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회 천국을 얻는 자
2018년 3월 18일 설교

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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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천국을 얻는 자”天国を得る者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요즘 평온하십니까. 안정된 삶을 보내고 계십니까. 요즘 세상을 어떨까요. 과거에는 전쟁을 좋아하는 지도자들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그랬습니다만, 요즘에는 어떻게든 전쟁을 회피하려는 노력 덕분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서 참으로 다행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안정은 어떨까요. 여러분께서는 안정된 삶을 보내고 계신가요? 어떤 분은 이른바 <안정된 삶>이라고 하면 무슨 많은 돈이 매달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꼭 그렇지만 않더라도, 예를 들어서 내가 오늘 돌아갈 집이 있고, 집에 가면 전기, 수도, 가스 같은 게 안정적으로 공급이 된다는 것 정도만 하더라도 엄청나게 안정된 삶을 살고 계신 것인 줄 믿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이러한 것이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보여도 전세계적으로 보면, 이와 같은, 정말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누리고 있지 못한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만약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전쟁이 터졌어요. 물론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르는 일이잖아요? 아니면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지진이나 불이 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요. 상황에 따라서 해야 할 일들은 여러 가지 많겠지만, 일단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안 되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 집에서 불이 났는데, 지금 지진이 일어나서 쓰나미가 몰려 오는데 집에서 태연하게 잠만 자고 있어요. 이건 보통 일이 아닌 것입니다. 빨리 일어나서 무슨 수를 써야 하겠지요.

사회적으로도 역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위기가 다쳐오는데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요. 조금만 더 일찍 그 위기를 알아차리고 대처를 했었더라면 회피할 수도 있었을 덴데 그저 나는 괜찮겠지, 우리는 괜찮겠지……하면서, 설마 우리에게 그런 일이 닥칠까 하는, 그런 안전불감증…사실 이 안전불감증이라는 말도 좀 이상합니다.

불감증이라는 것은 느끼지 못하는 것인데, 안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위험이나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니 위험불감증이나 위기불감증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지요. 어쨌든 설마 설마 하다가 결국 작게는 회사가 부도나고 크게는 국가적 경제위기가 닥쳐오고 마는 것입니다.

일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은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그 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야말로 잿더미가 된 것이지요. 하지만 국민들의 노력과 여러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나라살림이 살아납니다. 우리나라는 1988년에야 개최할 수 있었던 올림픽을 일본은 이보다도 24년이나 앞선 1964년에 열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당시 한국과 일본의 경제 차이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1970년대와 80년대를 본다면 <경제대국>이라는 말은 일본을 위해서 있던 말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경기는 어마어마하게 좋았습니다. 특히 80년대를 본다면 일본의 땅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일본 땅을 모두 팔면 미국 땅을 전부 사고도 남는다는 말까지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당시 일본의 기업을 본다면 두 가지 상징적인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었습니다. 종신고용이라는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정년 퇴직할 때까지 그 회사에 계속해서 고용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연공서열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회사에 근무를 하면 몇 년 뒤면 대리로, 몇 년 뒤면 과장으로 자동으로 승진하는 것이지요.

사실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환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안정적인 제도가 있었기에 회사 직원들은 회사를 신뢰하고 안심하고 업무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나라 경기가 좋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즉, 나라 경기가 좋으니까 직원들에게 줄 월급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연공서열을 하면 상사가 부하직원을 돌보아줍니다.

예를 들어서 당시에는 남자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회사 상사가 부하직원 결혼상대를 구해주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유대관계가 강했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있어서 회사는 단지 일만 하는 곳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충성을 바치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어느 정도 열심히 일을 했냐 하면, 말 그대로 죽도록 일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나라에서도 종종 사용되는 <과로사>가 처음 등장한 곳은 바로 일본입니다. 그래서 일본말로 <과로사>를 뜻하는 <過労死>는 국제어로도 등재되어 있어서, 영어 사전에도 <karoshi>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이와 같은 전무후무한 대호황도 결국 종말을 맞이하고 맙니다. 구체적으로는 1986년부터 극심해진 일본의 거품경제는 1991년에 종말을 맞이합니다. 그러자 처음으로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제였습니다.

