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회 미루어 헤아리는 믿음
2017년 12월 10일 설교

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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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7절~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미루어 헤아리는 믿음” 推し量る信仰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보니까 일본 올해의 유행어 대상으로 두 단어가 발표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인스타바에라는 것인데, 이는 인스타그램……이라고 해서 인터넷에 자신을 올리는데 보다 잘 나오게 찍힐 만한 풍경이나 패션, 요리 같은 것을 말합니다. 글쎄요. 우리말로 하자면 사진빨이 잘 받는다…는 말이 있는데, 사진빨…이 아닌 인스타빨…이라는 단어가 말하자면 인스타바에……라는 단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인다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좋은 사진을 많이 올리게 되면 전세계 사람들이 그 사진을 보게 되고, 반응도 뜨겁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뭐 돈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다는 마음 때문일까요? 그래서 레스토랑 같은 데에 가면 음식을 시켜놓고, 이를 먹기 전에 사진을 찍느라고 난리인 경우를 볼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두 번째로 선정된 단어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촌탁”이라는 단어입니다. 이게 참 한국 사람만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한테도 그리 익숙한 단어가 아닙니다.

사전에 의하면 촌탁이란 “남의 마음을 미루어서 헤아리다.  他人の心をおしはかること。また、おしはかって相手に配慮すること。”는 뜻입니다.

어려운 단어에 비해 뜻은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왜 올해의 유행어로 뽑혔냐 하면 그 내면이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서 상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사가 부하한테 어떤 지시를 했습니다. 그러면 부하직원은 그 지시에 따라야 하겠지요. 이건 회사만이 아니라 어떤 조직에 있어서나 당연한 논리입니다. 정치나 공직자들도 마찬가지겠지요. 대통령이나 총리가 밑에 있는 장관이나 관료들한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립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그 지시에 따라야 하겠지요.

그런데 만약에 대통령이나 총리 밑에 있는 장관이나 관료들한테 한 지시가 부당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서 입찰 갈은 경우를 본다면 그 입찰에 참가하는 회사들한테 있어서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대통령이나 총리가 지시를 하기를 어느 한 기업한테 유리하도록 특혜를 주라고 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 그건 아무리 대통령이나 총리라 하더라도 위법성이 있는 지시입니다. 나중에 이런 사실이 탄로나게 되면 이를 지시한 대통령이나 총리는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게 되겠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여기서부터가 문제인데, 학교 설립에 관한 신청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학교 설립에 대한 심사를 맡고 있는 관료라고 칩시다. 그런데 이 학교 설립에 대해서 심사를 해보니까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이 좀 많았습니다. 그래서 설립허가를 내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학교 설립신청을 낸 이사장이 자기 상사인 현직 총리인 아베 총리와 대단히 친분이 있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이 총리도 그 사람이 학교 설립 신청을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지요. 학교 설립이라고 하면 이는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어마어마한 돈이 움직이는 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여러분의 상사인 총리는 자기와 대단히 친분이 있는 그 이사장이 학교 설립 신청을 냈다는 것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관료인 내가 그 심사를 맡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총리가 나한테 무슨 요구나 지시사항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없었어요.

이 시점에서 분명한 점 4가지를 정리해서 말씀 드립니다. 첫째로, 총리와 대단히 친분이 있는 이사장이 학교 설립 신청을 냈습니다. 둘째로, 학교 설립 허가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셋째로, 총리는 여러분한테 특혜를 주라고 하거나 허가를 주라고 하거나 하는 위법성이 있는 압력을 넣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넷째로 총리는 관료인 여러분이 그 심사를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심사를 맡고 있는 담당 관료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학교 이사장이 아무리 내 상사인 총리와 대단히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허가를 내줄 수는 없지. 기각.

만약에 여러분께서 이렇게 곧바로 대답을 하셨다면, 예, 맞습니다. 그게 정답입니다…라고 말씀 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에 이 말을 덧붙이겠지요. “그걸 누가 몰라요?”

