 것 같으면서도 꼬이고, 또 길이 열릴 것 같으면서도 막히고 하니까 참 난감해졌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머리 속이 하얘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 되십니까. 제가 뭘 잘못했나요?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도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뭔가를 주님 앞에 잘못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가는 온천에 가서, 탕에 들어가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더니만, 그때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이 참으로 많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새로운 사실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은 이미 제가 알고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무엇이 떠올랐냐 하면 그것은 바로 저 스스로가 전했던 말씀들이었습니다.

먼저 베드로부터 살펴볼까요? 풍랑 속에서 바다 위를 걸어오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베드로가 외칩니다.


마태복음 14장 28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すると、ペテロが答えて言った。「主よ。もし、あなたでしたら、私に、水の上を歩いてここまで来い、とお命じになってください。」

파도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물 위로 뛰어들자 베드로가 물 위에 올라섰습니다. 가라앉지 않아요. 예수님을 향해서 저벅저벅 걸어갑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로 뒤 30절을 봅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ところが、風を見て、こわくなり、沈みかけたので叫び出し、「主よ。助けてください。」と言った。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았더니 믿음이 생겼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면 물위를 걸을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갔더니,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가 바람을 바라본 순간 어떻게 되었습니까. 두려움이 몰려왔던 것입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상극입니다. 믿음과 두려움이 함께 있을 수는 없어요. 두려움이 몰려오자 그 때까지 가졌던 믿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에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으로 돌아가서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옵니다. 그런데 거기서의 생활이 어땠습니까.

창세기 12장 10절,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さて、この地にはききんがあったので、アブラムはエジプトのほうにしばらく滞在するために、下って行った。この地のききんは激しかったからである。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면 그 땅에 풍년이 들고 소출이 풍성해야 하지 않아요? 그런데 풍년은커녕 기근이 들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주신다고 했는데 기근이 들었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 땅을 지킨다. 아니면 그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간다. 어떻습니까. 예. 그 땅을 지켜야지요.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임한 기근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애굽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애굽에 가서는 자신의 부인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 수치를 당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약속만을 붙잡았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고,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했으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어땠습니까.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성인 남성만 60만명이었다고 하니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하면 200만명이 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광야로 나왔습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간신히 탈출하여 이제 숨 좀 돌리려고 하는데, 그들이 가는 앞길을 홍해가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옵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애굽 군대가 온다 하더라도 성인 남성 60만명이라면서. 그렇다면 한 번 싸워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60만명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도 아닌, 태어나서부터 그 때까지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당시 최고 선진국이자 최강국인 애굽 군대를, 그것도 성경에 보면 최정예부대가 추격해오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들을 상대로 어떻게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아무리 수가 많아 봤자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 때 모세는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합니다. 출애굽기 14장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主があなたがたのために戦われる。あなたがたは黙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모세가 싸우는 게 낫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싸우시는 게 낫겠습니까. 이건 물어보나마나죠.

출애굽기 14장 27절~28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モーセが手を海の上に差し伸べたとき、夜明け前に、海がもとの状態に戻った。エジプト人は水が迫って来 るので逃げたが、主はエジプト人を海の真中に投げ込まれた。水はもとに戻り、あとを追って海にはいったパロの全軍勢 の戦車と騎兵をおおった。残された者はひとりもいなかった。

만약에 모세가 그 때 홍해를 바라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자, 우리 양동이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물을 퍼내자고 했을까요?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해서 애굽 군대와 한 번 싸워보자고 했을까요?

하지만 그는 홍해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애굽 군대를 바라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민족의 희생자는 한 사람도 없었던 반면, 최정예 애굽 군대는 홍해에서 전멸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온 믿음을 볼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믿음을 말합니다. 느부갓네살(ネブカデネザル王) 왕이 세운 금신상, 우상한테 전을 하라고 하고, 절을 하지 않으면 풀무불 속으로 던져 넣겠다고 하는데도 그들은 어떻게 말합니까.

다니엘 3장 17절~18절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もし、そうなれば、私たちの仕える神は、火の燃える炉 から私たちを救い出すことができます。王よ。神は私たちをあなたの手から救い出します。しかし、もしそうでなくても、王よ、ご承知ください。私たちはあなたの神々に仕えず、あなたが 立てた金の像を拝むこともしません。」


이것이야말로 진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개역한글에서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이 믿음. 이것이 믿음의 힘이요,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 믿음의 고백과 함께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들어갔더니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27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太守、長官、総督、王の顧問たちが集まり、この人たちを見たが、火は彼らのからだにはききめがなく、その頭の毛も焦げず、上着 も以前と変わらず、火のにおいもしなかった。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을 바라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너머에 있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은 채로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입니까.

