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회 순종하는 마음
2018년 1월 7일 설교

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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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6장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순종하는 마음” 従う心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새해 2018년 첫 주일예배입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보통 1월 3일~4일 정도까지 노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이제 연휴도 끝나고 대부분이 평상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떠세요? 이제 좀 2018년이라고 하는 새해에 적응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휴일에서 벗어나 머리 회전에 도움이 되도록 제가 문제 하나를 내드릴까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친구들끼리 여러 가지 수수깨끼를 내면서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 수수깨끼의 답이 무엇인지를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분명 내 것은 내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쓰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답을 아실 수 있겠어요? 예, 답은 간단합니다. 무엇이에요? 바로 이름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분명 내 것이지만 나 자신이 그 이름을 쓸 때보다도 다른 사람이 오히려 나를 부를 때 많이 사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름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도 그렇겠죠. 내가 내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뭐, 때로는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이름을 아예 없애버리고자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이름을 없애고자 하더라도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오늘은 이 이름에 대해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했으면 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떠나서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이 이름,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요,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 이름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한 사람당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이름, 그러나 이름의 가치라는 것을 보았을 때, 모두가 똑같다고는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이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면 여러분께서는 그 기준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물론 쉽게 떠오르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름>이라는 것을 떠오르실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알기 쉬운 경우가 바로 정치인들이겠지요. 선거 때 보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포스터에 이름을 찍어서 여기저기 붙이기도 하고, 자신의 이름이 적힌 어깨띠를 걸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기 이름을 소리높이 외칩니다. 그리고 어디 그 뿐인가요? 그 때까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병원이나 노인시설 같은 곳을 방문해서 서툰 솜씨로 일을 돕기도 합니다. 다 이것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다 자기 이름을 남들한테 알리고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이름을 알리려고 힘을 쓰는 사람들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도 물론이지만 웬만한 직장인들은 모두 무엇을 가지고 있어요? 예, 명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사원들에게 있어서는 이 명함을 주고 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회사에 들어가면 맨 처음에 받는 매너교육 중 하나가 바로 이 명함을 주고 받는 방법입니다.

이처럼 내 이름을 누군가가 알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내 이름이 아무리 멋지고 훌륭한 이름이리고 한다 하더라도 아무도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렇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이름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내가 그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에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름의 의미는 누군가가 나를 불러줄 때에만 그 의미가 있다는 점은 이해가 가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이름의 가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지는 이름의 가치는, 그렇다면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불러줄 때에만 가치가 올라가나요? 아니요. 꼭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솔 펄머터 ソール・パールマッター>
<브라이언 슈밋 ブライアン・P・シュミット>
<애덤 리스 アダム・リース>……
이런 분들의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단 세흐트만 ダニエル・シェヒトマン>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모르세요?

그렇다면 <브루스 보이틀러 ブルース・ボイトラー>
<율레스 호프만 ジュール・ホフマン>
<랠프 스타인먼 ラルフ・スタインマン>이라는 이름은 어떠십니까. 이 분들도 잘 모르시겠습니까. 흠……그러시군요.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한테 있어서도 무척이나 낯선 이름들이긴 합니다만, 이분들은 대단히 유명한 분들입니다. 어느 정도 유명한 분들이냐 하면 이 분들은 모두 2011년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고 할 수 있는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들입니다.

<솔 펄머터> <브라이언 슈밋> <애덤 리스>는 분들은 노벨 물리학상을, <단 세흐트만>이라는 분은 노벨 화학상을, 그리고 <보이틀러> <호프만> <스타인먼>이라는 분들은 노벨 의학 • 생리학상을 각각 2011년에 수상한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의 이름에 대한 가치는 어떻습니까. 사실 우리 같은 비전문가가 알지는 못하더라도 그 쪽 전문 분야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인물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처럼 큰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이와 같은 분들의 이름에 대한 가치는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글쎄요. 또 어떤 이름은 이 또한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이름이지만, 일부 분야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한테 알려져 있냐 하면, 경찰이나 검사들, 깡패들, 교도관들한테는 아주 잘 알려진 이름이 있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름이라고 해서 그 이름에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어요? 이런 이름에 대한 사회적인 가치는 좀 문제가 많겠지요.

이와 같이 그 이름의 가치란 단순히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이 그 이름을 많이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들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정작 우리 이름은 어떻겠습니까.

예배가 끝나면 예배 때 전해드렸던 말씀을 가지고 동영상을 촬영해서 여러 곳에 메일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만, 그 중 한 일본 목사님께서 제게 매주 섬기시는 교회의 주보를 보내주고 계십니다.


