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회 능력 주시는 하나님
2018년 6월 24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ikahochurch@gmail.com

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능력 주시는 하나님” 強くしてくださる方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한 주 동안을 되돌아보면 참 골치가 아팠던 한 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혹시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팟캐스트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스마트폰으로 오디오나 동영상을 이용하는 서비스입니다.

현재 저는 주일날 전해드리는 말씀을 동영상으로 다시 촬영을 해서 유튜브에 올리고는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해서 여러 곳에 이메일을 발송을 해드리고 있습니다만, 이 유튜브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립된 서비스라는 개념이 있는데, 팟캐스트 같은 경우에는 동일한 하나의 서비스로서 제공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팟캐스트의 지명도가 높이 때문에 한 번 등록이 되면 여기저기에 연결이 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점에 대해서 본다면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이미 많은 목사님이나 교회에서 이용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라고 하니까 잘 모르겠다, 내가 너무 뒤쳐졌나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니요, 괜찮습니다. 사실 저도 한국에서 학원에 근무하고 있을 때, 학원측으로부터 팟캐스트를 하자고 제안을 받았을 때까지 그게 뭔지 잘 몰랐습니다.

당시는 잘 차려진 스튜디오에서 수업 자료만 들고 가서 녹음만 하면, 나머지는 회사 쪽에서 전문가들이 다 알아서 해주었기 때문에 저는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등록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해야 할 것 같아요. 유튜브만 가지고는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제가 가졌던 또 하나의 생각은, 내가 돈이 있어서 무슨 서버를 임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지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가능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긴 해야 하는데, 잘 될까……하는 막연한 불안감만 가지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만, 결국 지난 주일에 작심을 하고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아니나다를까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포토샵으로 이미지부터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찾아서 설명서를 읽으면서 하나하나 해 가는데, 이건 뭐 그림을 등록하는 사이트가 다르고, 자료를 올리는 사이트가 다르고, 자료를 등록하는 사이트가 다르고……그리고 이걸 또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도 참 까다로웠습니다. 관련된 사이트만 보니까 총 4개의 전혀 다른 사이트에 자료를 올리고 승인을 받고 그리고 프로그램도 새로 깔고 그래야 했었지요. 제가 그래도 지금까지 컴퓨터도 좀 만지고 그랬습니다만, 적지 않게 생소한 것들 투성이였습니다.

그래서 이 며칠간 참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아, 난 왜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할까 하고 자괴감도 들기도 했고요, 정말 도중에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결국 어찌어찌 해서 승인이 됐어요.

자, 이제 승인이 되었다고 하면 일이 모두 끝난 게 아니라 이제부터 일이 시작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자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동영상을 음성파일로 하나하나 바꾸어야 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설교 동영상이 지난 주 것까지 합하면 총132회분 정도 되었습니다. 이를 하나하나 음성파일로 바꾸어주고, 그걸 또 사이트에 올리고, 그러면서 한 쪽에서는 이 자료 내용을 하나하나 엑셀로 작성을 해서 다른 곳에 등록시켜야 합니다.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그렇습니다만,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이 하고 그랬지요. 아마도 이걸 해본 사람이나 전문가들이 들으면, 그것 별것도 아닌데 뭘 그러느냐 하고 생각하겠습니다만, 옆에서 누가 가르쳐주거나,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도 없고 그런 상황이다 보니 참 갑갑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결국 2~3일 정도는 밤을 꼬박 샜던 것 같아요. 그 결과 참 은혜롭게도 지난 주 것까지 무사히 등록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참 놀라웠는지 모르겠어요. 이걸 한다고 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것에 대해서 참 감사했습니다.

무사히 132회분 설교를 등록 시키고는 저희 집사람한테 자랑을 했지요. 이걸 보라고 그랬더니만 조금 보고 난 다음에, 대단히 충격적인 말을 한 마디 했습니다.

이거 일본어판도 있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러더라구요.