예전에 어떤 텔레비전 광고를 보았습니다. 여기에 공사 현장감독이 등장하는데 거기 항의를 하러 찾아온 고객한테 죄송하다면서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옆에 서 있던 젊은 부하직원한테도 너도 어서 빨리 사과 드려……그러면서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사과를 받은 고객이 돌아갑니다. 그러자 그 젊은 부하직원이 현장감독한테 따집니다.

감독님,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우리가 사과해야 합니까. 그러자 이 현장감독이 말합니다. “너도 지켜야 할 것이 생기면 알게 될 거야.” 「お前も守るものができればわかるよ」

참 인상 깊지 않습니까. 이 고참 현장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잘못한 것 없어. 그걸 누가 몰라? 하지만 나한테는 지켜야 할 회사가 있어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어. 처자식이 있다고. 여기서 내가 고집을 부린다고, 내 체면을 세운다고 무슨 득이 되겠냐. 차라리 그냥 내 자존심 버리고 사과하는 게 우리 회사를 지키고 우리 가족을 지키는 일이야……이것 아니겠습니까.

앞서 학교 설립에 대해서는 이처럼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설립 인가가 나버린 것입니다. 관료가 인가를 해줘 버렸어요. 그래서 그 특혜를 주라고 지시를 한 게 아니냐, 또는 그런 지시를 하지 않았어도 총리 마음을 헤아리고, 눈치를 추고 지레 짐작으로 학교 설립 인가를 준 게 아니냐 하면서, 국회에서도 연일 총리한테 추궁을 하고 난리였습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이 <촌탁>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는 일, 그래서 알아서 기는 일이 바로 앞서 살펴 본 “촌탁”이라는 말입니다만, 그렇다면 이 “촌탁”이라는 것은 나쁜 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인가요? 어떤 뉴스를 보니까 기자가 밖에 나가서 직장인들한테 물어봅니다. 당신은 이 <촌탁>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있냐고 말이에요. 그랬더니 뭐라고 했겠어요.

자기들은 맨날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맨날 자기 상사 눈치 보고, 자기 거래처 눈치 보면서, 알아서 기는 일을 매일 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사장이나 직장 상사가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척척 입맛에 맞도록 일처리를 한다면 얼마나 칭찬을 받겠어요. 하지만 반대로, 도대체 말을 안 하면 못 알아먹어요. 분위기 파악을 못해요. 그러면 무슨 말을 듣겠습니까.

쯧쯧쯧… 이런 눈치 없는 것 같으니라구. 내가 꼭 말을 해야 되겠어? 그렇게도 내 마음을 모르나? 뭐 이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참 세상에서 직장에 다니면서 또는 사업을 하면서 보면요, 치사한 일이 한 둘이 아닙니다. 참 많습니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 자식이 밖에서 어떻게 돈을 벌어 오는지를 알면 부모가 그 돈을 못 쓴다는 거예요. 이처럼 참 정말 촌탁인지 뭔지까지 해가면서 분위기 파악하고, 눈치 보고, 치사한 일 다 겪어 가면서 돈을 번다는 뜻이겠지요. 저도 직장생활, 회사생활을 해봐서 조금은 압니다. 정말로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 참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렇게 자기 자존심을 버리고 상사 눈치를 보고 그 입맛에 맞춰서 일처리를 하면 상사나 거래처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되면 승진도 되고 출세도 잘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와 같은 잔머리가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자기 위에 있는 그 사람이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나를 지켜주고, 나를 보살펴준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가 커져서 잘못했다가는 내가 경찰에 잡혀가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항상 높은 자리에 계시면서 나를 지켜주고 나를 보살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게 누구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사람 눈치를 보고, 권력자들, 권세자들 눈치만을 보고 거기에 순종한다면 이는 불의한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서 모세의 모습을 봅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있는데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는 짓이 뭐였습니까. 지금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그게 하나님이라면서 거기에 대고 제물을 드리고 난리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세는 몰랐으나 하나님은 알고 계셨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출애굽기 32장 10절을 봅니다.

