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회 아직 끝이 아닙니다
2018년 7월 29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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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아직 끝이 아닙니다.” まだ終わりではありません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전에 서울에서 살 때 지하철 역이나 시내 광고판을 보면 무슨 성형외과다 하면서 이른바 <비포 애프터>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비포…… 그러니까 시술을 받기 전의 모습은 코나 턱이 이렇게 생겼었는데, 애프터……시술을 받고 나면 이렇게 변했다……는 사진을 크게 붙여놓곤 했었지요. 그 중에는 정말 이게 똑 같은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 그런 광고는 이제 법적으로 금지가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에 따라서 결과가 같다고 할 수 없기에 과장광고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른바 비포 애프터 사진이라고 하면 이처럼 성형외과나 아니면 다이어트 광고를 떠올리게 됩니다만,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또다른 비포 애프터 사진, 아니, 그냥 비포만 있는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이는 바로 유명인들의 비포……그러니까 유명해지기 전의 사진을 모아놓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서양 유명인들에 대해서 많이 알지는 못했기 때문에 거기 나와 있는 사람들 모두를 알 수는 없었습니다만, 저 같은 사람도 아는 유명인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그 중 인상 깊게 남았던 사진이 두 장 있습니다만, 그 중 한 장은, 18세 소녀가 선 채로 천진난만하게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입니다.

또 한 장은 19세 소녀가 앉아서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입니다.

궁금해하실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천진난만하게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 18세 소녀는 아직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찍은 마돈나 사진이었고, 물끄러미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19세 소녀는 장차 영국 왕세자와 결혼하게 될 다이애너비의 사진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진이 있었지요. 하지만 그 중에는 미래에 마돈나처럼 큰 성공을 거둔 스타가 있었나 하면 다이애너비처럼 비극적인 인생을 살아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불우한 인생을 살아간 사람이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그런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겠지요. 본인은 물론이고 그 주변 사람들도 몰랐을 것입니다.

어쩌면 성공한 사람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습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은 소프트뱅크를 설립한 1981년, 전 직원들 앞에서 “5년 뒤 우리 회사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유통에 있어서 1등을 할 것이고, 1000곳 이상의 딜러를 상대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큰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말은 참 멋집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할 당시 그는 어디에 서 있었냐 하면 사과상자 두 개를 엎어놓은 단상 위에 있었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전 직원은 단 두 사람 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손 회장은 현재 어떻습니까. 그는 현재 일본에서 제일가는 거부이고 소프트뱅크는 직원 6만 8천명, 총자산 246조원, 매출 89조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아무리 성형외과에서 하는 비포 애프터 광고가 과장성이 있다 하더라도, 이처럼 인생에 있어서의 비포 애프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도 이 비포 애프터의 차이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인물에 보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은 팔형제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서도 그리 큰 대접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귀한 손님인 사무엘이 방문했을 때, 아버지 이새가 다른 일곱 형들은 불러서 인사를 드리게 하면서도 막내인 다윗한테는 양들을 지키게 할 정도로 홀대를 당했습니다. 이것이 비포입니다. 그런데 애프터는 어떻습니까. 그는 골리앗을 물리치고 장차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40년 동안이나 통치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사랑 받는 아들이었다가 종으로 끌려가고는 그것도 모자라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비포와 애프터는 참으로 안타깝지요. 비포는 사랑 받는 아들 요셉. 그런데 애프터는 이국 땅에서의 종살이와 감옥생활입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닙니다. 그는 나이 서른에 애굽의 총리 자리에 오르는 놀라운 재반전을 이루게 됩니다.

신약에도 인생의 반전을 이룬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베드로를 한 번 볼까요? 그는 고기잡이였습니다. 단순히 고기잡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되겠지요. 그는 분명히 고기잡이라고 하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배도 있었겠지요. 즉,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배와 기술 만으로도 먹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4장 19절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イエスは彼らに言われた。「わたしについて来なさい。あなたがたを、人間をとる漁師にしてあげよう。」

이 한마디에 베드로는 순종하지요.

누가복음 5장 11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彼らは、舟を陸に着けると、何もかも捨てて、イエスに従った。


그들은 배도 있었고 기술도 있었습니다. 생활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비포이지요. 그런데 좀 이상한 말이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바람에 애프터에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또한 바울의 인생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그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젊은 나이에 고시를 패스한 유능한 엘리트 관료였습니다. 이미 출세가 보장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유대교에 대한 믿음도 대단했지요.

사도행전 9장 1절~2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さてサウロは、なおも主の弟子たちに対する脅(おびや)かしと殺害の意に燃えて、大祭司のところに行き、
ダマスコの諸会堂あての手紙を書いてくれるよう頼んだ。それは、この道の者であれば男でも女でも、見つけ次第縛り上げてエルサレムに引いて来るためであった。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가려고 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단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탄압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신앙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 3절~5절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ところが、道を進んで行って、ダマスコの近くまで来たとき、突然、天からの光が彼を巡り照らした。
彼は地に倒れて、「サウロ、サウロ。なぜわたしを迫害するのか」という声を聞いた。
彼が、「主よ。あなたはどなたですか」と言うと、お答えがあった。「わたしは、あなたが迫害しているイエスである。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바울, 그는 이제 예수님을 박해하던 청년 엘리트가 아니라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의 삶이 어땠을까요.