아니, 지금 내가 이걸 등록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래? 당신이 옆에 있으면서 계속 봤잖아? 내가 며칠 밤을 샜는지 알아? 막 이런 말을……하려고 했습니다만 하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왜일까요? 예, 그게 맞는 말이었거든요. 이 팟캐스트라고 하는 것은 나라별로 다르기 때문에 한국 쪽에 일본어를 등록해봤자 일본사람들한테는 검색이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뭐예요? 예, 처음에 승인을 받는 것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걸 또 언제 하냐……하고 하나하나 시작을 해보았더니만, 이미 한 번 해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어요. 자료를 만들고 승인을 얻고 파일을 올리고 이를 등록하고 하는 절차가, 물론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은 걸렸지만 처음 할 때처럼 그런 시행착오나 실수 없이 몇 시간 만에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 과정, 무슨 대단한 과업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컴퓨터 그림 프로그램이나 엑셀, 사운드 프로그램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항상 기초가 딸리고 여전히 모르는 것도 많지요.

하지만 요즘 제가 드는 마음이 어떤 거냐 하면, 이 순간을 위해서 주님께서 인도해주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엑셀 같은 것을 처음 배웠지요.


엑셀에 대해서는 당시 그 부서에서 무슨 귀찮은 회계 정산 업무가 있었는데, 대리나 과장이 그런 일을 하기 좋아하겠어요? 그러니까 결국 어쩔 수 없이 제일 말단이었던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참 그게 얼마나 귀찮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는 얼마 뒤에 그 회사를 그만 뒀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그 중 하나는 분명히 그 엑셀 작업을 하기가 싫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후에 다른 회사에 들어갔는데, 조금 있으니까 사장이 저를 불러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홍성필씨, 지금 우리 회사에서 당신만큼 엑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회계처리를 자네가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참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모릅니다. 무슨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 격도 아니고 참 난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또 회사를 나올 수는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몇 년 동안 그 일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워드 쓰는 방법이나 포토샵 또는 사운드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비슷한 식으로 익히게 되었지요. 정말 자의반 타의반……아니, 거의 타의로 어쩔 수 없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은 학원에 다니면서 돈을 내고 배웠는데 저는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면서 배운 결과가 되었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저는 한국에서 운전면허도 없었습니다. 서울에 교통이 좀 잘 되어 있나요. 교통비도 일본에 비하면 월등히 쌉니다. 지하철에 버스도 잘 되어있고, 조금 급하다 하면 택시를 잡으면 되요. 비싼 돈 내가 차를 몰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0년에 미국생활을 시작했는데, 거긴 정말 대중교통이 없어요.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결국 면허를 딸 수 밖에 없었지요. 제가 이래봬도 운전면허에 있어서 만큼은 미국 유학파입니다. 아, 물론 거기서 배우기는 한국 사람한테 배웠지만요.

만약 그 때 운전면허를 따지 않았다면 제가 이 나이에 이 대중교통이 너무나도 부족한 군마현에 와서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일본어도 마찬가지겠지요. 제가 처음으로 일본에 올 때에는 아직 한국이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나 외국에 나갈 수가 없을 때였지요. 그 때 제가 무슨 제 노력이나 실력으로 일본에 온 것이 아니에요. 그냥 어린 나이에 멋도 모르고 부모님 따라서 온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일본에 살면서 학교에 다니다 보니 일본어를 그래도 이 정도로 하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어요. 조금 생각하시면 아실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열심히 배워서 무엇을 해야겠다, 또는 내가 무엇이 되어야겠다 하고 해온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렇게 걸어오다 보니까, 이것도 할 수 있게 되고, 저것도 하게 된 것일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그래도 몇 년 선교활동을 하다 보니 아, 사람들이 왜 일본선교가 어렵다고 하는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디 어려운 게 일본 선교 뿐이겠습니까. 전세계에서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계신 선교사님들은 물론이거니와 국내에서 목회하시는 분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고 보면 힘든 게 선교 뿐인가요? 외국에서 생활하는 분들도 힘들고 국내에서도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일, 뭐 몇 번이나 말씀 드리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만, 이번 작은 일을 겪으면서 느낀 것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 주님께서 어쩌면 이 때를 위해서 지금까지 나를 인도해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어렸을 때 일본에 왔던 것도 아니요, 피나는 노력을 해서 일본어를 익힌 것도 아니요,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컴퓨터를 배운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계획하셔서 지금까지 온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 엑셀이나 포토샵이나 컴퓨터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전문가가 제 실력을 알면, 비웃을 것입니다만 그래도 이 부족한 실력도 주님께서 쓰시기 위해 예비해주셨다고 하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바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나귀를 타셨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을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귀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마태복음 21장 8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すると、群衆のうち大ぜいの者が、自分たちの上着を道に敷き、また、ほかの人々は、木の枝を切って来て、道に敷いた。

