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회 받은 은혜와 받을 은혜
2018년 5월 13일 설교

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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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5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받은 은혜와 받을 은혜” 受けた恵みと受ける恵み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일본으로 대학을 가겠다는 학생들을 몇 년 동안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일본어능력시험도 가르쳐봤고, 한국에는 JPT라는 일본어 시험도 있는데 그 반도 가르쳐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대학이라고 하는 것이 걸려있으니까 일본 유학반 학생들의 수업에서는 집중도가 매우 높습니다. 특히 제가 담당하고 있던 반은 고급반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일본어 수준도 상당했지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론 일본어 한 과목만 보는 학교도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문과는 일본어, 종합과목, 수학, 그리고 영어까지 보는 대학도 있습니다. 여기에 또 대학 본고사나 면접, 논술까지도 공부해야 하니까, 현역 학생들은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학원에 와서 몇 시간 동안이나 공부를 하고, 재수생이라면 수업도 듣고 자습실에서 공부하고, 선생님들과 상당도 하고 그러면서 거의 하루 종일 학원에서 살기도 합니다.

선생님들도 바쁘죠. 다른 시험반을 맡고 있을 때에는 그냥 저 혼자서 수업을 하고 그러면 됩니다만, 일본유학을 위한 수업에서는 이처럼 과목이 다양하다 보니까 선생님들끼리도 수시로 정보교환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학생이 어느 정도 실력이 있고,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 혼자 수업에서만 보면 힘들거든요. 그리고 막판에 지원할 대학을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요소가 참고되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더구나 대학에 관한 문제이다 보니 학생 본인만이 아니라 때로는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과목을 가르칠 때보다도 몇 배나 더 신경을 쓰는 일도 많았습니다만, 그래도 꽤 보람도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떤 선생님께서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학생들 사이에 지금 좀 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물어보았더니, 학생들이 서로 진로상담을 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 갔습니다. 아니, 생각해보세요. 먼저 대학을 간 학생이 지금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한테 도움을 준다고 한다면 그나마 좀 이해가 가겠습니다만, 지금 자기도 똑같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마당에, 서로 상담을 해주면서, 야, 너는 어디면 갈 수 있어, 아니야, 넌 거긴 어려우니까 1지망을 좀 더 낮춰……뭐 이러고 있다고 하니 말이 되냐는 거죠.

다른 것도 아닌 대학이 걸려 있는 문제인데, 시험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참 예민해지거든요. 그래서 예를 들어, 너 지금 가려는 대학은 안 돼, 더 낮춰 써……뭐 이런 말을 듣기라도 하면, 그게 아무리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하더라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아직 시험도 보기 전에 자기 마음대로 지망하는 대학을 낮추거나 하게 된다면 공부에 대한 의욕도 떨어지게 되지요.

물론 누가 그랬는지는 알지는 못하고 알아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만, 아무튼 그날 수업 때 단단히 주의를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에서는 뭐라고 되어 있어요.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4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そこで、イエスは彼に言われた。「『心を尽くし、思いを尽くし、知力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愛せよ。』これがたいせつな第一の戒めです。『あなたの隣人をあなた自身のように愛せよ』という第二の戒めも、それと同じようにたいせつです。律法全体と預言者とが、この二つの戒めにかかっているのです。」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지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성경에서 벗어나서 자기 멋대로 해석을 붙이려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일부 목사님들 중에서도 이런 잘못된 해석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만, 일부 성도님들 중에서도 대단히 위험한 해석을 함으로 인해서, 그 결과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오히려 복음에서부터 사람들을 멀리 하도록 만드는 일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닌 것 같으신가요? 천만에요. 지금 한국 기독교가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위기인지 모르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성도수가 줄고 있어요. 교회 전문 부동산 광고를 보면 교회를 팔겠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가짜예요? 성경이 가짜인가요? 그렇다면 당연히 망하겠지요. 가짜라면 하루라도 빨리 없어져야지요. 하지만 성경은 가짜가 아닙니다. 예수님도 가짜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가짜가 아닙니다.

사무엘상 2장 2절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主のように聖なる方はありません。あなたに並ぶ者はないからです。私たちの神のような岩はありません。


이사야 46장 9절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遠い大昔の事を思い出せ。わたしが神である。ほかにはいない。わたしのような神はいない。

하나님은 진정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 믿음에 위기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범죄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범죄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수 천년 전부터 한결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합니다.

우상을 숭배한다고 말하면 교회에 다니는 분들은 바로 다른 종교를 떠올립니다. 그렇죠.