회사가 충분한 돈을 벌고 그래야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그러겠으나, 회사가 지금 넘어가느냐 하는 마당에, 건물 팔고 땅 팔고 해가면서 직원 월급을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연공서열은 어떻습니까. 이것도 경기가 좋을 때는 괜찮았어요. 솔직한 말로 누가 상사로 앉아 있든지 간에,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일을 진행하고, 부하직원도 매뉴얼 대로 일만 하면 돈이 벌리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경험이 많고 경력이 많은 사원은 부하직원에 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제 사회가 변해갑니다. 경제가 변해갑니다. 컴퓨터가 들어오고 인터넷이 들어와요. 이제 영어는 기본이고 제2외국어까지 하는 신입사원이 물밀듯이 들어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신기술이 개발되면 그것이 검증되고 책으로 출판된 후에도 번역서가 나온 다음에야 그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선배나 상사들에 비해, 부하직원들은 인터넷으로 영어신문들을 보면서, 현지에 보도가 되자마자 정보를 입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도저히 게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회사 차원에서 보면 능력 없는 상사한테 비싼 월급을 주는 것보다는, 그 돈으로 차라리 여러 신입사원을 뽑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결국 이렇게 되니 종신고용이나 연공서열은 무너지고, 이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원은 아무리 직급이나 경력이 오래 되었다 하더라도 부하직원들한테 추월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자, 일본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우리 한 번 영적인 문제로 들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평온합니까. 영적으로 안정된 삶을 보내고 계신가요? 만약에 세상이 격변하고 그런다면 우리는 금방 위기를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위기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둔감합니다.

그저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으로 우리는 영적으로 안정되고 평온한 줄 착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 하면 그저 안주를 하게 되요. 더욱 믿으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バプテスマのヨハネの日以来今日まで、天の御国は激しく攻められています。そして、激しく攻める者たちがそれを奪い取っています。

여기서 침노 당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는 쉽게 말하자면 공격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를 잘못 이해해서 천국을 무슨 멸망시키려는 의도로 공격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그럴 리가 없겠지요. 이는 천국을 멸망시키거나 허물어뜨리기 위해서가 아닌, 천국을 얻기 위해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공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천국은 가만히 앉아서 평온하게 기도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는 것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있는 힘껏 공격을 해야지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것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교회에 다니고 세례만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던가요. 우리는 긴장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6장 46절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なぜ、わたしを『主よ、主よ』と呼びながら、わたしの言うことを行わないのですか。

마태복음 7장 21절~23절을 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
v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わたしに向かって、『主よ、主よ』と言う者がみな天の御国に入るのではなく、天におられるわたしの父のみこころを行う者が入るのです。
その日には、大ぜいの者がわたしに言うでしょう。『主よ、主よ。私たちはあなたの名によって預言をし、あなたの名によって悪霊を追い出し、あなたの名によって奇蹟をたくさん行ったではありませんか。』
しかし、その時、わたしは彼らにこう宣告します。『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全然知らない。不法をなす者ども。わたしから離れて行け。』


예수님을 보고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고 있는 사람 아닌가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가요? 그 뿐만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그랬다면,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인가요? 그러나 아무리 예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사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2절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に会いに出て来るが、だれが、わたしの庭を踏みつけよ、とあなたがたに求めたのか。

밖에서는 하나님 말대로 행하지 않고 예수님을 전하지도 않고 그저 세상 속에서 자기 멋대로만 하다가, 교회에 와서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은 엄히 꾸짖고 계시는 것입니다.

잠언 6장 9절~11절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なまけ者よ。いつまで寝ているのか。いつ目をさまして起きるのか。
しばらく眠り、しばらくまどろみ、しばらく手をこまねいて、また休む。
だから、あなたの貧しさは浮浪者のように、あなたの乏しさは横着者のようにやって来る。

이 말씀이 그저 윤리책에 적힌 글처럼 보이시나요? 새벽 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그러면서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일해야지, 게으름을 피우면 가난해진다는 말씀인가요? 아니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나는 세례도 받았다, 나는 믿음이 좋다, 나는 교회에 오래 다녔다, 나는 헌금도 많이 낸다……뭐 이러면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데에 게을리 하고, 하나님을 전하는 데에 게을리 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하는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나는 걱정 없어, 틀림 없이 천국 갈 거야 하고 그러면서 이웃을 사랑하기는커녕 이웃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들에 대한 질책의 말씀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한 마디도 안정이라는 말씀을 안 하고 계십니다. 걱정 말아라. 그냥 교회 나가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그러면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집사, 권사, 장로 직분 받고, 그리고 나중에 자동적으로 천국에 들어오도록 되어 있어. 그렇게 적혀 있나요? 제가 이 말씀을 할 때에는 몇 번이나 이 말씀도 같이 드립니다. 정말 저도 그렇게 적혀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주일성수? 성수주일? 그런 말은 제가 알기로 한국에만 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주일이 거룩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주일에 교회에 나간다는 것이 거룩하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교회에 나가는 것만 가지고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배만 드리면 구원 받을 수 있어, 찬양하고 기도만 열심히 드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 그러니까 무조건 교회에만 와, 그러기만 하면 되는 거야……라고 하면 교회 성도는 많이 모일지는 모르지만, 문제는 그와 같은 내용의 글이 성경 66권 어디를 찾아봐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처럼 침노해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있는 힘껏, 기를 쓰고 하나님 일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안정적입니다. 평온함 그 자체죠. 완전한 곳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영적으로 지극히 혼탁한 상태입니다. 그것은 제가 그냥 상상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을 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身を慎み、目をさましていなさい。あなたがたの敵である悪魔が、ほえたける獅子のように、食い尽くすべきものを捜し求めながら、歩き回っています。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영적으로 평온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어떤 세상이래요? 예, 그렇습니다. 마귀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집어삼켜먹기 위해서 찾아 다니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어디 평온한 세상일 수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는 사자들이 어디 있습니까. 예를 들어서 들이나 아프리카 초원 같은 곳이겠지요. 거기 한 복판에 우리가 서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리 우리가 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아프리카 초원 한 복판에 서있는데 마음이 평온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제 사자들이 우리를 삼키려고 공격해올지도 모릅니다. 바짝 긴장해야죠. 잠을 잘 수가 있나요? 잘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누가복음 21장 36절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