정말 온 예루살렘이 떠내려갈 정도로 찬양이 울려 퍼집니다. 그런데 그 찬양을 예수님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타신 나귀새끼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겉옷을 길에 펴고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는 예를 갖추었을 때 그 위를 직접 밟고 가는 것은 나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귀가 했던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냥 예수님이 이쪽으로 가자고 하면 이쪽으로, 저쪽으로 가자고 하면 저쪽으로 갔을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온순하게 따랐던 나귀는, 자기 스스로는 아무런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놀랍게 쓰임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보면 애굽에 팔려간 요셉이 총리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까, 아니면 다윗이 왕이 되기 위해서 선거운동을 했습니까.

사무엘하와 역대하에 보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장차 있을 영광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을 다윗에게 전할 때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역대상 17장 16절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라고 고백을 합니다.

ダビデ王は行って、主の前に座し、そして言った。「神、主よ。私がいったい何者であり、私の家が何であるからというので、あなたはここまで私を導いてくださったのですか。

이는 전혀 과장된 겸손이 아닙니다. 내가 지금까지 왕이 되려고 한 것도 아니요, 왕을 넘볼 정도로 훌륭한 집안에 태어난 것도 아니요, 그저 보잘것없는 집안, 그것도 장남도 아닌 제일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위해 야곱처럼 기를 쓰고 노력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놀라운 축복을 주신다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다윗을 보면 죄도 많이 짓고 그랬습니다만, 항상 주님과 가깝게 지냅니다. 자기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자기가 잘못을 저지르면 곧바로 무릎 꿇고 회개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귀여우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난할 때나 부할 때나 어려울 때나 즐거울 때나 항상 주님을 가까이 합니다. 그러니 축복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장 26절~29절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兄弟たち、あなたがたの召しのことを考えてごらんなさい。この世の知者は多くはなく、権力者も多くはなく、身分の高い者も多くはありません。
しかし神は、知恵ある者をはずかしめるために、この世の愚かな者を選び、強い者をはずかしめるために、この世の弱い者を選ばれたのです。
また、この世の取るに足りない者や見下されている者を、神は選ばれました。すなわち、有るものをない者のようにするため、無に等しいものを選ばれたのです。
これは、神の御前でだれをも誇らせないためです。

그렇기 때문에 주님 안에서는 아무리 힘 있고 아무리 돈 많다 하더라도 교만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ですから、立っていると思う者は、倒れないように気をつけなさい。

마태복음 3장 9절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われわれの父はアブラハムだ』と心の中で言うような考えではいけない。あなたがたに言っておくが、神は、この石ころからでも、アブラハムの子孫を起こすことがおできになるのです。