성경에 보면 이런 일들은 여기저기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 모두 바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홍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애굽 군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느부갓네살 왕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세처럼 승리하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이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그렇게 말씀을 전하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면,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어떻게 해서든지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하는 나 자신, 하나님을 믿으면 홍해가 갈라진다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씀을 전하면서도, 눈앞에 있는 홍해를 바라보고는 양동이로 열심히 물을 퍼내고 있는 나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하고 있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어떤 사람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일본에 보낸 이유가 무엇이냐, 일본에서 일본어 가르치라고 보냈느냐. 너 다시 생각해봐라.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옳지 않다……라고 하시면서 제가 생각했던 세상적인 길들을 모두 막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널리 알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복음을 증거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었다면 어떻게 간증할까요. 사람의 생각으로 하다가 수치를 당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삭을 얻을 수 있었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모세는 홍해를 바라보지 않고 애굽 군대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았더니,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가르고 애굽 군대를 무찔러주셨다고 간증할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이렇게 의지했더니 풀무불 속에서도 구원해주셨다고 간증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바람을 바라보았다가 물에 가라앉은 베드로. 그러나 그는 온전히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를 굳건히 세우는 사도로서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일본에 와서 이렇게 세상 일을 하면서 주님 일을 했다고 한다면, 나중에 어떻게 간증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이렇게 해서 교회가 부흥하고 교회 재정이 늘었다면 저는 어떻게 말했을까요.

예, 물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본선교는 부업을 해가면서 해야지 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려워요. 그러니까 교회 일도 하면서 세상 일도 하면서, 그렇게 해야지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이렇게 말하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좋을까……

주님은 아실 것입니다. 제가 회사 근무를 하면서 전도지를 전혀 돌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님은 아실 것입니다.

주님은 아실 것입니다. 토요일 밤에 지쳐서 들어와서 졸다가, 간신히 새벽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말씀을 정리해서 강단에 오르곤 했었다는 사실을 주님은 아실 것입니다.

제가 그저 직장생활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평범한 회사원도 아니고, 그래도 주님께서 목사로 부르셨다면 감당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이처럼 하나님의 일보다도 세상일에 비중을 둔 모습을 보면 어떻게 그 길을 열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생각들이 겉잡을 수 없을 만큼 마음 속에 떠오릅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많은 회개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제 새롭게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님만 바라보고 전적으로 주님 일에만 매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어떤 간증 같은 말씀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이런 어려움이 있었다, 저런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주님이 도와주셔서 이렇게 해결 되었다 저렇게 역사해주셨다……라고 하면 물론 많은 은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지만, 저처럼 좀 삐딱한 사람이 들으면 가끔은, <그래, 뭐 잘 됐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할 때에는 <저게 무슨 하나님 자랑인지 자기 자랑인지 모르겠다>라고 좀 들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제 모습,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습니다. 여러 문제들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된 하나님은, 매우 자존심이 강한 분이십니다.

그러니 어떻겠습니까. <하이구, 거기 이카호중앙교회 홍목사 봐, 하나님만 의지했는데 결국 쫄딱 망했더라> 이런 말은 절대로 듣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거기 홍목사, 세상 일 다 정리하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 일에만 매진했더니 정말 잘 되었더라.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신가봐> 이런 말들을 듣기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참된 전도요, 참된 부흥이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역사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는 저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지금 문제가 있습니까. 내가 내 힘으로, 내 지혜대로, 내 능력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면 주님은 일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일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맡기겠습니까.

내가 일을 하는 것은 홍해 물을 양동이로 퍼내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은 단번에 홍해를 가르시는 것입니다.

지금 어려움이 있을 때, 지금 문제가 있을 때, 이 어려움이 해결되고 난 다음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간증하기를 원하고 계실까, 지금 이 문제가 사라진 다음에 어떻게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기를 원하고 계실까.

이처럼 간증을 준비하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명기 5장 32절~33절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あなたがたは、あなたがたの神、主が命じられたとおりに守り行ないなさい。右にも左にもそれてはならない。あなたがたの神、主が命じられたすべての道を歩まなければならない。あなたがたが生き、しあわせになり、あなたがたが所有する地で、長く生きるためである。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면서 세상적인 방법을 의지하려고 좌로나 우로 치우친다면, 하나님은 일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의지하여 간증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맡긴다면, 우리에게 축복이 넘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처럼 간증을 준비하는 삶을 통해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주님의 지혜를 의지하고, 주님의 방법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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