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2018년 7월 22일 설교

홍성필 목사
http://www.ikahochu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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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5절~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前に進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 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힘 드십니까.

물론 요즘은 날도 덥고 해서 더 고되게 느껴지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쳐요. 하지만 우리처럼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삶은 믿지 않은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나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살펴보면 꼭 그런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우리 삶 속에서 가장 많이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돈이나 재산이 부족해서 그럴까요? 그렇다면 단순히 돈이나 재산이 많으면 내 고민도 좀 줄어들까요? 물론 그럴 것도 같긴 하겠습니다만, 막상 세상을 보면 돈이 많아도 고민이 없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단적으로 요즘 한국 뉴스를 보면 대표적인 한국 항공사의 경영인들이 모두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다고 돈이 없겠어요? 그 사람들의 재산을 본다면, 보통 서민들의 몇 십 배, 몇 백 배는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고 유능한 부하들이 많다고 해도 그렇게 고민이 많고 힘들어 한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의 힘든 일들을 단순히 돈이나 재산에만 원인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는 아마도 세상 일들이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안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 달에 저희 집 사람이 한국에 잠시 들어갈 일이 있어서 비행기표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래도 좀 한 푼이라도 저렴한 표를 구매하기 위해서 몇 날을 인터넷을 통해 검색도 해보고 하다가 결제를 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결제를 하고 불과 몇 시간 뒤에 보니까 똑 같은 날짜에 똑 같은 시간, 똑 같은 비행기표가 무려 6만원이나 싸게 나와 있는 거예요.

처음부터 그냥 별 생각 없이 딱 보고 샀다면 그렇게 속이 상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이렇게 살펴보고 저렇게 알아본 다음에 결정을 했는데, 불과 몇 시간 뒤에 그렇게 되니까 정말 속이 얼마나 상했는지 몰랐습니다. 아니, 그렇게 빨리 가격이 떨어질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참 이런 것 하나 계획대로 안 되니까 마음이 좋지 않더라구요.

돈 문제만이 아니죠. 예를 들어 자식들을 키우는 분들 말씀을 들어보면 다들 하시는 이야기가 비슷해요. 자기 생각대로 안 돼서 답답하다는 거예요. 내가 얘한테 들이는 과외비 학원비가 얼만데, 그렇다면 아무리 못 나와도 대충 이 정도는 점수가 나와서 이 정도 학교를 가줘야 할 텐데, 성적표를 받아오는 것을 보면 그렇지 못해서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날씨도 그렇잖아요. 한동안 어느 정도 더웠다가도 좀 시원해져야 사람이 살만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얼마나 날이 더우면 사람들이 막 실려갑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 삶에 있어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좀 내 생각대로 내 예상대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나마 좀 견딜 만도 하겠는데, 내 예상도 예측도 계획도 모두 빗나가고 마니까 이는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모세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5장 13절~14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そこで、アブラムに仰せがあった。「あなたはこの事をよく知っていなさい。あなたの子孫は、自分たちのものでない国で寄留者となり、彼らは奴隷とされ、四百年の間、苦しめられよう。
しかし、彼らの仕えるその国民を、わたしがさばき、その後、彼らは多くの財産を持って、そこから出て来るようになる。

그리고 이 말씀은 모세의 때에 성취됩니다.

출애굽기 12장 35절~40절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イスラエル人はモーセのことばどおりに行い、エジプトから銀の飾り、金の飾り、それに着物を求めた。
主はエジプトがこの民に好意を持つようにされたので、エジプトは彼らの願いを聞き入れた。こうして、彼らはエジプトからはぎ取った。
イスラエル人はラメセスから、スコテに向かって旅立った。幼子を除いて、徒歩の壮年の男子は約六十万人。
さらに、多くの入り混じって来た外国人と、羊や牛などの非常に多くの家畜も、彼らとともに上った。
彼らはエジプトから携えて来た練り粉を焼いて、パン種の入れてないパン菓子を作った。それには、パン種が入っていなかった。というのは、彼らは、エジプトを追い出され、ぐずぐずしてはおられず、また食料の準備もできなかったからである。
イスラエル人がエジプトに滞在していた期間は四百三十年であった。