나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다, 내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을 주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기뻐하시기는커녕 거들떠보지도 않으십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겸손한 가운데에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을 도구로 사용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당장 신학을 해서 목사안수를 받아야 하나요? 그리고 선교사로 나가야 하나요? 아니면 전재산을 팔아서 주님께 기부해야 합니까.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도록 하시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私は、私を強くしてくださる方によって、どんなことでもできるのです。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능력을 주십니다. 자, 내가 너를 도구로 쓰려고 하니까 네가 열심히 노력해서 멋진 도구가 되어서 와……이게 아닙니다. 내가 너를 도구로 쓰려고 해. 그래서 뭐예요? 나더러 노력하라? 아니요. 내가 너한테 능력을 줄거야. 너를 내가 원하는 도구로 만들어 줄 거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쓰려고 해. 내 도구로 쓰임을 받으면 너는 축복을 받아. 이를 위해서 너를 내 손에 딱 맞는 도구로 만들 거야.

그러면 우리는 뭘 하면 되요?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등에 태운 나귀처럼 이리로 가라고 하면 이리로 가고, 저리로 가라고 하면 저리로 가면 됩니다. 자, 일본에 가서 일본어도 배우고 월급 받으면서 엑셀도 배우고 포토샵도 배우고 그래.

이유? 내가 너 나중에 써먹으려고 그러는 거야.

바로 이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팟캐스트가 사실은 아이폰을 개발한 미국 애플사에서 운영하는 회사입니다만, 제 팟캐스트도 승인을 해주고 그랬으니 그 애플사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 얘기를 한 번 해볼까 합니다.

이는 그가 2005년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때 했던 연설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집안 사정이 안 좋았는데, 가만히 계산을 해보니까 자기가 졸업할 때까지 대학에 다녔다가는 자기 부모님의 재산을 모두 탕진할 것 같더라는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을 그만두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그는 정규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돈도 없었지요. 그래서 그는 글자 서체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수업은 자신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큰 감명을 주었지만, 반면에 컴퓨터도 없던 그 시절 글자 서체에 대한 수업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 뒤에 그가 컴퓨터를 개발할 때, 바로 그 옛날에 그 학교에서 들었던 글자 서체에 대한 내용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그는 그 컴퓨터를 개발할 때에 컴퓨터에 다양한 서체에 대한 지식을 컴퓨터에 응용할 수 있었고, 이 컴퓨터는 어마어마한 판매를 기록하게 되는데, 이 컴퓨터가 바로 그 유명한 매킨토시 컴퓨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보면 여전히 윈도우가 아니라 매킨토시를 사용하는 출판사에서는 아직도 많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앞을 내다보면서 점으로 연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나, 10년 뒤에 과거를 돌아보면 너무나도 명확했다는 것입니다.

비록 이 스티브 잡스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습니다만, 믿지 않는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주님을 믿는 우리가 이와 같은 믿음을 버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와 같은 주님의 인도하심은 어디에 있을까요. 신학교에 있나요? 아니면 기도원에 있나요? 아니요. 이는 바로 우리 일상 속에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모두 일상 속에 있을 때 주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일상 속에서 주님은 우리를 인도해주시고 우리를 도구로 만들어 주시고, 또한 우리를 사용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다윗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자면 애초에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었던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래부터 전쟁에 능했나요? 아니요. 형들이 귀찮아 하는 일들, 가축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곰이나 사자와 싸우고 하는 일상 속에서의 일들을 묵묵히 감당하다 보니 물매를 던지는 기술이 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능력,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그 능력을 사용하셔서, 전 이스라엘 군대가 벌벌 떨었던 골리앗을 물매 하나로 물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너무나도 힘듭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인도해주십니다.

주님께서는 특별한 장소가 아닌 우리 일상 속에 임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 아무리 값진 일이라 하더라도 주님께서 인도해주시지 않는 일이라면 아무런 가치도 없어집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시고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일이라면 이는 나중에 반드시 주님께서 크게 써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순종하면 됩니다. 사람한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께서 인도해주십니다. 주님께서 인정해주십니다. 주님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지금 힘들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크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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