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회 먼저 해야 할 일
2017년 12월 3일 설교

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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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Last Update 2019. 5. 21

마태복음 6장 14절~15절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즘 일본에서 뉴스를 보면, 물론 북한 미사일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어제 보니까 월드컵 추첨 이야기도 있고 그렇습니다만, 아무래도 스모 선수인 하루마후지(日馬富士)에 대한 내용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사건 수사가 진행중이라서 모두가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을 간추려서 설명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일본 스모에서 최고위에 해당되는 요코즈나(横綱)인 하루마후지는 지난 10월 25일 스모 선수들끼리 술자리 모임에 참석했었다고 합니다. 이 하루마후지는 몽골 출신 선수였는데, 그 자리는 몽골출신 선수 모임의 성격이 강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모임 자리에서 이 하루마후지 선수가 후배 몽골 선수한테 폭행을 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뭐 여기서 때릴 때 맨손으로 때렸다느니 맥주병으로 때렸다느니, 그래서 머리 뼈가 금이 갔다느니 하는 보도가 연일 이어졌습니다.
글쎄요. 사실 맥주병으로 때렸다면, 이는 보통 일이 아닙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에서 싸움을 할 때 보면 맥주병으로 머리를 때리면, 맥주병이 박살이 나고 하는 장면을 보신 적이 있으시겠습니다만, 그건 진짜 맥주병이 아니라 설탕으로 만들어진 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짝 때려도 그렇게 박살이 나곤 하는데, 진짜 맥주병은 그렇게 쉽게 안 깨집니다. 만약에 사람을, 그것도 머리를 그렇게 때렸다고 한다면 그건 스모 선수가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들이 휘둘렀다고 해도 큰 일 날 정도로 다치거나, 자칫하면 사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맨손으로 때렸다고 하는데, 그건 또 반대로 아무리 씨름 선수, 그것도 요코즈나 정도 되는 선수라고 하더라도 맨손으로 때려서 머리 뼈에 금이 간다고는 볼 수 없겠지요. 사진도 공개가 되었습니다만, 이는 맨손으로 어떻게 해서 될만한 상처는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맥주병은 맨 처음에 들긴 들었는데, 병 표면에 물기가 묻어 있어서 미끄러졌다고 하고, 결국 옆에 있던 노래방 리모컨으로 때렸다고 합니다. 뭐로 때렸건 간에 맞은 사람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것도 보통 사람이 때린 것도 아니고 스모선수, 그것도 요코즈나가 때렸으니 말 다했지요. 그리고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 두 대를 때린 게 아니라 수십 대를 때렸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폭행이었죠.
이에 대해서 보도된 것이 11월 중순인데, 그 때부터 신문이고 텔레비전이고 무슨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연일 이에 대해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폭행을 가한 요코즈나 하루마후지 말에 의하면 후배 선수가 너무나도 건방지게 굴었다는 것입니다. 이 선수 말에 의하면, 그 모임 자리에서 선배가 후배 선수들한테 훈계를 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에 문자가 왔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 후배 선수가 스마트폰을 보았더니, 선배 선수가 누구한테 왔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후배 선수가 자기 여자친구한테서 왔다고 했답니다. 그러자 선배 선수가 말하기를, 지금 선배가 훈계를 하고 있는데 뭐하는 짓이냐 하고, 한 대 머리를 툭 쳤대요. 그 자리에서 이 후배가 잘못했다고 하면 괜찮았을 텐데, 반대로 이 선배를 노려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쭈 이 자식이……이래서 때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해자인 요코즈나 하루마후지 이야기이고, 피해 당사자는 아직 직접 방송에 나와서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관계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 여기까지 들은 여러분께서는 어떻습니까. 이 후배, 버르장머리 없는 이 후배는 맞아도 싸다……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나요?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서 요코즈나 하루마후지는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스모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렇지, 사실 이 일본에서의 스모 인기는 대단합니다. 요코즈나 정도 되면 기본 연봉이 얼마쯤 되냐 하면 4천5백만엔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4억 5천만원 정도가 되는 샘이죠.