그냥 나온다는 것이 아닙니다. 큰 재물(多くの財産)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로 심히 많은 재물과 가축들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백삼십 년만에 나왔다고 해서 성경의 앞뒤가 안 맞는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이는 성경을 오해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13절에서 말씀하신 400년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 민족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는 기간이 400년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고, 출애굽기 12장 40절에 있는 430년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총 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요셉이 살아서 애굽 총리로 있을 때에는 아무도 야곱이나 그들 가족들을 건드릴 수가 없었지요. 건드릴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 귀빈대우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괴롭힘을 당하게 되냐 하면 요셉이 죽고 난 다음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왕이 된 다음부터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와 같은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해서 계산을 해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괴롭힘을 당한 시기를 아무리 길게 잡아보아도 400년은커녕 360년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학대 당하는 기간을 감해주셨으면 감해주셨지 본래 예언보다 늘리신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원대한 계획 하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했습니다. 그것도 몰래 살금살금 나온 것이 아니에요. 성경에는 60만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이는 성인 남성만을 세었을 때의 숫자이고, 남녀노소 다 합치면 대략 200만명, 한국으로 본다면 충청남도가 211만명 정도라고 하니까 충남 정도의 인구, 일본으로 본다면 바로 이 군마현 정도 되는 규모의 인구가 당당하게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광경이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예언과 계획으로 그 많은 무리들이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그토록 지긋지긋했던 종살이에서 벗어나서 자유인으로서, 새로운 삶, 축복된 삶을 꿈꾸고 나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희망이 넘쳐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넘쳐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얼마 가자 앞에는 홍해에 가로막히고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자기들을 죽이려고 좇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기쁨이고 감사고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모세를 원망합니다.

출애굽기 14장 10절~12절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パロは近づいていた。それで、イスラエル人が目を上げて見ると、なんと、エジプト人が彼らのあとに迫っているではないか。イスラエル人は非常に恐れて、主に向かって叫んだ。
そしてモーセに言った。「エジプトには墓がないので、あなたは私たちを連れて来て、この荒野で、死なせるのですか。私たちをエジプトから連れ出したりして、いったい何ということを私たちにしてくれたのです。
私たちがエジプトであなたに言ったことは、こう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か。『私たちのことはかまわないで、私たちをエジプトに仕えさせてください。』事実、エジプトに仕えるほうがこの荒野で死ぬよりも私たちには良かったのです。」

도대체 왜 그들은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는 바로 단순히 어려움이 닥쳐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대로, 자신들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대단히 흥미로운 점은 바로 10절~11절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イスラエル人は非常に恐れて、主に向かって叫んだ。そしてモーセに言った。

즉, 이 구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무엇을요? 예,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를 보고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애굽 군대를 보고 두려워한 그들이 한 행동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들의 영적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한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애굽 군대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어른들이 아니라 주일학교 몇 번 다녀본 애들도 다 아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들은 애굽 군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했어야 합니다.
그들은 애굽 군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애굽 군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애굽 군대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애굽 군대가 무엇입니까. 바로 현실입니다. 현실 속에서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위기입니다. 애굽을 탈출할 때 기쁨으로 충만했던 그들은 나중에 애굽 정예부대가 죽이려고 좇아오리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 만사형통, 아무런 문제 없이 편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들은 눈앞에 벌어지는 위기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

눈앞에 자기들을 좇아오는 애굽 군대를 바라보면 어떻게 됩니까. 내 눈에는 이제 시퍼런 칼과 창과 화살을 들고 좇아오는 애굽 군대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는 그 순간 게임은 끝난 것입니다.

반면에 모세는 어땠을까요.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도 마찬가지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왔을 때 애굽 군대가 추격할 것이다”라고 하나님이 말씀해주셨어요? 아니요. 그런 말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적지 않게 모세 자신도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절체절명의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모세는 애굽 군대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바라보았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현실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생깁니다. 절망이 생깁니다. 그리고 원망과 절망 앞에서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이 생깁니다. 기쁨이 생깁니다. 힘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감사가 생기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3절~14절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それでモーセは民に言った。「恐れてはいけない。しっかり立って、きょう、あなたがたのために行われる主の救いを見なさい。あなたがたは、きょう見るエジプト人をもはや永久に見ることはできない。
主があなたがたのために戦われる。あなたがたは黙っ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

여기서 가만히 있으라고 한 모세의 말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싸우실 것이니 흥분하지 말고 진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지 말고 입 다물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14장 15절~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主はモーセに仰せられた。「なぜあなたはわたしに向かって叫ぶのか。イスラエル人に前進するように言え。
あなたは、あなたの杖を上げ、あなたの手を海の上に差し伸ばし、海を分けて、イスラエル人が海の真ん中のかわいた地を進み行くようにせよ。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세요? 빨리 앞으로 나아가게 해! 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바쁘게 움직이십니다.

