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2018년 7월 8일 설교

홍성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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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5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天と地を創造された神様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엊그제 뉴스를 통해서 알고 계시는 분도 많으시겠습니다만, 지난 7월 6일, 옴 진리교 대표와 간부들을 비롯한 7명의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적게는 4개에서 많게는 열 개가 넘는 죄목이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아무래도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1995년 3월 20일 아침 출근시간에 동경에서 발생한 사건인데, 그들에 의해 자행된 이 사건만으로도 지하철 승무원이나 승객 중 사망자는 13명이고, 부상자는 무려 6,30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무슨 중동이나 분쟁지역도 아닌 대도시 동경 한복판에서 이처럼 무차별테러가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일본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저지른 사건은 이외에도, 1989년 11월 4일에는 자신들의 활동에 비판적이었던 변호사에 대해서 그 변호사 당사자만이 아니라, 당시 1살이었던 장남, 그리고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고 하는 부인마저도 무참히 살해한 사건, 동경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을 일으키기 바로 전해인 1994년 6월 27일에는 나가노현 마츠모토 시 주택가에서 사린가스를 이용한 범죄를 일으켜서 8명이 사망하고 600명 이상이 부상을 입는 사건을 벌이는 등, 이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러 왔습니다.

결국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으로 총 13명이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만,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들의 학력입니다. 한국에 보더라도 이런 잔인무도한 사건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면 사회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왔다거나 하겠으나 이 사람들을 보면 참 대단합니다.

이들 대부분이 대하 졸업자이고, 그 중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2명, 국립대 박사과정, 와세다대 물리학과 수석졸업, 동경대 물리학과 석사……뭐 이런 식으로 대단한 학력들을 자랑합니다.

이는 단지 공부를 잘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자라오는 과정이, 이른바 흉악범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무슨 사회적이나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꽤 평탄한 삶, 아니,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는 좋은 환경에서 자라왔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자신들이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진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번 사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범죄라고 하는 것이 무슨 이런 것만이 범죄인가요. 지금 한국에 보면 정권이 바뀌면서 그 전에 자행되었던 사건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 보면 어떻습니까. 그야말로 참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진 사람들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배경은 모두 가진 분들이죠. 그런데 지금은 어떠냐 하면, 전직대통령들부터 해서 모두 수갑 차고 구치소 교도소에 있습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보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니, 그게 나쁜 짓인 줄 모르고 그랬을까. 안 들킬 줄 알았을까. 못 배운 사람이 그랬다면 생각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고 하겠는데,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그런 생각도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를 생각하기 위해, 먼저 오늘 본문부터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장 1절~5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참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제가 한국 소설은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만, 일본의 유명한 책들을 보면 벌써 첫 문구부터가 다릅니다.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카와바탸 야스나리의 설국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つた……나츠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후쿠자와 유키지의 <학문의 권유>를 보면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아니하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아니하니……”라는 첫 구절은 대단히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첫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사실 이건 제 상상입니다만, 하나님께서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성경이 완성되고, 이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파될 것인데, 그렇다면 바로 첫 구절을 어떻게 하실까 몇 번이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첫 구절을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멋진 말씀입니다.
언제? 이 세상 가장 처음에
누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성경의 첫 구절임과 동시에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이 믿어진다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을 다 믿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이는 성경에 등장하는 어떤 말씀, 홍해가 갈라지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것을 믿는다 하더라도 이는 소용없는 일인 것입니다.

일본에 신사에 가보면 <에마>라고 해서 자기의 소원을 적어놓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몇 백 원이나 몇 천원을 내서 나무 판대기를 사고는 그 뒤에 펜으로 자기 소원을 적어놓고 걸어놓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거기 보면 뭐 자기가 원하는 고등학교나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세요. 시험에 합격하게 해주세요. 취직할 수 있게 해주세요, 결혼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돈 잘 벌게 해주세요……등등 자신들의 소원이 적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주님께 자신의 기도제목을 말씀드리는 것 중요합니다. 신사나 다른 우상들에게 절하는 것은 그야말로 헛것이요, 우리 주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 한 번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가 믿은 예수님이 기껏해봐야 시험에 합격시켜주는 하나님? 입학이나 취직 시켜주는 하나님? 결혼 시켜주는 하나님? 돈 좀 벌게 해주는 하나님? 그게 다인가요?

만약에 그렇다면 그냥 평소에는 교회에 안 나오고 기도도 안 하고 있다가, 기도제목이 있을 때만 교회에 나와서 헌금하고 기도하면 되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정말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오~ 땡큐땡큐! 그리고 소원이 안 이루어지면 에이, 엉터리! 그걸로 끝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믿음도 아니에요. 좋은 일이 일어나면 히히 거리고 기뻐하고, 조금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뱉어버리는 것은 이는 주님 앞에서 올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첫째로 온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둘째로, 이것이 사실 더욱 중요합니다만, 그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사랑하세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내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권력자들이 있습니다. 대통령도 있고 총리도 있고 왕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지를 주재하시는 것처럼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를 내줄 정도로 사랑해주나요? ㅎㅎ아니요. 어림도 없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또는 자기 가족이나 친인척을 위해서 챙기는 나쁜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 그토록 사랑해주는 권력자들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떠십니까.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이랑은 비교가 안될 정도의 힘과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만군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늘과 땅과 모든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이를 지금 이 순간도 다스리고 계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세상 권력자들이랑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와 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아침에나 낮에나 밤에나 항상 함께 해주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 죄가 많은 우리가 어떻게 해서 그런 영광을 누릴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의 죄를 모두 해결해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그대로 있다면 이는 백 번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님 근처에 갈 수조차 없는 우리지만, 예수님께서 우리가 받을 채찍을 모두 맞으시고, 우리가 받을 징계를 받아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용서받은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항상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험에 합격시켜달라고 기도했는데 떨어졌어? 괜찮아. 그래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셔.
취직 시켜달라고 기도했는데 안 됐어? 괜찮아. 그래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셔.
돈 좀 벌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못 벌었어? 괜찮아. 그래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셔.