고린도후서 11장 24절~27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ユダヤ人から三十九のむちを受けたことが五度、
むちで打たれたことが三度、石で打たれたことが一度、難船したことが三度あり、一昼夜、海上を漂ったこともあります。
幾度も旅をし、川の難、盗賊の難、同国民から受ける難、異邦人から受ける難、都市の難、荒野の難、海上の難、にせ兄弟の難に会い、
労し苦しみ、たびたび眠られぬ夜を過ごし、飢え渇き、しばしば食べ物もなく、寒さに凍え、裸でいたこともありました。


이런 비포 애프터도 드물지요. 그는 출세가 이미 예정된 인물이었습니다. 남들한테 인정받고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인물이었습니다.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이 비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의 인생은 참으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매도 맞고 강도 위험에다가 이제 같은 유대인한테까지 핍박을 받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고 난 다음의 애프터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그의 공로는 얼마나 대단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도행전 9장 15절에서 바울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しかし、主はこう言われた。「行きなさい。あの人はわたしの名を、異邦人、王たち、イスラエルの子孫の前に運ぶ、わたしの選びの器です。

예수님의 이 말씀대로 신약 성경 중에서 상당 부분을 바울이 집필을 했고, 로마를 비롯해서 복음 전파와 교회 설립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 바로 이 바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모세를 보더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핍박 받고 있던 당시 애굽에서 그는 출생합니다. 애굽 왕이 명령하기를 유대인 아기가 태어날 때 딸이면 살려두고 아들이면 죽이라고 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됩니다. 그 후 그는 애굽의 왕자로 성장하게 되지요. 몇 살까지냐 하면 무려 40세까지 그는 당시 최고 선진국에 살면서 왕족이라고 하는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최고의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놀랍고도 풍요로운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40세 때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는 뜻하지 않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어 결국 그 때까지 쌓아둔 지위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광야로 도망치게 됩니다.

광야에서의 삶은 어땠을까요. 거기서 만난 여인과 결혼하여 그저 조용한 삶을 보내게 됩니다. 조용한 삶……말은 참 좋지요. 하지만 이제 그에게는 왕궁에서 살았을 때와 같은 화려한 옷도, 화려한 집도, 화려한 음식도 없습니다. 수많은 부하들도 없고 찬란했던 지위도 명예도 없습니다. 그의 나이 마흔. 이제 한창 활약을 하면서 인생 황금기를 맞이해야 할 그 시기에 그는 광야에서 허무하게 지내야 했던 것입니다.

이제 세월은 흐릅니다. 얼마나 흘렀냐 하면 또다시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 여든입니다.

여기까지의 인생을 모세의 비포와 애프터로 본다면 참으로 기구하기 짝이 없지요. 얼마나 화려하고 찬란한 비포에 비해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는 애프터입니까.

하지만 여러분, 모세의 인생이 여기서 끝나나요? 아니요. 아직 끝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몇 살이요? 예, 그의 나이 여든……팔십부터 이제 하나님께서 쓰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그를 부르십니다. 애굽에서 핍박 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몇 년이요? 예,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34장 7절에 보면 백이십 세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그의 인생을 단순히 숫자상으로 보면 어떨까요. 계산하기 대단히 쉽습니다. 애굽에서 왕자로 생활한 기간이 40년, 애굽에서 도망쳐 나와 광야에서 생활한 기간이 40년,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던 기간이 40년……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요. 단순비교를 위해서, 성경에 어느 정도 비중으로 기록이 되어 있는지를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세가 어렸을 때 태어났을 때의 기록은 자신의 판단이 아니니 제쳐둔다고 하면, 그의 인생은 출애굽기 2장 11절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2장 11절은 “모세가 장성한 후에……” (こうして日がたち、モーセが おとなになったとき、)로 시작합니다. 이 때는 애굽의 왕자로 40년을 살아갈 때였는데, 이 때의 기록은 어디까지냐 하면 15절에 끝납니다.

15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しかし、モーセはパロのところからのがれ、ミデヤンの地に住んだ。彼は井戸のかたわらにすわっていた。

찬란했던 그의 40년 인생이 고작 다섯 장도 아니고 5절로 끝나고 말아요.

