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회 믿음과 순종
2018년 3월 25일 설교

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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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2장 21절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믿음과 순종”信仰と従順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참으로 흥미로운 여인이 많이 등장합니다. 제가 흥미롭다고 말씀 드리는 근거는, 어떤 이는 축복을 받을 만한 환경과 여건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으나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한 인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울 같은 사람은 어떨까요. 그는 처음에는 대단히 겸손한 인물이었습니다. 용모도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를 이제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이제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이스라엘을 통치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부귀와 영화가 그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자신을 높입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고,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는 축복의 촛대는 사울로부터 다윗에게로 옮겨지게 되고 맙니다.

한편, 성경에는 반대로 환경으로 보나 여건으로 보나, 축복을 받을만한 구석이 한 곳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축복을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라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라합. 그는 기생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누구는 그녀를 두고 <여관주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나, 히브리서 へブル人への手紙 11장 31절, 그리고 야고보서 ヤコブの手紙 2장 25절에서는 라합을 가리키는 말로서 헬라어 <포르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어김없이 기생 또는 매춘부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물론 그녀를 두고 <여관주인>이라고 하려고 하는 분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여호수아가 이제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두 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2장 1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ヌンの子ヨシュアは、シティムからひそかにふたりの者を斥候として遣わして、言った。「行って、あの地とエリコを偵察しなさい。」彼らは行って、ラハブという名の遊女の家に入り、そこに泊まった。

이 구절만 보고 만약에 라합이 여관주인이 아니라 기생이자 매춘부였다고 한다면, 여호수아가 보낸 두 명의 정탐꾼은 그럼 본인의 임무를 망각하고 기생 집에 놀러 갔다는 것인가요? 만약에 그렇다면 이는 분명 비난 받아야 할 일이겠으나 성경 어디에도 이에 대한 비판이나 질책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는 무슨 뜻일까요.

지금은 직업이 여러 가지로 많이 세분화가 되어 있습니다만, 과거에는 지금처럼 그렇게 복잡하지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병원에 가면 진료과목도 수 십 가지가 넘는 줄로 압니다만, 과거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단순했을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말씀 드리자면, 혹시 중국어를 공부해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만, 중국어로 ‘호텔’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쓸까요. 예를 들어서 한국의 대표적인 호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신라호텔. 이를 중국 사람들은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혹시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예, 바로 <신라주점>이라고 씁니다. 한자 그대로만 본다면 술집이에요. 하지만 중국에서는 과거에 주점에서 숙박업도 함께 했기 때문에 여기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중국에서 <주점>이라고 하면 최고급 호텔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 다음 가는 수준의 호텔은 한자로 뭐라고 적냐 하면 <반점>이라고 한답니다. 한자로만 쓰면 우리는 밥집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여기도 호텔이라고 하더라구요. 이는 모두 그 나라의 역사와 관습이라는 점에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여리고의 문화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마도 당시 여리고의 여관에서는 숙박업도 하고 술도 팔고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여 정탐꾼이 정탐을 하다 말고 밤에는 놀러 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요.

라합이 하는 장사가 술집이건 숙박업이건 간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당시 사회적인 위치로 보아 그녀는 그리 높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기생 라합>이라는 말은 꽤 잘된 번역이 아닐까 합니다.

