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회 알았더라면
2018년 2월 11일 설교

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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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 장 46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알았더라면” 知っていたなら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미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난 1월 하순에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무사히 결혼식을 잘 치르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참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혼식을 올리고 난 다음의 제가 한 가지 느꼈던 것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느꼈을까요? 그것은 바로, 아차, 조금 더 빨리 결혼할 걸 그랬다……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뭐,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조금 더 빨리 <결혼식을 올릴 걸 그랬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 결혼식은 수 십 번도 더 갔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호기심도 있었지요. 친척이나 특히 선배 결혼식이다 하면 모든 것 하나하나가 신기했었던 것 같았습니다. 맨날 같이 지냈던 선배들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 잘 실감이 나지도 않았고 매우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결혼식이다 하면 이제 좀 식상하게 됩니다. 그 사람들한테 있어서는 특별할지 모르지만, 제게 있어서는 결혼식도 언제부터인지 그거나 그거나가 됩니다. 제가 서울에서 지낼 때 한 번은 아침에 있는 성가대 식구 결혼식이었는데 좀 늦었어요. 그래서 택시를 탔지요. 그리고 결혼식장 장소를 말하면서 거기로 가달라고 했더니 기사님 하시는 말씀이, 아, 세금 내러 가시나요?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아뇨, 아는 분 결혼식이 있어서요……라고 하니까 이 기사님 말씀이, “아, 그게 다 세금이죠 뭐……”라는 것이었습니다.

식장에 가면 거기 서 있는 신랑이나 신부한테 얼굴도장 찍고, 인사하고 악수 하고, 그리고 이름 쓰고 축의금 내고 식권 받고, 주변 돌아보고 아는 사람 있으면 인사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식이 시작하면 신랑신부 입장하는 것 정도는 간단하게 봐주고,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요? 예, 배 고픈데 빨리 식당으로 가야지요. 거기서 스크린에 비치는 결혼식 장면을 잠깐씩 보면서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식이 끝나가면 제 식사도 끝나갑니다.

그러면 이제 서서히 식장으로 돌아가서 사진 몇 장 찍고, 부케 던지는 것 웃으면서 박수 쳐 주고, 그러고 오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까지 제가 갔던 결혼식 중에서 90% 이상은 대충 이런 흐름이었습니다. 여기서 크게 벗어나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주례 선생님이 누구인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때 식당에서 열심히 밥 먹고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신부가 얼마나 이쁜지, 어떤 드레스를 입었는지도 보고 그랬습니다만, 몇 번 가보면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별로 관심도 없어집니다. 신랑 턱시도 색깔이 검정색이었는지 흰색이었는지도 몰라요. 하물며 밥이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솔직히 기억도 못하게 됩니다.

왜 그래요? 예, 결혼식 한 두 번 가봐요? 이제 새로운 것이 없어요. 다 아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제가 결혼식을 준비할 때에도 물론 쉽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그래도 뭐 결혼식 준비라고 하면 식장 예약이나 드레스다 뭐다 하고 어떻게 보면 뻔하잖아요? 그래서 준비하는 데에 있어서 그래도 어느 정도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다지 새롭거나 의외의 사실에 놀라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놀라웠던 것은 어디서부터냐 하면 바로 결혼식이 끝난 후부터였습니다. 어느 정도 식순이 마무리되고 혼주들의 식사가 끝나고 난 다음에, 저희 신랑과 신부는 어느 구석진 방으로 불려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무엇을 했는가 하면 바로 식권 계산을 하는 것이었죠. 신랑측 신부측으로 나누어서 한 묶음씩 되어 있는 것을 이제 정산을 하기 위해서 하나하나 세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작업이었습니다만, 저는 그런 작업을 그렇게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게 참 무척 새롭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다음에 저희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이었냐 하면 결혼식에서 사용된 혼인서약서와 방명록, 그리고 그 방명록이 리스트로 정리된 명단과 축의금 봉투였습니다.

저는 그 때 솔직히 놀랐습니다. 제가 좀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그렇게 정리한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화환을 보내주신 분들의 그 리본을 또 정리해서 주더라구요.

