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회 잘 믿으려면(1)
2018년 5월 20일 설교

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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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35절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잘 믿으려면(1)” よく信じるためには(1)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잘 믿고 싶으십니까. 예수님을 잘 믿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이 소박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믿음의 역사 속에서 오랜 갈등이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는, 항상 말씀을 드리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해야지요. 그리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볼까요?

자,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요? 예, 기도도 중요하고, 예배도 중요하고 예물도 중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적어도 하나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기도도 많이 해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예배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헌금도 많이 내요. 그런데 정작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않아요. 그러면 뭐가 되겠습니까. 이것은 진정한 하나님 사랑이 아니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하나님 말씀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완벽하게 지키면서 살아올 수 있었나요? 그럴 수가 있을까요? 아니요,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기는 틀렸나요? 이제 우리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회개를 잘 해야 합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두 해결해주셨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는 없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러분께서는 어떻습니까.

이런 문제가 있을 때에는 사람의 생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면 됩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この時から、イエスは宣教を開始して、言われた。「悔い改めなさい。天の御国が近づいたから。」

이 말씀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원지가 있습니다. 유원지 문이 닫혀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 10시가 되니까 담당자가 앞에서 이렇게 안내를 합니다.

“입장권을 구입하세요. 오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 말은, 유원지 오픈 시간이 되었으니까, 입장권을 구입하면 유원지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이 뜻 아니겠습니까. 또한 이를 뒤집어보면, 아무리 유원지 오픈 시간이 되었다 하더라도 입장권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라는 뜻이 되지요.

자, 그렇다면 여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대입시켜 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말씀은 회개를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회개를 안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유원지가 오픈 했다 하더라도 입장권을 구입하지 않으면 유원지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요, 아무리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더라도 회개를 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모두 해결해주셨으니 이제 회개를 하지 않더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성경에 보면 공생애 기간이 대략 3년 정도라고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는데,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지금부터 3년 동안은 회개를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내가 십자가에 달린 다음에는 회개 없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는 것인가요? 그런 말씀이 도대체 어디 적혀 있습니까. 왜 성경을 자기 멋대로 편집하냐는 말입니다.

그 전에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우리가 회개 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았어요. 우리가 양 바치고 염소 바치고 해서 제사를 드림으로 인해서 우리의 죄가 모두 완벽하게 해결될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오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가 양을 수 백마리 수 천마리 바친다 하더라도 우리의 죄가 해결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는 도저히 우리의 죄가 해결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예수님께서 친히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この方にあって私たちは、その血による贖い、罪の赦しを受けています。これは神の豊かな恵みによることです。

베드로전서 1장 18절~19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ご承知のように、あなたがたが父祖伝来のむなしい生き方から贖(あがな)い出されたのは、銀や金のような朽ちる物にはよらず、傷もなく汚れもない小羊のようなキリストの、尊い血によったのです。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 귀한 피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해서 모두 받아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를 하기만 하면 우리의 죄가 사해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 사람의 이론이 아니라 성경에 적혀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고로 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 그것이 죄인 것입니다. 죄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인가요? 정말로 나쁜 사람들만 저지를 수 있는 일이 죄이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죄와 상관이 없나요? 아니요. 죄는 항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따먹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셨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로고 하신 것을 하는 것이 죄인 것이지요.

우리가 아무리 선하게 살아가려 하더라도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 회개를 해야 합니다. 잘못했다고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용서해달라고 말씀을 드려야지요.

성경에 보면 회개를 잘 못하는 사람과 회개를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사울과 다윗이 아닐까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 그는 대단히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 사무엘이 사울한테 말하기를, 이제 너희 집안을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자 사울이 말합니다.