출애굽기 32장 10절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今はただ、わたしのするままにせよ。わたしの怒りが彼らに向かって燃え上がって、わたしが彼らを絶ち滅 ぼすためだ。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を大いなる国民としよう。」

이에 대해서 나중에 모세가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신명기 9장입니다.

신명기 9장 14절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わたしのするがままにさせよ。わたしは彼らを根絶やしにし、その名を天の下から消し去ろう。しかし、わたしはあなたを、彼らよりも強い、人数の多い国民としよう。」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가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속을 참 많이 썩힌 이스라엘 민족이 이제는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우상숭배를 하고 지네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그게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해낸 하나님이라면서 사람들이 막 미처 날뛰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노릇입니까.

우리는 이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그리고 모세에게 어떻게 해왔습니까. 정말 그야말로 하루가 멀다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불평과 불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정말 인내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하다하다 우상숭배까지 해요? 참으로 한심한 일이지요.

이제 하나님이 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 나 말리지 마. 내가 저놈들을 자 진멸하고 모세야, 너는 내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만 들으면 모세한테 있어서는 전혀 나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게 속을 썩였던 인간들을 다 멸해버리고 나로 하여금 다시 새로운 민족을 세워서 더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해 주시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말씀을 들은 모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여러분께서 모세였다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저라면 이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구 하나님, 참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아시죠? 저놈들이 얼마나 하나님이나 제 속을 썩였습니까. 그래요. 이 참에 저 나쁜 놈들을 싹 멸해버리시고 새 민족으로 깨끗하게 시작하십시다……라고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쯧쯧쯧… 이런 눈치 없는 것 같으니라구. 그렇게도 내 마음을 모르나?

그러지 않으셨겠습니까?


하지만 모세는 알았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야. 하나님께서 400여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하신 역사야. 그리고 그냥 이렇게 이끌어내신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의해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마침내는 홍해를 가르시기까지 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다면, 지금은 분명 이렇게 화를 내고 계시지만, 하나님은 이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고 계신 거야. 그리고 만약에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이 진멸하게 된다면, 그렇게 난리를 치고 애굽을 나가더니만 결국은 광야에서 다 죽이는구나. 무슨 그런 하나님이 다 있어? 하고 애굽 사람들이 비웃을 거 아니야? 그렇다면 하나님 체면이 뭐가 돼?

이렇게 생각한 모세는 뭐라고 합니까.

출애굽기 32장 11절~13절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v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しかしモーセは、彼の神、主に嘆願して言った。「主よ。あなたが偉大な力と力強い御手をもって、エジプトの地から連 れ出されたご自分の民に向かって、どうして、あなたは御怒りを燃やされるのですか。また、どうしてエジプト人が『神は彼らを山地で殺し、地の面から絶ち滅 ぼすために、悪意をもって彼らを連 れ出したのだ』と言うようにされるのですか。どうか、あなたの燃える怒りをおさめ、あなたの民へのわざわいを思い直してください。あなたのしもべアブラハム、イサク、イスラエルを覚えてください。

あなたはご自身にかけて彼らに誓い、そうして、彼らに、『わたしはあなたがたの子孫を空の星のようにふやし、わたしが約束したこの地をすべて、あなたがたの子孫に与え、彼らは永久にこれを 相続地とするようになる』と仰せられたのです。」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한 번만 참아 주세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있잖아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라고 간곡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중보자의 모습이요, 훌륭한 지도자의 모습입니까.

세상의 지도자들은 대부분이 사람들 앞에 군림하기 좋아하고 번쩍이는 옷에다가 큰 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신의 힘을 자랑하길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자신의 이웃을 위해서 자신의 조국을 위해, 자신의 민족을 위해,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중보자요, 훌륭한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 마음에 딱 들어맞는 기도를 드리니까 어떻게 됩니까.

출애굽기 32장 14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すると、主はその民に下すと仰せられたわざわいを思い直された。

하나님께서는 그러셨을 것입니다. 그래, 네가 내 마음을 아는구나……역시 너는 훌륭한 지도자야.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그 간청을 받아들이시고 마음을 돌이키셔서 화를 내리지 않았다고 성경은 기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로부터 바로 이 기도를 듣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 백성의 중보자로서, 지도자로서의 기도를 듣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나쁜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그 인간은 정말 나쁜 사람 같아요. 그런데 왜 멸하지 않으실까. 왜 빨리 데려가지 않으실까.