사실 교회 일을 하다 보면 다른 교회 주보를 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만, 이렇게 매주 주보를 보내주시니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이 목사님께서 보내주시는 주보에 보면 헌금을 하신 분들의 성함이 적혀 있는데, 가끔 <신지명>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지명, 즉 하나님이 이름을 아신다는 한자겠지요. 처음에 봤을 때는 이게 무슨 뜻일까 했습니다만, 아마도 이름을 적지 않고 헌금을 하신 분을 이렇게 주보에 적어놓으신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이름이 헌금봉투에 적혀 있지 않으니 우리들은 그 이름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알고 계시다는 뜻이겠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일본에 살면서 믿음생활을 했습니다만, 정작 일본 교회에 다녀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일본교회에서는 일반적인 것인가 해서 인터넷에 찾아보니까 없더라구요. 그래서 아무래도 이 <신지명>이라는 표현은 이 교회에서 사용되는 독특한 표현 같았습니다.

저희 주보에도 헌금으로 섬겨주시는 분들을 제가 주보에 기록합니다만, 그 중에는 성함을 적지 않은 분들을 그저 <무명>이라고 해왔습니다만, 사실 무명……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또 <신지명>이라고 똑같이 따라 하기에는 좀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어서, 얼마 전부터는 <무명>이 아니라 <무기명>, 그러니까 <이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적지 않았다>는 식으로 주보에 싣고 있습니다.

이 교회에서 보내주신 주보에 적혀 있었던 <신지명>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우리에게 있어서 정말로 가치가 있는 이름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세계에는 이름만 대면 어느 교회 목사님이라고 널리 알려진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여겨지는 이름에 대한 가치가 꼭 이 세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가치와 같을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유명한 목사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가치가 없다고 말씀 드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과 가치가 다를 수도 있다고 하는 점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두 성경구절을 한 번 비교해볼까 합니다.

하나는 오늘 본문인 이사야 6장 8절 말씀입니다.

이사야 6장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私は、「だれを遣わそう。だれが、われわれのために行くだろう」と言っておられる主の声を聞いたので、言った。「ここに、私がおります。私を遣わしてください。」

또 한 구절은 누가복음 10장 2절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절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そして、彼らに言われた。「実りは多いが、働き手が少ない。だから、収穫の主(しゅ)に、収穫のために働き手を送ってくださるように祈りなさい。

이 두 말씀, 어떻게 보면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말씀입니다만, 교회에서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교회에서,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쓰입니까.

예를 들어서 무슨 교회나 교단에서 무슨 회장 자리에 출마하려고 해요. 아니면 믿는 사람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 출마하려고 할 때 어떻게 기도해요?

예, 그렇죠.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主よ、ここに、私がおります。私を遣わしてください。

이 말이 뭐예요? 하나님 앞에서 막 손 들면서, 저요, 저요, 저 여기 있으니까 저 시켜주세요. 하는 거잖아요. 나 당선시켜 달라는 것 아니겠어요?

하지만 반면에 뭐예요? 교회에서 봉사해야 할 일이 있어요. 전도해야 할 일이 있어요. 돈이나 시간으로 섬겨야 할 일이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요?

예, 그렇죠.


“주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主よ、実りは多いが、働き手が少ない。だから、働き手を送ってください。

이게 무슨 뜻이에요? 물론 본인도 열심히 일을 하면서, 그래도 나 혼자 이 일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니까 함께 일을 할 사람들을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그 중에는 뭐예요? 나는 이래저래 바쁘고 하니까 좀 나 대신 일을 할 사람들을 보내달라는 식으로 기도하는 경우도 솔직히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정말로 훌륭한 교회, 훌륭한 사회는 이 두 말씀의 쓰임새가 지금과는 반대가 되어야 하겠지요. 무슨 회장이요? 무슨 의원이요? 아이, 그런 건 저보다도 더 훌륭한 인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하고,

힘든 일, 궂은 일, 봉사하는 일, 섬기는 일, 티 안 나는 일 같은 것을 할 때에는, 너도나도 손을 들면서 “내가 여기 있으니까 내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그와 같은 교회, 그와 같은 사회가 있다면이야 무슨 법률이 필요하고 무슨 율법이 필요하겠습니까.
우리는 마지막 때에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아야 합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안 알아준다 하더라도 우리가 묵묵히 인내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일을 섬기고 하면 주님께서 나를 인정해주십니다.

생각해보세요. 나중에 내가 하늘나라에 가니까 우리 주님이 내 이름을 부르면서 반겨주십니다. 이건 무슨 제 상상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8장 56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あなたがたの父アブラハムは、わたしの日を見ることを思って大いに喜びました。彼はそれを見て、喜んだのです。」

아브라함도 예수님을 볼 것을 기대하고 즐거워하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기뻐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중에 하늘나라에 갔을 때 마주치는 천사들과 천국시민들이 모두가 나를 알아줍니다. 반겨줍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셨습니다 하고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이겠습니까.