しかし、あなたがたは、やがて起ころうとしているこれらすべてのことからのがれ、人の子の前に立つことができるように、いつも油断せずに祈っていなさい。」

성경에서도 항상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 보십시오. 이른바 미투 운동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수 십 년에 걸쳐 쌓아온, 정말 자신의 인생 모두를 걸고 쌓아온 공든 탑들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를 삼키려고 두루 다니는 유혹이라는 이름의 마귀 사탄을 이기지 못해서 그랬던 것입니다. 항상 깨어있지 못해서 그랬던 것이지요.

믿음 좋은 사람이라면 마귀를 이길 수가 있을까요? 목사 정도 되면 우리를 삼키려고 달려드는 마귀와 대항해서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힘으로는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바로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상태라면 내가 정신이 들기 전에 이미 삼킴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이 든 순간, 우리가 방심한 순간, 우리가 믿음이라는 이름의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마귀 사탄은 우리를 향해 달려들 것이라는 긴장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평온한가요? 아니요. 지극히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항상 이와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위험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결코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이 종신고용입니까. 한 번 세례 받고, 한 번 직분 받고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나요?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을 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ですから、立っていると思う者は、倒れないように気をつけなさい。

안심하지 말라고 성경은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넘어지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갑니까. 넘어지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종신고용은커녕 중도에 해고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으로 가는 길에는 연공서열도 없습니다. 그런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예, 그렇죠. 우리도 잘 아는 구절입니다.

누가복음 13장 30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いいですか、今しんがりの者があとで先頭になり、いま先頭の者がしんがりになるのです。」

교회 다니고 30년 된 사람은 천국 S석, 20년 된 사람은 A석, 10년 된 사람은 B석, 1년도 안 된 사람은 무슨 뭐, 입석……그런가요? 아닙니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 어디에 연공서열이 있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자동적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긴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そして、人間には、一度死ぬことと死後にさば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ように、

우리는 반드시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 앞에 섰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왔다고 말씀 하시겠습니까. 교회에서 예배 잘 드리고, 헌금 잘 내고, 찬송 잘 부르고, 그것만으로 충분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예수님 말씀대로 행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더러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3장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あなたがたに新しい戒めを与えましょう。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愛し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

마가복음 16장 15절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それから、イエスは彼らにこう言われた。「全世界に出て行き、すべての造られた者に、福音を宣べ伝えなさい。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알고, 힘써 우리도 서로 사랑합시다. 그리고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합시다.

그렇다고 이제 짐 싸 들고 먼 나라까지 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이웃, 사랑하는 우리 이웃, 예수님을 아직 알지 못하는 이웃, 믿었다가도 지금 믿지 않고 있는 이웃이 있는 곳이 바로 온 천하입니다. 전도라는 것이 꼭 우리 교회 나오라고 말하는 것만이 전도가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전하고 그 사람이 자기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가도 좋습니다. 저도 매주 전도를 나가면서 그런 심정으로 나갑니다. 제 교회 나오시라는 말씀 안 드려요. 다만 전도지를 들고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요.

복음 전하는 것도 열심히 기를 쓰고 하려고 합니다. 말씀 준비도 열심히 기를 쓰고 하려고 합니다. 안 좋은 소리 들어가면서도 동영상 설교 찍어서 메일도 많이 보내려고 합니다. 왜요? 돈 좀 많이 벌어보려고요? 유명해지고 싶어서요?

제가 하나님 일을 기를 쓰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천국 가고 싶어서예요. 그 일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님을 전하고 복음 전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기를 쓰고 이 일을 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천국 갑시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 잘 믿으면서, 복음 전하고서, 그리고 나중에 천국에서 천국 국민으로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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