출애굽기 14장 19절~21절에 보면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ついでイスラエルの陣営の前を進んでいた神の使いは、移って、彼らのあとを進んだ。それで、雲の柱は彼らの前から移って、彼らのうしろに立ち、
エジプトの陣営とイスラエルの陣営との間に入った。それは真っ暗な雲であったので、夜を迷い込ませ、一晩中、一方が他方に近づくことはなかった。
そのとき、モーセが手を海の上に差し伸ばすと、主は一晩中強い東風で海を退かせ、海を陸地とされた。それで水は分かれた。

본래 이스라엘 진영을 앞에서 인도하던 구름기둥이 뒤로 물러가서 이스라엘 진영과 애굽 군대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그렇게 해 놓으니까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진영에 접근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해놓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밤새도록 큰 동풍을 불게 합니다. 영화 십계에 보면 순식간에 바다가 갈라진 것처럼 나오는데, 그건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밤새도록 바람이 불게 한 결과 바다가 갈라졌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좀 이상하지 않나요? 아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까지 동원하셔서 애굽 군대와 이스라엘 진영을 갈라놓았다면, 아예 이 참에 애굽 군대를 물리치셨더라면 더 편하지 않았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애굽 군대를 멸하지 않으시고, 말하자면 밤새도록 대기시켜놓으셨다는 말씀인데, 왜 멸하지 않으시고 굳이 밤새도록 머물게 해놓으셨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에 있습니다.

자, 이제 밤새도록 동풍을 불게 하셔서 홍해 바다를 갈라놓으셨습니다. 22절에 보면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水は彼らのために右と左で壁となった。

라고 기록합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건 강이 아니에요. 바다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바람이 계속 불어오면서 바닷물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앞을 보니까 이 길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끝이 보이지도 않아요. 물이 좌우의 벽처럼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벽이라고는 하나 바람이 막고 있는 바닷물이기 때문에 출렁거렸을 지도 모릅니다. 까딱 잘못하면 지금이라도 무너져서 다시 흐를 것 같아요.

자, 모세가 말합니다. 어서 빨리 여기를 건너라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같으면 어떠셨을 것 같습니까. 첫발이 내디뎌질까요. 용감하고 믿음 좋은 청년이라면 모를까, 거기에는 나이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계셨을 것이고요, 여성들, 아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바람은 정신 없이 불어옵니다. 그 와중에 그 불안한 길,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길을 가기 위해 첫 발자국을 내딛는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속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겠지요.

바로 이 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예비해두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애굽 군대, 그것도 정예부대를 예비해두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하지만 아무리 겁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뒤에 보면 애굽 군대가 보입니다. 그대로 주저앉아 있으면 100% 죽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애굽군대를 예비해두신 이유가 이스라엘 민족을 미워해서였을까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애굽군대는 그러면 저주인가요? 아니요. 반대입니다. 애굽군대를 예비해두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사랑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애굽군대가 없었다면 홍해를 건너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홍해를 건너지 못했다면 종살이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애굽군대가 있었기 때문에 홍해를 건너올 수가 있었던 것이에요. 말하자면 애굽군대야말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크나큰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 가시면서까지 열어주신 믿음의 길, 생명의 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길이 그 뿐인가요.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까지도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어려움이 답답하십니까. 괴로우십니까. 두려우십니까. 아니요. 오히려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일 수가 있습니다. 애굽 군대와도 같은 현실 속에서의 어려움 덕분에 우리는 믿음의 길, 축복의 길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더러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주저앉아 있으라고도 하지 않으십니다.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 정복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 1장 5절~6절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あなたの一生の間、だれひとりとしてあなたの前に立ちはだかる者はいない。わたしは、モーセとともにいたように、あなたとともにいよう。わたしはあなたを見放さず、あなたを見捨てない。
強くあれ。雄々しくあれ。わたしが彼らに与えるとその先祖たちに誓った地を、あなたは、この民に継がせなければならないからだ。

그리고 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恐れるな。わたしはあなたとともにいる。たじろぐな。わたしがあなたの神だから。わたしはあなたを強め、あなたを助け、わたしの義の右の手で、あなたを守る。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놀랄 필요도 없습니다. 내 예상대로, 내 계획대로 안 되다고 낙심하거나 힘들어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그 어떤 고통과 고난도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라면 고통도 고난도 역경도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는 모든 것이 축복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범사에 축복과 은혜로 채워주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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