그런데 반면에 어떤 경우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1장 46절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しかし、イエスは言われた。「おまえたちもわざわいだ。律法の専門家たち。人々には負いきれない荷物を負わせるが、自分は、その荷物 に指一本さわろうとはしない。

자기들은 몸에 힘을 주고 이래라 저래라 성도들한테 말만 하면서 자기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천국에 가서, 예수님, 저 아시죠? 저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많은 책도 썼어요. 이렇게 큰 교회도 지었어요. 이렇게 무슨 박사 학위도 많이 받았고요, 높은 직분도 받았고요, 이렇게 많은 상도 받았어요……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만약에 마태복음 7장 23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しかし、その時、わたしは彼らにこう宣告します。『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全然知らない。不法をなす者ども。わたしから離れて行け。』

라고 말씀하시면 어쩌겠습니까. 그 때는 이미 늦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중에서 70명을 뽑아서 전도사역을 맡기니까 그들이 돌아와서 말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치니까 귀신들도 항복했었다고 기뻐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누가복음 10장 20절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だがしかし、悪霊どもがあなたがたに服従するからといって、喜んではなりません。ただあなたがたの名が天に書きしるされていることを喜びなさい。」


우리가 진정으로 기뻐해야 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 믿음 좋다고, 높은 직분을 받았다고, 출세했다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물며 귀신을 쫓아냈다고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기뻐해야 하는 것은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것으로 기뻐해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지어준 이름, 아무리 훌륭한 뜻이 담긴 이름이라 하더라도,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평범하고 소박한 이름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자주 불러주시고 하나님께서 아껴주시고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이름이라면, 하늘나라에 있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라면 이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이름이 어디 있겠습니까.

올 한해 하나님께서 우리 이름을 자주 불러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무엘상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불렀을 때 사무엘이 대답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것이 만약에 회사라고 생각해보세요. 어느 날 사장님이 한 직원을 불러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이게 좀 귀찮은 일인데 말이야. 이걸 자네가 해줄 수 있나? 그러면 그 직원이 뭐라고 해요? 예,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사장님이나 회장님이 무슨 중요한 일만 있다 하면 꼭 그 직원을 찾아요. 그러면 어때요? 예, 그 사람의 출세는 이미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무슨 일이 있을 때면 내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일을 맡겨 주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하이구, 왜 귀찮게 나한테만 그래요? 나 돈도 시간도 없는 사람이에요.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그러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그러시겠습니까.


그래도 아직 감이 안 잡히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 드립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보십시오. 저 넓은 운동장에 만원자리 지폐가 막 쌓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저거 다 너 가져. 그러면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휴, 저걸 귀찮게 어떻게 다 가져가요? 사람들을 더 불러서 가져가라고 하세요…… 라고 하시겠어요? 아니면 밤을 새고라도 다 싸서 가져가겠어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맡기신다는 것은 저 넓은 운동장에 축복이 많은데 저거 다 너 가져…….라고 말씀하고 계신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이구, 감사합니다. 제가 다 하겠습니다. 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혹시 이렇게 물어보실지도 모릅니다. “너 혼자 하기에 좀 벅차면 누구 좀 더 부를까?” 이걸 보고 눈치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겠어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이 축복, 다 내가 가지겠습니다!

이것이 욕심이라고 생각하세요? 욕심이라고 다 똑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야말로 거룩한 욕심입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バプテスマのヨハネの日以来今日まで、天の御国は激しく攻められています。そして、激しく攻める者たちがそれを奪い取っています。

이렇게 되면 내 이름을 얼마나 많이 부르시는지 하늘나라에서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예요. 천사들이 그럽니다. 도대체 우리 하나님은 뻑 하면 그 사람을 찾아서 일을 맡기신단 말이야……뭐 이러면서 하늘나라에 소문이 퍼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시는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힘이요? 능력이요? 지혜요? 돈이요? 시간이요?

예전에 007 영화를 보면 시작이 대략 비슷해요. 007 제임스 본드가 무슨 작전 수행 임무를 받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가라고 해요? 아뇨. 놀랍고도 신기한 도구 같은 것을 다 받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일을 맡기실 때 그냥 맨몸으로 시킬 정도로 무책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지혜를 주십니다. 돈이 필요하다면 돈도 주시고 시간이 필요하다면 시간도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순종하는 마음> 이것 뿐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드리게 되면, 하늘나라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요?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올 한해 2018년. 하나님 나라의 유명인사가 됩시다. 하나님 나라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요? 예, <순종하는 마음>뿐입니다. 그 외에 필요한 모든 것은 다 알아서 채워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믿고 신뢰하고 올 한해 주님께 우리의 <순종하는 마음>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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