거기에 실적에 따라 수당이 붙고, 행사 때마다 또 특별수당이 붙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코즈나가 1년에 받는 수입은 대략 1억엔, 10억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공식 씨름선수가 대략 700명 정도가 있고, 요코즈나는 4명이 있었는데, 단순계산으로 본다면 0.6프로에 불과합니다. 과거에는 모두가 일본인이었습니다만, 스모에 대한 인기가 세계에까지 알려지면서 지금은 몽골 만이 아니라 국적도 매우 다양해져서, 종종 백인 스모 선수도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일본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몰려드는 선수들을 이기고 요코즈나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겠지요. 말 그대로 피와 땀과 눈물의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요코즈나 하루마후지가 일본에 처음 온 것이 17년 전인 2000년 9월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16살이었습니다. 몽골에서는 일본 스모가 상당한 인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스모 선수가 된다는 것은, 글쎄요. 야구로 본다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것처럼 영웅대우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당시 얼마나 큰 꿈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17년 간, 그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견디면서 올라간 그는 단 하룻밤, 아니, 불과 한 시간도 안 되는 동안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서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일이 이렇게 커지자,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17년간 열심히 해왔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그가 잃은 것은 연봉 10억원이라고 하는 수입만이 아닙니다. 본래 요코즈나 정도 되는 스모 선수가 은퇴를 하게 되면 스모 감독이 되어서 후진 양성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러려면 일본 국적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그는 당시 일본 국적 취득을 위한 수속을 진행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스모를 계속 할 수도 없고, 감독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스모 세계에서 완전히 떠날 수밖에 없게 되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고 몽골에 돌아가면 따뜻하게 맞아주나 하면, 지금까지 몽골에서도 계속해서 신문 보도가 이루어졌는데, 이미 이 하루마후지에 대한 몽골 사람들의 반응도 냉담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스포츠 선수로서 이런 불명예스러운 은퇴를 하고, 그것도 더구나 같은 후배 몽골 선수를 팼으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야말로 돈도 명예도 한 순간에 잃어버린 격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사건 전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피해 당사자인 후배 선수가 경찰조사는 받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공개적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백 보 양보를 해서, 이 요코즈나 하루마후지가 한 말이 100% 맞다, 정말로 후배 선수가 버르장머리 없는 짓을 했다고 칩시다. 정말 맞을만한 짓을 했다고 쳐요. 하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일이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하루마후지는 은퇴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폭행 원인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후배를 생각해서, 이후의 일을 생각해서 혼을 냈다. 후배한테 있어서 예의와 예절을 제대로 가르치려 했는데, 너무 지나치게 되고 말았다. 선배로서 후배한테 예의범절을 가르치려고 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좀 과하게 되어서 이렇게 되고 말았다는 것이지요.
선배가 후배를 혼내는 일, 상사가 부하를 혼내는 일,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 어린 사람을 혼내는 일……어찌 보면 흔히 있는 일이 수도 있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우리에게 어떤 생각이 있습니까. 그렇죠. 너한테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나는 문제가 없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만약에 이 요코즈나가 그 버릇없는 후배를 보았을 때, 그래, 저 놈이 건방지긴 하지만,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아니면, 나도 부족한 점이 많은데, 어린 애가 저럴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을 단 한 번이라도 했다면 어땠을까요. 한 두 마디 쓴 소리를 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머리 뼈에 금이 가도록 두들겨 패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건으로 인해서 본인 스스로의 말처럼,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비판할 때에 보면 우리 속에는 어떤 마음이 있습니까. 바로, <나는 옳고 상대방은 나쁘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옳은 내가 옳지 않은 너를 비판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비판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성경을 봅니다.
누가복음 6장 37절을 봅니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우리는 비판을 하기 전에, 정죄를 하기 전에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이 용서라고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 또한 용서인 것입니다. 우리가 왜 용서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믿음이 좋아서요? 우리가 착해서요? 우리가 남들보다 잘나서 용서할 수 있나요?
성경을 보면 용서해야 하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 자신이 용서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4절에서 35절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여기서 한 달란트라고 하는 것은 당시 근로자들의 20년치 임금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냥 한 달란트도 아니고 10000달란트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게 도대체 몇 년치 임금이에요? 단순계산으로 20만년어치 임금이라는 것입니다. 20년치 임금이라면 그래요, 뭐, 갚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20만년어치 임금이라뇨. 이걸 어떻게 갚을 수가 있겠습니까. 절대로 갚을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데나리온이라는 것은 당시 하루 치 임금이 1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런데 100데나리온이라고 하면 100일치, 그러니까 3개월하고 10일치 임금 정도 되겠네요.
20만년어치, 100일치……라고 하니까 잘 감이 안 오시죠? 그렇다면 돈으로 한번 계산해보도록 하지요. 먼저 100일치 임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보면 평균 월급이 대략 300만원 정도라고 해요. 그러면 100일치 임금이라고 하면 3개월에 열흘 정도 보태서, 그냥 계산하기 쉽게 1000만원이라고 하지요. 1,000만원.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하지만 먼저 1달란트부터 계산해볼까요? 1달란트는 20년치 임금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300만원 곱하기 12를 하면 3600만원이 나옵니다. 이게 1년이에요. 그럼 20년이면 3600만원 곱하기 20이죠? 그러면 7억2천만원이 됩니다. 이게 1달란트예요. 그런데 여기에 얼마를 곱해야 해요? 예, 10000달란트라고 하니 10000을 곱해야겠지요? 그럼 얼마가 나오냐 하면 7조 2천억원이 나옵니다.