당시 라합의 나이가 몇 살인지, 어디서 태어나고 어떻게 해서 그 직업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생 라합은 술집 겸 여관을 운영하며, 여리고라고 하는 큰 성읍 한 켠에서, 사람들 눈에 띄는 일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술집이건 여관이건 간에 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사람들 민심을 가장 빨리 아는 방법이 바로 택시 아저씨랑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많은 손님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니까 얼마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까. 그리고 더구나 한국 사람들이 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다 보니까, 손님들이 그렇게 정치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면, 아하, 지금 민심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던 라합. 그녀에게도 여러 정보들이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상한 말들을 사람들이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저기 요단강 건너편 광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문에 의하면 그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사람들이래요.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400년 가까이 그런 생활을 하다가 애굽을 탈출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들이 탈출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라합이 살고 있는 여리고에도 종들이 있었겠지요. 그러니 더욱 종들이 탈출해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라합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놀라운 이적들을 행하여 애굽을 탈출할 수 있었고, 그 뿐만 아니라 홍해를 갈라서 그 한 가운데를 건너왔다고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그 많은 사람들이 자유민이 되기는 하였으나, 광야로 나온다는 것은 어쩌면 자살행위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곳은 전갈과 불뱀이 득실거리는 곳이고 사람들이 살아가기가 너무나도 힘든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디 그 뿐인가요. 곳곳에는 강력하고 잔인한 부족들이 이미 자리잡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건드렸다가는 그야말로 뼈도 못 추리는, 그와 같은 살벌한 곳이 바로 광야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와 같이 풀 한 포기 안 나는 광야에서 수백만이나 되는 민족들이 40년 동안 생활하면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잔인무도한 왕들을 모두 물리쳐버렸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아, 그런가보다. 정말 신기하다. 놀랍다……하고 끝날 수도 있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소문에 의하면 그들이 바로 이 여리고 쪽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큰 일 났습니다. 그와 같은 놀라운 힘을 가진 민족, 여호와라고 하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민족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라합의 집에 바로 그 정탐꾼이 들어온 것입니다. 라합은 이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들을 추격해온 무리들에게 정탐꾼들을 내줄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숨겨줄 것인지. 세상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그 놀라운 하나님 편에 설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어려운 운명의 갈림길 앞에서 라합은 의연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편에 서기로 한 것입니다. 그녀는 정탐꾼들을 추격해온 무리들로부터 숨겨주면서 이제 그들과 생명을 건 계약을 맺습니다.

여호수아 2장 12절~13절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どうか、私があなたがたに真実を尽くし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また私の父の家に真実を尽くすと、今、主にかけて私に誓ってください。そして、私に確かな証拠を下さい。私の父、母、兄弟、姉妹、また、すべて彼らに属する者を生かし、私たちのいのちを死から救い出してください。」

라합의 집은 성벽 위에 있었는데, 남들 몰래 도망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매달아 내려 보냅니다. 그러자 정탐꾼들이 말합니다.

여호수아 2장 18절~21절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
v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하니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私たちが、この地に入って来 たなら、あなたは、私たちをつり降ろした窓に、この赤いひもを結びつけ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また、あなたの父と母、兄弟、また、あなたの父の家族を全部、あなたの家に集め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
あなたの家の戸口から外へ出る者があれば、その血はその者自身のこうべに帰する。私たちは誓いから解かれる。しかし、あなたといっしょに家の中にいる者に手をかけるなら、その血は私たちのこうべに帰する。
だが、もしあなたが私たちのこのことをしゃべるなら、あなたが私たちに誓わせたあなたの誓いから私たちは解かれる。」
ラハブは言った。「おことばどおりにいたしましょう。」こうして、彼女は彼らを送り出したので、彼らは去った。そして彼女は窓に赤いひもを結んだ。

라합이 굵은 줄을 밧줄로 그들을 내려 보냈는데 마침 그 줄이 붉은 줄이었나봅니다. 그래서 정탐꾼들이 말합니다. 그래, 지금 네가 우리를 도망쳐 보낸 이 창문에 지금처럼 이 붉은 줄을 매달아놔라. 그리고 네 집에 너만이 아니라 네 부모와 형제, 일가친척들을 모아놔라. 그렇게 해서 너와 함께 그 집에 있는 사람은 우리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나갈 때에 우리를 만나면 그는 죽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그렇겠죠. 너와 너희 가족을 살려주겠다고 하는데, 그 때 사진이 있습니까 신분증이 있었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전합니다. 여리고 성 안에 쳐들어왔을 때에 이 붉은 줄이 매달려 있는 집은 공격하지 말아라! 라고 하면 그건 충분히 전달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라합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라합의 부모나 친인척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전할래야 전해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 말에 라합은 동의를 하고 정탐꾼들은 성을 빠져나갑니다.

자, 이제부터가 문제입니다. 라합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혼자만 살려고 했다면 어려울 게 없습니다. 문 걸어 잠그고 창밖으로 붉은 줄만 매놓으면 됩니다. 하지만 라합은 자신의 부모와 일가 친척을 모두 구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우선 모두를 찾아가서 설득을 해야 합니다. 일단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3일 동안 숨어 있다가 빠져나가라고 했으니까 적어도 3일간은 시간이 있습니다. 일단 그들이 공격해오기까지 집안에 있어야 하니까 식량을 비축해놓아야 하겠지요? 분주하게 가지고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식량을 사놓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을 모아야겠지요. 가족이나 친척들이 모두가 같은 집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당장 달려가서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설명을 시작합니다. 지금 저기 광야에 있는 저 민족들이 이제 머지않아 이 여리고로 쳐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여리고는 틀림없이 멸망합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이 집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집에 있기만 하면 살 수 있지만, 집 문 바깥에 나가면 죽습니다.