마태복음 7장 11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시시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기적인 하나님도 아닙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만큼 능력이 있으시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이 믿음이 어디서 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는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을 보도록 합니다.

창세기 1장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우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이는 바로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동그라면 동그랗고 네모나면 네모나야 하는데, 이건 동그랗지도 않고 네모나지도 않고, 그러면 그 안에 가득 차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텅 비어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있는 것 같은데 있는 것도 아니에요. 없는 것 같은데 없는 것도 아니고, 형태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에요. 이건 어떤 사물의 “존재”라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있거나 없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대요. 정말 참 문학적인 말씀입니다. 흑암이라는 것 자체가 벌써 어둡다는 것인데, 어느 정도 어둡냐 하면 아주 깊을 정도로 어둡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구절을 좀 풀어서 말씀 드리자면 보이는 것도 잡히는 것도 없는 그런 세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창세기 1장 3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제 하나님께서 빛을 만드셨습니다. 이 빛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 인간의 눈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무엇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엇이 필요하냐 하면 <빛>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눈은 두 가지 밖에 볼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 두 가지가 뭐냐 하면 첫째는 <빛 그 자체>이고, 둘째는 <빛이 반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양을 보면 너무 눈이 부시지만 이런 조명 같은 것을 보고 알아볼 수 있는 이유는 거기서 빛이 나오기 때문에, 그 나오는 빛을 보고, 아, 저기 불빛이 있구나……하고 알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빛이 반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를 들어서 어떤 물건을 보고 빨간색을 인식하는 것은, 어떤 빛이 그 물건에 닿은 후에 빨간색만이 반사되어서 우리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빨간색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란색으로 인식하는 것은 어떤 빛이 거기에 닿았을 때 파란색만 반사되면 역시 파란색으로 인식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에 아무런 빛도 반사하지 않아요. 그러면 검정색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빛, 특히 태양빛에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색깔이 다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빛>의 색깔이라고 하면 어떤 색을 떠올리세요? 예, 흰색을 떠올립니다만, 예를 들어서 어떤 물건의 색깔을 형광등으로 보는 것과 태양빛으로 보는 것과는 그 선명도가 다릅니다. 어느 쪽이 선명하게 보이냐 하면 바로 태양빛으로 볼 때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는 단순히 태양빛이 더 밝아서가 아니라, 쉽게 말하자면 형광등에 포함된 색 종류보다 태양빛에 포함된 색깔 종류가 월등히 많기 때문에 이렇게 바깥에서 볼 때가 더욱 선명하고 자연스러운 색깔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즉, 안 보이는 세계에서 순식간에 보이는 세계가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무엇이 다릅니까. 그것은 바로 앞이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의 차이인 것입니다.

아무리 차가 좋아요. 좋은 차가 뭐죠? 뭐, 벤츠나 BMW, 정말 밟으면 잘 나갑니다. 속도도 빠르고 승차감도 뭐 잘 모르겠습니다만 뛰어나다고 합시다. 그러면 좋은 차죠?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문제가 뭐냐 하면 앞이 안 보입니다. 앞 유리가 시커매요. 그러면 여러분 타시겠습니까? 아니요. 절대로 그런 차는 타면 안 됩니다. 아무리 속도가 빠르면 뭘 합니까. 아무리 승차감이 좋으며 뭘 해요. 앞이 안 보이는데. 만약에 그런 차를 타고 신나게 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말로 대형사고가 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제가 대형사고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대형사고가 뭐예요? 아닌 말로 사고를 내서 자기만 죽으면 대형사고는 아니죠. 자기만 죽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까지도 함께 죽게 만드는 것 이것이 대형사고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옴진리교의 간부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교도소나 구치소에 수감중인 전직 대통령이나 공직자들. 이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사회적으로 보면 엘리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벤츠나 BMW라고 할 수 있었겠지요. 말 그대로 잘 나가는 삶을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신세가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까.

그것은 바로 빛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빛이 없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앞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힘보다는 내 힘,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내 능력을 의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힘들고 고달프십니까. 일이 잘 안 풀리십니까.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시련이 닥치고 어려운 일들이 자꾸 일어나십니까. 기도를 해도 응답이 안 오고 그러는 것 같습니까.

그럴 때면 성경을 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1절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 곳에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천지를 주재하시는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맞이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인 우리는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존재,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추십니다. 이제 우리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만군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좌절하지 맙시다. 포기하지 맙시다. 낙심하지 맙시다. 우리 모두 만군의 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빛을 따라 승리의 길, 축복의 길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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