그러니까 그것을 보면 누가 화환을 보내주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솔직히 당일 날은 경황이 없어서 누가 왔는지, 어느 분이 화환을 보내주셨는지 자세히는 기억하지 못했습니다만, 그 명단과 리본들을 보니까 다시금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웠던 것은 거기에는 축의금에 대한 금액도 회계를 맡아준 제 사촌 동생들이 말끔하게 정리를 해주었습니다만, 그 목록을 보면서 느꼈던 것이 바로 아, 조금 더 빨리 <결혼식을 올릴 걸 그랬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어떠세요. 일본에 계신 분들은 보니까 예쁜 봉투에 정성껏 담아서 주신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만, 한국에 있을 때 저 자신도 그랬습니다. 예전에는 봉투를 자기가 준비해야 하고 그랬습니다만, 요즘은 웬만한 곳에 가면 봉투들도 다 비치되어 있습니다. 그냥 가서 대충 넣고 이름 적어서 내고, 식권 받아오고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렇게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내용들을, 저는 별 생각 없이 해왔던 일들을 그 사람들, 결혼 당사자들은 하나하나 모두 리스트로 정리해서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그 목록을요 사람들이 그렇게 관심 있게 볼 줄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틀림없이 자세하게 열심히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아요? 예, 제가 그 리스트를 그렇게 자세하게 열심히 보고 있었더라니까요. 만약에 그날 결혼하신 분들이 내가 낸 돈의 액수도 그렇습니다만, 축의금 봉투까지도 관심 있게 볼 줄 알았더라면 내가 내는 봉투도 좀 더 신경을 쓸 걸,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를 조금 더 생각할 걸, 봉투에 쓰는 글씨도 조금 더 정성껏 쓸 걸……이라는 생각이 정말 굴뚝같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든 생각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믿음생활이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할 때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제 평신도 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쉽습니다. 주일날 아침에 일어납니다. 대충 씻고 습관적으로 집을 나서고 교회에 도착합니다. 주보와 헌금 봉투를 들고 앉습니다. 주보를 봅니다. 성경도 찾지 않아요. 요즘 한국의 웬만한 교회에서는 스크린으로 다 보여줍니다. 준비찬송이 끝나고 예배가 시작합니다. 대표기도 할 때에 봉투에 특별한 생각 없이 헌금을 넣습니다. 또 찬송 부르고 설교를 듣습니다.

그러면 어때요? 이게 이 말 같고 저게 저 말 같습니다. 어디서 들었던 예화가 나오면 아, 저거 예전에 했던 예화인데 또 하시네. 그러지요.

그리고 헌금 시간이 되면 헌금 합니다. 광고가 끝나면 축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나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요? 빨리 나가야 주차장에서 차 빼기가 쉽거든요.

이것이 우리 교회 생활. 틀에 박힌 믿음 생활이 아닐까 합니다. 아니, <우리>라기보다는 과거의 저 자신의 믿음생활이 이랬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기쁨도 없고 감동도 없습니다.

왜 그런 감동도 없고 기쁨도 없는 그와 같은 밋밋한 믿음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예,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내 믿음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내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지금 이 순간 나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우리는 그처럼 따분하게 믿음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5장 10절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なぜなら、私たちはみな、キリストのさばきの座に現れて、善であれ悪であれ、各自その肉体にあってした行為に応じて報いを受けることになるからです。

히브리서 9장 27절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そして、人間には、一度死ぬことと死後にさば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ように、

이 외에도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마지막 때의 심판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생을 마치고 난 다음, 아니, 그 이전이라도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신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는 이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심판은 어떻게 진행이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집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また私は、死んだ人々が、大きい者も、小さい者も御座 の前に立っているのを見た。そして、数々の書物が開かれた。また、別の一つの書物も開かれたが、それは、いのちの書であった。死んだ人々は、これらの書物に書きしるされているところに従って、自分の行いに応じてさばかれた。

성경에 의하면 그 심판대 앞에는 여러 책들이 펼쳐져 있는데, 거기에는 우리의 행위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아직 제가 그 자리에 서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어쩌면 그 자리에 서게 되면 그 내용을 우리 스스로가 보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무엇이 써 있을까요.

거기에는 우리가 했던 일들의 좋은 것, 안 좋은 것 모두가 적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그 기록들을 보면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간에 틀림없이 놀랄 것입니다. 왜 놀라겠어요?

그것은 바로, 아니, 이런 것까지 적혀 있어? 이거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별 생각 없이 한 일이었는데…… 이렇게 우리는 분명 놀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마지막 심판을 하실 때에 두 무리로 나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한 쪽 무리한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35절~36절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が空腹であったとき、わたしに食べる物を与え、わたしが渇いていたとき、わたしに飲ませ、わたしが旅人であったとき、わたしに宿 を貸し、わたしが裸のとき、わたしに着る物を与え、わたしが病気をしたとき、わたしを見舞い、わたしが牢にいたとき、わたしをたずねてくれたからです。』

그러니까 그들이 뭐라고 해요?