イスラエルのすべてが望んでいるものは、だれのものでしょう。それはあなたのもの、あなたの父の全家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か


사무엘상 9장 21절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サウルは答えて言った。「私はイスラエルの部族のうちの最も小さいベニヤミン人ではありませんか。私の家族は、ベニヤミンの部族のどの家族よりも、つまらないものではありませんか。どうしてあなたはこのようなことを私に言われるのですか。」

아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 가문은 수도 적고 아주 보잘 것 없는 집안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과분한 말씀을 하십니까……

본래 사울은 이처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왕위에 오르고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시작하자 이제 그 겸손함은 사라지고 오직 자기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를 드러내면 하나님이 가려집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출 때 비로소 하나님을 높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3장 8절에 봅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サウルは、サムエルが定めた日によって、七日間待ったが、サムエルはギルガルに来なかった。それで民は彼から離れて散って行こうとした。

여기 보면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다고 하지만, 아직 이레가 다 차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흩어지니까 자기 체면이 말이 아니에요. 그래서 어떻게 해요? 하나님 생각보다 내 생각을, 하나님 말씀보다 내 체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사무엘이 해야 할 제사를 자기가 드립니다.

이 일을 보고 사무엘이 격분합니다.

사무엘상 13장 13절~14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サムエルはサウルに言った。「あなたは愚かなことをしたものだ。あなたの神、主が命じた命令を守らなかった。主は今、イスラエルにあなたの王国を永遠に確立されたであろうに。
今は、あなたの王国は立 たない。主はご自分の心にかなう人を求め、主はその人をご自分の民の君主に任命しておられる。あなたが、主の命じられたことを守らなかったからだ。」

여기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사무엘이 생각하기를 어쭈? 내가 해야될 일을 니가 마음대로 해? 뭐 이러면서 자존심이 상해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사울 왕이 알았는지 몰랐는지, 사무엘이 왕에게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자리에서 회개를 해야지요. 기계는 고장 날 수가 있고, 사람은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문제를 해결해야지요. 기계는 수리를 하면 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회개를 하면 되요.

그런데 13장을 보면 사울이 하나님이나 사무엘한테 회개를 했다는 말씀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뭐예요?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사람이 하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죠. 뭐? 내 나라가 길지 않아? 에이, 무슨 소리. 지금 내가 왕으로 있고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누가 날 위협할 거야……어쩌면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그의 교만은 하늘을 찌릅니다.

사무엘상 15장을 봅니다. 15장 1절~3절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무엘상 15장 1절~3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サムエルはサウルに言った。「主は私を遣わして、あなたに油をそそぎ、その民イスラエルの王とされた。今、主の言われることを聞きなさい。
万軍の主はこう仰せられる。『わたしは、イスラエルがエジプトから上って来る途中、アマレクがイスラエルにしたことを罰する。
今、行って、アマレクを打ち、そのすべてのものを聖絶せよ。容赦してはならない。男も女も、子どもも乳飲み子も、牛も羊も、らくだもろばも殺せ。』」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쳐서 그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다 진멸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무엘상 15장 9절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しかし、サウルと彼の民は、アガグと、それに、肥えた羊や牛の最も良いもの、子羊とすべての最も良いものを惜しみ、これらを聖絶 するのを好まず、ただ、つまらない、値打ちのないものだけを聖絶した。

하나님께서는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모두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으나 사무엘은 자기 생각대로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을 진멸했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그 이유에 대해서, 아~ 좋은 것은 하나님 드리려고 그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생각은 그게 아니에요. 모두 멸하라고 했으면 멸해야지요. 왜 제대로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기회를 주어도 사무엘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보면 참 가면 갈수록 가관입니다.

사무엘상 15장 12절을 봅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翌朝早く、サムエルがサウルに会いに行こうとしていたとき、サムエルに告げて言う者があった。「サウルはカルメルに行って、もう、自分のために記念碑を立 てました。それから、引き返して、進んで、ギルガルに下りました。」

자기가 죄를 지어놓고도 모르는 사람은 참 무섭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겨놓고도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돌아갔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아말렉을 공격했다면, 그 일이 끝난 후에는 사무엘을 만나서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하지만 사울은 완전히 천방지축입니다. 사무엘이 전한 말씀대로 아말렉을 공격하고는 자기 멋대로 일을 처리하고, 또한 그것도 모자라서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 하나 떡 세우고는 후딱후딱 돌아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참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사무엘도 참 황당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사무엘이 사울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너는 이러이러한 죄를 저질렀다, 하나님은 당신을 버렸다……이렇게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되요? 아이구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습니다. 제발 제 죄를 용서해주세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라고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사울은 뭐라고 했는지 한 번 볼까요?