그 때 그들의 반응들은 어땠을까요. 그래, 라합아! 네 말이 맞다. 우리는 네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 고맙다. 할렐루야! 그랬을까요? 여러분, 전도 중에서도 가족 전도가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습니까.

창세기에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겠다고 하셨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롯한테 말합니다.

창세기 19장 12절~13절을 봅니다.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ふたりはロトに言った。「ほかにあなたの身内の者がここにいますか。あなたの婿やあなたの息子、娘 、あるいはこの町にいるあなたの身内の者をみな、この場所から連れ出しなさい。
わたしたちはこの場所を滅ぼそうとしているからです。彼らに対する叫びが主の前で大きくなったので、主はこの町を滅 ぼすために、わたしたちを遣わされたのです。」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 그러니까 지금 말로 하자면 약혼자들이지요? 그들한테 말을 해서 어서 함께 여기를 같이 빠져나가자고 합니다. 그랬더니 뭐라고 했대요?

다음 구절입니다. 창세기 19장 14절,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そこでロトは出て行き、娘たちをめとった婿たちに告げて言った。「立ってこの場所から出て行きなさい。主がこの町を滅 ぼそうとしておられるから。」しかし、彼の婿たちには、それは冗談のように思われた。

세상에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성이 멸망할 거야. 어서 빨리 도망치자……라고 지금 누가 말하고 있어요? 예, 장인어른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급박한 상황에서 장인 표정이 실실 웃으면서 말했겠어요? 무척이나 진지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간절하게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괘씸한 사위들은 그와 같은 장인 어른의 말을 듣고 농담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사실 황당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멀쩡한 날에 갑자기 허겁지겁 장인어른이 와서, 이 성이 망하니까 도망가자고 하면, 그걸 곧이곧대로 듣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장인어른이 이런 이야기를 해도 농담으로 여길만한 판국에, 지금 라합이 누구입니까. 예, 라합은 기생입니다. 일가 친척 중에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을 만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하는 것이죠. 그러니 라합은 어땠겠습니까. 이제 곧 이 여리고는 망합니다. 정말입니다. 이제 우리 집 안에 있어야 합니다. 나가면 죽습니다. 제 말을 믿어주세요. 라합은 그 사람들에게 간절히 당부를 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는 어쩌면 믿으려고 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그래? 좋아. 그럼 그 사람들이 언제 쳐들어오는데?”

이 말을 듣고 라합은 당황합니다. 왜냐하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러면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밤이고 낮이고 여기 안에만 있으라고? 야, 됐다. 난 간다.”

그러면서 뿌리치고 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예, 어떻게 해서든 잡아보려고 하겠지요. 제발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여기 있어야 삽니다. 나가면 죽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참고 있었던 사람들도 어쩌면 하나 둘 빠져나갔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정탐꾼이 왔던 때는 여호수아 2장입니다만, 여리고성 함락은 6장에 가서야 실현됩니다. 이게 참 얼마나 길었을까요.

하지만 어떻습니까. 예, 마지막 때는 반드시 왔습니다.

만약 그 때, 성벽이 무너지고 이스라엘 민족이 들이닥쳤을 때, 라합의 말을 듣지 않고 잠깐 밖에 나가 있었어요. 그런데 공격해온 이스라엘 사람들과 마주쳤습니다. 그 때 어떻게 말하겠어요?

“아이구, 이거 제가 라합이랑 친척이거든요. 그런데 라합이랑 친척이면 살려준다면서요? 제가 원래 라합이랑 같은 집에 있었는데 지금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나왔었거든요. 그러니까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여러분, 지금 무슨 천천히 서로 여유 부리고 있는 시간이 있나요? 여호수아 6장에 의하면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여리고성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이제 수 십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 손에 칼을 들고 쳐들어 옵니다. 얼굴에는 살기가 등등합니다. 닥치는 대로 살육을 벌입니다. 여기 저기서 좇아가는 사람들, 쫓기는 사람들, 우는 소리, 비명 소리가 성 안에 가득 찼습니다. 건물은 무너지고 곳곳에서 불이 납니다.