마태복음 25장 37절~40절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
v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すると、その正しい人たちは、答えて言います。『主よ。いつ、私たちは、あなたが空腹なのを見て、食べる物を差し上げ、渇いておられるのを見て、飲ませてあげましたか。いつ、あなたが 旅をしておられるときに、泊まらせてあげ、裸なのを見て、着る物を差し上げましたか。また、いつ、私たちは、あなたのご病気やあなたが牢 におられるのを見て、おたずねしましたか。』すると、王は彼らに答えて言います。『まことに、あなたがたに告げます。あなたがたが、これらのわたしの兄弟たち、しかも最も小さい者たちのひとりにしたのは、わたしにしたのです。』

의인들이 지금 뭐라고 합니까. 예, 그럼요. 저도 알아요. 저 착한 일 많이 했어요. 이러던가요? 아니에요. 몰랐어요.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반면에 다른 쪽 무리들은 어떤가요?


마태복음 25장 42절~45절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v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おまえたちは、わたしが空腹であったとき、食べる物をくれず、渇いていたときにも飲ませず、わたしが旅人 であったときにも泊まらせず、裸であったときにも着る物をくれず、病気のときや牢 にいたときにもたずねてくれなかった。』そのとき、彼らも答えて言います。『主よ。いつ、私たちは、あなたが空腹であり、渇き、旅をし、裸であり、病気をし、 牢 におられるのを見て、お世話をし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すると、王は彼らに答えて言います。『まことに、おまえたちに告げます。おまえたちが、この最も小さい者たちのひとりにしなかったのは、わたしにしなかったのです。』

역시 이들도 자기들이 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떤 분들은 앞서 의인들이 자신들의 행한 좋은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겸손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면 반면에 이 나쁜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요? 이것도 겸손해서요? 아니면 원래 선하지 않은 사람들은 기억력이 떨어져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인들과 악인들 모두 자신들이 한 행동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 그 이유는 틀림없이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행한 일들은 대단히 사소한 일들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본인들은 자신들이 행한 행동들이 대수롭지 않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리가 없을 정도로 작은 일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땠습니까. 의로운 일이든 악한 일이든 간에 그들이 하는 행위들을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의인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 말을 들은 악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아휴, 나 그런 사소한 일을 하나님이 문제 삼을 줄 몰랐어요. 나 그런 것까지 하나님이 보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그러지 않겠습니까.

자신들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리 대단하지 않은 일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순간 하나님은 안 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우리한테 별로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오늘 본문처럼 한쪽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다른 한 쪽은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가 아니라,
주님께서 크나큰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리 대단하지 않은 일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가 아니라,
주님께서 대단한 일로 여기신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 순간 하나님은 안 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가 아니라,
그 순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 줄 알았더라면,
하나님은 우리한테 별로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대단히 관심이 많으신 줄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요, 그 결과 영원한 형벌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제가 한국에서 지인들 결혼식에 갔을 때에는 아무런 감동도 없었습니다. 왜라고요? 예, 그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봐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냥 대충 차려 입고 감동도 없이 감흥도 없이 결혼식에 갔다가 돈 내고 밥 먹고 사진도 내키면 찍기도 하고, 아니면 안 찍기도 하고는 그냥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랬던 제가, 앞서 말씀 드렸던 것처럼 제 결혼식에 대한 자료는 자신이 대단히 관심을 갖고 그 리스트를 보고 있었습니다. 참석한 사람들의 명단 만이 아닙니다. 며칠 전에는 사진들이 파일로 도착했는데, 사진을 보고도 누가 왔는지, 어떤 옷을 입고 왔는지를 매우 진지하게 자세하게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요? 예, 그것은 바로 저 자신의 결혼식이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 혼인잔치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2장 2절~14절에 보면 마지막 날에 있을 잔치를 바로 혼인잔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의 혼인잔치라고 기록하죠?

요한계시록 19장 9절을 봅니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御使いは私に「小羊の婚宴に招かれた者は幸いだ、と書きなさい」と言い、また、「これは神の真実のことばです」と言った。

그렇습니다. 마지막 날, 심판의 날, 바로 그 날이 어린 양의 혼인잔치, 즉 예수님의 혼인잔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홍성필의 혼인잔치에 홍성필이 그렇게 깊은 관심을 가졌는데, 예수님의 혼인잔치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시겠습니까.

이 말씀을 들으신 여러분들께서는 어떠십니까. 혹시 지금까지의 우리의 삶의 모습, 우리의 믿음의 모습이 후회되지 않습니까?

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 스스로가 많이 부족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습니다.

후회가 나쁜가요? 사실 좋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아직 우리는 늦지 않았습니다. 후회를 하실 부분이 있으면 지금 후회를 철저하게 하시고, 그리고는 내일부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 우리의 믿음생활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행위 하나하나, 우리의 믿음생활 하나하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서 주님으로부터 큰 상을 받는, 우리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영원한 형벌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구원을 얻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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