사무엘상 15장 24절~25절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サウルはサムエルに言った。「私は罪を犯しました。私は主の命令と、あなたのことばにそむいたからです。私は民を恐れて、彼らの声に従ったのです。
どうか今、私の罪を赦し、私といっしょに帰ってください。私は主を礼拝いたします。」

음? 이 말씀을 보면 왠지 사울이 회개하는 것 같지 않으세요?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 죄를 사하시고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라는 건, 이것만 본다면 내가 잘못했으니까 하나님 앞에 가서 내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게 해주세요……라고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이 말의 속내가 바로 밑에 30절에 나옵니다.

사무엘상 15장 30절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サウルは言った。「私は罪を犯しました。しかし、どうか今は、私の民の長老とイスラエルとの前で私の面目を立 ててください。どうか私といっしょに帰って、あなたの神、主を礼拝させてください。」

이 딱한 사울은 자신이 죄를 지어놓고서도 지금 회개할 생각보다 자신을 높여달라고 사무엘한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딱한 인생입니다. 이러다가 결국 일이 어떻게 됩니까. 오늘 본문입니다.

사무엘상 15장 35절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サムエルは死ぬ日まで、二度とサウルを見なかった。しかしサムエルはサウルのことで悲しんだ。主もサウルをイスラエルの王としたことを悔やまれた。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에 대해 후회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후회하게 만든 사울이 맞이할 비극은 이미 예고되어 있던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결국 사울은 어떻게 됩니까. 길보아 산 전투에서 그의 아들들과 함께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어떻습니까. 다윗은 그러면 사울에 비해 지은 죄가 없었을까요? 아니요.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밧세바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충신 우리아를 고의로 전쟁터에서 죽게 만듭니다.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람 나단 선지자가 오더니 다윗을 꾸짖습니다.

이에 대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는 시가 시편 51편입니다.

시편 51편 1절~2절까지만 잠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神よ。御恵みによって、私に情けをかけ、あなたの豊かなあわれみによって、私のそむきの罪をぬぐい去ってください。
どうか私の咎を、私から全く洗い去り、私の罪から、私をきよめてください。

참으로 온전히 회개를 합니다. 여기에는 어디에도 나를 높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외에도 다윗은 참 눈물을 많이 흘리면서 회개하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시편 38편 4절~5절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내가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私の咎が、私の頭を越え、重荷のように、私には重すぎるからです。
私の傷は、悪臭を放ち、ただれました。それは私の愚かしさのためです。

여기에는 자존심도 뭐고 없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또한 자신이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때문에 이스라엘을 쳤더니 다윗이 어떻게 말합니까.

역대상 21장 8절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そこで、ダビデは神に言った。「私は、このようなことをして、大きな罪を犯しました。今、あなたのしもべの咎を見のがしてください。私はほんとうに愚かなことをしました。」


역대상 21장 16절~17절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천사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하늘을 향하여 편지라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第一歴代誌 21章16節~17節

ダビデは、目を上げたとき、主の使いが、抜き身の剣を手に持ち、それをエルサレムの上に差し伸べて、地と天の間に立 っているのを見た。ダビデと長老たちは、荒布で身をおおい、ひれ伏した。
ダビデは神に言った。「民を数えよと命じたのは私ではありませんか。罪を犯したのは、はなはだしい悪を行ったのは、この私です。この羊の群れがいったい何をしたというのでしょう。わが神、主よ。どうか、あなたの 御手を、私と私の一家に下してください。あなたの民は、疫病に渡さないでください。」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를 하며 자기 스스로를 낮추게 되니 하나님이 높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그가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 마음을 다해서 무릎 꿇고 회개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후회하실 때까지 기다리시겠습니까. 그러면 늦습니다. 늦기 전에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는 저주가 아닙니다. 징벌이 아닙니다. 회개는 나를 낮출 수 있는 기회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내가 낮아지면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내 죄를 자복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거듭나서, 우리의 남은 삶 동안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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