출애굽기 20장 4절~6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あなたは、自分のために、偶像を造ってはならない。上の天にあるものでも、下の地にあるものでも、地の下の水の中にあるものでも、どんな形をも造ってはならない。それらを拝んではならない。それらに仕え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神、主であるわたしは、ねたむ神、わたしを憎む者には、父の咎を子に報い、三代、四代にまで及ぼし、わたしを愛し、わたしの命令を守る者には、恵みを千代にまで施すからである。

이 말씀을 들으면 어떠세요? 아, 난 괜찮아. 그런 우상숭배는 하지 않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이런 생각이 드시나요?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우상은 바로 다름 아닌 교회와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

단순하게는 십자가 목걸이나 성경책 같은 것을 들 수 있겠지요. 십자가 목걸이가 우리를 지켜주나요? 아니요. 그것은 우리를 지켜주는 부적이 아닙니다. 물론 십자가 목걸이를 보면서. 아니면 벽 같은 곳에 걸어놓은 십자가를 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그 은혜를 우리가 생각하고 감사하는 기회가 될 수는 있습니다만, 무슨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귀신이 다가오면 십자가를 들이대면 물러가요? 성경에는 그 어디에도 그런 구절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가끔 보면 성경책이 자기 목숨을 살려주었다는 이야기를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전쟁터에서 총을 맞았는데, 아니면 어떤 괴한이 쏜 총을 맞았는데, 항상 가슴에 넣고 다니는 성경책을 맞아서 살았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할렐루야” 소리가 나올지는 모릅니다만, 이 또한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모릅니다.

성경은 말씀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13절 말씀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神のことばは生きていて、力があり、両刃の剣よりも鋭く、たましいと霊、関節と骨髄の分かれ目さえも刺し通し、心のいろいろな考えやはかりごとを判別することができます。造られたもので、神の前で隠れおおせるものは何一つなく、神の目には、すべてが裸であり、さらけ出されています。私たちはこの神に対して弁明をするのです。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성경책에 그렇게 큰 힘이 있다는 것인가요? 아니에요. 성경책 속에 적힌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있다는 뜻이지, 성경책 자체에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책은 이것은 종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걸 가슴에 넣고 다녔더니 총알이 지켜주었다고 하는 말들을 한다면, 그렇다면 그것이 성경의 능력, 하나님 말씀의 능력인가요?

제가 신문 기사 하나를 읽어드리겠습니다.

2014년 6월 24일자 미국판 인터넷 중앙일보 기사입니다.

<"성경이 총알 막았다" 기적은 자작극

평소 셔츠 주머니에 넣어두고 읽는 포켓용 성경책 덕분에 가슴에 총격을 받고도 살아난 것으로 알려진 오하이오주 40대 버스 운전사의 기적이 자작극인 것으로 밝혀졌다.
20일 AP통신에 따르면 오하이오주 데이튼시 경찰은 지난 2월 고장 난 버스를 길가에 세우고 살펴보다 흑인 청소년 3명에게 총을 맞았다고 신고한 리키 왜고너(49)가 허위 진술을 한 것으로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했다.
당시 왜고너는 흑인 청소년들이 총 세 발을 쐈는데 그중 한 발은 다리에 스치고 한 발은 땅으로 튕기고 나머지 한 발이 가슴에 맞았으나 성경책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의 권총 탄도 실험 결과 총알은 어떤 각도에서 쏴도 성경책을 쉽게 관통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맞아 다쳤다는 상처 주변에서는 자해 때 생기는 상흔이 발견됐다.
경찰은 왜고너가 사건 당시 회사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부동산 투자 실패로 10만달러에 달하는 미납 세금 독촉에 시달리는 등 어려운 형편에서 벗어나려고 자작극을 꾸민 것 같다며 여러 정황을 참작해 허위진술에 대한 기소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런 일들은 결국 성경책이 총알을 막아준다거나 하는 허황된 우상이 만들어낸 어이없는 사건인 것입니다.


우상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어떻게 하면 축복 받는대요? 예, 새벽예배 열심히 나가면 축복 받는다고 합니다. 기도원 열심히 가서 주여 주여 기도하면 축복 받는다고 합니다. 방언 받으면 축복 받는다고 합니다. 믿으십니까?

좋습니다. 새벽예배 드리는 게 나쁜가요? 아니요. 나쁘긴요. 좋습니다.
기도원 가서 기도하는 것이 나쁜가요? 아니요. 나쁘긴요. 좋습니다.
방언 은사 받는 것이 나쁜가요? 아니요. 나쁘긴요. 좋습니다.

자, 그러면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가끔 보면 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회 같은 것이나, 아니면 부흥회를 하지요? 그런 행사에 반드시 나와야지 축복 받는다는 말씀이 성경에 있던가요?
기도원 가서 금식하고 기도를 많이 해야 축복 받는다는 말씀이 성경에 있던가요?
방언 은사 받아야만 축복 받는다는 말씀이 성경에 있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별새벽기도회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에요. 부흥회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원 가서 금식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에요. 방언 은사가 나쁘다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그것이 무슨 축복의 필수 조건인 것처럼 착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만 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시편 57편 8절이요?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私のたましいよ。目をさませ。十弦の琴よ。立琴よ、目をさませ。私は暁を呼びさましたい。

예, 알아요.