1000만원과 7조 2천억원……이라고 하면 저 같은 사람은 잘 감이 안 와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좀 숫자를 낮추면 알기 쉬울 것입니다. 1000만원을 1000원이라고 합시다. 그러면 7조 2천원은 어떻게 되냐 하면 7억 2천만원입니다.
7억 2천만원을 탕감해주었는데 단돈 1000원을 안 갚는다고 그를 잡아서 옥에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죄악 속으로 빠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일평생을 착하게 살려고 아등바등 노력을 해봐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가 있습니까. 율법 보다는 차라리 세상 법을 지키기가 훨씬 쉽습니다.
예를 들어서 세상에서는 작은 죄를 지으면 작은 벌만 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율법은 어떻습니까.
야고보서 2장 10절을 봅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지킬 수 있단 말입니까. 강물에 돌멩이를 던집니다. 그러면 큰 돌만 물에 가라앉나요? 아니요? 작은 돌도 물속에 가라앉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아무리 착한 척을 한다 하더라도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는 없다고 성경은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의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의지하면 됩니다. 십자가만 의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기만 하면 우리 힘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우리의 죄 모두가 탕감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큰 은혜를 입었는데, 돈으로 환산하자면 상상도 못할 빚을 탕감 받았는데, 우리 이웃한테 아주 작은 것 하나 탕감해주지 못하겠습니까.
그 탕감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용서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용서한다는 것은 우리가 탕감 받았다는, 우리 죄가 용서 받았다는 믿음의 간증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 믿음의 간증인, 은혜의 간증인 용서를 할 수 있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 12장 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나쁜 일이지만, 하나님이 생각하실 때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 혼자 생각하고 원수를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원수를 갚아야 할만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이를 갚아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맡기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그렇습니다. 용서를 하면 됩니다. 내가 나 스스로 수고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방을 해하면 죄가 되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면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아니겠습니까. 저 놈은 정말 나쁜 놈이야. 그런데 하나님이 아무런 벌도 안 내리셔.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하나님을 대신해서 내가 해?
하나님은 그러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용서이지 원수를 갚는 일, 복수를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하라는 일 하기도 바쁜데,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일까지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늘을 대신해서 내가 복수를 해요? 복수는 나의 것? 복수는 나의 힘? 영화 제목으로는 그럴 듯할지 모르지만, 그러다가 그야말로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그런 일 당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화가 나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잘 압니다. 저도 성격이 그리 고분고분한 편은 못 됩니다. 하지만 그 고비를 한 번 넘겨보자는 것입니다. 한 번 넘겨서 안 되면 두 번 넘겨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쉽나요? 아니요. 어렵지요. 하지만 그 어려움을 누가 아십니까. 예, 하나님이 아십니다. 예수님이 그런 우리 모습을 보시고 위로해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잖아요? 예수님을 믿잖아요? 그렇다면 한 고비, 두 고비 넘어가면서 용서해보시길 바랍니다. 용서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더할 나위 없는 간증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용서야말로 우리가 받을 축복의 열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 여기에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고백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용서야 말로 축복을 받는 핵심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어쩌다가 말실수로 이 용서라는 말씀을 넣은 것이 아닙니다. 이 주기도문은 마태복음 6장 9절~13절까지 나옵니다만,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주기도문을 말씀해 주시고 난 다음에 곧바로 한 번 더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14절~15절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는 용서는 어떤 용서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하면 어렵지요? 그렇다면 간단하게 질문하겠습니다.
용서가 먼저입니까, 사과가 먼저입니까.
여기에 많은 분들은 <사과가 먼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니, 사과를 하고 죄를 뉘우쳐야지 용서를 하든지 말든지 하지, 사과도 안 했는데 용서를 해? 그건 말도 안 돼……이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어땠습니까.
성경을 봅니다.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
자신의 죄를 알고 뉘우쳤다면 이는 죄인이 아니었겠지요.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먼저 사과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우리 스스로의 죄도 모르고 있을 때 먼저 십자가에 달려주셨던 것입니다. 만약에 사과하면 용서해준다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18장 21절~22절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이 말씀에 보면 어디에도 <사과하면>이라는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적인 용서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먼저 사과하라, 그러면 사과하는 것 봐서 용서해주겠다……그것 아니겠습니까. 만약에 사과를 안 하면 어쩌겠습니까? 맥주병으로 팰 건가요? 노래방 리모컨으로 때리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요?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성경에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6절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 뒤집어지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 손해 보라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용서야말로 축복을 받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용서야 말로 우리 믿음의 더할 나위 없는 간증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용서야말로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미운 사람이 있습니까? 나한테 잘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한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요? 그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내가 용서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 덕분에 내가 용서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상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것을 잃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크나큰 축복 받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에 용서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남들 보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남들보다 출세하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남들보다 용서를 더 많이 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더 많이 사랑하며 섬기는 믿음의 자녀가 되어서,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에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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