그 때, 아뇨 사실은 그게…… 라고 말할 시간이 있을 것 같으신가요? 제가 원래 라합이랑……이라는 말도 채 끝나기 전에 목이 날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수아 6장 25절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しかし、遊女ラハブとその父の家族と彼女 に属するすべての者とは、ヨシュアが生かしておいたので、ラハブはイスラエルの中に住んだ。今日(こんにち)もそうである。これは、ヨシュアがエリコを偵察させるために遣わした使者たちを、ラハブがかくまったからである。

이게 바로 심판의 날, 구원의 날인 것입니다.

기생 라합. 세상적으로 본다면 그녀는 하찮은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녀 뿐만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 했던 일가친척이 모두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지요. 마태복음 1장 5절에 의하면 라합은 살몬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이 살몬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세한 기록은 없습니다만, 어쩌면 이 살몬이라는 사람은 여호수아의 명을 받고 여리고를 정탐하러 갔던 두 정탐꾼 중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이는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요. 사실 하나님 안에서,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 얼마나 아름다운 만남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살몬과 라합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누구입니까. 성경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살몬과 라합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룻의 남편 보아스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어떻게 이어지죠? 라합의 아들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오벳 オベデ 이 태어나고, 오벳의 아들이 이새 エッサイ 이고, 그리고 이새의 아들이 바로 다윗 왕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다윗 왕의 족보에서 그리스도 예수님까지 이어지는 메시아의 족보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 안에서 이 라합이라는 사람은 어쩌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 그런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가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다윗 왕의 계보에 넣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메시아 예수님의 족보에도 넣어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만이 아닌 순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할 때 보면 자주 인용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야고보서 2장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それと同じように、信仰も、もし行いがなかったなら、それだけでは、死んだものです。

그러나 오늘 저는 조금 더 밑에 있는 구절을 말씀 드리려 합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たましいを離れたからだが、死んだものであるのと同様に、行いのない信仰は、死んでいるのです。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말하자면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이 없는 몸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무엇입니까. 그건 바로 시체죠. 시체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가만히 내버려두면 썩어갈 뿐입니다. 우리 믿음을 썩어가는 믿음이 아닌 살아 있는 믿음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행함이나 순종이라고 해서 무슨 거룩하고 깨끗한 것 뿐이겠습니까? 전도나 봉사가 거룩하고 깨끗합니까. 라합이 거룩하고 깨끗한 일만 했나요? 라합이 설득해서 집안에 불러놓은 가족들이 때로는 성질도 부리고 때로는 싸우기도 하고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걸 또 말립니다. 이렇게 싸워서 의리가 상하는 바람에 나가면 어떻게 되요. 죽습니다. 그러면 또 그걸 달래고 위로합니다. 여기서 배고프다고 하면 밥도 해 먹입니다. 빨래도 해야죠. 험한 일 궂은 일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저는 이 라합의 집을 생각할 때마다 노아의 방주가 떠오릅니다. 1년이 넘는 생활 동안 그 안에서 얼마나 난리 치고 지지고 볶고 그랬을까요. 짐승들은 여기서 울고 저기서 짖고 그럽니다. 그러면 그걸 또 뒤치다꺼리를 다 해줍니다. 냄새는 또 얼마나 고약했겠습니까. 하지만 어떻습니까. 그렇죠. 그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 안에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 안에 있어야 죽지 않습니다. 그 안에 있어야지만 구원을 받는 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교회가 주님의 머리 되신 교회, 주님의 몸 되신 교회라 하는데, 여러분 교회 생활이 항상 깨끗하기만 하고 거룩하기만 하나요? 뻑 하면 누가 속 썩이기도 하고, 누가 열 받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문제인 것인가요? 그러면 나가야 됩니까? 아닙니다. 그 곳에 계셔야 합니다. 바깥이 더 좋은 것 같지요? 바깥에 나가면 죽습니다. 방주 바깥에 나가면 물에 빠져 죽고요, 라합의 집 바깥에 나가면 칼에 찔려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 왕의 고백이 무엇이었습니까.

시편 23편 6절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まことに、私のいのちの日の限り、いつくしみと恵みとが、私を追って来るでしょう。私は、いつまでも、主の家に住まいましょう。

그렇습니다. 주님의 집에 영원히 살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 품 안에만 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주님께 순종하며 주님의 일만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이제 오늘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주신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무엇을 위해 피를 흘려주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깨끗하게 해주셨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아무런 공로 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를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발을 내딛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미약한 존재인 라합을 하나님께서 높이신 것처럼 우리도 높이실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을 갖고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면서, 이 한 주,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주님에 대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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