시편 108편 2절이요?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十弦の琴よ、立琴よ。目をさませ。私は暁を呼びさましたい。

예, 알아요. 새벽기도에 가면 이 구절로 말씀을 참 많이 전하십니다. “일어나 새벽을 깨우리라” 하는 찬송도 있지요. 그런데 혹시 목사님들 중에서 잠언 27장 14절 가지고 말씀 전하시는 것을 들어보셨나요?

잠언 27장 14절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朝早くから、大声で友人を祝福すると、かえってのろいとみなされる。

예전에 저희 어머니가 서울에 가셨을 때 어느 교회 근처 숙소에 묵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기도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주무셨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는 것이니까, 그게 우선이니까, 그게 중요하니까, 내가 축복 받는 게 중요하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게 중요하니까?

여러분, 그게 진정으로 믿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성경을 자기 멋대로 난도질을 해서 자기 입맛에 맞는 부분만 잘라내어서 마치 그게 성경 전부인 것처럼 믿고 계십니까.

제가 목사라서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만, 목사도 사람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항상 모든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그것을 성도님들이 알아차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히 목사님이 하신 말씀인데 거기에 토를 단다는 것은 괘씸한 일이에요? 아니에요. 목사가 무슨 하나님인가요? 다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이를 누가 바로잡아주어야겠습니까. 교회 식구들이 함께 바로 세워나가야지요. 그런데 목사님들을 섬긴다면서 무조건 목사님들이 하는 말만 믿어요.

목사님이 앞에서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면 성경을 보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집에 가서 다시 찾아본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직접 물어보거나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딜 감히 목사님이 말씀하시는데 거기에 토를 달고……말도 안 되는……이런 풍조가 있다면 그 교회는 분명히 문제가 생깁니다. 한술 더 떠서 어떤 대형 교회를 보면 담임목사 사진을 실제 크기로 만들어서 세워놨어요. 그리고 그 옆에서 성도들이 같이 사진을 찍게 해 놓은 곳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담임목사님이랑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게 해놓았대요. 또 다른 교회를 보면 그 교회 서점에는 목사님 사진을 그렇게 많이 판대요. 그 이유가 또 뭐냐 하면 목사님 사진을 걸어놓았더니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나라 교회에서 태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우상의 극히 일부분입니다. 이런 게 가능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야 여럿 있겠으나 그 중 하나는 바로 우리 성도님들이 성경을 잘 모른다는 것도 한몫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성도님들이 성경을 잘 알고 있다면 그야말로 어디 감히 목회자들이 그런 일들을 벌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무슨 자격으로 다른 교파나 교단을 이단이다 삼단이다 그러면서 비판할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것이 바로 우상 숭배인데, 여기에 얽매어있는 한 우리는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 생활이 10년 됐어요? 20년, 30년 됐어요? 집사, 권사, 장로 직분을 받으셨습니까. 아니면 전도사, 강도사, 목사까지 되셨습니까. 소용없습니다. 이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아무리 믿음생활이 오래 되었다 하더라도, 아무리 직분을 받았다 하더라도, 아무리 목사까지 되었다 하더라도 믿음은 제자리걸음인 것입니다.


만약에 그러지 못한다면, 이 우상이라는 족쇄를 끊어버리지 못한다면 이는 복음을 전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는 복음을 전한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상대방은 복음은커녕 상처만 받게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도 제대로 된 믿음을 갖지 못했으면서, 자기도 우상 숭배를 벗어버리지 못했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똑 같은 수험생, 재수생 주제에 서로 진학상담을 해주고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으면서 축복을 받으셨습니까. 간증거리가 있으십니까. 오늘 말씀에서 나다나엘은 예수님이 자기를 알아보았다는 것만을 가지고 놀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월급이 올랐나요? 예수님을 믿으면서 대학에 붙었나요? 예수님을 믿으면서 취직이 되었나요?

예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그게 다 인가요? 천지를 지으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기껏해야 월급 몇 푼 올려주고, 대학 붙게 해주는 정도, 취직 시켜주는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진정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면 이보다 더 큰 일을 볼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 우상을 버립시다. 그리고 성경을 가까이 해서 주님을 올바로 바라봅시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보다, 우리가 받을 은혜가 더 많습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보다 우리가 받을 축복이 더 많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우상들을 떨쳐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알고, 주님께서 주실 은혜와 축복을 넘치도록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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