그리고 광야에서의 도피생활 40년은 어떤가 하면 그 다음 구절 출애굽기 2장 16절부터 시작하겠지요? 그런데 그 기록은 22절에서 게르솜(ゲルショム)이라는 아들을 낳았다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니까 몇 구절이에요? 16절부터 22절, 7절이에요. 그러니까 광야에서의 도피생활 40년도 고작 7절에서 끝나고 맙니다. 이것만을 본다면 그의 80년 인생은 고작 12절이 다입니다. 참 허무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음 장인 출애굽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드디어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그는 하나님과의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의 이후 인생이 앞서 말씀 드린 신명기 34장 7절까지라고 가정해 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던 40년을 출애굽기 3장 1절에서 신명기 34장 7절이라고 한다면 이 절 수는 얼마나 될까요?

애굽에서의 40년을 성경은 5절로 기록하고, 광야 도피생활 40년을 7절로 기록한 성경,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던 40년을 성경은 출애굽기 3장 1절부터 신명이 34장 7절까지 무려 4,267절로 기록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 구절 모두가 모세의 인생에 대한 기록은 아니지요. 여기에는 율법도 많고 기타 내용도 많습니다만, 그러나 이 기간은 분명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던 기간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내용이 다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것으로 본다면 이와 같이 비교하는 것이 전혀 허황된 것은 아니리라 생각됩니다.

인간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똑 같이 40년, 40년, 40년이지만, 성경적인 시각,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에는 5절과 7절, 그리고 무려 4,267절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それから、モーセはシナイ山から降りて来た。モーセが山を降りて来 たとき、その手に二枚のあかしの石の板を持っていた。彼は、主と話したので自分の顔のはだが光を放ったのを知らなかった。

성경에서는 모세가 하나님과 말하였음으로 인해서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얼굴에 광채가 날 수 있을까요. 뭐, 누구는 얼굴에 얼마짜리 성형을 했다는 둥 얼마짜리 고액미용을 한다는 둥 그런 얘기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해서 나는 광채나 같겠습니까.


사실 모세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인간적인 의미로 광채가 가장 날 시기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애굽에서 왕자로 살 때 아니겠습니까. 글쎄요. 그 시대에 어떤 피부관리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단지 피부관리 뿐이겠습니까. 화려한 옷에 화려한 장식에, 거기다가 최고로 높은 지위까지 갖추었다고 한다면, 아무리 못생긴 사람이라 한다 하더라도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겠지요. 그것도 한창 젊을 나이 때 광채가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에서는 젊은 시절 좋은 시절 다 가고, 이제 나이 80도 넘어서, 이제 인생의 내리막길에 접어든 노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여호와와 말하였기 때문에, 여호와와 동행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시면 어떻습니까. 이런 저런 일들이 참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믿음 바깥에서의 일이라면, 그것은 기나긴 우리 인생 중에서 기껏해야 5절과 7절 정도에 들어가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세 전체의 인생을 통틀어서 5절과 7절을 빼면 몇 구절이었죠? 예, 4,267절입니다. 모세 인생에 있어서 5절과 7절은 그야말로 비포였습니다. 제아무리 왕자로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5절만큼의 분량에 지나지 않는 값어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인생에서 애프터는 바로 4,267절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모세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인생, 하나님과 말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십니까? 오늘 아침에 세수를 할 때 광채가 나셨습니까. 안 났어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인생은 어쩌면 5절과 7절까지의 인생이었는지 모릅니다. 걱정 마십시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이제 어제까지 5절과 7절까지의 인생이었다면, 이제 오늘부터 4,267절의 인생,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인생을 시작할 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기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라고 하면 왠지 부담스럽습니다. 기도가 중요해. 기도를 많이 해. 이런 말은 특히 믿음이 좋은 분들한테 있어서는 큰 부담으로 느껴집니다.

그 이유가 뭐예요? 여러분, 기도를 열심히 하려면 어떻게 해요? 예, 우리 한국 사람들 금방 떠올리는 것이 금식입니다. 그리고 기도원에 가야지요. 그러면 금식을 안 하면 기도가 아니에요? 기도원에 올라가지 않으면 기도가 아닌가요?

물론 기도원에서 기도 드리는 것도 귀한 기도 시간이고, 성전에서 기도를 드리는 기도도 귀한 기도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기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지요. 기도라고 하는 것이 항상 성전이나 기도원에서 두 손 들고 주여 주여, 하는 것만 기도인가요?

가끔 보면 누구는 하루에 몇 시간 기도한다, 누구는 일 년에 며칠을 금식 한다, 이런 말을 가끔 듣습니다만, 이건 자칫 잘못하면 교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어떻게 기도하라고 되어 있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쉬지 말고 기도하라”

絶えず祈りなさい。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루에 몇 시간 기도한다? 일년에 며칠을 금식기도 한다? 그것만이 기도라면 성경말씀에 비해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되고 맙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 주님을 의지하는 것,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걸어갈 때나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 그것이 얼마나 귀한 기도인지 모릅니다.

이제 5절까지의 인생, 7절까지의 인생은 접읍시다. 아무리 화려한 과거라고 해도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던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낙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이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오늘부터 5절짜리, 7절짜리 인생을 접고 이제 4,267절짜리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십시다.

항상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광채가 나는 삶,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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