조금 더 거슬러올라가 볼까요? 여러분께서는 혹시 그런 생각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애초에 우리가 이 고생을 하고 있는 이유가 뭐예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善悪の知識の木の実)를 따먹었기 때문이잖아요.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도 에덴에서 즐겁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갔을 텐데, 괜히 아담과 하와가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아예 그냥 그 나쁜 아담과 하와를 싹 멸해버리고 깨끗하게 다시 시작하셨다면 참 좋으셨을 텐데 왜 괜히 아담과 하와를 살려두셔 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고생하게 하실까……이거 제가 좀 고약해서 저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가요?

하지만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즉시 멸해버리실 정도로 성질이 급하셨다면, 이스라엘 민족을 당장 멸해버리실 정도로 성질이 급하셨다면,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율법적인 기준으로만 보셨다면 우리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단 한 사람도 율법 앞에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실 지 아세요? 글쎄요. 이 때는 아무래도 자기 이름을 대는 게 제일 좋겠지요?

야, 저 홍성필이라는 녀석 말이야. 아무리 두고 봐도 안 되겠어. 내가 얼마나 지켜봤는데 도저히 좋아질 것 같지가 않아. 내가 저 녀석한테 얼마나 많은 것을 주고,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도무지 좋아질 것 같지가 않아. 그냥 싹 쓸어버리고 깨끗하게 시작할까?


이럴 때 누군가가 말씀하십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래도 저 녀석을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지금까지 기다려주셨잖아요. 그리고 제가 저 녀석의 죄를 다 해결하신 것 기억하시잖아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반드시 회개하고 돌아올 거예요.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해주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중보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6절을 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神は唯一です。また、神と人との間の仲介者も唯一であって、それは人としてのキリスト・イエスです。
キリストは、すべての人の贖いの代価として、ご自身をお与えになりました。これが時至ってなされたあかしなのです。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중보자가 되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주시는 것만큼 내 이웃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나한테 물으실 지도 모릅니다. 얘 너 누구누구 미워하지? 내가 생각해도 참 밉다. 아주 못 돼먹었어. 그래서 내가 벌을 주어야 할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그럼 여러분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이구, 하나님, 거 생각 참 잘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도 그렇죠? 그 인간이 얼마나 나쁜 놈인데요. 이제라도 그 사실을 아셨으니 참 다행이십니다. 자, 어서 더 늦기 전에 아주 그냥 정신이 바짝 들게 된통 혼을 내주세요…… 그러시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신다고요?


쯧쯧쯧… 이런 눈치 없는 것 같으니라구. 그렇게도 내 마음을 모르나?

그러시지 않겠어요? 우리는 사람한테 하는 촌탁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 하는 촌탁,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멸하시려고 작정하셨다면 우리 자신도 벌써 심판 받아서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처럼 이렇게 죄도 많고, 믿음도 때로는 흔들리고, 이렇게 부족한 우리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서 예배를 드리게 해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만큼 우리 이웃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하겠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성탄절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人の子が来 たのが、仕えられるためではなく、かえって仕えるためであり、また、多くの人のための、贖(あがな)いの代価として、自分のいのちを与えるためであるのと同じです。」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해주시는 일 말고는, 그와 같이 가장 힘든 일만 빼고는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감당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이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시겠습니까. 그래, 마음 같아서는 그냥 꼴도 보기 싫은 인간들이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셨는데, 내가 먼저 섬기겠습니다. 내가 먼저 용서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와 같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죄인이라도 잃는 것을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4절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このように、この小さい者たちのひとりが滅びることは、天にいますあなたがたの父のみこころではありません。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마음이십니다. 이 마음을, 이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헤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우리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오신 성탄절이 조금 있으면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이 성탄절을 앞두고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그럼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축복을 모두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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